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윌슨: 포크를 생각하다 ━ 식탁의 역사


포크를 생각하다 - 10점
비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까치


서론 

1 냄비와 팬 

2 칼 

3 불 

4 계량 

5 갈기 

6 먹기

7 얼음

8 부엌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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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역자 후기 

인명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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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9 그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는 디자인과 응용공학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요소들을 아우르는 수많은 결정이 투입되었고, 그런 요소들은 이후 우리가 그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10 나무는 마모시키는 성질이 없어서 팬에 부드럽게 닿는다. 때문에 금속 표면이 상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없이 박박 긁어도 된다. 나무는 반응성이 없기 때문에 음식에 금속 맛이 남을까 걱정할 필요도, 산성 시트러스나 토마토와 닿았을 때 숟가락 표면이 변질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10 우리가 나무 숟가락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11 우리는 요리할 때 참으로 많은 일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12 1913년에 셰필드 출신의 해리 브리얼리가 스테인리스스틸을 발명한 것은 총신을 개량하기 위해서였지만, 뜻밖에도 그는 세상의 식기를 개량했다. 전자레인지를 만든 미국인 퍼시 스펜서는 원래 해군의 레이더를 연구했지만, 어쩌다 보니 새로운 요리법을 탄생시켰다.


12 기술은 과학적 사고의 응용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기술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다.


13 이 책은 부엌 도구들이 우리가 먹는 음식, 음식을 먹는 방식, 음식에 대한 감정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음식은 인류의 보편조건이다.


15 약 1만 년 전 냄비가 없었던 시절의 유골을 보면, 치아가 몽땅 빠진 사람이 성인기까지 살아 남은 예가 하나도 없었다. 씹기가 필수불가결한 기술이었다. 씹지 못하면 굶었다. 토기가 발명되자, 선조들은 죽이나 수프처럼 씹지 않고 마셔도 될 만큼 걸쭉한 혼합물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이가 하나도 없는 성인의 유골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6 한국 사람들은 돌솥이라는 뜨거운 돌냄비에 비빔밥을 담는다. 비빔밥은 밥과 잘게 썬 채소와 날달걀이나 달걀 프라이를 섞어 먹는 음식으로, 돌솥의 지글거리는 열 때문에 바닥에 깔린 밥이 바삭바삭 눌어붙는다.


19 음식의 질감이 체중 증가에 중요한 요인임을 보여준 결과였다. 비단뱀을 대상으로 한 후속 실험도 결과가 같았다. 덜 가공되어 더 많이 씹어야 하는 음식은 소화에 더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몸이 취하는 칼로리가 적어진다. 명시된 칼로리는 같더라도 익힌 사과 퓨레를 먹으면 아삭한 사과를 생으로 먹을 때보다 에너지를 더 많이 흡수하는 것이다.


20 킬로리라는 조악한 단위(영양학자 앳워터의 제안에 따라 19세기 말에 협의된 체계)로 영양 정보를 보여주는 식품 성분표는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 사례는 요리 기술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1 17세기까지 부잣집의 전문 요리사는 거의 예외 없이 남자였고, 그들은 찜통 같은 열기 때문에 홀딱 벗거나 속옷만 입은 채 일했다. 여자는 치마가 문제가 되지 않는 치마가 문제가 되지 않은 유제품실이나 식기실에서만 일했다.


21 실내에 피운 취사용 불 때문에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에서 매년 150만 명이 질식사한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과거 수백 년 동안 노출된 화덕은 제일가는 사망 원인이었다. 특히 여자들이 위험했다. 풍성한 치맛자락과 끌리는 소맷자락, 그리고 가마솥이 부글거리는 노출된 불꽃이라는 위태로운 조합 때문이었다.


1 냄비와 팬

29 우리는 냄비 없는 부엌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음식들이 이 기초적인 기구에 달려 있는지 잘 깨닫지 못한다.


