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2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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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2 | 대우고전총서 20 | 임마누엘 칸트 - ![]() 임마누엘 칸트 (지은이),백종현 (옮긴이)아카넷 |
책을 내면서
제2부 초월적 변증학
서론
1권 순수 이성의 개념들에 대하여
2권 순수 이성의 변증적 추리들에 대하여
1장 순수 이성의 오류추리에 대하여
2장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3장 순수 이성의 이상
초월적 변증학 부록
[초월적 방법론]
1장 순수 이성의 훈육
2장 순수 이성의 규준
3장 순수 이성의 건축술
4장 순수 이성의 역사
찾아보기
일러두기 977
인물 찾아보기 982
개념 찾아보기 984
928 이성의 사변이 초월적 사용에서 마침내 귀착하는 궁극의도는 세 가지 대상, 곧 의지의 자유, 영혼의 불사성, 그리고 신의 현존에 관한 것이다. 이 셋 모두에 관련해서 이성의 한낱 사변적 관심은 오직 매우 사소한 것이다. 사변적 관심의 관점에서는 정말로 힘들게도 초월적 탐구라는 끊이지 않고, 지치게 하는 방해물들과 싸워야 하는 노고가 떠맡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에 관해 할 수도 있음직한 모든 발견들을으로, 다시 말해 자연연구에서 그 효용을 증명해 줄 아무런 사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로,] 의지는 자유로울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것은 우리 의욕의 예지적 원인에만 관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의욕의 표출 현상들, 다시 말해 행위들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는 그것 없이는 아무런 이성도 경험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불가침의 근본준칙에 따라, 행위들을 자연의 모든 여타 현상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것으로, 곧 자연의 불변적 법칙들에 따라 설명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영혼의 정신적 자연본성이 (그리고 그와 함께 영혼의 불사성이) 통찰될 수 있다 해도, 그것에서 이생의 현상들에 대한 어떤 설명근거를 기대할 수도 없고, 미래 상태의 특수한 성질에 대해 기대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비물체적 자연본성이라는 우리의 개념은 한낱 부정적인 것으로, 우리의 인식을 조금도 확장하지 않으며, 단지 지어낸 것에나 타당할 수 있으되, 철학에서는 승인되지 않는 그런 추론 말고는, 추론을 위해 뭐 하나 쓸 만한 재료를 조금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로, 최고 예지자의 현존이 설령 증명되어 있다 해도, 우리가 그로부터 세계설비와 질서에서 합목적적인 면을 일반적으로 이해는 하겠지만, 결코 그로부터 여느 특수한 시설과 질서를 도출할 권한이 없으며, 이런 것이 지각되지 않는 곳에서는 그런 것을 대담하게 추론할 권한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엇인가를 모든 우리의 앎을 전적으로 넘어서는 것으로부터 도출하기 위해, 자연원인들을 지나치지 않고, 우리가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성의 사변적 사용의 필연적 규칙이니 말이다. 한마디로, 이 세명제는 사변 이성에게는 항상 초험적으로 남는다. 그것들은 전혀 아무런 내재적 사용, 다시 말해 경험의 대상들을 위해 허용될 수 있는 사용, 그러니까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유용한 사용이 없고, 오히려 그 자체로 보면 우리 이성의 전혀 쓸데없는, 그러면서도 몹시도 힘든 노고들이다. 그래서 이 세 핵심명제들이 우리의 앎에는 전혀 필요치 않으면서도 우리 이성에 의해 절실하게 추천되는 것이라면, 그것들의 중요성은 실로 본래 오로지 실천적인 것에 관계해야 하는 것이다.
933 나의 이성의 모든 관심(즉 사변적 관심 및 실천적 관심)은 다음의 세 물음으로 통합된다.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3.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첫째 물음은 순전히 사변적이다. (내가 자부하는데)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가능한 모든 답변들을 남김없이 파헤쳤으며, 마침내 이성이 충족할 수밖에 없고, 만약 이성이 실천적인 것을 주목하지 않는다면, 또한 만족할 이유도 갖게 되는 답변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순수 이성의 이 전체 노력이 원래 지향했던 두 가지 큰 목적들과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 마치 우리가 안이하게도 처음부터 이 작업을 거부했던 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앎(지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것이 저 두 과제와 관련해서는 결코 아무런 몫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적어도 그만큼 확실하고 확정적이다. 둘째 물음은 순전히 실천적이다. 이 물음은 실천적인 것으로서 순수이성에 속하기는 하나, 그럼에도 초월적이지는 않고 도덕적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 비판 그 자체에게 일거리일 수는 없다. 셋째 물음, 곧, '무릇 내가 행해야 할 것을 행한다면, 나는 그 때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물음은 실천적이면서 동시에 이론적이다. 그래서 실천적인 것은 단지 이론적인 물음의 답변을 위한 실마리로서, 만약 이 물음이 높이 올라가면, 사변적 물음에까지 이른다. 무릇 모든 희망은 행복을 지향하고, 실천적인 것 및 윤리법칙과 관련해 있는 것은, 지식과 자연법칙이 사물들의 이론적 인식에 대하여 있는 것과 똑같다. 전자는 마침내 어떤 것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것(최종의 가능한 목적을 규정하는 것)이 있다는 추론에 귀착하고, 후자는 어떤 것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최상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있다는 추론에 귀착한다. 행복은 우리의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이다. 행복의 동인에서의 실천 법칙을 나는 실용적(영리함)의 규칙)이라고 부르고, 행복할 만한 품격 (자격) 있음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동인으로 갖지 않는 한의 실천 법칙은 그러나 도덕적(윤리 법칙)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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