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던바: 신을 찾는 뇌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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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찾는 뇌 | Philos 시리즈 38 | 로빈 던바 - ![]() 로빈 던바 (지은이),구형찬 (옮긴이)arte(아르테) |
머리말
1장 종교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2장 신비주의적 입장
3장 믿는 것이 좋은 이유
4장 공동체와 회중
5장 사회적 뇌, 종교적 마음
6장 의례와 동기성
7장 선사시대 종교
8장 신석기 위기
9장 컬트, 섹트, 카리스마
10장 분열과 분파
주석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그림 목록
참고 문헌
찾아보기
7 역사가 우리와 함께해 온 세월만큼 종교는 인간 삶의 한 특징이었다. 민족지 기록 또는 고고학 기록에서, 어떤 형태의 종교도 갖지 않은 문화는 알려진 바 없다. 심지어 지난 몇 세기 동안 일반화된 세속 사회에도 자신을 종교적이라고 느끼고 자기 종교의 의례를 실천하는 데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이런 종교들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수백 명 정도인 소규모 컬트부터, 수천만, 심지어 수억 명에 이르는 신자를 보유하고 모든 국가에 대표단을 둔 세계적인 조직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 스타일, 규모 면에서 다양하다. 일부는 불교처럼 개인주의적 태도를 취한다(구원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고대 아브라함 종교'와 같은 일부 종교들은 적절한 의례 수행을 통한 집단적 활동을 구원으로 간주하는데, 몇몇 종교에는(가령, 유대교) 내세에 대한 공식적인 개념이 없다.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등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따르는 종교들의 총칭)와 이슬람교 같은 일부 종교는 전능한 유일신을 믿는다. 힌두교와 신토 같은 종교는 크고 작은 신들의 진정한 만신전을 가지고 있는 반면, 몇몇 종교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어떤 종류의 신도 전혀 믿지 않는다. 불교가 바로 그런 예다(그러나 불교의 대부분 종파는 준-신적 존재인 보살에 대한 신앙을 허용하여 한낱 인간의 나약함을 보듬는 것도 사실이다).
9 종교는 물론 현대적 현상이 아니다. 과거로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 조상들이 어떤 형태로든 내세를 믿었다는 명백한 단서가 있다. 명백히 사후에 사용하도록 의도된 부장품을 동반하는 매장 풍습은 약 4만 년 전부터 점차 일반화되었다. 그중 가장 화려한 것들은 모스크바의 바로 동쪽 볼가강 상류의 숭기르에 있다. 시기는 약 3만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덤 몇 개가 강둑의 작은 언덕 요새 근처에 모여 있다. 그중 두 개는 10세와 12세 정도 되는 아이들을 이중묘에 머리를 맞대고 묻었다. 이 시기 유럽과 아프리카의 많은 사례와 마찬가지로, 그 매장지는 유난히 호화롭고 정교하다. 이는 매장 수행자들이 저승에서 아이들의 삶이 지속될 것을 믿었어야만 말이 되는 방식이다.
11 고대 매장은 우리가 종교를 발견하더라도 어떻게 그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챈 것인가에 관해 몇 가지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 한 가지 문제는 종교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지난 수천 년 동안 세계를 점유하게 된 대여섯 개 정도인 교리종교 또는 계시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내세에 대한 믿음과 세련된 신학적 교리, 기도와 희생 제의를 포함하기도 하는 복잡한 의례, 매우 특수한 문화 전통에 의해 정의되는 의식 행사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종교들은 세계 무대에 늦게 등장했다. 지금은 그 수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기껏해야 수천 년 정도밖에 안 된 종교들이다. 현대의 모든 세계종교 중에서 조로아스터교(현대 파르시의 종교)('파르시(Parsi)')는 인도 및 그 주변 국가에 사는 페르시아인을 말한다)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1000년대(기원전 2000년대일 수도 있음)의 어느 시점에 페르시아의 예언자 조로아스터, 즉 차라투스트라가 창설했다고 여겨진다. 이는 또한 영향력이 가장 큰 종교로서, 수많은 여타 세계종교에 이런저런 식으로 영향을 끼쳐 왔다. 이런 종교들의 문제는 우리 종이 실천해 온 종교들, 그리고 일부에서 여전히 실천하고 있는 종교들의 넓은 범위를 대표할 수 없다는 점이다.
