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1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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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1 | 대우고전총서 19 | 임마누엘 칸트 - ![]() 임마누엘 칸트 (지은이),백종현 (옮긴이)아카넷 |
책을 내면서 5
제1부 『순수이성비판』 해제
[I. 칸트의 철학 과제] 17
[II. 『순수이성비판』의 체제] 22
[III. ‘순수 이성 비판’과 그 결실] 26
[IV. 칸트 초월철학의 체계] 35
[V. 이성적 형이상학 비판 : 초월적 변증학] 71
[VI. 순수 이성의 완벽한 체계를 위한 조건들에 대한 마무리 반성 : 초월적 방법론] 87
[VII. 『순수이성비판』 저술사] 97
『순수이성비판』 관련 주요 문헌 103
제2부 『순수이성비판』 역주
역주의 원칙 135
유사어 및 상관어 대응 번역어표 137
『순수이성비판』 번역 및 주석 149
찾아보기
일러두기 977
인물 찾아보기 982
개념 찾아보기 984
214 우리의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는 것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의 감각기관들을 건드려 한편으로는 스스로 표상을 일으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지성활동"을 작동시켜 이 표상들을 비교하고, 그것들을 연결하거나 분리하고, 그렇게 해서 감각 인상들의 원재료를 경험이라 일컬어지는 대상에 대한 인식으로 가공하게 하는 대상들에 의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면, 다른 무엇에 의해서 인식 능력이 활동으로 이끌어지겠는가? 그러므로 시간상으로는 우리에게 어떠한 인식도 경험에 선행하는 것은 없고, 경험과 함께 모든 인식은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인식 모두가 바로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경험 인식조차도 우리가 (감각) 인상들을 통해 수용한 것과 (순전히 이감각인상들의 야기로) 우리 자신의 인식 능력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산출해 낸 것의 합성이겠으니 말이다. 우리는 오랜 훈련을 통해 그것에 주목하고 양자를 분리하는 데 익숙하게 될 때까지는 [우리 자신이] 추가한 것과 저 기초재료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감각 인상들로부터도 독립적인 그런 인식이 과연 있는가 어떤가 하는 물음은 적어도 좀더 상세한 연구를 요하는 문제로, 한 번 보고서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인식을 선험적 인식이라 일컬어, 그 원천을 후험적으로, 곧 경험에서 갖는 경험적 인식과 구별한다.
그럼에도 저 [선험적이라는 표현은 여기서 제기된 물음에 알맞게 완전한 의미를 표시하기에는 아직 충분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흔히 경험적인 원천으로부터 도출된 많은 인식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을 경험에서 직접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규칙으로부터 ─ 비록 그 일반적인 규칙이 우리가 경험으로부터 얻어온 것이라 할지라도 ─ 도출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런 인식을 선험적으로 할 수 있으며 또는 그런 인식에 선험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집의 토대 밑을 파 무너뜨린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는 그 집이 무너질 것을 선험적으로 알 수 있었다고. 바꿔 말해 그는 실제로 그의 집이 무너진 것의 경험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실은 그는 완전히 선험적으로는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물체들은 무게가 있고, 따라서 그것들로부터 받침대를 제거하면, 그것들이 무진다는 사실이 미리 경험을 통해 그에게 알려져 있어야 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는 선험적 인식이라는 말로써, 이런 경험 혹은 저런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생긴 인식이 아니라 단적으로 모든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생긴 그런 인식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인식에 대립해 있는 것이 경험적인 인식, 말하자면 오직 후험적으로만, 곧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인식이다. 선험적인 인식들 가운데서도 전혀 아무런 경험적인 것도 섞여 있지 않은 그런 인식을 순수하다고 일컫는다. 그래서 예컨대 '모든 변화는 그 원인을 갖는다'라는 명제는 선험적인 명제이기는 하지만, 순수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변화'라는 개념은 오직 경험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개념이니 말이다.
228 다량의 연구거리를 단 하나의 과제 형태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큰 수확을 거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우리의 과업을 정확히 규정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과업을 가볍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과업을 검사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이 과연 우리가 우리의 기획을 만족스럽게 수행했는가 못했는가를 판정하기 쉽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릇 순수 이성의 본래적 과제는 '선험적 종합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 안에 들어 있다.
