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머리말-일본으로, 아시아로 5제1장 초기의회 15제2장 조약개정 45제3장 청일전쟁 77제4장 대만 정복 전쟁 131제5장 청일 전후와 국민 통합 157제6장 민우사와 평민사 203제7장 러일전쟁과 한국병합 237맺음말-‘빛나는 메이지’론과 내셔널리즘 299저자 후기 306역자 후기 308 관련 공부 글 보기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3 청일·러일전쟁 1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3 청일·러일전쟁 2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3 청일·러일전쟁 3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3 청일·러일전쟁 4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3 청일·러일전쟁 5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3 청일·러일전쟁..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 - 가토 요코 지음, 박영준 옮김/태학사 Reading_20min_20140818_9* 일본에게 왜 한반도는 중요했는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이익선: “我邦의 이익선의 초점은 실로 조선에 있다.”(外交政略論, 1890. 3)–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의견서에 덧붙여진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의 의견1) 시베리아 철도의 전면 개통이 일본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2) 오히려 러시아 철도는 러시아의 “조선의 점령에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시베리아 철도는 일본에 큰 문제가 된다.– 슈타인의 ‘권세강역/이익강역’ 개념: “조선의 중립은 일본의 권세강역을 보전하기 위해서 생기는 바의 모든 이익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청일전쟁을 뒷받침하는 군사전략의 기조: 일본..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 - 가토 요코 지음, 박영준 옮김/태학사 Reading_20min_20140811_8가토 요코(加藤陽子), (원제: 戦争の日本近現代史) – 이 책에서 다루는 전쟁 논리들: 메이지 초기의 대외적 현실주의, 사족층의 征韓論, 민권론자의 적극적인 대외강경론,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이익선론, 후쿠자와 유키치의 개혁/비개혁론, 요시노 사쿠조의 러시아 반문명론, 가토 다카아키의 총력전론과 가상적국론, 대동아공영권 시기의 내셔널리즘 비판론과 동아공동체론 – 이 책의 방침: “전쟁에 이르는 과정에서 위정자와 국민들이 세계정세와 일본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였고, 어떠한 논리적 이치로 전쟁을 받아들였는가, 그 논리의 변천을 추적” – 전쟁의 실태와 형태의 간격: “국가의 갖가지 힘을 동원한 총력..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 나카츠카 아키라 지음, 박맹수 옮김/푸른역사 Reading_20min_20140804_7– 청일전쟁을 설명하는 방식들1) “1890년 공황 그리고 (일본)정부와 의회의 대립으로 인한 정치불안 등으로 설명하려는 관점”. 이는 메이지 이래 계속된 “일본의 조선침략정책과 분리”해서 논하려는 시각. 경복궁 범궐사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는 이러한 관점에 연결되어 있다.“조선왕궁점령은 먼저 발포한 조선 병사와의 우발적인 충돌에서 시작되었고 일본군은 어쩔 수 없이 왕궁으로 들어가 국왕을 보호했으며… 소규모 충돌사건”2) “7월 23일 왕궁점령사건은 결코 ‘한일 양국 병사의 우연한 충돌’이 아니며 일본 공사관과 일본 육군의 혼성여단이 하나가 되어 사전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 나카츠카 아키라 지음, 박맹수 옮김/푸른역사 목차제1장:100년 만의 발견 제2장:조선왕궁점령의 실상 제3장:위조되는 역사 제4장:통제된 보도, 만들어진 상식 제5장:끝나지 않은 역사의 위조 제6장:조선인은 잊지 않는다 제7장:역사 위조가 남긴 후유증 머리말7 1994년은 청일전쟁이 일어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였다. 2000년은 일본을 비롯한 여덟 나라 열강의 군대가, 중국의 의화단 봉기를 진압한 의화단 진압전쟁 ― 일본에서는 북청사변이라고 한다 ― 이 일어난 지 100년, 그리고 2004년은 러일전쟁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의 학교에서는 지금도 청일•러일전쟁으로 시작된 '한국병합' 시기, 곧 메이지明治 후반기를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향상된..