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중국정치사상사 | 48 묵자의 상동설과 군주전제주의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 - 하 - 10점
유택화 지음, 장현근 옮김/동과서


Reading_20min_20151207: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下)-48

尚同說과 군주전제주의

義의 본질은 통치질서의 확립

- “의는 어리석고 천한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반드시 귀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나와야 한다. 義不從愚且賤者出 必自貴且知者出”(墨子, 天志中)



의의 보급수단

- “부귀로 앞에서 인도하고 분명한 형벌로 뒤를 이끈다. 富貴以道其前 明罰以率其後”(墨子, 尚同下)

- 부귀로써 인민을 부유하게 해야 하고 통치계급은 節用(절용)해야 한다.

- 형벌은 선에 대한 상과 악에 대한 벌로써 이루어진다.

- 통치자는 ‘가까이 믿는 날개’ 집단을 만들어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빌려 권모술수 정치를 행할 수 있다.

- “천자는 귀신처럼 보고 듣는다. 天子之視聽也神”(墨子, 尚同中)

- 이로써 묵자가 주장한 체제는 전제주의 정치체제가 된다.

- 백성을 “반드시 적극적으로 사랑하면서 그들을 부리고, 지극히 믿게 하면서 (제자리를) 지키도록 한다. 必疾愛而使之 致信而持之”(墨子, 尚同下)



兼相愛(겸상애), 交相利(교상리)

- 겸상애는 自愛의 극복방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 “다른 사람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의 집안 보기를 제 집안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의 몸 보기를 제 몸 보듯이 하는 것. 視人之國若視其國 視人之家若視其家 視人之身若視其身”(墨子, 兼愛中)

- 겸상애를 현실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교상리이다.

– 사람마다 이익이 생기도록 보장해야 한다. / 재물을 아껴야 한다. 

- 재물의 사용에는 반드시 실제 이익이 있어야 하며 거둬들인 효과가 지출을 초과해야 한다.

- “충분히 백성들의 쓰임새대로 공급했으면 되는 것이다. 비용이 더 들고도 백성의 이익에 보탬이 안 되는 일을 성왕은 하지 않는다. 凡足以奉給民用 則止 諸加費不加于民利者 聖王弗為”(墨子, 節用中)

- “겸애는 평등을 지향하고, 상동은 전제를 지향한다. 보기에는 양자가 완전히 상반된다. 그러나 사실상 묵자에게 있어서 이 둘은 기묘하게 통일되어 나타난다. 그는 상동의 방법으로 겸애를 끌어내는데, 이 때 겸애는 행정 권력의 종속물로 바뀌게 된다. 겸애는 상동에 의지해 실현되는데, 이 때 상동은 사회조작의 주체가 되므로 전제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下) 47~49는 묵자에 대한 내용으로 2015년 12월 녹음되어 당시 배포가 되었으나 현재 녹음파일을 가지고 있지 않아 위 요약 내용만을 적어놓는다. 이것으로 2014년에 진행된 책읽기20분 「중국정치사상사」 정리를 끝낸다.


+ '큐어'님이 녹음파일을 공유해 주셔서 강의를 끝까지 들을 수 있었다. 녹음파일을 듣고 옮겨적는다.



