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크: 관용에 관한 편지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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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에 관한 편지 | 고전의 세계 리커버 | 존 로크 - ![]() 존 로크 (지은이),공진성 (옮긴이)책세상 |
들어가는 말
1689년 포플의 서문
관용에 관한 편지
1. 도입
2. 공화국과 교회
3. 관용의 의무
4. 교회의 권리
5. 결론-종파들과 국가의 안전
6. 부록-이단과 종파 분리
해제-존 로크, 종교의 자유와 공화국의 자유를 함께 추구한 사상가
1. 17세기 잉글랜드와 로크의 일생
2. 《관용에 관한 편지》가 주장하는 관용과 자유
3. 21세기 지구화 시대의 《관용에 관한 편지》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23 종교적인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관용하는 것은 복음과 이성에 일치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그토록 분명한 빛 속에서도 잘 보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제게는 기괴한 일처럼 보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다른 사람들의 자만과 야심을, 자비와 온화함에서 벗어난 무절제와 열정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어쩌면 인간사에서 결코 제거될 수 없는 오류들일 테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이 남 앞에서 그 오류를 범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 오류들로 인해 잘못을 행하게 된 사람이 다른 점잖은 겉모습으로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고 칭찬을 구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들에 대한 박해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잔혹함을 공화국에 대한 걱정과 법의 준수로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종교를 구실로 자신의 도덕적 방종과 범죄에 대해 면책되기를 바라서도 안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 어느 누구도, 왕의 신실한 신하이거나 하나님의 정직한 숭배자이거나 간에,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국가civitas에 관한 것과 종교에 관한 것이 구분되어야 하고, 교회와 공화국res publica 사이의 경계가 제대로 정해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혼의 구원salus을 걱정하고 공화국의 안녕salus을 걱정하는, 혹은 마치 그런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분쟁에도 한계가 정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4 제가 보기에 공화국은 오로지 세속적 재산bona civilia을 지키고 증식하기 위해 세워진 사람들의 사회societas hominum입니다.
생명, 자유, 신체적 건강, 무병, 그리고 토지, 돈, 가구 등과 같은 외적인 것들의 소유를 저는 세속적 재산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에 속하는 이러한 것들의 정당한 소유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정된 법률을 통해 보편적으로는 모든 인민에게, 그리고 특수하게는 개개의 신민에게 보장해주는 것이 세속 통치자magistratus civilis의 의무입니다. 만약 누군가 (공화국의 법과 신의 명령에 어긋나게 정당한 소유에 관한 규정을) 위반하려 한다면, 그의 대담무쌍함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억제되어야 합니다. 그 처벌은 그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또한 누려야 마땅한 이익의 박탈이나 감소로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어느 누구도, 자유나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이익의 일부분조차 자발적으로 박탈당하지는 않으므로, 통치자는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들에게 처벌을 가하기 위해 무력, 곧 자신의 모든 신민의 신체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통치자의 모든 사법권은 오로지 이 세속적 이익에만 미치고, 세속 권력의 모든 권리와 지배는 오로지 이 세속적 재산의 보호와 증진에만 국한되며, 영혼의 구원에까지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확장되어서도 안 되고 확장될 수도 없음을 이하의 내용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영혼을 돌보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위임되어 있지 않지만, 세속 통치자에게는 더더욱 위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권한authoritas이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종교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권한을 하나님께서 그 어떤 사람에게 부여하신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통치자에게 그러한 종류의 권력porestas을 부여할 수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이 규정한 것을, 그 사람이 군주이거나 신민이거나 간에, 자신의 예배나 신앙으로 반드시 받아들일 정도로 자기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염려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설령 자신이 원하더라도, 타인의 지시에 따라 믿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종교, 구원을 가져오는 종교의 힘과 능력은 믿음 속에 있습니다. 당신이 입으로 그 무엇을 고백하더라도, 외적인 예배에서 당신이 그 무엇을 실행하더라도, 만약 그것이 참이고 또한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당신이 온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당신의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롭습니다. 당신 자신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종교를 통해 속죄해야 할 다른 죄들의 숫자에 종교 자체를 위장한 죄와 신성을 모독한 죄를 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영혼을 돌보는 일cura animarum은 세속 통치자에게 속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의 모든 권력이 강제에 기초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참된 종교, 구원하는 종교는 영혼의 내적 확신에 기초해 있으며 그러한 확신 없이는 어느 것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어떠한 외적인 힘vis으로도 강제될 수 없는 것이 인간 지성intellectus의 본성입니다. 만약 재산의 몰수, 수감 및 고문을 통한 신체적 억압 등의 처벌로써 사물에 대한 정신의 판단을 변형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29 제가 보기에 교회는 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신성에 적합하다고(신이 받으신다고) 그들이 믿는 방식에 따라 신을 공적으로publice 섬기기 위해 자발적으로sponte sua 모인 인간들의 자유로운 사회societas libera입니다. 저는 교회를 '자유롭고 자발적인 사회societas libera et voluntaria'라고 부릅니다. 어느 누구도 교회의 구성원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의 종교는 상속법에 따라 토지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전해 내려왔을 것이고, 그는 믿음을 자신의 출생에 빚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일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생각해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정은 이러합니다. 인간은 어느 교회에도 태어나면서부터 a natura 구속되지 않습니다. 어느 종파에도 태어나면서부터 그 소속이) 확정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참된 종교와 신에게서 환영받는 예배 형식을 어느 곳에서 발견했다고 스스로 믿을 때에 그 (교회) 사회에 자발적으로 가입합니다. 그 사회에서 사람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발견합니다. 바로 그것이 교회에 들어서는 유일한 이유causa 이듯이, 그것이 또한 사람이 그곳에 머무르는 한도mensura입니다. 만약 그 어떤 교리상의 오류나 예배 형식의 불일치를 발견하면, 자유롭게 그가 (교회에) 들어간 것처럼 언제나 자유롭게 나올 수 있도록) 반드시 출구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영원한 삶에 대한 일정한 기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풀 수 없는 끈은 교회에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자기 의사에 따라, 그리고 (영혼의 구원이라는) 목적으로 결합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집니다.
