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우다드: 분열하는 제국 ━ 11개의 미국, 그 라이벌들의 각축전


분열하는 제국 - 10점
콜린 우다드 지음, 정유진 옮김/글항아리



서문

제1부 기원: 1590~1769

제2부 불가능해 보였던 동맹: 1770~1815

제3부 서쪽으로 퍼져나가는 전운: 1816~1877

제4부 문화전쟁: 1878~2010


에필로그





서문

11 나는 여기서 지역 문화 공동체를 가리키기 위해 '국민nations'이란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공동체는 연방을 세우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국가적 특성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미국인은 종종 '주state'와 '국가'란 용어를 혼동하기도 한다.


미국인은 전 세계적으로 '국가적 지위nationhood'와 '주(의) 지위statehood'를 마음대로 바꾸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국가'는 정치적인 독립체를 일컫는다. 영국, 케냐, 파나마, 뉴질랜드처럼 유엔에 가입할 자격이 있고, 랜드 맥널리가 만든 지도나 미국지리학협회의 분류 단위를 이루는 주체들이다. 그런가 하면 '국민nation'은 공통의 문화와 민족적 기원, 언어, 역사적 경험, 유물과 상징 등을 공유하는, 혹은 공유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집합체다. 어떤 '민족들nations'은 현재에도 나라가 없는 상태다. 쿠르드 족, 팔레스타인인, 퀘벡인 등이 그 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독일, 일본, 터키 등은 자기 민족의 이름을 나라 명으로 삼은 민족국가nation-state를 형성하고 있다. 반대로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되지 않은 수많은 국가가 있다. 그중 일부는 연방 형태를 이루는데 벨기에, 스위스, 말레이시아, 캐나다, 그리고 미국이 이에 속한다. 북미의 11개 국민은 모두 독립적인 나라가 없는 경우다. 현재 최소 두 곳이 지금도 나라를 세우려는 열망을 불태우고 있으며 그 외의 나머지도 한번쯤은 건국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다.


이 책은 11개의 국민에 관한 이야기다. 이를 통해 북미인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12 북미를 캐나다 13개 주, 멕시코 31 개 주, 미국 51 개 주의 3개 연방 국가로 무 자르듯 나눈 지도는 잠시 잊자. 그 지도의 경계선은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나눈 것처럼 매우 자의적이다. 지도에 그어진 선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문화 공동체를 가로질러 쪼개놓으면서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메릴랜드, 오리건, 뉴욕 등이 그 예인데 그곳 사람들은 바로 옆의 이웃보다 다른 주의 주민들과 공통점이 더 많다고 느낀다. 국내 정치를 분석할 때 쓰이는 동북부 서부 중서부 남부 같은 의미 없는 '지역' 구분도 잠시 잊자. 그런 경계선은 이 대륙의 실제 역사와 파벌 구도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그어진 것이다. 물론 주, 지역, 연방은 정치권력이 작동하고 구현되는 공식적인 장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지난 4세기 동안 일어난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이런 행정구역이 실제 힘의 역학 구도를 보지 못하게 막는 가림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북미 대륙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11개로 나뉜 '나라 없는 국민들stateless nations'이다.


그렇다면 이 국민은 누구인가? 그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규정되는가? 이들은 대륙의 어떤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가?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내가 각각의 국민에 붙인 이름과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간략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양키덤Yankeedom'은 매사추세츠 만 해안가에 세워졌다. 칼뱅주의자인 그들은 뉴잉글랜드의 황야에 종교적 유토피아인 새로운 '시온'을 건설하겠다는 꿈을 안고 그곳에 정착했다. 그들은 교육과 정치의 중요성을 믿고, 공동의 '대의'를 위해서라면 금욕도 불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양키덤은 정부가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지녔다. 그들은 정부를 시민의 힘이 확장된 형태라고 봤으며 외세와 기업, 귀족의 탐욕에 대항해 자신들을 보호해줄 필수적인 존재라 여겼다. 지난 4세기 동안 양키들은 비교적 활발한 시민의 정치 참여, 적극적인 외국인 동화 정책, 사회 공학을 통해 이 지구에 훨씬 더 완벽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양키덤은 교육 수준이 높은 견실한 중산층 집단이었으며 지적인 성취를 중요시했다. 종교에 대한 열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됐지만,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의식은 변하지 않았다. 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세속적 청교도주의자"로서 도덕적,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나갔다.