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 나카츠카 아키라 지음, 박맹수 옮김/푸른역사 Reading_20min_20140728_6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원제: 歴史の偽造をただす―戦史から消された日本軍の「朝鮮王宮占領」) – 역사가의 기본 책무: 1차 사료의 발굴, 사료비판과 해석– 책의 핵심내용: “청일전쟁(1894-1895) 개전에 즈음한 일본군 최초의 무력 행사가 주도 면밀한 계획에 바탕한 서울 경복궁 점령이었다는 것과, 그 사실이 일본 육군이 공식적으로 펴낸 ‘일청전사'[日淸戦史]에서 위조된 이야기로 바뀌었다는 것을 당사자인 일본 육군참모본부의 기록을 통해서 실증… 그와 같은 역사 위조가 결코 일시적 발상에서가 아니라 근대 일본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왔음을 정확한 사료를 실례로 들어 논증” – 역사가의..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721_5– 영일동맹을 맺으면서 일본은 러시아를 가상적국으로 설정하게 된다. “러시아와 맞서는 일본, 위에서 미는 영국, 배후에서 지켜보는 미국”– 구미 각국은 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에 의한 무역과 금융을 통해 1873년 이래의 대불황을 해소한다.– 일본은 의화단 사건(1899-1901) 당시의 공동파병을 거쳐 구미열강(영제국, 미합중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국으로 성장 – “러일전쟁은 양국에게 싸우지 않아도 좋을 전쟁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얻은 戰訓: 군비확장을 도모해도 일본의 국력은 소모전을 견디지 못하므로 정신력으로 보완해야 한다; 장비의 충실보다 병사..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713_4– “1895년 제국 일본은 야마가타가 주장하는 ‘이익선’ 개념을 명확히 채택하고, 식민지 대만과 세력권 조선을 발판으로 이후의 50년 동안을 군사력 확대와 전쟁으로 나아간다. 그 전환점은 청일전쟁이었다.”– 청일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의 적극적인 침략의지가 일관된 계획 속에서 전개되고 실현되었는가, 아니면 일본의 ‘팽창주의’는 승인하되 적극적으로 준비된 침략임은 배제할 것인가.– 청일전쟁의 이데올로기: ‘문명의 義戦’이라는 이데올로기, “전투와 살육을 정당화하는 의식 조작” – 청일전쟁의 後果1) 국제관계: 청의 군사력이 약체라는 사실을 세계에 폭로2) 戰爭特需, 戰後經營 체제: 전쟁에 따른..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707_3– 시베리아철도와 일본– 이나가키 만지로(稻垣滿次郞, 1861-1908), 東方策: 지정학적 관점에서 서술된 국제정치론– 구가 가쓰난(陸羯南, 1857-1907): “메이지 24년(1891)은 실로 우리 동양 문제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대”(1894년의 언급)–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의 의견들1) 군사의견서(1888년 1월): 시베리아철도 계획 발표 3년후. 아시아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 캐나다의 태평양철도, 시베리아철도2) 외교정략론(1890년 3월): “우리나라 이익선의 초점은 실로 조선에 있다… 시베리아철도가 완공되는 날이 곧 조선에서의 多事가 일어나는 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629_2– 일본에게는 1874년의 대만 출병의 성과를 유지·확대하려는 의지나 군사력은 없었다. 일본이 계속적인 전쟁의지를 갖게 된 것은 청일전쟁 이후이다. 대륙에 확보한 이권이나 식민지를 유지·확대하는 것이 아시아·태평양 전쟁까지 이어진 일본의 국가목표였다.– 청일전쟁의 의의: 제국주의 국제체제에 가담, 계속적인 전쟁의지의 출발점, 매스미디어에 의한 국민의 탄생– 복합전쟁으로서의 청일전쟁: 1)7월 23일 전쟁(대 조선), 2)협의의 청일전쟁(대 청), 3)농민전쟁 섬멸작전(대 조선민중), 4)대만정복전쟁(대 대만민중)– 러일전쟁의 의의: 군사적 사회로 가는 길,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아시아의 승리가 아니라 ..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Reading_20min_20140623_1–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 한반도와 직접 관련되는 영역들이 많은 시기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라는 주제를 파악할 때 관련되는 차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추상적 차원의 평화논리와 역사적 차원의 진실 규명, 법적 차원의 책임문제 등은 각각이 가진 차원에서 논의해야만 한다.– 역사는 온전히 인간이 행한 일의 기록이며,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다. ‘신의 뜻’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왜곡, ‘자학사관'(自虐史觀)에 관한 논의는 메이지 시대에 대한 찬양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 “일본의 군대는 청일전쟁부터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