29 냄비는 단순한 가열에서 요리로의 도약을 뜻한다.


29 날고기가 불꽃을 만나 변화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로스팅은 직접적이고 분명한 조리법이다.


31 물과 불은 상극이다.


44 금속 가마솥은 급속한 기술변화의 시기였던 청동기 시대(기원전 3000년경부터)의 산물이었다.


45 금속으로 조리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되자, 냄비와 팬의 다양한 형태들이 금세 생겨났다. 고대 로마인들은 오늘날의 프라이팬과 크게 다르지 않은 '파텔라'를 만들었다. 기름을 약간만 둘러 생선을 굽는 금속 팬이었다. 스페인의 파에야와 이탈리아어로 팬을 뜻하는 '파델라'는 모두 이 이름에서 온 단어들이다.


48 가마솥이 모든 요리에 이상적인 용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가마솥이 생기면 매 끼니의 패턴이 그것에 맞추어 결정되었다. 모든 민족에게는 전통적인 한 솥 요리가 있고, 그 요리에 쓸 특수한 솥도 다양하게 전해진다.


49 1930년대 나치는 한 솥 요리의 검약한 이미지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했다.


54 바트리 드 퀴진은 계몽과 혁명의 18세기에 등자한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 이면에는 한 솥 요리의 한계와 정반대되는 발상이 있었다. 요즘도 프랑스어로 '고급 요리'를 뜻하는 오트 퀴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열렬히 추종하는 그 발상은 요리의 각 요소마다 그에 맞는 특수한 용기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60 이상적인 냄비를 찾는 일은 어렵다.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이 있다.


60 가장 먼저 그것은 열 전도율이 높아야 한다. 그래야 음식이 빨리 익고, 열이 바닥에 고르게 퍼진다. 팬은 들었을 때 균형이 잘 잡혀야 하고, 가벼워야 하며, 불에 올려 조작하기 쉬워야 한다. 손이 데지 않도록 손잡이도 달려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고온에서 찌그러지거나 금이 가거나 갈라지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밀도가 있고 단단해야 한다. 이상적인 팬의 표면은 반응성이 없고, 들러붙지 않고, 부식성이 없으며, 씻기 쉽고, 내구성이 있어야 한다. 모양은 예뻐야 하고, 불 위에 얌전히 잘 놓여야 한다. 참, 기둥 뿌리가 뽑힐 만큼 비싸서도 안된다. 더구나 정말로 훌륭한 냄비에는 기능을 넘어 사랑스러운 감정을 일으키는 측량 불가능한 성질이 있다. 그 물건을 꺼낼 때마다 '안녕. 오래된 친구 야'하고 생각하게 되는 성질이다.


65 들러붙지 않은 팬은 대머리 치료제와 더불어 누구나 찾아헤매는 발명품이다.


66 1988년, 미국 공학자로서 유압기에서 촉매 변환장치까지 27가지 다양한 특허를 획득한 발명가인 척 렘은 이 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해 보았다. 렘은 가능한 모든 물질을 9개 항목으로 평가했다.

1. 온도 균일성 [나의 번역: 과열점 없이 고르게 뜨거워지는가?]

2. 반응성과 독성 [내가 독성 물질을 먹게 될까?]

3. 경도 [찌그러질까?]

4. 단순 강도 [떨어뜨려도 망가지지 않을까?]

5. 들러붙지 않음 정도 [음식이 쩍쩍 들러붙을까?]

6. 관리 편이성 [잘 씻길까?]

7. 효율성 [바닥에서 윗면까지 열이 잘 올라올까?]

8. 무게 [내가들 수 있나?]

9. 개당 가격 [내가 살 수 있나?]