양키 문화는 뉴잉글랜드에서 뉴욕 주 북부로 확산됐다. 펜실베이니아 북부 일부,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 아이오와, 다코타 등 동부 일부도 양키의 영향권 아래 놓였으며 훗날 미시간과 위스콘신, 미네소타, 그리고 캐나다 연해주로까지 퍼져나갔다. 양키덤은 연방정부 지배권을 둘러싸고 디프사우스와 끊임없는 전투를 벌여왔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식민지 도시였던 뉴네덜란드New Netherland는 비록 존재 기간은 짧았지만 그레이터 뉴욕 시티에 두고두고 변치 않을 문화적DNA를 남겼다. 네덜란드의 도시와 이름이 똑같은 뉴암스테르담(뉴욕의 옛이름)은 처음부터 국제 상업무역지구로 출발했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뒤섞이고, 투기적인 열망과 물질 만능주의로 불탔으며, 무엇이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요란 시끌벅적한 도시였다. 어떤 민족이나 종교도 실질적인 헤게모니를 쥐지는 못했으며, 아직 완벽한 민주적인 도시국가가 형성된 상태는 아니었다. 뉴네덜란드는 매우 폭넓은 수준의 톨레랑스와 어떤 경우에도 침해받지 않을 탐구의 자유를 보장했다. 당시 다른 유럽 국가들은 이를 체제 전복적인 요소라며 경계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혁신 정신은 결국 헌법 제정회의에서 미국의 다른 국민에게도 채택됐고 권리 장전수정헌법 1조에서 10조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664년 네덜란드는 영국에 패배했지만, 오래전 뉴욕을 서구 무역과 금융, 출판 분야의 세계적인 중심지로 만든 뉴네덜란드의 근본적인 가치와 사회적 모델은 그 영향력이 건재하다. 그들의 영토는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남쪽(델라웨어와 뉴저지 남부)은 미들랜드로, 북쪽(올버니와 어퍼 허드슨 밸리)은 양키덤에 흡수되면서 쪼그라들었다. 오늘날 뉴네덜란드의 영토는 뉴욕 시 내 5개 자치구와 허드슨 밸리 저지대, 뉴저지 북부, 롱 아일랜드 서부, 그리고 코네티컷 서남부(양키 팬보다 레드삭스의 팬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지역) 정도다.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던 뉴네덜란드는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통과하는 첫 관문이었고, 이 때문에 북미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됐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이 지역의 인구는 1900만 명으로 웬만한 유럽 국가의 총인구보다 많다. 또한 미디어, 출판, 패션, 지적 경제적 삶 등의 측면에서 대륙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마도 미국의 여러 국민 중 가장 '미국인'다운 특징을 보유하고 있을 미들랜드Midland는 영국 퀘이커교도에 의해 건설됐다. 그들은 델라웨어만 기슭에 식민지 도시를 건설해, 자신들의 유토피아로 이주해오는 수많은 정착민을 반갑게 끌어안았다. 다원적이고 잘 조직화된 서민층으로 구성된 미들랜드는 미국 중서부 내륙의 농촌 문화를 형성했다. 그들은 인종 이념적 순혈주의를 배척했고, 정부란 존재는 환영할 수 없는 외부 침입자쯤으로만 여겼다. 정치에 대해서는 온건하다 못해 무관심할 정도였다. 미들랜드는 민족적으로 매우 다양한 사회였다. 1600년대부터 '앵글로색슨'이 아닌 독일계가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게 된 미들랜드는 1775년 당시 북미의 영국 식민지 중에서 비영국계가 다수를 차지한 유일한 지역이었다. 미들랜드 사람들은 양키들처럼 국가는 일반 시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유럽 군주제로부터 도망쳐 이주해온 선조들의 영향 때문인지 톱-다운 형식의 정부 개입에 대해서는 극도로 부정적인 시각을 지녔다. 미들랜드는 오랫동안 '미국 표준어'로 채택된 방언이 생겨난 곳이고, 미국 정치의 흐름을 점치기 위한 풍향계 역할을 했으며, 노예제 폐지부터 2008년 대선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달군 모든 사안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부동층' 표밭이다.


