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 과르디니: 삶과 나이 ━ 완성된 삶을 위하여


삶과 나이 - 10점
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김태환 옮김/문학과지성사



삶의 시기

태아로서의 삶과 출생, 그리고 유년 시절

성숙의 위기

청년

경험의 위기

성년

한계 경험의 위기

각성한 인간

물러남의 위기

지혜로운 인간

고령으로의 진입

노쇠한 인간

되돌아보며


옮긴이의 글_우리 삶의 본질에 대한 가장 간결한 말






삶의 시기

9 인간의 삶을 고찰하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관점으로도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삶의 본질적 특징이겠지요. 그 가운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런 관점입니다. 인격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구체적인 특성에서는 변화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동일성과 변화 사이에서 생겨나는 독특한 긴장을 출발점으로 하여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간은 항상 새롭게 변해갑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끊임없이 변하니까요. 일을 할 때와 휴식을 취할 때가 다르고, 뭔가를 얻기 위해 투쟁할 때와 안락하게 가진 것을 누릴 때가 또 다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을 때마다 인간 본성이 지닌 각기 다른 측면들이 나타나고, 건강이나 직업 또는 사회적 상황 등의 변화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생겨나는 차이는 때로 너무나 커서 인격의 동일성 자체가 의심스러워지기도 하지요. 이를테면 정신분열증처럼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을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문제되는 사람이 동일한 인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의 상태가 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서 인격의 통일성이 폐기되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인격의 통일성은 그런 상이함 속에서 스스로를 주장합니다. 일견 통일성이 파괴될 지경에 이른 듯 보이는 상황에서도 운명의 결정적 계기를 통해 우리는 그런 통일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인간의 여러 가지 상태 가운데서 인간 이해에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 한 가지 종류의 상태에 주목해보려 합니다, 그 상태란 나이에 따라 구분되는 삶의 시기입니다.


곧바로 이런 물음이 떠오를 겁니다. "삶의 시기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경계를 그어야 할까?" 삶의 모든 시기는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하루를 이루는 여러 단계들, 즉 아침, 점심, 저녁도 각각 하나의 삶의 시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는 밤과 낮으로 이루어진 하루라는 단위도 어제와 다르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계절도 지난 계절과 구분되기에 삶의 시기가 될 수도 있고, 또 한 해 전체도 지난 해와 비교할 수 있는 하나의 시기입니다. 각 삶의 시기가 더 이상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어떤 삶에 대해 몇 년, 몇 주, 며칠”의 시간이라고 말해버린다면, 그것은 추상적인 시간 혹은 날짜의 기계적인 획일성을 핑계로 삼아 유일무이함의 무게를 회피하려는 기만일 뿐입니다. 모든 하루하루, 모든 한 해 한 해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생생한 시기들입니다. 이들은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기에 우리의 삶 전체에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위를 갖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시기가 전례 없이 새롭고 유일하며 또한 영원히 사라져가는 것이라는 사실, 바로 이 점에서 인간 삶의 긴장, 즉 바로 그때 그 시기의 삶을 살려는 아주 내밀한 충동이 나옵니다. 이 충동을 느끼지 못하면 곧바로 단조로움의 감정이 생겨나고, 이 감정은 절망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그러한 유일무이함 때문에 지나간 어떤 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이와 함께 상실의 고통도 따르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특정하게 정의된 삶의 시기만을 강조하는 모든 시도는 어떻든 자의적인 성격을 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는 그렇게 특별히 부각시켜도 될 만큼 근원적인 의미를 지닌 분기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삶의 시기를 아주 넓게 잡아서, 유년, 청년, 성년, 중년, 노년, 그리고 말년으로 구별해 봅시다.