12 종교의 정의는 아마도 종교학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의되는 주제일 것이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은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계몽주의 이후 서유럽을 특징짓는 특정한 사고방식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은 계몽주의가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고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지상의 장소와 신이 거하는 영적인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기독교의 이원론적 관점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주장한다. 많은 소규모 민족지 사회(또는 부족사회) (민족지 사회란 전통적인 민족지 연구의 조사 대상인 소규모 인구집단을 가리킨다)에서 영적 세계는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현세의 일부다. 환경의 모든 측면에 정령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령들은 벽을 통과하는 능력 혹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세계를 공유하고 우리만큼 실체적이다. 우리는 특정 문화의 신념이나 의례적 관행을 연구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라는 주장이 있다. 각 문화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한 문화의 종교가 다른 문화의 종교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관찰하고 논평할 수 있고 어쩌면 감탄할 수도 있지만, 결국 가벼운 여행기 이상의 것은 결코 만들어 내지 못하는 문화 관광객의 입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14 종교가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를 보면,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마도 공정할 것이다. 하나는 19세기 사회학의 위대한 창시자인 에밀 뒤르켐에게서 나온 것으로, 종교는 도덕공동체, 즉 세상에 대한 일련의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수용하는 통합된 관행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이 견해는 인류학의 관점을 취하며, 대다수 종교에서 의례를 비롯한 기타 관행이 수행하는 중요한 실제 역할을 강조한다. 즉 종교란 사람들이 행하는 어떤 것이다. 다른 견해는 좀 더 철학적인 혹은 심리학적인 접근을 취한다. 종교는 한 공동체가 증거의 요구 없이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포괄적인 세계관, 즉 신념의 집합이다. 즉 종교란 한 집단의 사람들이 믿는 어떤 것이다. 이들은 극과 극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는 두 가지 접근방식이 모두 옳다고 보고 믿음과 의례가 종교의 상이한 차원들을 나타낸다고 가정한다. 개별 종교는 두 가지 차원이 모두 높거나, 하나는 높지만 다른 하나는 낮거나, 둘 모두 낮을 수 있다. 한 정의가 맞고 다른 정의는 틀렸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단지 두 정의가 다차원적 현상의 서로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14 어떤 면에서 이 두 가지 정의는 이전에 종교사학자들(historians of religion)이 끌어낸 구분을 반영한다. '애니미즘적' 종교(그 기원이 깊은 시간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 최초의 보편적 종교 형태)라고 불리던 것과 지난 몇천 년 동안 출현한 교리종교 또는 세계종교 사이의 구분이다. 사실상 그것은 의례와 믿음의 구분, 즉 행위와 생각의 구분이다.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것을 '개인종교(personal religion)'와 '제도 종교(institutional religion)'라고 불렀다. 그러나 두 견해를 하나로 묶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즉, 전부는 아닐지라도 종교 대부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그리고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보이지 않는 생명력에 대한 어떤 개념을 갖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는 영적 존재들(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계에 관심을 갖고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이 거주하는 일종의 초월적 세계(관찰 가능한 물리적 세계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겠다. 그 정의는 공식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불교 같은 종교를 포함해 모든 세계종교를 포괄할 만큼 충분히 광범위하다. 그것은 우주의 보이지 않는 중심에 있으면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신비한 힘을 믿는 뉴에이지 운동과 같은 비주류 신앙 체계(pseudo-religions)에도 똑같이 잘 맞는다. 만약 이 정의가 훗날 실제 종교가 아니라고 판정할 수 있는 모호한 활동을 포함한다고 해도, 현재 시점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일단 실체를 파악하고서 이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16 아무튼 종교는 하나의 퍼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책의 초점이 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 외견상의 보편성이라는 문제가 있다. 인식 가능한 어떤 형태의 종교도 없는, 즉 초월에 대한 어떤 감각도 없는 문화는 극히 드물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점점 더 세속화되고 있지만 종교적 믿음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많은 억압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믿음은 지속한다. [박식가 피에르 시몽드 라플라스와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의 영향을 받은] 19세기 프랑스의 실증주의 철학자들은 종교가 대체로 미신이며 교육 부족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특히 과학 분야의 보편 교육을 주창했다. 러시아에서는 혁명 이후에 종교를 억압하고 국가 무신론으로 종교를 대체하려는 보다 과감한 시도가 있었다. 교회의 재산이 몰수되었고 신자들은 괴롭힘을 당했으며, 종교는 조롱을 받았다. 나중에는 공산주의 중국에서 종교가 불법화되었고, 종교 문헌의 소지는 범죄가 되었으며, 모스크와 역사적인 불교 사원은 불도저로 파괴되었고, 종교적 소수자들은 괴롭힘을 당하거나'재교육' 센터로 강제수용되었으며, 성직자들은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강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믿음과 종교 기관들은 종종 음지에서 살아남았다. 규제가 풀리자마자 종교는 다시 일어났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종교적 성향이 강한 것일까?
종교에 관한 둘째 퍼즐은 하나만 있어도 될 종교가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교들이 나뉘는 이런 경향은 특히 현대 신종교 운동의 발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기존의 모든 세계종교들도 같은 분열 과정에 직면했으며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때때로 그 종교들이 낳은 섹트(sects)는 그 기세를 키워 자체의 권리를 지닌 기성종교가 된다. 유대교의 후예인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분명한 두 사례지만, 시크교(기라성 같은 북인도 종교들에서 15세기경 발전됨)와 바하이 신앙(시아파 이슬람에서 19세기에 발전됨) 역시 다른 두 사례다. 종교가 왜 이렇게 쉽게 갈라지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종교들이 분열하는 것을 보고, 이를 당연하게 여길 뿐이다. 그러나 많은 세계종교가 믿듯이 만약 참된 종교가 계시되었다면 왜 사람들은 계시된 것에 계속해서 동의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도 근본적으로 의견이 갈려 그 불일치로 인해 결국 서로 다른 종교들이 생겨날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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