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철학 고전 강의 — 23
- 강의노트/라티오의 책들 2021-24
- 2021. 10. 11.
라티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라티오의 책들'을 듣고 정리한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해설녹음이다.
팟캐스트 주소: https://ratiopress.podbean.com/
⟪철학 고전 강의 - 사유하는 유한자 존재하는 무한자⟫, 제28강
❧ 인간의 규정
정신과 신체의 합성체로서의 인간, 즉 초월론적 정신과 제약받는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
인간의 정신은 신의 모상에 이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신에 대한 앎을 거침으로써 대상세계의 사물들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확실함을 가지게 된다.
2021.05.04 철학 고전 강의 — 23
오늘은 데카르트의 《성찰》 마지막 시간이다. 28강, 참과 거짓을 식별하는 정신, 정신과 신체의 합성체로서의 인간(제4성찰, 제6성찰). 지난 제3성찰에서 신에 대해서 어떻게 아는가, 유한한 내가 신을 알 수 있다고 해버렸으면 자기가 확신lux securitatis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확실한 근거는 다 찾아낸 셈이다. 그래서 더 따져볼 수 것도 없이 지금부터 하는 말은 다 참말이다, 제4성찰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 신을 관조할 때에 다른 사물에 이를 수 있다. 신을 매개로 할 때 다른 사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제4성찰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제5성찰은 물질적 사물의 본성, 제6성찰은 물질적 사물의 현존 및 정신과 물체의 실재적 상이성을 얘기한다. 지금 제4성찰은 그냥 지나가더라도 제5성찰, 제6성찰은 물질적 사물 그러면 저 바깥에 있는, 대상세계에 관한 얘기이다. 그런데 좀 의아한 것이 이 사람이 제1성찰에서 이미 나는 감각적인 앎은 확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까 배제하겠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성찰》 후반부에 와서 이렇게 하는가. 중간에 제3성찰이 있기 때문에 이 얘기가 가능하다. 즉 제1성찰의 나는 그냥 의심만 하는, 아직 내가 신을 알아낼 수 있는, 신에 대한 무한자에 대한 진리 인식의 원천인지를 확증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제1성찰에서 시작하여 제2성찰을 거치고, 제3성찰에 이르러서 내가 신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있구나, 즉 이제 나는 신적인 입자에 올라선 존재구나, 나의 사유는 비록 유한하지만 그 유한함 때문에 신의 무한함을 안다는 처지에 올라섰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제1성찰에 있던 나와 달라졌기 때문에 그 달라진 나는 이제 바깥 세상에 있는 사물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제3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자기가 신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1성찰에서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이 다른 점이다. 그러면 데카르트는 이제 사물에 대한 인식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그런 것을 전제하고 있으니 얼마나 자신만만하겠는가. 물론 데카르트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과 같은 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에게는 신적인 완전성과 신과는 무관한 불완전성이 동시에 있다. 그래서 우리 본성이 결국 약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초월성과 제약성을 동시에 가지는 이중적인 존재라고 해도 인간에게는 신의 모상인, 신의 얼굴, 신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이 있기 때문에 이제 피조물에 대해서 대상세계의 사물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게 바로 제6성찰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이다. 이게 바로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으면서 얻게되는 기본적인 맥락이다.
데카르트의 논의를 마지막으로 정리해보겠다. 《철학의 원리》를 읽으면서 정리하는 것이 좋은데, 데카르트는 대개 《방법서설》을 많이 하는데, 데카르트를 읽을 때는 《철학의 원리》가 가장 적당하다. 《철학의 원리》를 읽기 마땅하지 않으면 목차만 읽어도 좋다. 왜냐하면 《철학의 원리》는 일단 데카르트가 가지고 있는 유한자로서의 인간, 무한자로서의 신, 그리고 유한자와 무한자의 관계 이런 것들을 명제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또 《철학의 원리》의 목차를 보면 그 명제 형식으로 정리한 것을 목차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목차를 읽으면서 정리를 해보면 "1.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살아가는 동안 한 번은 가능한 한 모든 것에 관하여 의심해보아야 한다.", 철학을 하는 사람의 기본상식으로 이해를 해두면 되겠다. 데카르트 철학의 출발점이 의심이다. "2. 더욱이 의심스러운 것들을 틀린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아주 의심스러운 것은 틀린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생각을 할 때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적어도 이런 정도는, 우리가 데카르트에서 최소한 이것은 가지고 가면 좋겠다는 지점을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렇지 않다. 확증편향이 있다. 똑같은 사태도 프레이밍을 짜서 얘기할 때 목표치에 가까운 것일수록 확고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데카르트의 순수자, 순수한 자기의식 이런 것들이 신을 알고 싶어서 만들어 낸 개념들인데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떠한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의심을 일상적으로 일삼는 의식이 되자는 것이다. "3. 그러나 이런 의심을 일상적인 삶에 적용시켜서는 안된다." 그러면 의심을 하더라도 일상생활에까지 너무 많이 하면 일상살이가 피곤하다는 것이다. "4. 무엇 때문에 감각적인 것들을 의심할 수 있는지." 감각적인 것이 의심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5. 무엇 때문에 수학적인 증명들조차도 의심할 수 있는지." 감각적인 것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감각의 착오, 착각. 수학적인 증명도 의심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끝판왕이겠다. 그 다음 "우리는 의심스러운 것들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지를, 따라서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liberum arbitrium, arbitrium는 제멋대로인, 맘대로 하 할 수 있는, 정치적인 의미에서 자유의지가 아니다. 일단 의심해보는 것. 1~6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7번에서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의심하는 동안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할 수가 없다." 