펜실베이니아 동남부, 뉴저지 남부, 델라웨어와 메릴랜드 북부에서 출발한 미들랜드 문화는 오하이오 중부, 인디애나, 일리노이, 미주리 북부, 아이오와 대부분, 사우스다코타의 덜 건조한 동부의 절반, 네브래스카 그리고 캔자스 등 중서부로 퍼져나갔다. 미들랜드는 시카고(양키)와 세인트루이스(그레이터 애팔래치아) 등 중요한 '경계 도시'들을 다른 지역 국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또 많은 미들랜드 사람이 미국 혁명 후 같은 영어권 지역인 캐나다로 이주해, 캐나다의 심장부인 온타리오 남부에도 도시를 세웠다. 미들랜드는 자신들의 집단적 정체성을 굳이 의식하는 편이 아니지만, 여러 이웃의 극단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만 동의하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북미 정치에 매우 온건하면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타이드워터Tidewater는 초기 공화정 시대와 식민지 시대까지만 해도 가장 강력한 사회를 형성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보수성을 띠고, 권위와 전통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며 평등이나 일반 대중의 정치적 참여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다. 타이드워터가 영국 남부 젠트리의 후손이 세운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젠트리는 영주들이 경제, 정치, 사회를 지배했던 영국의 반半 봉건사회를 이곳에 이식하고자 했다. 스스로를 '왕당파'로 규정한 이들은 버지니아 저지대, 메릴랜드, 델라웨어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동북부를 젠틀맨gentlemen의 파라다이스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인을 고용해 부렸고, 나중에는 노예가 농민의 역할 일부를 대신하기도 했다.


타이드워터의 엘리트들은 미국의 건국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귀족적인 요소들을 미 헌법에 집어넣은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직접선거가 아니라 의회가 임명하는 상원의원 제도와 선거인단 제도가 그 예다(상원은 21세기 초부터 직선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타이드워터의 세력은 1830~1840년 대 들어 소멸하기 시작했고,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생겨나면 디프사우스 농장주들의 뜻을 따랐다. 오늘날 이들은 영향력과 문화적 응집력을 잃어버리고 이웃한 미들랜드에 영토마저 잠식당해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이들이 성공하지 못한 데는 지리적 요인이 크다. 타이드워터는주변 경쟁자들에게 가로막혀 애팔래치아 산맥 너머 서부로 영향력을 확장하는데 실패했다.


그레이터 애팔래치아Greater Appalachia는 북아일랜드와 북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저지대 접경의 거칠고 호전적인 사람들이 18세기 초 전쟁으로 파괴된 고향을 떠나 북미로 이주해오면서 형성됐다. 작가, 기자, 영화 제작자, TV 프로듀서들은 이들을 ‘레드넥redneck(교육 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미국의 시골 사람을 일컫는 모욕적인 표현' '힐빌리hillbillies(두메산골 촌뜨기)' '크래커Cracker(남부의 가난한 시골 사람을 비하하는 뜻으로도 쓰임)' '하얀 쓰레기White trash(가난한 백인을 뜻하는 은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매우 배타적인 성향을 지닌 스콧-아이리시Scots-Irish, 스코틀랜드, 북잉글랜드 개척자들은 인디언, 멕시코인, 양키들과 싸우면서 남부 산악지대와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 아칸소, 미주리 오자크의 남쪽으로 퍼져나갔다. 오클라호마 동부 3분의 2에 달하는 지역과 텍사스 힐컨트리Hill Country를 장악한 것도 이들이었다.


