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레이든: 칼 바르트

 

칼 바르트 | 비아 문고 11 | 마이클 레이든 칼 바르트 | 비아 문고 11 | 마이클 레이든 - 10점
마이클 레이든 (지은이),윤상필 (옮긴이)비아

1. 왜 칼 바르트인가? / 7
2. 바르트의 생애 / 13
3. 바르트의 윤리 ‘문제’ / 23
4. 교의학이 곧 윤리학이다
- 윤리에 대한 바르트의 접근 / 35
5. 다시 생각해 본 인간의 책임 / 47
6. 바르트 윤리 신학이 가르쳐 주는 점 / 57
7. 더 읽어 보기 / 63
주석 /70
칼 바르트 읽기 /77
함께 읽어볼 만한 책 /137
칼 바르트 저서 목록 /146
칼 바르트 연보 /149

 


57 바르트 윤리학이 특정 행동 규범을 제시하지 않는다 해도 행동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진행했던 윤리적 추론은 행동을 위한 필수적인 예비 행위였다. 그는 그리스도교 고유의 윤리적 추론이 살아있는 윤리 원칙을 제시하고자 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가 평생에 걸쳐 전쟁 및 무기에 관한 윤리부터 교육, 정치, 교회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사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이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생명 윤리, 전쟁, 아동 인권, 포스트모더니즘, 정치, 공공 담론, 해방, 낙태 등 다양한 화두가 그리스도교 담론의 장에 등장했다. 많은 학자가 바르트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러한 문제에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바르트는 여전히 동시대적 이슈에 참여하는 시사논객이다. 2008년 프린스턴 신학교는 바르트 윤리학에 대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는데 전쟁, 민주주의, 범죄와 처벌, 경제, 인간의 행위, 자유의 의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이러한 사실은 교의학을 윤리적으로 실행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바르트가 이 논의에 얼마나 공헌을 했는지는 여전히 진행형인 문제다. 이제는 바르트 윤리학이 갖는 의의를 서너 가지로 정리하겠다. 물론 이 논의에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물음을 던져야 한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믿는 이로서 이 물음을 던져야 한다. 시류를 벗어난 주장처럼 들린다 할지라도 바르트가 남긴 이 신학적 유산은 여전히 호소력을 갖고 있다. 그리스도교 윤리학자들이 신앙의 사회적 측면 못지않게 신학적 측면이 얼마나 중요한 지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자유주의 윤리학이 옛 신조를 낡은 역사적 유물로 치부하는 바람에 신조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교의는 철 지난 골동품 취급을 받았다. 바르트는 신조와 교의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핵심 조건을 새롭게 발견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 놀라운 일은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특수하고도 새로운 현실을 신뢰할 때 이루어진다. 성서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우리가 윤리적인 고민과 추론에 참여하는 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기를 멈출 수 없다. 

둘째, 그리스도인이 윤리적 추론을 통해 공공 영역에 참여하고 이를 중시하는 것은 건전한 사고방식이다. 바르트 윤리학에 대한 초기 비판은 그의 신학적 내용이 공공 영역으로 전환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판자들은 그의 교의적 색채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공공 영역에서 주목하고 활용할 중립적인 개념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비판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공공 영역도 중립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섣부른 신학적 변용으로 인해 그리스도교 신앙이 오용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바르트의 노선을 따르되 그의 제안을 수정하려는 시도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을 '보편적' 인간성으로 보고, 예수의 삶과 활동을 현시대의 문화적 표상으로 세우려는 시도가 그 예다. 바르트 신학을 교회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그의 윤리적 존재론을 바탕으로 창조 세계의 의미를 분석하려는 시도도 있다. 이러한 시도를 하는 학자는 창조세계 전체의 의미를 통해 하느님이 누구이며, 하느님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폭넓게 증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바르트 윤리에 관한 여러 담론은 선교와 복음 전파를 위한 창조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고, 「교회교의학」 3부 4권에 나오는 신앙고백으로 발전될 만한 잠재력도 갖고 있다. 

셋째, 교의는 단순히 인식의 동의가 필요한 규범적 진술을 넘어선다. 교의는 복음의 성문화된 형식이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듣고 받아들여야 할 하느님의 말씀(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담아 낸 진술이다. 교의는 세상과 비할 수 없는 참된 현실성을 해명해준다. 교의는 그리스도인에게 도전한다. 이때 그리스도인은 교의를 삶에서 어떻게 체화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특히 교의학의 관점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교의는 교회적 관심을 넘어서 일상의 자리까지 침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바르트는 윤리적 추론은 반드시 구체적인 행동을 낳는다고 믿었다. 보편적인 차원의 선한 삶과 그 특징에 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지만, 그의 통찰은 근본적으로 삶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었다. 바르트는 실천적인 적용을 늘 염두에 두면서 윤리 담론에 참여했다. 구체적 행동을 겨냥한 바르트의 윤리학적 이해방식과 적용방식은 여전히 많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윤리학은 실제 삶을 다루는 학문이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그분이 주신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가? 그리스도교 윤리학은 그러한 실제 삶을 다룬다. 바르트의 윤리 신학은 오늘날 문화적 풍조에 휩쓸리고 있는 우리가 되새겨야 할 귀한 가르침을 선사한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윤리적 추론을 철저히 거쳤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삶의 자리에서 동료 인간에게 끼친 영향을 기준으로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은총으로 만인에게 복음을 선포하신 분이다. 바르트는 우리가 그러한 복음을 몸으로 살아내라고 격려한다. 

바르트의 신학은 여전히 새로운 상상력을 포착하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열어준다. 그 길이란'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물음을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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