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희성: 바가바드 기타

 

바가바드 기타 | 길희성 바가바드 기타 | 길희성 - 10점
길희성 (지은이)동연출판사

전집 발간에 즈음하여
바가바드 기타에 대해서
1장 아르주나의 낙심
2장 이론의 요가
3장 행위의 요가
4장 지혜의 요가
5장 행위의 포기 요가
6장 명상의 요가
7장 지혜와 통찰의 요가
8장 불멸의 브라만 요가
9장 으뜸 지식과 으뜸 비밀의 요가
10장 현현의 요가 11장 우주적 형상을 알현하는 요가
12장 신애의 요가
13장 밭과 밭을 아는 자를 구별하는 요가
14장 세 요소를 구별하는 요가
15장 지고 정신의 요가
16장 신적 운명과 악귀적 운명을 구별하는 요가
17장 세 가지 믿음을 구별하는 요가
18장 해탈을 위한 포기의 요가
부록 바가바드 기타 범어 원문

 


15 「기타」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로 요가(yoga)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타」를 구성하는 18장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어떠어떠한 요가라고 주제를 표시하는데, 이것이 보여주듯이 기타는 요가에 관한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요가'라는 단어는 「기타」에서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미는 정신 혹은 마음이 한 대상에 집중되어 산만하지 않고 제어된 상태를 가리킨다. 'yoga'라는 말은 범어 'yuj'라는 동사 어근에서 형성된 명사로서, 'yuj'는 말을 수레에 붙잡아 매다', 소에 '멍에(yoke)를 매다', 어디에 무엇을 '붙이다', '접합하다', 장비 등을 갖추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서 정신을 '집중하다', '통일하다. '제어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기타」에는 'yuj의 수동과거분사인 'yukta'라는 단어가 매우 빈번히 나오는데, 이는 각종 욕망에 이끌려 흐트러지고 산란해진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고정되거나 집중함으로써 통일되고 '제어된' 상태를 가리킨다. 

「기타」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감각기관들이 대상들과 부단히 접촉하는 동안 여러 갈래로 갈리고 각종 욕망과 충동에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일상적인 인간의 마음이란, 말하자면 마구 날뛰는 난폭한 말이나 끝없이 출렁이는 물과 같기 때문이다. 이렇듯 산만한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각기관들을 대상들과의 접촉으로부터 차단하고, 분리시켜서 날뛰는 감각기관들을 그 우두머리 격인 마음(manas, 根)과 지성(buddhi, 知性)으로 단단히 제어하고 고정시켜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난무하는 감각기관들의 횡포와 거기서 발생하는 각종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나 확고부동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곧 기타가 말하는 '제어된'(yukta) 상태이며, 이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기타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간주한다. 끝없는 욕망과 갈구의 갈등과 악순환, 대립과 혼란을 넘어서 평안(śānti)을 얻은 무욕의 사람이다. 이러한 사상의 배후에는 일정한 철학적 인간관이 전제되어 있다. 

18 「기타」는 이런 수론·요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한가지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즉 수론·요가 사상이 물질과 정신을 아우르는 하나의 궁극적 실재나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 이원론인 반면, 「기타」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하나의 궁극적 실재에 돌리는 일원론적 그리고 유신론적 사상을 따른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기타』는 우파니샤드의 주류 사상인 일원론적 형이상학을 따르고 있으며, 이것은 또한 『기타』가 베단타 사상의 주류에 속하는 근본 이유가 되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우파니샤드의 핵심 사상은 범아일여, 즉 우주의 궁극적 실재이며 만물의 근원인 무형 무명의 브라만(Brahman)이 인간에 내재하는 영원한 정신적 실체인 참자아(atman)와 아무런 차이가 없이 완전히 하나라는 사상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참자아란 각기 차별을 지닌 인간의 개별적 자아 혹은 현상적 자아가 아니라 아무런 차별성도 지니고 있지 않은 순수한 자아, 모든 인간에 공통된 보편적 자아(universal self)이다. 그것은 인간뿐 아니라 우주 만물에 편재하는 우주적 자아(cosmic self)이다. 우파니샤드는 그것을 순수 존재(sat), 순수 정신 혹은 의식(cit) 그리고 희열(ananda)로 묘사한다. 「기타」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우파니샤드적 일원론에 기초하는 한편, 부분적으로 위에 언급한 수론-요가 철학의 인간관을 수용한다. 따라서 『기타』가 말하는 자아, 정신, 혹은 육신의 주는 기본적으로 수론 철학에서처럼 무수히 많은 개별적 자아나 정신이기보다는 보편적 자아이며 만물에 내재하는 본질 내지 정수인 브라만 그 자체이다. 