렘은 각 항목에 대해서 10점 만점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1,000점 만점의 하나의 점수, 이름하여 '이상도'로 환산했다. 렘의 발견은 완벽한 조리기구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시킨다. 순수한 알루미늄은 온도 균일 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10점 만점에서 89점) 노랗게 골고루 익은 오믈렛에 좋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경도가 너무 낮았다. 알루미늄 팬은 찌그러지기 쉽다. 구리는 효율적이지만(10/10) 관리가 어렵다(1/10). 전체적으로 보아 '단일 물질 팬'은 어느 것이든 이상도에서 500점을 넘지 못했다. 어떤 물질도 점수가 절반을 넘지 못했다는 말이다. 어쨌든 개중 일등은 무쇠였으니(544.4) 무쇠 팬을 쓰는 사람들은 최소한 근거 있는 선택을 한 셈이다. 그러나 544 점이라도 낮기는 매한가지이다.


68 렘은 자신이 고안한 이상적 팬을 제작하지도 않았고 설계를 팔지도 않았다.


70 모더니티스 퀴진의 저자가 철저한 실험 끝에 내린 결론은 "어떤 팬도 완벽하게 고르게 가열되지는 않는다"였다.


70 그의 조언은 "팬에 쓸 돈을 아껴 레인지를 세심하게 고르라"는 것이었다.


70 숙련의 문제도 있다.


72 1960년대 일본과 한국의 가정에 전기 밥솥이 보급되자,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식사의 기본인 차진 흰 쌀밥을 준비하는 데에 저녁 시간을 몽땅 할애해야 했다. 쌀을 불리고, 씻고, 주로 도기로 된 냄비에서 끓이면서 타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72 전기 밥솥은 문화와 기술의 이상적인 결합이었다.


73 "아시아 인이 있는 곳에 밥솥이 있다." 이 말은 나카노 요시코의 2009년 논문 제목이기도 하다.


73 중국 시골의 비좁은 부엌에서는 전기 밥솥이 유일한 열원인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전기 밥솥으로 밥을 지을 뿐만 아니라 죽도 쑨다.


73 전기 밥솥이-아직은-못하는 일도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주식인 장립종 바스마티 품종으로는 밥을 잘 짓지 못한다. 바스마티 쌀밥은 끈끈하지 않고 포슬포슬해야 하지만, 전기 밥솥으로 오래 찌면 밥이 끈끈해지기 때문에 장립종에는 적당하지 않다. 인도인이 중국인의 전기밥솥 사랑을 온전히 공유하지 않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2 칼

74 부엌은 폭력적인 장소이다. 사람들은 데고, 찰상을 입고, 동상에 걸리고, 무엇보다도 벤다.


75 요리용 칼은 언제나 무기와 한발 거리였다.


75 칼은 요리사의 무기고에서 가장 오리된 연장으로, 어느 인류학자의 말을 믿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충 불씨 관리 능력보다도 100만~200만 년 정도 앞섰다.


76 고고학자들이 확인한 것만 해도 단순하고 날카로운 칼, 긁개, 음식을 두드리는 데에 쓰는 돌망치와 회전타원체가 있다.


77 철에서 강철, 철에서 강철로, 상철에서 탄소강과 고탄소강과 스테인리스스틸로, 나아가 티타튬과 적층 합성물까지, 우리는 몰리드데넘과 바냐듐이 합금된 강철을 써서 장인이 손수 만든 일본식 부엌칼을 큰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다.


79 칼이 날카롭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각도의 문제이다. 베벨이라고 불리는 경사면이 양쪽에서 뾰족한 V를 이루면서 만나면 그날은 날카롭다.


80 과거에는 효과적인 칼질이 읽기나 쓰기보다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81 중세와 르네상스 유럽에서 사람들은 어디든 자기 칼을 가지고 다녔고, 식사할 때 그것을 꺼내 썼다.


81 오늘날 우리가 남의 칫솔로 이를 닦지 않듯이 당시에는 남의 칼로 음식을 먹지 않았다. 손목시계처럼 습관적으로 차고 다녔기 때문에 아예 몸의 일부가 되어, 종종 차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6세기의 문헌('성 베네딕투스의 계율')은 수도자들에게 잠자리에 들기 전에 허리띠에서 칼을 풀라고 상기시킨다. 자다가 자기 칼에 찔리면 안 되니까.


