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 바그너의 이해 / 살림지식총서 506


바그너의 이해 - 10점
서정원 지음/살림


들어가며 

바그너의 생애 

바그너의 예술관 

혁명적 오페라 이론- ‘종합예술작품’ 

바그너의 예술 언어 

바그너와 반유대주의 

바그너 예술의 성지-바이로이트 

바그너의 영향과 바그너의 공연 

바그너의 주요 작품 

니벨룽의 반지 

마치며 




3 서양문화사에서 바그너(Richard W. Wagner, 1813~1883)는 ‘거인’이다. 그는 극과 음악의 완벽한 결합을 이상으로 삼고 기존의 오페라와 차별되는 음악극(Musikdrama)을 내놓아 한때 유럽 음악계뿐만 아니라 문학과 무대예술계를 뜨겁게 달구었으며, 이를 위해 부단히 자신의 예술 작업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작업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소도시 바이로이트(Bayreuth)에 자신의 작품만을 상연하는 전용 오페라 극장을 짓고 스스로 황제로 등극했던 사람이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음악 축제로 꼽히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140여 년 가까이 그의 예술적 성지로 군림하고 있으니 일견 그의 이상이 실현된 듯도 하다


10 트립쉔에서 1869년에 바그너는 또 한 명의 거대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만났다. 둘은 31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친해졌고 사상적으로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바그너의 사상은 니체에게 중대한 영향을 주었고, 니체는 바그너를 자신의 예술론의 원형으로 구축하였다. 니체는 첫 책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odie)』(1872)을 바그너에게 헌정하였다.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니체가 바그너가 지닌 다양한 측면의 생각들에 다가가면서부터 점차 벌어졌다. 또 섬세하고 내성적인 니체에 비해 직설적이고 저돌적인 바그너의 언행은 니체의 내면에 큰 상처를 주었다. 니체는 후속작 『바그너의 경우(Der Fall Wagner)』(1888)와 『니체 대 바그너(Nietzsche Contra Wagner)』(1889)에서, 바그너의 생각을 퇴폐하고 타락한 것으로 비난했고, 심지어 그가 청년 시절에 지녔던 미숙한 시야에 대해서도 스스로 냉혹하게 비판했다.


10 바그너는 그의 새 가정에 안착하여, 그의 에너지를 <니벨룽의 반지>를 완성하는 데 쏟아 부었다. 루트비히의 강경한 고집으로 <니벨룽의 반지>의 첫 두 작품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는 뮌헨에서 초연되었지만, 4개 작품의 온전한 초연은 1876년 8월 바이로이트에서 거행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1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다.


12 바그너는 고대에 이미 발현되었던 문학, 음악 극예술과 조형미술 등 복합적이고 ‘종합예술작품’을 그의 음악극 속에 이루어 놓았다. 이것은 한 민족의 공동체적 체험과 국민적인 종교의 봉헌극 사상을 결합시켜 일치의 효과를 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점에 있어서 바그너는 낭만적 사고의 최후의 정점이자 성취자이다. 중세의 소재들, 민중문학, 민족 신화에 대한 그의 선호가 입증하듯 음악 및 문학 창작 활동에 있어서 바그너는 낭만주의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는 또한 포이에르바하의 사상,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동시대의 심리학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그너는 신과, 신앙을 잃어버린 자연 과학의 시대를 예술 속에서 극복하고자 애썼다. 유도동기(Leitmotiv, 악극 등에서 주요 인물이나 사물, 특정한 감정 등을 상징하는 동기, 혹은 그런 동기를 취하는 구절)를 사용하여 거장다운 기술을 발휘한 그의 음악극들은 내용에 있어서 감각적 향락을 즐기는 세속적 측면과 신비주의적 구원의 동경이라는 측면이 대비되어 있다.


13 바그너에 따르면, 모든 필수적인 표현 요소들을 정신에 완전히 전달하는 것은 “하모니의 함께 울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하모니를 함께 울리게” 하는 것은 음악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표현되어 있지 않은, 그러나 시행들 속에 이미 내재해 있는 하모니를 가진” 시인의 멜로디는 그 드러나지 않은 하모니를 가장 잘 인식할 수 있게 표현해줄 음악가의 도움을 거친 후에야 그것의 완전한 표현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시인이 멜로디에 암시해 놓은 의도”를 음악가가 그 멜로디에 하모니를 덧붙이면서 비로소 실현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음악’극이 “인간 성향의 완전한 표현형태”라고 보았다. 또 그는 실제로 이런 식의 음악적ㆍ시적 표현 수단들의 결합을 통해 독보적이고, 보다 고차원적인 문학을 만들어냈다. 이리하여 세계는 바그너의 작품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신화적 상상력에 힘입어 연극사에 있어서 시적으로 가장 위대한 인물들과 상황들을 얻게 되었다.