수많은 전쟁을 겪었던 영국 섬나라 출신인 까닭에 전사戰士와 같은 사고방식을 지녔고, 동시에 개인의 자유와 주권을 끊임없이 갈망했다. 이들은 귀족사회를 싫어한 것은 물론이고 사회개혁론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키 선생과 타이드워터의 지주, 디프사우스의 귀족들을 모두 경멸했다. 남북전쟁 동안 이 지역의 대다수는 북부 편에 서서 싸웠지만, 버지니아 서부(훗날 웨스트버지니아가 되는 곳)와 테네시 동부, 앨라배마 북부는 분리 독립의 움직임에 동조하기도 했다. 남북전쟁 종료 후 재건 시기에 그레이터 애팔래치아는 흑인노예들을 해방시키려는 양키들의 노력에 거세게 저항하면서, 어제의 적이었던 타이드워터와 미국 동남부 '딕시Dixie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 편에서 싸웠던 11개 주를 일컫는 말' 지역의 디프사우스 저지대 기득권층과 손을 잡았다. 이들의 전투적인 문화는 앤드루 잭슨, 데이비드 크로켓,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같은 유명한 인물은 물론,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파병 군인을 배출해냄으로써 미국의 군사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들은 또 북미의 블루그래스(기타와 밴조로 연주하는 미국의 전통 컨트리 음악)와 컨트리 음악, 스톡 카(일반 차를 개조한 경주용 차) 레이싱, 기독교 복음주의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레이터 애팔래치아인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를 별달리 의식하지 않았다. 스콧-아이리시를 연구한 한 학자는 그들을 "이름 없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미국 인구조사원이 애팔래치아인들에게 국적 또는 민족 출신을 질문했을 때, 그들 대부분은 항상 '미국인', 심지어 '미국 원주민'이라고 답하곤 했다.


디프사우스Deep South는 바베이도스(서인도 제도 카리브 해 동쪽 섬) 노예 소유주들에 의해 세워진 서인도 스타일의 노예사회였다. 그들의 매우 잔인하고 횡포한 사회 제도는 동시대를 살았던 17세기 영국인들조차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미국 역사에서 디프사우스는 백인 우월주의 및 귀족적 특권의 보루와 같은 존재였다. 고대 노예 국가 모델로 한 고전적 공화주의 국가 같은 이곳에서 민주주의는 오직 선택받은 소수의 특권이었고, 노예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북미의 수많은 국가중 가장 민주적이지 않은 일당 체제 사회였으며, 이곳에서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짓는 첫 번째 변수는 여전히 인종이었다.


찰스턴 해안 교두보에서 출발한 디프사우스는 인종 격리 정책과 전제주의를 남쪽으로 확산시키면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테네시 서부, 노스캐롤라이나 동남부, 아칸소, 텍사스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남아메리카로 영토를 확장해나가려던 야심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들은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우려고 시도함으로써 1860년대 미합중국을 끔찍한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타이드워터와 애팔래치아 일부 외곽도 소극적이나마 디프사우스와의 연맹에 동참했다. 양키 주도의 점령 세력에 격렬히 저항했던 이들은 이후에도 주의 자치권 문제, 인종 분리, 노동·환경 규제 완화 등의 이슈에서 큰 목소리를 냈다. 흑인 문화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된 그곳은 흑인 참정권이 허용된 후 4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인종에 따른 정치적 양극화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애팔래치아 및 타이드워터와 불안정한 '딕시' 연합 전선을 꾸렸던 디프사우스는 지금도 미합중국의 미래를 놓고 양키덤·레프트코스트·뉴네덜란드 연합과 장대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뉴프랑스New France는 행정 구역으로 독립하려는 퀘벡 주가 포함된 지역으로 국수주의적 성향을 가장 강하게 띠는 곳이다. 1600년대 초에 세워진 뉴프랑스는 앙시앵 레짐 시절의 프랑스 북부 소작농 민속 문화와 북미 동북부의 토착 원주민 문화가 결합돼 형성됐다. 현실적이면서 평등을 지향하고, 합의를 우선시하는 뉴프랑스인들은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최근 북미 대륙에서 자유민주주의적 성향을 가장 강하게 띠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오랫동안 영국 출신의 지배자들에게 억압받아온 이들은 20세기 중반부터 캐나다 연방에 다문화주의와 협의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전파했다. 뉴프랑스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국민일 수도, 혹은 가장 최근에 생겨난 국민일 수도 있는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의 재출현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오늘날 뉴프랑스의 영토는 퀘벡 전체의 3분의 1 남단, 뉴브런즈윅의 북부와 동북부, 루이지애나 남부의 아카디아 혹은 '케이준Cajun' 소수민족 거주지 등을 아우른다(뉴올리언스는 경계 도시라서 뉴프랑스와 디프사우스 문화가 섞여 있다).이곳은 독립 국가를 이룰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물론 독립을 하려면 그 전에 퍼스트 네이션의 주민들과 퀘벡의 영토를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를 놓고 협상부터 해야겠지만 말이다.