분명 삶의 시기는 더 세세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령 작은 아이는 큰 아이와는 다른 삶의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큰 아이는 다시 청소년과도 다르고요.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논의가 한없이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구별한 각각의 시기를 통과하면서 인간은 어떤 전형적인 위기를 겪습니다. 즉 유년기와 청년기 사이에는 사춘기라는 위기가 있고, 청년기와 성년기 사이에는 경험의 위기, 그리고 성년과 중년 사이에는 한계 경험이라는 위기, 또 중년과 노년 사이에는 물러남의 위기, 마지막으로 노년과 말년 사이에는 무기력해지는 데 따른 위기가놓여 있습니다.


이들 각 시기는 진정 독자적인 삶의 형상으로서 한 시기에서 다른 시기를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이의 태도를 바탕으로 청년의 태도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이의 삶을 청년이 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모든 시기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으며, 그런 고유한 특성이 너무나 강하게 발휘되는 바람에 해당 시기를 지나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데 어려움을 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 어려움은 고착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시기를 완전히 살아내고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어야 할 시점에서도 여전히 지난 시기를 붙들고 있게 됩니다. 이를테면 나이로 보면 이미 성숙해졌어야 함에도 여전히 감정과 성격에 있어서 아이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는 유아적 인간이 그러합니다. 반대로 해당 시기가 지나치게 다음 시기로 쏠려버려서 그 시기의 고유한 본질이 활짝 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변 환경이 파탄나는 바람에 너무 조숙해져버리거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마음껏 놀지 못하고 일찍부터 일을 해야 하는 아이는 진짜 아이가 될 기회를 박탈당하고 맙니다.


삶의 형태는 가치형상 Wertfigur 또한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이 강의에서 가치형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하나의 가치형상 속에서는 몇몇 지배적인 요인의 영향 속에서 고유한 특성을 지닌 일정한 가치들의 그룹이 형성되고 부각됩니다. 각각의 삶의 시기는 고유한 가치형상을 발전시키고, 이와 함께 고유한 윤리적 가능성과 과제가 정해집니다.


이 모든 다양한 형태 속에서도 살아가는 것은 결국 한 명의 동일한 인간입니다.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개체, 가령 동물과 같은 그런 개체로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의식하면서 각 시기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인격으로서 말입니다. 이것은 예컨대 이전의 강의에서 상세하게 이야기한 기억과 예견이라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눈앞에 되살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객관적인 사실의 확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와의 연관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여기에 기억의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억의 대상이란 자기 자신의 삶 안에 있는 일들로서, 이들은 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결국 하나로 엮여 실존의 실현 ― 혹은 좌절 ― 으로 귀착되는 것입니다. 예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다음 주, 다음 학기, 내년을 위한 모든 계획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미리 내다보는 행위지요. 그것은 현재와는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동일한 인격에 의해 규정되는 실존의 통일성에 속하게 될 터입니다.


그런데 기억과 예견이라는 현상에서도 새삼 분명해지는 것은 각각의 시기들이 서로 대단히 선명하게 구별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른이 기억을 통해 진짜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해봅시다. 그러니까 그 시절을 극복해버린 무의미한 과거로 치부하거나 잃어버린 행복의 시간으로 보지 않고, 정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떠올리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어른이 아이를 교육할 때도 거듭 드러납니다. 가령 아이한테 아이답지 않은 태도나 아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요구하는 사람은 자기가 아이였을 때 어땠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린 게 분명합니다.


여기서 삶의 각 시기와 삶 전체 사이의 변증법이 드러납니다. 모든 시기는 그 자체로서 고유한 특징을 지니며, 앞선 시기나 뒤따르는 시기에서 연역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모든 시기는 삶 전체 안에서 자리를 가지고, 또 삶 전체를 향해 작용을 할 때만 완전한 의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이 상이한 시기들을 각각 자세히 살펴봅시다.