14 그리스의 비극은 예술 작품화된 종교 의식이었다. 그리스 종교의 핵심은 바로 인간, 있는 그대로의 본능적인 인간이었으며, 이러한 종교의 핵심을 털어놓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었다. 예술은 종교가 은폐하고 있는 최후의 의상을 벗기고 종교의 핵심인 실제의 육체적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청중의 정신이 고무되었을 때 예술은 번성하였으며, 청중이라는 인간적 형제애가 깨졌을 때 인간의 예술 작품 또한 소멸하였던 것이다. 바그너가 말한 보편적 의미에서의 인간은 ‘청중’이라는 공동의 집단적 요구를 느끼는 모든 이들을 통칭한다.


16 예술, 정치, 사회, 종교에 대한 낡은 이념들의 붕괴는 인간을 그 자신의 수단에 의지하게 하였고 그럼으로써 인간은 더욱 창조적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조건은 새로운 예술적 충동을 낳게 하였다. 바그너라는 낭만주의 최고의 예술가는 이러한 낭만주의적 기운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음악ㆍ문학ㆍ연극적 기술에 숙련된 사람으로서 새로운 예술 통일의 예를 확립하였다. 바그너가 추구한 것은 종합예술작품으로서의 ‘음악극’이었다. 이러한 그의 예술관은 쇼펜하우어의 미학, 셰익스피어의 비극, 베토벤의 음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18 유도동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그너가 오케스트라에 부여한 임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바그너에 의하면, 그의 음악극에서 성악은 사물의 외면을, 오케스트라는 그 본질을 표현한다. 오케스트라의 이러한 역할은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의 역할과 동일하며, 또한 쇼펜하우어가 말한 ‘음악은 의지 자체의 모사’라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19 무한선율은 그의 종합예술작품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로 기존 오페라들의 폐해, 즉 ‘번호 오페라(Number Opera)’에서처럼 극과 음악이 번호들로 나뉘어져 연속성이 단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율적 장치이다. 고전주의 음악의 구문법(작곡 구성법)은 춤 음악에 바탕을 둔 것으로 투명한 전개를 그 특징으로 하나, 단위는 아주 단순하고 짧다. 따라서 이러한 전래의 구문법에 따를 경우, 짧은 시간에 의미를 완결 짓는 음악과 비교적 긴 시간을 요구하는 연극적 의미와의 불일치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음악은 연극과 결합하려 하기보다는 시와 결합하려 했다. 시의 전개는 음악만큼이나 압축적인 까닭이다. 따라서 오페라의 아리아는 연극 대본처럼 꾸며지지 않고 서정시처럼 꾸며진다. 그러나 바그너는 이러한 기존의 방식을 연극이 음악의 시종이 되는 방식이라 하여 따르지 않고, 음악이 연극의 속도를 맞추어가는 방식을 주창하였다. 이제 음악은 연극과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바로 속 시원하게 종지가 나타나 음악의 구문법이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휴지와 종지를 회피하여 감정의 고조에 따라 끊임없이 흘러가게 만드는 선율법이 그것이다. 이를 ‘무한선율’이라 한다.


20 ‘무한선율’ 개념의 기초를 이루는 본질적인 조건은 음악 작품 전체를 통해서 각각의 순간은 다른 순간의 의미와 동등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한선율은 바그너의 말처럼 ‘완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흘러야만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의 음악적 사건들과 형태들이 무의미하게 메워진 상태로 아무런 내적 관계도 없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어서는 안 되며, 서로가 관계를 갖고 상대의 것으로부터 유기적으로 발전되어 나와야만 한다. 바그너는 이러한 무한선율 기법을 통해 드라마의 내적 행위가 급작스러운 위기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펼쳐진다고 주장한다.


