얀 아스만: 문화적 기억과 초기 문명

문화적 기억과 초기 문명 | 고대문명연구소 번역총서 1 | 얀 아스만 문화적 기억과 초기 문명 | 고대문명연구소 번역총서 1 | 얀 아스만 - 10점
얀 아스만 (지은이),김구원,심재훈 (옮긴이)푸른역사

⚫ 옮긴이 서문
⚫ 저자 서문(1992)
⚫ 저자 서문(2010)
서론
1부 이론적 기반
제1장 | 기억 문화: 예비적 고찰
제2장 | 문자 문화
제3장 | 문화적 정체성과 정치적 상상력
2부 사례 연구: 예비적 고찰
제4장 | 이집트
제5장 | 이스라엘과 종교의 발명
제6장 | 법의 정신으로부터 역사의 탄생
제7장 | 그리스와 규율적 사고
결론―문화적 기억 요약
⚫ 해제: 《문화적 기억과 초기 문명》 그리고 고대 중국과 한국
⚫ 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022 그날에 당신들은 당신들 아들딸들에게 "이 예식은 내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다.………." (<출애굽기> 13:8). 
여기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대화로 구성된 기억된 역사의 단적인 예다. 자녀들은 '당신'과'우리'(주 우리의 하나님)라는 대명사를 사용해 질문하고, 아버지는 '우리' 혹은 '나'를 사용해 대답한다. 

023 이 책은 기억(혹은 과거 연관(reference]), 정체성(혹은 정치적 상상력), 문화적 지속성(혹은 전통의 형성)이라는 세 가지 주제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다룬다. 

028 모리스 알박스(1877~1945)가 최초로 이 현상에 본격적으로 주목했고, 그의 주장이 이 책 제1장의 주제를 구성한다. 나는 기억의 외재적 차원을 네 영역으로 구분하는데, 문화적 기억은 그중 하나다. 
1. '모방 기억': 이것은 행위를 가리킨다. 우리는 모방을 통해 다양한 행동 양식을 배운다. 기계, 요리, 건축 등에 관한 설명서의 사용은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일로 결코 포괄적인 것은 아니다. 행위는 결 코 완전하게 성문화할 수 없다. 일상의 예절이나 습관, 윤리 같은 다른 영역은 아직도 모방 전통에 의존한다. 르네 지라드는 이러한 모방적 측면을 그의 수많은 저서에서 중심 플랫폼으로 삼았으며, 이러한 '일방성'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문화 이론을 발전시켰다. 
2. '사물에 대한 기억': 인류는 태곳적부터 침대, 의자, 그릇, 옷, 도구와 같은 사적인 일상 용품에서 집, 도로, 마을, 소도시, 자동차, 배에 이르기까지 "사물"에 에워싸여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실용성, 안락함, 미 개념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우리의 정체성까지도 대변한다. 물건은 우리 자신을 반영한다. 즉,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과거는 어떠했을지, 우리의 선조는 어떤 사람인지 등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물의 세계에는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다양한 단계와 수준을 동시에 나타내는 시간 지수time index가 있다.
3. '소통적 기억': 언어와 소통 능력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교환, 즉 내부와 외부 사이의 순환적 혹은 피드백식 상호작용을 통해 다시 발전한다. 의식과 기억의 개별적 생리와 심리는 설명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것들은 다른 개인들과의 상호작용을 포괄하는 체계적 설명을 요한다. 한 사람의 의식과 기억은 이러한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 문제에 대해 더 상세히 들어갈 필요는 없다. 이러한 양상은 알박스의 기억 이론에 대한 논의에서 다룰 것이다. 
4. '문화적 기억': 이는 의미를 전수하는 것으로, 위의 다른 세 가지 양상이 매끄럽게 합쳐진 영역이다. 모방적 일상이 의례의 지위로 올라설 때, 예컨대 그것이 실용적 기능을 넘어 의미와 중요성을 지닐 때, 모방적 행위 기억의 경계를 초월한다. 의례는 문화적 의미를 전수하고 그 의미에 생명력까지 부여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문화적 기억의 일부다. 이는 사물이 그 실용적 목적을 넘어 의미를 나타낼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즉, 상징들, 형상들 그리고 기념비, 분묘, 신전, 우상과 같은 재현물들, 이 모든 것들은 시간과 정체성의 내포 지수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물질-기억의 경계를 초월한다. 

046 알박스는 앙리 4세 고등학교에서 베르그송에게 배웠다. 베르그송의 철학에서는 기억이라는 전제가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알박스는 또한 에밀 뒤르켐(1858~1917)의 제자이기도 했는데, 뒤르켐의 집단의식 개념이 베르그송의 주관주의를 극복하려는 그의 의문에 견고한 토대를 제공하여 기억을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하도록 이끌었다. 알박스는 스트라스부르대학에 뒤이어 소르본대학에서 사회학을가르쳤다. 1944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석좌 직을 제안받은 바로 그 해에 독일이 그를 강제 추방했고, 1945년 3월 16일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살해당했다. 

049 거주 공간도 비슷한 정박점anchorage을 제공한다.

050 기억은 장소를 필요로 하여 공간화 경향을 띤다.

052 성지들은 당대의 목격자들이 증언한 사실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그곳에 뿌리내린 믿음을 기억한다.