엘 노르테El Norte는 가장 오래된 유로-아메리칸 국민이다. 이들의 기원은 스페인 제국이 멕시코 북부의 몬테레이, 살티요 등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16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부흥하는 이 세력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중심으로 양방향 100마일에 걸쳐 확장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타마울리파스, 누에보레온, 코아우일라, 치와와, 소노라, 바하칼리포르니아 주가 여기에 해당되며, 미국에서는 텍사스 남부와 서부, 캘리포니아 남부, 임페리얼 밸리, 애리조나 남부, 뉴멕시코 대부분, 콜로라도 일부가 여기예 속한다. 이 지역에는 히스패닉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경제적인 이유로 멕시코시티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유럽계 백인과 스페인계 미국인 사이의 혼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미국인 대부분은 히스패닉이 언어와 문화,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미합중국의 남쪽 국경지대를 이질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정작 멕시코인은 미국과 접경한 북부 지역 사람들이 지나치게 '미국화'됐다고 생각한다. 노르테뇨(북부인)는 인구 밀도가 높고 계급사회의 중부 지역보다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며 특성을 띤 멕시코 중부보다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며 적응력이 뛰어나고 성취욕이 강하다. 오랜 세월 민주 개혁과 혁명 사상의 온상이었던 멕시코 북부주들은 이웃하는 다른 멕시코 지역보다 미국 남부 국경 지대에 사는 히스패닉과 역사경제 문화, 심지어 음식 문화에서도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멕시코의 국경지대는 '노르테뇨norteno'라는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한다. 


그러나 국경지대의 무장 경계가 점점 더 강화되면서, 엘 노르테는 어떤 의미에서 냉전 시대의 독일과 비슷해져가고 있다. 같은 문화를 보유한 양측 사람들이 커다란 장벽에 의해 분리된 것이다. 워싱턴 DC와 멕시코시티의 지도자들은 결코 허락하지 않겠지만, 많은 노르테뇨는 그들끼리 제3의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한다. 뉴멕시코 대학에서 치카노(멕시코계 미국인) 연구를 하는 차를레스 트루시요 교수는 21세기 말 무렵에는 독립적인 주권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들의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면서 '라 레푸블리카 델 노르데'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그러나 언젠가 자신들만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그들은 미국 내에서 점점 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퓨 리서치 센터는 2050년 자신을 히스패닉이라 여기는 사람이 2005년보다 두 배 이상 급증해 미국 인구의 29퍼센트에 달하리라고 예측했다. 엘 노르데 지역의 히스패닉 숫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히스패닉이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엘 노르테는 자신들의 지역을 넘어 미국 전역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멕시코 작가인 카를로스 푸엔데스는 톨레랑스의 정신이 승리한다면 21세기에 이 국경지대는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어 상호 의존적인 문화를 꽃피우는 곳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나는 이제까지 늘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선은 국경이 아니라 흉터라고 말해왔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흉터에서 다시 피가 흐르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흉터가 치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태평양과 캐스케이드, 코스트 산맥 사이에 끼어 칠레처럼 긴 모양으로 형성된 레프트코스트The Left coast는 캘리포니아 몬테레이부터 알래스카 주노까지 아우르는 지역이다. 매우 진보적 성향을 띠는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시애틀, 밴쿠버도 이곳에 속한다. 기후가 온화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이 지역은 두 부류의 정착민들이 개척했다. 뉴잉글랜드에서 온 상인, 선교사, 벌목꾼 무리(배를 타고 도착해 도심 부분을 장악)와 그레이터 애팔래치아 출신의 농부, 채굴업자, 가죽 무역상 등(화물 기차를 타고 도착해 시골 외곽에 정착)이 바로 그들이다. 양키들은 레프트코스트를 '태평양의 뉴잉글랜드'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인 양키 선교사들을 파견했다. 개인의 성취를 중요시하는 레프트코스트에는 지금까지도 뉴잉글랜드의 지성주의와 이상주의의 자취가 강하게 남아 있다.


