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J. 드닌: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 자유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에 대한 분석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 10점
패트릭 J. 드닌 지음, 이재만 옮김/책과함께


편집자 서문

서문


서론 자유주의의 종말

1장 지속 불가능한 자유주의

2장 개인주의와 국가주의 통합하기

3장 반문화로서의 자유주의

4장 기술과 자유 상실

5장 자유학예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6장 새로운 귀족정

7장 시민권의 퇴화

결론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


감사의말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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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약 500년 전 한 정치철학이 구상되었다. 그리고 얼추 250년이 지나 미합중국이 탄생할 때 현실에 적용되었다. 그 정치철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정치사회를 세울 수 있다는 쪽에 내기를 걸었다. 그 정치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권리를 가진 개인으로서, 저마다 나름대로 좋은 삶을 계획하고 추구할 수 있었다. 자유의 기회를 누리기에 가장 좋은 체제는, 국민의 권리 보호에 헌신하는 제한된 정부와 개개인에게 진취성과 야망을 추구할 여지를 주는 자유시장 경제를 갖춘 체제였다.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는 개인들이 애초에 사회계약을 맺어 정치사회를 이루었다는 공통된 믿음에 있었다. 그 계약은 새로 온 사람일지라도 체결할 수 있었고, 유권자에게 응답하는 대표를 뽑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계속해서 비준을 받았다. 상승일로를 달리던 이 질서는 제한받지만 효과적인 정부, 법치, 독립적인 사법부, 응답하는 공무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등의 특징을 가졌으며, 어느 모로 보나 내기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다.


21 자유주의는 실패해왔다. 어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충실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자유주의가 더 완전해질수록 자유주의의 내적 논리가 더 분명해지고, 자기모순이 더 드러날수록 자유주의 주장의 변질인 동시에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실현인 병폐들이 생겨났다. 공정성을 증진하고, 문화와 신념의 다원성을 옹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유를 확대하겠다던 정치철학이 실제로는 엄청난 불평등을 낳고, 균일성과 균질성을 강요하고, 물질적 · 정신적 퇴폐를 조장하고,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자유주의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가늠하는 방법은 자유주의가 달성하겠다던 목표와 정반대되는 목표를 얼마만큼 달성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24 정치의 몇 안되는 철칙 중에서도 정치 이데올로기가 궁극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보다 더 공고한 철칙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 이유로 실패한다. 첫째, 인간 본성에 대한 거짓말에 근거하는 까닭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둘째, 그런 거짓말이 분명하게 드러날수록 이데올로기의 주장과 그것의 영향권 아래 있는 사람들의 실제 경험 사이의 간극이 커지다가 종국에는 체제가 정당성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데올로기는 거짓말을 변호하려 애쓰며 순응을 강요하고, 그렇지 못하면 주장과 현실 사이의 간극 탓에 결국 대중의 신뢰를 완전히 잃고서 무너진다. 대개 전자가 후자에 선행한다.


38 오늘날 자유주의의 성공을 가장 부각하는 것은 점점 늘어나는 실패의 징후들이다. 자유주의는 특히 정치, 경재 교육, 과학, 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제 이미지대로 바꾸어왔다. 이 모든 영역에서 자유주의가 내세운 목표는 (개인이 직접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 그리고 각자의 의지대로 변경하거나 포기할 수 없을 경우) 특정한 장소, 관계, 구성원 지위로부터, 심지어 정체성으로부터 개인을 해방함으로써 최고의 완전한 자유를 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68 자유주의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자기모순이며 결국 자신의 토대인 도덕적 자원과 물질적 자원의 고갈로 귀결된다는 나의 생각이 옳다면, 우리는 한 가지 선택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지역에 더 중점을 두는 자치의 형태를 자진해서 추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악화되는 무정부 상태와, 점점 더 절박해지는 국가가 점점 더 강압적으로 부여하는 질서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고통받을 수도 있다. 자유주의의의 논리적 결론을 고려하면 자유주의의 마지막 단계는 어느 모로 보나 지속 더 불가능하다.


92 개인주의 이론과 실천의 핵심에는 개인주의의 동인으로서 국가가 하는 두드러진 역할이 있다. 개인의 해방 자체가 자유주의의 자기강화 순환, 즉 개인이 속박에서 풀려날수록 결국 국가가 강화되어 개인을 만들어내는 순환을 낳는다. 이것은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선순환이지만, 인간 번영의 관점에서 보면 자유주의적적 병리의 가장 깊은 근원 중 하나다.


96 자유주의의 확장은 갈수록 공고해지는 악순환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국가의 확장이 개인의 파편화라는 목표를 보장하고, 그 결과 사람들이 공유하는 규범과 관행, 믿음이 없는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국가를 더욱 확장해야 하는 악순환에 달려 있다. 이런 이유로 자유주의는 법적 · 행정적 체제를 점점 더 필요로 한다. 그 체제의 목표는 인간의 번영을 뒷받침하는 비자유주의적 형태의 지원(학교, 의료, 자선 같은)을 모조리 대체하고, 미래 또는 운명을 공유한다는 시민들의 깊은 의식을 전부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다.


128 문화 해체는 뿌리 뽑힌 개인의 해방, 구석구석 스며들고 에워싸는 시장, 국가의 권한 확대, 셋 모두의 전제조건이다.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당국에 개인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문화 규범과 관행을 느슨하게 풀어 달라고 호소하고, 당국은 다양한 압력을 가해 오래된 비공식 규범의 본질적인 특징을 축소하거나 해체한다.


