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프리처드: 교회

 

1.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유
2. 왜 교회에 가야 하는가?
3.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4. 교회를 찾아가기
5. 예배로 나아가기
6.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주의하기 해설: 교회의 정체성과 나아갈 길 함께 읽어볼 만한 책

 


47 이제 수준을 좀 더 높여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은 바로 예배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교회를 찾으며, 현실 교회는 다양한 활동을 벌입니다. 그런데 그중 어떤 활동은 다른 어떤 단체, 어떤 곳에서도 할 수 없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교회, 전체로서의 교회, 순수하고 가공하지 않은 교회는 하느님께 예배하는 공동체, 그리고 그 공간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직자나 사목자가 마음에 들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아이가 세례받기를 원해서, 어떤 사람은 병상에서 하느님과 약속했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은 자기 아이가 교회학교에 갔으면 하는 바람에, 어떤 사람은 아주 막연하게 교회에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교회를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내기에 져서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연유로 교회에 갔든 예배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예배는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르시시즘이라는 거울에서 우리 자신을 떼어 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며 우리는 일주일간 희미해진 마음을 가다듬으며 하느님께 마음을 집중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경배합니다. 예배를 드리며 우리는 우리 자아를 주인으로 여기게 만드는 모든 우상을 쫓아내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모십니다. 그 시간, 우리의 모든 것이 바로잡힙니다. 예배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예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염려를 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은 마치 하느님이 끊임없이 칭송받기를 원하는 미성숙한 전제군주이거나, 열렬한 팬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B급 연예인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진정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존재하지 하느님의 안위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성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습니다.

당신을 찬미함으로써 향유하라고 일깨우시는 이는 당신이시니, 당산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 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합니다. 

우리는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닌 것을 예배하게 된다면,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을 예배한다면 모든 상품의 가격표가 뒤엉키듯 모든 것의 가치가 뒤엉키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자별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우리뿐만아니라 하느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온 세계를 위해 예배합니다. 우리는 일요일 아침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교회에 가라고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며 이를 기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전 세계 모든 이를 대신해 모든 이의 편에서 예배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이를 섬깁니다. 이는 엄청난 특권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배의 형식이 예배한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음을 뜻합니다. 참된 예배를 식별하는 기준은 그 예배가 전례적으로 완벽한가가 아니라 예배가 진정으로 살아있으며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가입니다. 남아메리카에서 온 그리스도교인이 영국을 방문한 뒤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어느 모임에서는 그를 초대해 영국 교회에서 받은 인상을 이야기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모든 예배가 정확히 제시간에 시작하더군요. 성령께서 도착하시지 않았을지라도 말이지요." 예배에 생명을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 하느님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형태의 예배를 드리느냐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영혼이 점화되느냐입니다. 어디에서 예배하든, 그 형태가 어떠하든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 우리가 성령이라는 거룩한 실재에 붙잡히는 것이며 이를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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