노쇠한인간

116 지혜로운 인간 이후에 찾아오는 삶의 시기에 대해 흔히 두번째 유년기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이 삶의 적나라한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지어내는 흔한 감상적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주 늙은 사람과 유아 사이의 공통점은 전적으로 외적인 특징들에 국한됩니다. 어른이라면 응당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제 몸을 추스르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 등이죠…… 그렇지만 이것은 순전히 양적인 규정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경우들, 가령 중병에 걸렸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기의 참된 의미는 다른 데 있습니다.


확실히 아이는 어른보다 약합니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주장할 수 있는 능력도 떨어집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유년기의 일부 특수 영역을 제외하면 아이는 어른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그 정도는 점점 덜해집니다. 아이는 생의 시작에 서 있습니다. 아이의 가치형상을 규정하는 지배 요인은 성장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삶의 과정은 "상승"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높이" 올라갑니다. 아이에게는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눈앞에 "미래"가 펼쳐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의 삶의 분위기는 ━ 물론 어느 정도 일반적인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을 때 얘기지만 ━ 기대감으로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계속 충족되어갑니다. 적어도 아이가 계속 자라가고 발전하며 자신감을 키워간다는 의미에서는 분명 그러합니다.


고령의 시기는 이와 같은 유년기와 그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인 충족, 삶 자체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충족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것 외에 더 바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제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지키는 것, 그리고 축소와 소멸의 과정을 늦추는 것뿐입니다. 그러다가 자칫하면 현실에 눈을 감게 만드는 자기 기만에 빠질 위험도 없지 않지요.


고령의 시기의 특징은 모든 경험의 형태와 행동 동기, 활동 방식이 원천적인 독자성과 강도를 잃어간다는 데 있습니다. 충동의 강도와 깊이도 저하됩니다. 몸과 영혼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삶의 모습 전체에서 열정의 요소가 사라져갑니다. 감각적인 수용 능력도 줄어듭니다. 신체 기관들이 뻐걱대기 시작합니다. 지각의 섬세함과 정확성

도 떨어져만 갑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삶은 경직된 과정을 밟아갈 뿐입니다. 뭔가를 싸워 얻어내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집니다. 노쇠한 인간은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도 점점 줄어듭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뭔가를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점점 덜 느끼고 그저 평온히 쉬고 싶을 뿐입니다. 삶의 반경이 점점 좁아지는 가운데 그 범위를 넘어서는 공공의 삶과 일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노쇠한 인간은 무심해집니다.


노쇠한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공감을 받고자 하는 소망도 없어집니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무관심한 태도도 여기서 비롯되지요. 그러한 무관심은 자칫하면 정반대 형태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쇠한 인간은 약자가 강자에게 품게 되는 무조건적 불신의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어떤 혜택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비굴한 태도로 강자에게 다가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와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든 괘념치 않는 무관심한 태도는 그렇지 않아도 이미 노쇠한 인간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전체적 느낌을 더욱 강화합니다. 그것은 쇠락의 느낌입니다. 생의 활력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느낌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칩니다. 젊을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하지요. 노쇠한 인간의 영혼의 모습을 방금 그려보았습니다만, 이 역시 유사한 쇠락의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이시기에 특징적인 것은 앞에서 제가 언급한 바 있는 노인의 물욕입니다. 정신적 능력이 저하되고, 영혼의 감수성, 깊이, 분별력도 떨어져갑니다. 그 대신 가장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은 원초적인 물질적 욕구. 먹고 마시고 안락함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순전히 육체적인 것으로 국한된 성욕이 여전히 왕성하게 남아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기력이 없는 노쇠한 인간은 세상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자기 존재와 소유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러한 위협에 맞서려고 합니다. 자신의 재산과 권리, 습관, 견해, 판단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이죠. 고령의 노인 특유의 옹고집이 나타납니다. 정말 치사하고 터무니없다 싶을 정도로 온갖 일에 고집을 부리며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성과 감정이 더 이상 예전처럼 유연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이유를 설명하고 필요성을 역설해도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문제로 인해 노쇠한 인간의 전반적인 상태는 점점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변화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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