129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문화 해체를 요구한다. 그리고 문화가 사라질수록 리바이어던은 커지고, 책임감 있는 자유는 작아진다.


132 문화는 자유주의적 개인을 창출하는 데 가장 큰 위협이었으며, 자유주의가 주로 야망하고 점차 이루어 낸 목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투쟁 곳곳에 만연한 과거에 대한 기억 상실과 미래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장소를 대대로 사랑하고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활동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형성하는 것이다.


154 우리는 인터넷처럼 명백한 기술과 보험처럼 덜 명백하지만 영향력은 그 못지않은 기술을 동원해 세계를 재형성하는 가운데 우리를 우리 자신이 상상하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기술들을 받아들이고 활용한다.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점점 더 완벽해지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추구하면서도 그런 기술을 채택할 선택권이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없는 것은 아닌지 점점 더 의심하고 있다.


162 자유는 오랜 학습 과정의 결과다. 자유는 이성과 정신의 고귀한 능력을 사용해 스스로를 다스리는, 덕성 함양을 통해 학습하는 역량이다. 이런 전근대적 자유관은 인간이 자기 원하는 대로 하는 상태를 노예 상태로, 가장 저열한 욕구에 이끌려 더 나온 본성을 거스르는 상태로 규정한다. 자유학예의 핵심 목표는 자유민과 자유시민을 이런 자유관에 부합되게 양성하는 것이었다. 자유학예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182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유교육의 이념 자연과 문화가 마땅히 가하는 한계와 제약을 배우고 또 받아들이는 상태를 자유로 이해하는 이념을 되살리는 것이다. 고대 전통과 종교 전통에서 공히 권장한 대로. 자유는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욕구를 다스려 더 참된 자유 — 욕구에 매달리고 세계의 자원 고갈을 회피하는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자유一를 성취하는 우리의 능력이다. 요컨대 자유주의로부터 자유교육을 구출할 필요가 있다.


213 자유주의 질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발전하는 체제 내에서 그들의 지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형편이 계속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점은 자유주의 질서가 자유주의 지배층에게 그들이 새로운 귀족이 아니라 오히려 귀족 질서의 반대파라는 심각한 자기기만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 자기기만을 감추는 주된 수단은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정의와 관심이라는 겉치장이다. 자유주의 지배층은 어려서부터 흔히 그들을 엘리트로 길러내는 교육기관에서 그런 겉치장을 빈틈없이 주입 받는다. 그런데도 바로 그들은 《국가》를 읽다가 '고귀한 거짓말' 논의를 마주하면 대개 속임수라며 혐오감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동굴 벽을 감추기 위해 고안된 인공조명 때문에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동굴이 눈에 안 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



217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오늘날 서구의 대다수 사람들이 유일하게 정당한 정치조직 형태로 여기는 정체를 가리킬 때 널리 쓰인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는 형용사처럼 명사 '민주주의'와 함께 쓰여 인민들이 통치하는 오래된 정체 형태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표현은 겉보기 의미와는 다른 목적을 가진다. 우선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변경할 뿐아니라 유구한 정체를 사실상 정반대되는 정체로, 즉 인민들이 통치를 하지 않고 자유주의적인 사적 개인으로서 물질적 · 군사적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데 만족하는 정체로 재규정하자고 제안한다. 그와 함께 명사 민주주의는 한층 강직한 형태의 시민권을 이른바 대중의 동의로 대신하는 자유주의 정체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유주의는 공적인 것보다 사적인 것을, 시민 정신보다 자기이익을, 공동선보다 개인들의 의견 취합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시민권의 퇴

화를 불러온다.


225 시민적 문해력, 투표, 공공정신이 계속 낮게 나타나는 문제는 자유주의로 해결할 수 있는 부수적인 병폐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의 전례 없는 성공의 결과다. 이 결과는 자유주의 운영체재에 내포된 목표이며. 예나 지금이나 사회과학자들이 두루 발견하는 시민적 무관심과 정치적 문맹은 성공한 자유주의 질서에서 예상되는 결과다.


247 자유주의가 실패해온 이유는 바로 성공해왔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스스로를 완성해갈수록, 고질적인 병폐를 감추기 위해 미봉책과 장막을 만들어내는 역량 이상으로 빠르고도 광범하게 병폐를 유발한다. 그 결과는 선거정치, 통치, 경제의 순차적인 작동 중지다. 그리고 자유주의의 틀 안에서 따로따로 해결할 수 있는 개별 문제들이 아니라 서로 밀집하게 연결되어 있는 정당성 위기들로서 누적되고 자유주의 종말의 전조로서 나타나는, 체제 정당성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와 더 나아가 신념의 상실이다.


258 자유주의의 가장 해로운 허구 중 하나는 동의 이론, 즉 자율적이고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들이 권리 보호를 유일한 목표로 삼는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추상적인 계약을 맺었다는 가상 시나리오였다. 이 이론은 선택하지 않은 모든 사회와 관계를 임의적인 것으로, 그리하여 위법은 아닐지라도 미심쩍은 것으로 격하한다.


269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역 환경에서 함양하는 실천이다. 새롭고 실현 가능한 문화, 가정 내 솜씨에 바탕을 두는 경제, 시민들의 폴리스 생활을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실천이다. 더 나은 이론이 아니라 더 나은 실천이 필요하다. 종래와 다른 환경과 그것을 고무하는 철학은 마침내 자유롭다고 불릴 자격을 얻을 것이다. 지난 500년간 진행된 철학적 실험이 수명을 다한 지금, 새롭고 더 나온 길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 날 인간 자유의 가장 위대한 증거는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를 상상하고 구현하는 우리의 능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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