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콕세지: 아씨시 프란치스코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6. 8.

|
아씨시 프란치스코 | 비아 문고 4 | 사이먼 콕세지 - ![]() 사이먼 콕세지 (지은이),양세규 (옮긴이)비아 |
들어가며
아씨시 프란치스코의 생애
프란치스코와 기도
삶 가운데 살아있는 기도
프란치스코의 가르침 실천하기
프란치스코의 기도 살기
주석
아씨시 프란치스코 읽기
함께 읽어볼 만한 책
아씨시 프란치스코 글 목록
아씨시 프란치스코 연보
15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력하게 항의한 뒤, 프란치스코는 얼마간 아씨시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동냥하러 다니면서 마을에 있는 성당들을 짓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그는 확신하지 못했다. 확신을 하게 된 것은 1208년 성 마티아 사도 축일이었다. 그 날 미사를 드리던 중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께서 다시금 찾아오셨다. 마태오의 복음서에 있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복음을 선포하라던 말씀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전대에 금이나 동전을 넣어다니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여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마라.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
(마태 10:9-10)
프란치스코는 분명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곧바로 겉옷을 벗어 버리고 지팡이도 내버린 뒤 길을 떠났다. 그는 설교와 치유를 하되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마련하지 말라는 복음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따랐다. 이 복종은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리고 이 복종에서 프란치스코의 활동과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란치스칸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란치스코는 동냥과 성당 수리하기를 계속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과 가족 대부분이 그를 별난 사람으로 여겼고 창피하다고 생각해 무시했다. 얼마 뒤, 몇몇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아씨시에서 가장 부유한 귀족이었던 퀸타발레의 베르나르도Bernard of Quintavelle는 프란치스코를 시험하고자 그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머물도록 하고는 밤새 그의 행동을 몰래 지켜보았다. 모든 사람이 잠이 들었다고 생각하자, 프란치스코는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되뇌었다.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 그 모습을 본 베르나르도는 크게 감격하여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프란치스코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재산을 갖지 않았고 소박하게 생활했다. 그들은 함께 기도했으며 때로는 노상에서 몇몇씩 모여 설교하고 복음을 전했다. 프란치스코는 이들을 위해 많은 부분이 성서 구절로 이루어진 '생활 양식'Rule of Life을 집필했고 교황의 승인을 얻었다.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났다. '작은 형제회'OFMt: Ondo Fratrum Minorum라 불리게 된 이들은 유럽 각지에 자리를 잡았다. 1212년에는 클라라라는 이름의 마을 소녀가 프란치스코를 따라나섰다. 이 소녀가 훗날 '가난한 클라라회'Poor Clares, 곧 2회 second Onder를 창립한 클라라 성녀이다. 한편 생업이나 가정을 떠날 수 없었던 이들은 프란치스코가 쓴 소박한 회칙을 따라 생활했다. 이들은 후에 3회 Third Order라고 불렸다.
초창기 형제들의 삶은 힘겨웠다. 형제들은 기도하고 성무일도를 바치며 노동으로 먹을 것을 마련했다. 일할 수 없을 때는 동냥으로 음식을 마련했다. 또한, 나병 환자들을 포함한 병자들을 돌보고 복음을 설교했다. 머물만한 변변한 집도 없어 생선 한 바구니를 집세로 내고 아씨시 근처에 있는 허름한 오두막에 살았다. 규칙적인 금식을 비롯한 가난의 규칙은 유럽 각지로 떠난 선교 여행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해마다 한 번씩 모든 형제는 총회를 위해 모였다. 어느 해, 총회가 끝난 뒤 프란치스코는 이슬람 교도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길을 나섰다. 몇 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떠난 선교 여정이었다. 그는 한 사람만을 데리고 이집트북부에 있는 위험천만한 십자군 전선을 가로질러 술탄과 대면했다. 물론 술탄의 신앙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1217년경 형제들의 수는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수도회는 조직화하였다. 초창기에는 프란치스코 자신이 모든 결정을 내렸으나 1220년 그는 한 사람의 봉사자minister로 물러났다. 다른 사람이 총봉사자minister general의 자리에 오름에 따라 수도회는 점차 뜻이 맞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에서 국제적인 규모의 수도회로 변화했다. 형제들은 소박한 거처를 사거나 빌렸고 지원자들은 수도자가 되기 위한 1년간의 수련 기간을 거쳤다. 이들은 책과 한 켤레의 신발, 한 벌 이상의 수도복을 소유할 수 있었다. 이는 규칙서에 명시되어 있었는데 프란치스코는 이후 1221년 보다 상세한 규칙서를 작성했고 1223년 이를 다시 한 번 고쳤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6'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케임브리지 세계사 5 (0) | 2026.06.08 |
|---|---|
| 피에르 아도: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0) | 2026.06.08 |
| 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 (0) | 2026.05.31 |
|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2 (0) | 2026.05.31 |
|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1 (0) | 2026.05.31 |
| 로빈 던바: 신을 찾는 뇌 (0) | 2026.05.24 |
| 최승자: 즐거운 일기 (1) | 2026.05.24 |
| 존 프리처드: 교회 (0) | 2026.05.2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