형이상학이 이제까지 그토록 흔들리는 불확실성과 모순들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단적으로 사람들이 이 과제와 더불어 어쩌면 분석 판단과 종합판단의 구별조차도 일찍이 착상하지 못했던 데에 있다. 이제 이 과제를 해결하느냐 아니면 이 과제가 설명하여 알기를 요구하는 가능성이 사실은 전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느냐에 형이상학의 성패(成敗)가 달려 있다. 데이비드 흄은 모든 철학자들 가운데서도 이 과제에 가장 접근했던 사람이었지만, 이 과제를 충분히 확정적으로 그리고 그것의 보편성에서 생각하지 못했고, 단지 결과를 그것의 원인들과 연결하는 종합 명제(因果에만 머물러 있었으며, 그래서 그는 그러한 선험적 종합 명제는 전적으로 불가능함을 밝혀냈다고 믿었다. 그의 추론에 따르면, 우리가 형이상학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은 실제로는 순전히 경험에서 빌려온 것으로 습관에 의해 필연성의 겉모습을 손에 넣은 것에 대한 잘못된 이성 통찰의 순전한 망상에 귀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약 우리의 과제를 그것의 보편성에서 주시했더라면, 그는 이러한 일체의 순수 철학을 파괴하는 주장에 결코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 그는 그의 논변에 따르면 순수 수학조차도 있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통찰하게 됐을 것이고, 그러나 순수 수학은 확실히 선험적 종합 명제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그의 뛰어난 지성은 아마도 충분히 이런 주장으로부터 그를 지켜주었을테니 말이다.
233 이상 말한 모든 것으로부터 이제 순수이성 비판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한 특수한 학문의 이념이 나온다. 왜냐하면 이성이란 선험적 인식의 원리들을 제공하는 능력이니 말이다. 따라서 순수 이성은 어떤 것을 단적으로 선험적으로 인식하는 원리들을 함유하는 그런 이성이다. 순수 이성의 기관이란 그에 의거해 모든 선험적인 순수한 인식들이 획득될 수 있고 실제로 성취될 수 있는 그런 원리들의 총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관의 상세한 응용이 순수 이성의 체계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다가, 여기서 또한 도대체 우리 인식의 확장이 가능한지 어떤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경우에 가능한지는 미정이므로, 우리는 순수 이성을 그리고 순수 이성의 원천과 한계를 순전히 평가하는 학문을 순수 이성의 체계를 위한 예비학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학문은 순수 이성의 교설이 아니라 순수 이성의 비판이라고 일컬어져야만 할 것이고, 그것의 효용은 사변과 관련해서 실제로는 단지 소극적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이성의 확장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 이성을 정화하는 일에 쓰여, 이성을 착오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얻는 것이다. 나는 대상들이 아니라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방식을 이것이 선험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는 한에서 일반적으로 다루는 모든 인식을 초월적이라 부른다. 그러한 개념들의 체계는 초월─철학이라 일컬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처음에는 역시 아직 너무 많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학문은 분석적 인식뿐만 아니라 선험적 종합 인식도 완벽하게 포함해야 할 것이므로, 우리의 의도에 관한한. 그것은 너무 넓은 범위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험적 종합의 원리들─이것만이 우리의 현안 문제이거니와─을 그 전 범위에 걸쳐 통찰하기 위해서 불가결하게 필요한 만큼만 분석을 해나가면 될 것이니 말이다. 인식 자체의 확장이 아니라 오로지 인식을 바로잡는 것을 의도하고, 모든 선험적 인식의 가치 유무를 가릴 시금석을 제공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본디 우리가 교설이라 하지 않고 단지 초월적 비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연구가 이제 우리가 전념할 바이다.
236 이제 체계 일반의 보편적 관점에서 이 학문을 구분하자면, 지금 우리가 서술하는 학문은 첫째로 순수 이성의 요소론을, 둘째로 순수 이성의 방법론을 내용으로 가져야 한다. 이 주요 부문은 각각 하위 부문을 가질 것이나, 그럼에도 아직 여기가 그 근거들을 말할 자리는 아니다. 단지 다음의 말만은 서설 내지 서언으로서 필요한 듯하다. 인간 인식의 두 줄기가 있는데, 그것들은 아마도 하나의 공통의,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뿌리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감성과 지성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를 통해 우리에게 대상들이 주어지고, 반면에 후자를 통해 사고된다. 이제 감성은, 그 아래에서 우리에게 대상들이 주어지는 조건을 이루는 선험적 표상들을 함유하는 한에서, 초월철학에 속한다. 이 초월적 감성이론은 요소학의 제1부문에 속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인식의 대상들이 주어지는 조건들은 그 대상들이 사고되는 조건들에 선행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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