20 바그너 오페라의 가창 양식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는 말하기와 노래 부르기의 중간 형태인 ‘아리오소’ 양식을 언급한다. 이것은 이태리의 ‘번호 오페라(Number Opera)’ 속에서 볼 수 있듯이 레치타티보(노래와 대사의 중간쯤 되는 것으로, 마치 읊조리는 듯한 노래를 말함)와 아리아가 확연히 구별되는 양식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바그너가 음악극을 창출하는 데 있어 두 가지의 기본 문제들을 ① 말하기(speech)와 노래의 통일과 ② 드라마와 음악의 통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하기와 노래를 통합하는 데 있어서 바그너는 한편으로는 운율이 없는 산문과 다른 한편으로는 운율이 있는 시 사이의 중간 영역을 추구하였다.


28 그래서 바이로이트에서 이 <반지> 4부작을 보려면 6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과 우주의 대서사시에 비견되는 <반지>를 바이로이트에서 본다는 것은 오페라 팬들에게는 생애 가장 소중한 감동의 시간이요 황홀한 1주일로 기억된다. <반지>는 오페라 전체에서 보면 특수 오페라에 속한다. 워낙 가수 구하기도 힘들고 연주도 힘들어서 메이저 오페라 극장이 아니고서는 올릴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28 <파르지팔>은 다른 측면에서 특별하다. 이 작품은 바그너 최후의 오페라로 성배와 성찬 의식을 다루고 있어 관객에게 성스러운 예배에 참여한 듯한 특별한 경험을 전해준다. 음악은 장중하고 오케스트레이션은 신비로워서 독일어권에서는 아주 특별한 레퍼토리로 꼽힌다. 바그너의 유가족 측이 처음에 바이로이트 이외의 극장에서 이 작품의 공연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과 저작권 분쟁이 붙었던 일화도 유명하다. 


29 바그너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무대 밑으로 집어넣는 그야말로 독창적인 생각을 해 냈는데 이에 의해 관객은 오케스트라나 지휘자에 주의를 빼앗기는 일 없이 오직 무대에만 시선을 집중할 수 있으며 관악기의 소리는 피트 내를 한번 돌아 현악기의 소리와 섞여 피트 밖의 관객에게 전달되어 매우 독특한, 이른바 ‘바이로이트 사운드’라는 것이 창조되기에 이르렀다. 극장의 내부 공간은 대부분 나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바이올린 등의 악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종류의 것으로 실로 이 극장 자체가 하나의 악기라고도 할 수 있다. 바이로이트에서는 통상적인 오페라 하우스에서처럼 지휘자가 등장할 때 관객이 박수를 치거나 하지 않는다. 지휘자가 관객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극장 내부가 완전히 어두워지면 관객이 알지 못하는 사이 어느 틈에 이미 지휘자가 등장해 있고 서곡이나 전주곡이 시작되면서부터 마지막까지 관객이 볼 수 있는 유일한 빛은 오직 무대로부터 나오는 것일 뿐이다.


33 바그너의 오페라는 이탈리아 오페라들에 비해 텍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에 아무래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독일어권 그리고 영국과 미국에서 많이 공연된다. 그것은 베르디나 모차르트의 이탈리아 오페라들이 이탈리아, 프랑스 이외에도 독일어권에서 많이 공연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연하지만 자국 독일의 중소 도시 오페라 극장은 바그너의 오페라를 많이 공연한다. 그중 바이로이트를 빼고 바그너에 애정을 많이 쏟은 도시는 뮌헨, 베를린, 드레스덴, 함부르크, 슈투트가르트와 만하임 등을 꼽을 수 있다.


42 <니벨룽의 반지>는 바그너가 그의 생애에 걸쳐 구현하려고 애썼던 그의 예술이론의 핵심, 소위 ‘종합예술작품’ 개념이 나름대로 실현된 작품이다. 바그너는 이를 전통적인 오페라(Opera)와 구분하여 ‘악극(Musikdrama, Musicdrama, 또는 음악극)’이라고 불렀다. 또한 <반지>는 바그너가 평생을 통해 성취하려고 했던 세계와 인간의 궁극적인 진리를 담으면서 감상자에게는 강렬한 ‘영혼의 감동’을 주는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작품이다.


44 이 당시까지의 전통적인 오페라와 바그너의 악극이 다른 또 하나의 지점은 소위 ‘아리오소’와 ‘무한선율’의 사용이다. 즉 노래와 오케스트라 선율의 진행에 있어서 종지(코다)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허위로 종지함으로써 극과 음악이 단절 없이 계속적으로 진행되도록, 그렇게 하여 음악과 극이 완전하게 결합되도록 한 것이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오페라에서 극의 진행은 레치타티보로, 감정 표현은 아리아가 맡아서 하던 것을 이제 아리아와 레시타티보의 중간 형태인 아리오소가 대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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