83 강철은 16세기에 이미 칼 제작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금속이 되었다.


83 청동은 아주 날카롭게 벼리기에는 너무 부드러워서 칼날로서는 불량한 재질이다.


84 유럽의 칼 전문화는 요리 문화 변화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였다.


86 음식은 칼이 만든다. 그리고 칼은 해당 지역의 자원, 기술적 혁신, 요리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취향이 신비롭게 결합한 결과이다.


88 앤더슨은 넓적한 그 칼을 다음과 같은 작업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장작 패기, 생선 내장 꺼내고 비늘 벗기기, 채소 썰기, 고기 다지기, 마늘 으깨기, 손톱 깎기, 나무젓가락 깎아 만들기, 돼지 잡기, 면도 하기, 묵은 원한이나 새로운 원한 청산하기.


89 중국의 부엌칼은 모든 재료를 작게 썰고 재빨리 익히고 낭비하지 않음으로써 부족한 연료를 최대한 활용하게끔 하는 절약의 도구였다. 칼을 웍과 함께 쓰면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의 맛을 끌어낼 수 있다.


91 부자의 음식과 빈자의 음식이 서로 다른 세계를 이룬 영국 요리와는 달리, 중국 요리는 칼 덕분에 서로 다른 사회계층 사이에 통일성을 유지했다.


91 중국 요리사는 다양한 형태의 생선과 가금류, 채소와 고기를 모두 한 입 크기의 정확한 기하학적 조각으로 썰어낸다.


91 중국 부엌칼의 또다른 중요한 능력은 먹는 사람이 칼질할 필요가 없게 해주는 점이다.


100 브레이스는 수십 년에 걸쳐 호미니드의 치아 진화에 대한 세계 최대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100 서유럽에서는 18세기 말에 들어서야 '지위가 높은 사람들'부터 피개교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01 오히려 크게 변했던 대목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였다.


101 피개교합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250년 전에 등장했다. 즉 식탁에 나이프와 포크가 도입된 시기에 등장했다.


102 사람들이 나이프와 포크로 음식을 잘라 한 입 크기로 먹게 되면서부터 앞니가 붙잡는 기능으로 쓰이지 않았을테고, 그래서 윗니가 계속 자라 아랫니와 맞물리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피개교합이다.


103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보였던 피개교합은 사실 식사 행동이 빚은 결과이다.


104 중국 요리에서 작게 써는 방식이 유형하고 그와 더불어 젓가락이 널리 퍼진 것은 유럽에서 나이프와 포크가 표준방식이 된 시기로부터 약 1,000년 전인 송나라 시절이었다.


105 브레이스 이후 중국인의 치열을 더 많이 분석하여 정말로 피개교합이 유럽보다 800-1000년 더 일찍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06 칼에 대한 동서양의 태도 차이가 우리의 치열에 시각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3 불

109 지난 수천 년의 요리는 형태의 차이는 있을지 언정 모두 로스팅이었다.


112 약 180-190만 년 전 벌어졌던 최초의 요리 혹은 로스팅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 순간 인류는 직립 유인원에서 온전한 인간으로 변모했다. 음식을 익히면 대체로 소화가 더 쉬워지고 영양소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인류는 익힌 음식을 발견함으로써 뇌 성장에 투입할 영양소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120 중국의 요리 문화는 연료 부족에서 태어났다. 최소의 에너지를 투입하여 최대의 맛을 끌어내도록 매 끼니 검약하게 계산해야 했다.


121 영국에서 모든 요리사가 알아야 할 핵심 기술은 큰 불꽃을 통제하는 기술이었다.



129 제3세계에서 평균적인 요리용 불꽃은 자동차 한 대만큼의 이산화탄소를 낸다.