이에 더하여 『기타』 사상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이 보편적 자아와 브라만을 우주 만물의 근원이며 창조자인 대주재신(Mahesvara), 즉 비슈누크리슈나라는 인격신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생의 궁극 목표인 해탈도 인간과 우주 만물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지적 깨달음을 넘어서 인격신 비슈누크리슈나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믿음과 사랑을 「기타」는 신애(bhakti)라 부르고 있으며, 신애를 통한 해탈의 길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선포한다. 「기타」는 신을 인간을 사랑하며 혼란에 빠진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출현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기타」는 결코 엄격한 철학적 일관성을 지닌 논서가 아니다. 기타는 그것이 형성된 당시(서력기원전 약 2세기경) 인도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사상적 흐름이 편입되고 종합된 문헌이다. 수론-요가 철학과 우파니샤드적 범아일여 사상 그리고 인격신에 대한 신애를 강조하는 사상이 혼재하면서 절묘하게 융합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상적 불협화음과 모호성이 노출되어서 해석상의 어려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앞서 「기타」 사상의 핵심이 요가에 있다고 말했지만, 「기타」의 융합적이고 절충적인 사상은 「기타」의 요가 사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기타」는 세 가지 요가를 해탈의 길로 제시한다. 첫째는 지혜의 요가(jnana-yoga)로서, 지혜를 통해서 요가를 성취하는 길이다. 여기서 '지혜'란 정신과 물질, 육신의 소유주와 육신을 엄격히 구별하는 수론 철학, 혹은 우파니샤드적인 범아일여를 깨닫는 지혜를 뜻한다. 「기타」는 이 지혜의 길을 이론적 지식에 치중하는 해탈의 길로 간주하면서, 힌두교의 전통적 삶의 양식인 법도(dharma)를 준수하는 실천적인 해탈의 길과 구별한다. 후자는 행위의 요가(kama-yoga), 즉 행위를 통한 요가와 해탈의 길로서, 「기타」 전체를 관통하는 사상이다. 「기타」는 해탈을 얻기 위해서 사회적 의무를 준수하는 행위를 포기하고 명상과 지혜의 추구에만 치중하는 전통적인 포기자(sarinnyasin)의 길보다는 바른 행위를 하면서도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포기하는 순수한 행위의 길. 내면적 포기의 길을 더 우월하고 진정한 포기의 길로 제시한다. 따라서 행위의 요가는 행위 자체의 포기가 아니라 행위 속에서의 포기를 실천하는 해탈의 길이다. 행위의 요가 사상은 「기타」가 힌두교 사상사에 기여한 독특한 공헌 가운데 하나이다. 욕망 없는 순수한 행위를 강조하는 행위의 요가는 사회적 의무를 포기하는 「기타」 이전의 우파니샤드적인 해탈(moksa) 이념과 사회적 윤리와 질서를 중시하는 법도(dharma) 이념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절묘한 조화로서, 간디를 위시한 현대 힌두교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론과 실천, 지혜의 요가와 행위의 요가가 결코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결과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초월하는 순수한 행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행위를 초월해 있는 초연한 자아, 즉 '육신의 소유주'와 행위를 하는 육신을 엄격히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모든 존재를 차별 없이 보는 초월적 지혜의 시각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21 학자들은 「기타」가 본래 인도 서북부 지방에서 바수데바(Vāsudeva)라는 신을 '존귀한'(bhagavant) 주님으로 숭배하던 바가바타(Bhagavatas) 파에 의해 만들어진 시가집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들은 적어도 서력기원전 2세기 말 이전부터 존재해 온 집단으로서,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서 확인된다. 이들의 신앙 운동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당시 인도에서 전개되던 다양한 사상과 신앙을 흡수하면서 기반을 넓히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의 시가집인 『기타』에도 다양한 사상이 편입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가바타 파가 섬기던 바데바를 베다에 등장하는 신 비슈누(Visnu)와 동일시하는 한편 인도 중북부 마투라(Mathura) 지역의 야두(Yadu) 족 출신의 영웅 크리슈나(Krsna) 숭배를 흡수하여 바수데바-크리슈나로서 숭배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기타』는 크리슈나를 바데바라고 부르기도 하며 비슈누의 화신(avatara)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첫째,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베다에서는 아직 그다지 중요한 신이 아니었던 비슈누에 대한 신앙이 바수데바-크리슈나 신앙과 합쳐짐으로써 힌두교 전통에서 시바(Siva)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 신앙의 대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기타」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화신 사상은 비슈누 신앙과 여타 신앙 운동들을 흡수하는 데 매우 편리한 이론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 후 전개된 비슈누 파 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비슈누의 10가지 주요 화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인정하는데, 그 가운데서 크리슈나는 물론 가장 중요한 화신이며 비슈누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여하튼 「기타」는 근본 성격상 바수데바크리슈나비슈누라는 최고 인격신을 우주 만물의 근원이자 대주재자로 섬기는 신앙적 문헌으로서, 신애의 요가, 신애의 길을 가장 주요한 해탈의 길로 제시한다. 

둘째로 주목한 점은, 「기타」에서의 신애(bhakti)는 중세 힌두교를 휩쓴 대중적 신애 운동에 나타나는 비슈누나 시바에 대한 강렬하고 열정적인 사랑으로서의 신애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기타」의 신애는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기보다는 명상적이고 요가적이다. 신애는 오직 신만을 골똘히 생각하고 신에게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다하는 태도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사심 없이 전심으로 신에게 헌신하고 바치는 정신적 태도를 가리킨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타」가 신애의 요가 사상을 통해서 신에 대한 사랑의 주제를 힌두교에 도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이를 통해 「기타」는 결국 중세 힌두교의 대중적 신앙 운동이 전개되는 기초를 놓았고, 결과적으로 베다 의례를 중심으로 했던 고대 힌두교가 중세 이후 오늘에 이르는 대중적 힌두교로 변모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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