레프트코스트는 양키처럼 정부를 신뢰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탐구와 발견을 뒷받침해줄 사회 개혁을 추구한다. 이 두요소가결합돼 이 지역에는 비옥한 아이디어의 토양이 다져졌다. 레프트코스트는 근대적 환경운동과 글로벌 지식혁명(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애플, 트위터. 실리콘밸리)의 산실이자, 뉴네덜란드와 더불어 게이 권리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며 1960년대 문화 혁명의 출발점이었다. 어니스트 칼렌바크의 1975년 SF소설인 『에코토피아』는 레프트코스트의 일부가 미연방에서 독립해 지속 가능한 생태국가를 창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이곳에서는 현재 브리티시컬럼비아와 알래스카 남부를 아우르는 '생태지역 협동 영연방'을 건설해 캐스케이드 주권국으로 독립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양키덤의 가장 큰 아군이기도 한 레프트코스트는 바로 이웃한 파웨스트의 '자유 기업론'에 맞서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다.


기후·지정학적 요인은 모든 국민의 형성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수로 작용했다. 그중에서도 파웨스트The Far West는 환경적 요인이 민족성을 압도한 유일한 지역이다. 그레이터 애팔래치아와 미들랜드 등 다른 국민이 개발한 농사 기법이나 삶의 방식은 고지대, 건조한 기후, 외딴 서부 내륙의 척박한 환경 조건을 가진 이곳에서 아무 쓸모가 없었다. 이 광활한 황야지역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철도, 중장비 채굴 기계, 광석 용광로, 댐 관개 수로와 같은 대규모 산업자원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파웨스트의 식민화 과정은 멀리 뉴욕, 보스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에 본사를 둔 대기업이나 영유권을 가진 연방정부 주도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정착민들은 이곳에 진출한 대기업에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유지하거나, 물자와 인력을 수송하며 시장과 공장에 물건을 들여오고 내보내기 위한 철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해안지역 국민의 이익을 위해 착취되고 수탈당하는, 일종의 내부 식민지 취급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전됐지만, 이 지역은 여전히 종속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이곳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연방정부에 손을 벌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디프사우스처럼 정부란 존재를 남의 일에 간섭하는 참견꾼으로 매도한다. 그러나 이들은 기업 자본이 '도금 시대(남북전쟁이 끝나고 1873년에 시작돼 불황이 닥치는 1893년까지 미국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한 28년간을 일컫는다)'만큼이나 파웨스트의 내정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반발하는 법이 없다. 오늘날 파웨스트는 서경 100도선을 기준으로 엘 노르테 북부 경계선과 퍼스트 네이션의 남부 경계선 사이 서부 내륙을 아우르고 있다. 애리조나 북부, 캘리포니아 내륙, 워싱턴, 오리건,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상당 부분, 앨버타, 서스캐처원, 매니토바, 알래스카, 유콘 일부분, 노스웨스트가 여기에 포함된다. 또 다코타, 네브래스카, 캔자스의 건조한 서부 절반과 아이다호, 몬태나, 콜로라도, 유타, 네바다 지역 역시 거의 전부 파웨스트에 속한다.


파웨스트처럼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도 북방 산림, 툰드라, 북극 빙하 등 매우 척박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파웨스트와 달리 이곳을 점유하는 이들은 원주민이다. 이곳 원주민들은 이제까지 땅을 포기하겠다는 조약을 누구와도 맺은 적이 없으며,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존을 가능케 해준 자신들만의 오랜 문화적 관습과 지식을 보존하며 살고 있다. 이들은 최근 자주권을 보장해달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알래스카와 누나부트 지역에서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얻어냈다. 또 그린란드는 자치 정부를 수립하는 데 성공, 덴마크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 위한 문턱에 서 있다. 이 새로운, 그리고 아주 오래된 국민인 퍼스트 네이션은 북미 원주민들이 문화, 정치, 환경적으로 다시 조명받을 기회를 잡아냈다.


이들은 파웨스트 북쪽 가장자리의 광대한 지역을 빠르게 장악해 나가고 있다. 유콘과 노스웨스트, 래브라도, 누나부트와 그린란드 전체, 온타리오 북쪽, 매니토바, 서스캐처원, 앨버타 , 브리티시컬럼비아 서북쪽 상당 부분, 퀘벡의 북쪽으로 3분의 2 지역 등이 퍼스트 네이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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