129 세계보건기구는 실내 매연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매년 150만 명이라고 추산하는데, 대부분은 요리용 불꽃 때문이다."


135 19세기 중반이면 영국도 미국도 폐쇄형 레인지, 즉 '키치너'가 중산층 부엌에서 첫손가락에 꼽는 필수품이 되었다.


136 폐쇄형 레인지의 갑작스러운 인기는 단순히 유행에 따른 현상만은 아니었다. 산업혁명의 재료인 석탄과 철이 이끈 현상이기도 했다. 요리용 스토브가 갑자기 유행한 것은 사람들이 럼퍼드의 글을 읽고 개방형 화덕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에 값싼 무쇠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137 석탄으로서 전환이 가져온 또 하나의 결과는 불을 가두게 된 것이었다.


140 정말로 혁명적인 도구는 참신한 창조물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존에 하던 일을 더 쉽고, 좋고, 즐겁게 하도록 돕는 것이다.


140 혁신이 으레 그렇듯이, 가스 레인지도 처음에는 의심과 저항을 겪었다.


143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요리할 때 가스와 전기를 둘 다 쓴다.


143 나는 가스불로 요리할 때만큼의 애착을 전기 오븐에 느끼지는 않는다.


143 전기 인덕션 레인지는 조금전까지 돌처럼 차가왔던 것이 아무런 경고 없이 순간적으로 빨개진다. 가스는 내 지시에 충실히 따른다.


147 1989년 영국 시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자 레인지의 가장 흔한 용도는 조리가 아니라 '다시 데우기'였다.


148 전자 레인지를 보고 있자면 우리가 불을 발견한 일은 없었던 것만 같다. 인류를 역사 내내 불을 가두고 통제하려고 애썼다. 불은 사회적 생활의 구심점이었다. 사람들은 돌멩이 화덕으로 불을 길들였다. 다음에는 불을 둘러싸고 큰 방을 지었고, 쇠살대 속에 가두었고, 무쇠 레인지에 집어넣어 눈에 보이지 않게 했으며, 가스 오븐으로 우리 의지에 종속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전자 레인지로 불 없이 요리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148 전자 레인지가 옛 화덕처럼 가정의 구심점이 될 수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이 불가에 모인 수렵채집인처럼 전자 레인지 앞에 웅그린 채 경이로운 표정으로 잠자코 팝콘이 튀겨지기를 기다리는 광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4 계량

152 모든 재료를 계량컵이라는 부피 단위로 재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153 레시피에는 계량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어떤 레시피도 요리에서 발생할 모든 변수들을 계량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153 요리사의 작업 환경에는 과학자가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외래 변수들이 존재한다. 불안정한 오븐 온도, 교체된 재료, 손님들의 입맛이 각양각색이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154 계량 도구를 평가하는 기준은 하나 이상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155 지금껏 어떤 기술도 민감한 코, 예리한 눈, 석면 방열 장갑 같은 손, 뜨거운 불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휼륭한 요리사의 계량 능력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그런 요리사의 오감은 어떤 인위적 도구보다도 확실하게 음식을 읽어낸다.


163 미국은 세계에서 프랑스 미터법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은 세 나라 중 하나이다. 나머지 둘은 라이베리아와 미얀마이다.


168 중세 이래 모든 레시피는 손가락 몇 개 폭만큼의 물, 콩이나 견과나 달걀만 한 버터 등의 표현을 썼다.


170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은 손을 기준으로 삼은 길이 단위를 만들었다. 새끼 손가락 폭, 손바닥 폭, 손을 좍 폈을 때 새끼손가락 끝에서 엄지 끝까지의 길이, 그리스의 기본 단위는 손가락 폭을 뜻하는 닥틸로스였고 손가락 24개에 해당하는 길이를 규빗이라고 했다.