지난 시간에 이어 묵자의 정치사상을 읽는다. 지난 주에는 사회가 혼란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떤 이유에서 사회가 혼란해지는가에 대한 묵자가 얘기한 것이 있는데 그것의 가장 큰 이유가 각기 사람들 모두가 자기의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다, 一人一義가 원인이고, 그 다음에 자기가 자기만을 사랑한다는 것. 사실 이것이 중요한 것인데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묵자의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구조적인 맥락을 보지 못한 점은 있다. 어쨌든 一人一義와 自愛 이 두가지가 사회적 혼란과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들은 무엇인가. 묵자는 一人一義를 해결하는 방책으로 尚同說을 주장한다. 의견을 다 같이 통일해야 한다는 것. 딱 들으면 전제주의구나, 의견을 누가 통일하는가, 바로 군주다. 그래서 尚同說과 군주전제주의가 함께 거론되게 된다. 의라고 하는 것은, 의견을 통일시킨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니다. 모두 다 동의한다고 이해하면 안되고 통일시킨다는 것. 위에서 뜻을 세우고 강제수단을 통해서 아래로 실현하는 것이 바로 상동설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그 의는 누가 만들어 내야 하는가. 묵자는 얘기한다. "의는 어리석고 천한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반드시 귀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 현명한 자는 어디서 나오는가. 어쨌든 나온다고 하니까 읽고 말하기는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래서 이렇게 세운 의를 어떻게 보급할 것인가. "부귀로 앞에서 인도하고 분명한 형벌로 뒤를 이끈다." 이것은 묵자 특유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부귀로써 인민을 부유하게 해야 하고 통치계급은 절약해야 한다." 그리고 잘 안되는 애들은 형벌을 준다. 법가에서도 나온다. 유가를 제외하고는 형벌은 누구나 다 얘기한다. 딱히 구별되는 지점은 볼 수 없다. 형벌은 선에 대한 상과 악에 대한 벌로써 이루어진다. 여기서 사실 인간이 사는 세계에서 선과 악의 개념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그 상황에서 통치자에게 좋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 통치자는 '가까이 믿는 날개' 집단을 만들어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빌려 권모술수 정치를 행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되면 "천자는 귀신처럼 보고 듣는" 사람이 된다. 유택화 교수는 밀고 정치의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이로써 묵자가 주장한 체제는 앞서 말했듯이 전제주의 정치체제가 된고, 백성은 "반드시 적극적으로 사랑하면서 그들을 부리고, 지극히 믿게 하면서 제자리를 지키도록 한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되니까 自愛에 대한 방책으로 나온 것이 兼相愛(겸상애)와 交相利(교상리)이다. 겸애이라는 것은 평등이고, 교상리는 서로 이익이 되게 한다는 것. 사상적으로는 평등이 되게 하고, 서로 이익이 되게 하면 자연스럽게 자기만 아는 것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묵자가 자애를 사회혼란의 원인으로 말했다는 것은 유택화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사회 혼란의 원인을 개인으로 돌린 것이고, 제도와 상황이 가져온 문제점을 짚어내지 못한 것이다. 지난 시간에도 얼핏 얘기했듯이 토마스 홉스가 한 얘기도 자기 보존의 욕구가 사회 혼란의 원인이다 라고 말한다. 거기서 시작해서 전제주권으로 가는 과정이 있다. 그러면 사실 현신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하고 홉스가 말하는 그런 것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이른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아담 스미스와 같은 사람들이다. 사회 이론은 개인에게만 무작정 돌릴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이론적인 의의는 인정할 수 있다. 묵자가 말하는 것이 겸상애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의 집안 보기를 제 집안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의 몸 보기를 제 몸 보듯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현실에서는 겸애의 객관적인 조건이 제공되지 않았다. 차별을 대신하기 위해서 겸을 내놓은 것이니까 등급제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다. 겸애라고 하는 것은 이념적인 것이니까 현실적으로 어떻게 겸애로 갈 것인가. 무엇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가. 이익때문이다. 이익을 둘러싼 쟁투가 있기 때문에 교상리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나온 것이다. "사람마다 이익이 생기도록 보장해야 한다." 재물을 아껴야 한다. "재물의 사용에는 반드시 실제 이익이 있어야 하며 거둬들인 효과가 지출을 초과해야 한다." 특히 묵자에게 고유하게 나오는 것은 "충분히 백성들의 쓰임새대로 공급했으면 되는 것이다. 비용이 더 들고도 백성의 이익에 보탬이 안 되는 일을 성왕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겸애와 상동은 안맞는 점이 있다. 겸애는 평등이다. 그러나 상동은 전제주의다. 보기에는 완전히 반대된다. 유택화 교수도 이것을 지적하고 있다. 평등이라는 것은 이념적으로 제시했을 때 상하가 평등한 것이다. "겸애는 평등을 지향하고, 상동은 전제를 지향한다. 보기에는 양자가 완전히 상반된다. 그러나 사실상 묵자에게 있어서 이 둘은 기묘하게 통일되어 나타난다. 그는 상동의 방법으로 겸애를 끌어내는데, 이 때 겸애는 행정 권력의 종속물로 바뀌게 된다. 겸애는 상동에 의지해 실현되는데, 이 때 상동은 사회조작의 주체가 되므로 전제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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