47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약 그가 자기 건강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만약 그가 (영혼을 돌보는 일보다) 통치자의 명령권에 더 가까이 속해 있는 자기 집안일을 돌보기를 소홀히 한다면, 통치자가 그 일에 대한 법령을 만들어 병들거나 가난해지지 않도록 조심케 해야 합니까? 법은 할 수 있는 한 신민의 재산과 건강을 타인의 폭력이나 사기로부터 보호하려고 노력하지만, 소유자 자신의 부주의나 낭비로부터는 보호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억지로 건강해지도록, 억지로 부유해지도록 강제할 수 없습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은 심지어 하나님도 구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77 모든 필사의 존재는 영원히 행복할 수도 있고 영원히 불행할 수도 있는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구원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필수적이며 하나님에 의해 처방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행했는지, 마땅히 믿어야 할 것들을 믿었는지에 달려 있으므로, 그것에 다음과 같은 결론이 뒤따릅니다. ① 사람은 모든 것에 앞서 이것들(마땅히 믿고 행해야 할 것들)을 지킬 의무가 있으며 자신의 모든 관심과 열심, 근면을 무엇보다도 탐구하고 수행해야 할 이것들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필사의 조건은 영원성에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견줄 만한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② 사람이 자신의 오류투성이 예배로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어떻게도 침해하지 않으므로, 신성한 사안에 관해 다른 사람과 함께 올바르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지 않으므로, 그리고 그의 멸망이 다른 사람의 번영에 손해가 되지 않으므로, 자기의 구원을 돌보는 일은 오로지 각자에게 속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마치 제가 모든 애정 어린 충고와 오류를 논박하는 자들의 열심을 배제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받아들여 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최상의 의무입니다. 권고와 논증은 그것을 다른 사람의 영혼에 제아무리 많이 사용하기를 원하더라도 모두에게 허락됩니다. 그러나 무력과 강제는 없어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지배를 위한 어떠한 것도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 일에 관해 자기 자신에게 납득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충고나 권위를 따를 의무는 없습니다.
80 법을 제정하는 통치자의 대권praerogativa 이 어떠한 목적에 따라 인도되어야 하는지가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땅에서의 혹은 세상에서의 공공 재산(의 보호)입니다. 그것이 사회에 들어가는 유일한 이유이며 세워진 공화국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반면에, 장차 올 삶을 기대하는 것에 관해서는 각자의 자유가 사인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기뻐 받으심에 사람들의 구원이 달려 있으므로, 각자는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믿는 것을 (자신의 구원을 위해) 행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순종은 하나님에게 바쳐야 하고, 그다음으로 법에 순종을 바쳐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통치자의 칙령이 사적인 양심에 불법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명령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약 공화국이 좋은 믿음에 따라 다스려지고 통치자의 고문들이 참으로 시민들에게 공통된 선을 향하여 인도된다면, 그러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연히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저는 사인에게 자신의 양심이 불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행동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불법적이지 않게 자신에게 부과되는 처벌은 감수해야 한다고 저는 말하겠습니다.
87 마지막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관용될 수 없습니다. 무신론자에게는 인간사회를 묶는 끈인 신뢰도, 약속도, 맹세도, 그 어떤 것도 안정적이고 신성할 수 없습니다. 생각만으로라도 하나님을 없애면 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 밖에도 무신론으로써 모든 종교를 송두리째 없애는 사람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떠한 관용의 특권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 실천적인 견해들에 관한 한, 비록 그것들이 모든 오류에서 자유롭지 않을지라도, 만약 어떠한 지배나 시민적 면책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을 가르치는 교회에 관용이 베풀어져서는 안 될 어떠한 이유도 제시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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