172 페르시아 호두의 멋진 점은 크기의 일관성이다. 호두의 지름은 2.5-3.5센티미터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174 양은 시작일뿐이다. 부엌에서 가장 정량화하기 어려운 두 요소는 타이밍과 열이다.


175 요리가 다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그냥 안다. 그러나 '그냥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원리를 설명할 때는 몸에 체득된 지식이 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175 중세 프랑스의 호두 절임 레시피를 보면 '미제레레'를 한 번 읊을 동안 호두를 끓이라고 말한다.


176 시간은 기도로 쟀다면, 온도는 통증으로 쟀다.


188 숫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부엌에는 계량이 가능한 세상 바깥에도 넓은 세상이 있다. 모든 것이 과학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또한 과학의 기법의 한 요소이다.


188 부엌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일은 측정을 넘어설 때가 많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즐거움, 마지막으로 남은 빵에 곰팡이가 피기 전에 다 먹어치웠을 때의 만족감, 2월에 즐기는 과육이 붉은 이탈리아 블러드 오렌지의 맛, 무더운 저녁에 차가운 오이 수프의 기쁨, 왕성한 식욕이 있고 그것을 충족시킬 수단도 있을 때의 그 충족감.


5 갈기

224 열 가지 조리 기구를 하나로 합쳤다고 광고하는 서모믹스라는 최신 기계는 요리사의 손이 거의 필요 없게끔 한다. 그런데 블렌더 겸 프로세서로서 재료를 재고, 찌고, 익히고, 반죽을 치대고, 얼음을 으깨고, 섞고, 빻고, 간다.


6 먹기

228 아이가 젓을 떼고 처음으로 질척한 이유식을 한 입 떠먹을 때에 쓰는 야트막한 플라스틱 숟가락이든, 숟가락을 쥐는 것은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첫 단계에 해당하는 이정표이다.


251 손으로 먹는 관습에 대한 편견들이 꼼꼼히 따져보면 대부분 근거가 없다는 사실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우선, 손으로 음식을 만지는 것은 칠칠치 못한 짓이라는 통념이 있다. 둘째, 손으로 먹는 것은 식사 예절의 부재를 뜻한다는 통념이 있다. 셋째, 도구가 없으면 음식의 종류가 제한된다는 생각이 있다. 여기에 대한 답은 1) 아니오, 2) 아니오, 3) 가끔은 그렇다이다.


252 손으로 먹는 문화는 청결에 민감해진다. 고대 로마인들은 저녁을 먹기 전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씻었다.


252 손으로 먹는 사람들은 어떤 손가락을 쓰느냐 하는 문제에도 까다롭다. 왼손을 쓰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오른손에도 써도 되는 손가락이 정해져 있다.


252 입에 든 것을 다 씹기도 전에 또 넣는 것은 천한 행동인데, 이것은 나이프와 포크 문화에는 없는 규칙이다.


252 손으로 먹는 문화에서는 서양처럼 뜨거운 음식과 식기에 목을 매지 않는다.


253 손으로 먹는 사람들에게는 손이 식기보다 더 깨끗하고 민첩하게 느껴진다. 손은 조용하고, 촉각과 온도에 예민하고, 우아하다. 물론 제대로 훈련된 경우에는


230 트리피드는 새로 즉위한 찰스 2세가 대륙의 망명 궁전으로 부터 가져온 물건이었다. 그것은 최초의 현대적인 숟가락이었다.


231 숟가락은 그것을 둘러싼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다. 가장 보편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231 왜 티스푼은 주류 문화에 편입되었을까?


233 나는 티스푼의 세계적 성공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추측한다. 첫째, 주된 기능으로 보아 티스푼은 사실 차가 아니라 설탕을 뜨는 숟가락이다.


234 둘째, 티스푼은 작고 간편한 식기류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켰다.


234 극단적인 경우에는 숟가락 하나로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235 에머리를 비롯한 숟가락 감식가들이 바라는 해결책은 숟가락을 더 전문화하는 것이다.