053 예수 기억은 십자가와 부활의 방식으로 재구성되었고 예루살렘이 그 기념 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교리와 새로운 예수기억은 교회, 예배당, 성지, 기념 명판, 골고다 언덕 등을 통해 공간적 연결고리를 부여받은 '장소 연관 체계système de localisation'를 통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053 이처럼 기억은 재구성을 통해 작동한다.

241 유대교의 올바른 삶의 방식인 할라카는 외래 통치 기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유배와 디아스포라의 시절에도 유대인들을 이끌었다. 이런 여정의 결정적인 정거장들은 다음과 같다. 
1. 서기전 722년 북왕국의 파멸과 아시리아인들에 의한 이스라엘 10 부족의 강제 이주.
2. 점점 커지는 아시리아의 압박에 따른 종교적 저항과 참사의 예언. 이것은 서기전 621년 요시아(648~609) 치하의 '율법책의 발 견'에서 정점에 달함. 
3. 서기전 586년 성전의 파괴: 추방과 유배(바빌론 유수) 및 서기전 536 년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브네 하골라)의 귀환.
4. 페르시아 통치자의 묵인하에 <신명기> 종교 강행.
5. 헬레니즘화에 대한 저항과 마카베오 전쟁
6. 로마에 대한 저항과 서기 70년 제2성전의 파괴.
7.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바르 코크바 반란 진압과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의 추방.

243 이러한 측면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역사적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기억 형상'으로서 출애굽이다. 따라서 출애굽과 광야의 사건은 앞에서 언급한 일곱 정거장 바리새적 랍비 유대교의 형성으로 이어진 일련의 역사적 계기들로, 이것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전통들이 히브리 성경으로 경전화됨과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정거장들은 역사적 배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흥미롭지만, 출애굽의 역사성은 극심한 논란의 대상이다. 이집트 측에서 제공하는 증거는 사실상 없다. 

245 건국 초부터 서기전 7세기까지 초기 이스라엘은 정치척 추이에 따라 주도적 신이 바뀌는 최고 신교 국가였다는 측면에서 다신교 국가로 간주해야 한다. 

245 바알신Baal이 전역에서 숭배되었고, 이스라엘의 종교는 근동의 여러 종교 집단과 개념들의 지역적 변이에 불과했다. 유일신교로의 변화의 조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서기전 9세기다. 

245 이스라엘인들과 유일신의 요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갈등으로 악명 높게 묘사된 것은 실제 역사적으로는 일신교적 소수와 다신교 통합적인 다수 사이의 갈등이었다. 

257 <신명기>에서 종교는 집단기억의 인위적 향상을 위한 것이다.

262 <신명기>에서 최소한 여덟 가지 문화적 기억의 기술들을 확인할 수 있다.
1. 깨닫기: 마음에 새기기
2. 교육: 언제 어느 곳에서나 소통하고 유포하고 대화함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계명 전수.
3. 시각화: 신체에 표식
4. 경계적 상징주의: 문설주의 명문
5. 저장과 공간: 석회 바른 돌에 새긴 명문
6. 집단기억의 축제: 크고 작은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야 하는 집회와 순례의 세 가지 대축제
7. 구전 전통: 역사적 기억을 집대성한 운문
8. 엄격한 실천을 위한 토대로 언약 텍스트(토라)의 경전화

265 이러한 여덟 가지 집단기억술 형태에서 마지막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전통에 대한 개입을 의미한다. 즉 끊임없이 변화하는 많은 전통의 유동적 집합을 엄격한 선택의 과정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선별된 내용이 고정되어 신성한 의미, 즉 의심의 여지없는 최고의 구속력을 획득한다. 그 이후 전통의 물줄기의 흐름이 막혀버린다. 이때부터 어떤 내용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언약이 경전이 된 것이다. 

326 아테네인들이 단호하게 공표한 이러한 범그리스 인식은 단일한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최소한도의 암시도 보여주지 않은 민족, 그들의 다양한 정치 집단들이 비정치적 방식으로만 서로 연관되어 있던 민족에게는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그리스 세계 인식은 주로 《일리아스》라는 하나의 텍스트를 통해 나온 것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국보로서 이 서사시를 기반으로, 모든 그리스인이 부족과 계급의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변화하는 정치·사회적 조건과 무관하게, 자신들을 하나로 보기 시작했다. 

327 미케네 문명과 고대 그리스 사회 사이의 실질적인 문화적·사회적 단절이 과거' 를 영웅시대의 측면에서 구성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과거의 본질적 요소는 그것이 지나가서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러한 과거가 서기전 9~8세기의 귀족 사회가 경험하고 즐길 수 있었던 이야기들의 시나리오를 창출했다. 고대 그리스 귀족 사회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자신들의 과거로 채택하여 그 계보를 트로이아 전쟁(서기전 12세기경)의 전설적 인물들 및 그와 관련된 모든 것으로까지 소급시켰다 

328 왜 이러한 기억이 특히 서기전 8세기에 동원되었는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허구적 연속성에 의해 이어진 그 파열은 서기전 1200년경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호메로스 자신의 세기도 위기와 격변의 시기였을 수 있을까? 그의 서사시들이 생생한 구전 전통으로서 영웅전설의 막바지를 나타내는 점이 무엇보다 주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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