236 부엌 용품을 더 많이 갖춘다고 해서 반드시 삶이 더 안락해지는 것은 아니다.


239 식사용 포크는 비교적 최신의 발명품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는 조롱과 비웃음을 샀다.


241 포크는 17세기까지는 이상한 물건으로 인식되었는데, 이탈리아만은 예외였다.


242 1700년 무렵에는 온 유럽에 포크가 전파되었다.


249 일본에서는 음식의 종류와 먹는 방법에 젓가락이 큰 영향을 미치고, 젓가락으로 해서는 안되는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규칙도 있다.


250 와리바시는 일본에서 외식산업이 시작된 18세기부터 존재했다. 손님의 입에 들어가는 젓가락이 불결한 것이 아님을 보장하는 방법은 새 젓가락을 주는 것이었다.


7 얼음

263 1959년 미국의 가정용 냉장고에 필적하는 것을 가진 나라는 없었다. 미국은 독보적인 얼음 국가였다. 전체 가정의 96퍼센트가 냉장고가 있었다.


263 냉장고는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여러 기술의 집합체였고, 그 덕분에 식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탄생했다.


263 냉장고는 음식이 일상에 끼어드는 방식을, 즉 우리가 음식을 구하고 조리하고 먹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264 연중 신선한 고기, 우유, 채소를 먹게 되었다. 냉장고는 음식을 구입하는 방식도 바꾸었다.


264 냉장고는 보존장치인 동시에 저장체계로서 옛 식품 저장실 기능을 넘겨받았다.


264 옛날 사람들은 따뜻한 불가에 모였지만, 요즘 사람들은 싸늘한 냉장고를 중심에 두고 일상을 조직한다.


265 중세 유럽에서는 겨울과 봄 내내 단백질 음식이라고는, 운 좋게 그런 것이 있다면 말이지만, 거의 모두 훈제했거나 소금에 절인 것이었다.


268 더운 지중해 지역에서 과일과 채소를 보존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그냥 말리는 것이었다.


298 우리가 개인적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기술 변화의 결과일 때가 많다.


290 1950년대 터퍼웨어 광고는 이런 말로 제품을 권했다. "이 속삭임이 들리나요? 음식 맛을 신선하게 지어주는 터퍼웨어의 빈틈없는 약속이에요!"


290 터퍼웨어는 냉동식품 보관용기로도 선전되었다.


290 냉동식품의 잠재력이 극적으로 향상된 것은 1939년에 '이중 온도 냉장고', 즉 냉동실과 냉장실이 분리된 모델이 도입된 뒤였다.


8 부엌

307 수비드(sous vide)기법이다. 뜨뜻한 물에 고기를 30분쯤 담가 천천히 익히는 것인데, 그러면 고기는 완벽한 미디엄 레어로 연하게 익는다.


307 재료를 튼튼한 비닐 봉지에 담그고 최대 몇 시간을 넣어둔다(갑싼 고기는 48시간이나 담가두어야 연해진다).


311 출장요리사가 기업체의 200인분 식사로 코코뱅을 준비해야 한다면, 수비드가 대단히 간편하다. 음식을 일인분씩 봉지에 담아서 수조에서 다 익힌 뒤 필요할 때 '간편식'처럼 다시 데우면 되니까, 인건비도 준다.


314 최첨단 부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장비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현대적 주방에 진열된 가장 큰 기술은 부엌이라는 공간 자체임을 잊는다.


319 20세기의 위대한 변화는 새로운 중산층 부엌의 탄생이었다.


319 1893년 E. E. 캘로그 부인(아침 식사용 시리얼 거물의 아내)은 "아무리 좁고 불편한 구조의 방도 부엌으로는 "충분하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꼬집었다. 캘로그는 부엌을 "가정의 작업장"으로서 존중했던 새로운 "과학적" 여성 운동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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