인간 존재는 의심하지 않아도 또는 우리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존재한다. 인간이라는 육체는 아무런 의심이 없어도 틀림없이 존재한다. 내 뺨을 꼬집어 보는 짓만 해도 안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 자체도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유를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데카르트를 읽어서 알게되는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알게되는 최선의 철학적 원리는 무엇인가.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데카르트 식의 논변이 8번에 있다. "8. 이로부터 영혼과 육체 혹은 사유하는 것과 물질적인 것 간의 차이가 인식된다." "9. 사유란 무엇인가." 8번 명제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하면 "영혼과 육체 혹은 사유하는 것과 물질적인 것 간의 차이",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의 유명한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 심신이원론이다. 현대 신경과학에 의해서 데카르트의 이 명제는 다 깨졌다. 인간 존재는 어디서부터 정신이고 어디서부터 육체인지 알 수 없다. 특히 뇌의 영역에서도 우리가 사유하는 것은 철저하게 뇌라고 하는 장소에서 뉴런이라는 하는 신경물질들이 연결되면서 사유라는 것이 나온다. 그렇지만 데카르트 명제가 깨졌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는 오로지 물질적인 존재인가, 물질 일원론으로 인간의 정신을 설명할 수 있는가, 관련 책을 읽어봤는데 아니다. 오로지 일원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인간으로 하는 존재는 인간의 생각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모호한 경계에 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적인 것이 갈라선다고 말해야만 인간 정신을 가지고 신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9번 명제 사유란 무엇인가가 있고, 그리고 10,11,12를 지나서 "13. 어떤 의미로 신에 대한 인식에 그 나머지 것들에 대한 인식이 의존해 있는지.", "14.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의 관념 속에 필연적인 존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올바르게 귀결된다." 신이라는 관념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인 존재, 반드시 있는 존재가 귀결된다. 이게 이른바 데카르트의 신존재증명인데 어이가 없다. "24. 신은 무한하나 우리는 유한하다는 점을 유념하면서, 우리는 신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피조물들에 대한 인식에 도달한다." 이것이 지난 번에 제3성찰을 하면서 계속해서 이야기한 부분이다.
첫 번째 부분 | 인간 인식의 원리들에 관하여
1.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살아가는 동안 한 번은 가능한 한 모든 것에 관하여 의심해보아야 한다.
2. 더욱이 의심스러운 것들을 틀린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3. 그러나 이런 의심을 일상적인 삶에 적용시켜서는 안된다.
4. 무엇 때문에 감각적인 것들을 의심할 수 있는지.
5. 무엇 때문에 수학적인 증명들조차도 의심할 수 있는지.
6. 우리는 의심스러운 것들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지(liberum arbitrium)를, 따라서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7. 우리는 우리가 의심하는 동안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가 순서에 따라 철학을 할 때 인식하는 최초의 것이다.
8. 이로부터 영혼과 육체 혹은 사유하는 것과 물질적인 것 간의 차이가 인식된다.
9. 사유란 무엇인가.
[…]
13. 어떤 의미로 신에 대한 인식에 그 나머지 것들에 대한 인식이 의존해 있는지.
14.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의 관념 속에 필연적인 존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올바르게 귀결된다.
[…]
24. 신은 무한하나 우리는 유한하다는 점을 유념하면서, 우리는 신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피조물들에 대한 인식에 도달한다.
[…]
29. 신은 오류의 원인이 아니다.
30. 이로부터 우리가 명석하게 지각하는 것들이 모두 참이라는 사실과 앞서 했던 의심들이 사라진다는 점이 귀결된다.
[…]
76번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우리의 지각보다 신성한 권위를 우위에 놓아야 한다. 그 이외의 경우에 철학자는 지각된 것들만을 참으로 여겨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신적인 것에 관해서는 신성한 귄위에 근거를 두어야 하는데, 신적인 것과 관련 없는 것들, 즉 우리 인간의 이성의 힘만 가지고 탐구할 수 있는 것들은 그냥 철저하게 우리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탐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데카르트 철학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인간 중심주의가 있는데, 데카르트는 신이 신성한 권위를 가지고 계시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이 어찌할 수 없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성찰》에서 신에 대한 앎을 거쳐서 대상세계의 앎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면 대상세계에 대한 앎은 신을 거쳐서 아는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알아낸 것이다. 개나리가 핀 것을 알았다. 이렇게 알게 된 것은 내가 신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면 내가 신과 같은 앎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자연세계도 다 알아낼 수 있다. 더 나아가면 자연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간다. 내가 알면 그것의 주인일 수 있다라는 생각이 데카르트의 사유 속에 숨어 있다. 굉장한 인간 독단의 형이상학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함축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면 그 지점을 지적할 수 있다.
76. 우리의 지각보다 신성한 권위를 우위에 놓아야 한다. 그 이외의 경우에 철학자는 지각된 것들만을 참으로 여겨야 한다.
지금까지 데카르트의 《성찰》을 중심으로 해서 그의 형이상학을 살펴보고 《철학의 원리》에 나와있는 몇 개의 명제들을 검토해봤다.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에 대한 제목이 무엇인가. 주체인 인간의 세계구축이다. 여기서 주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전체 주인인 인간의 세계 구축이다. 데카르트는 철저하게 인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그러면 굉장히 겸손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인간이 신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대상 세계에 대한 앎을 딱 가지게 되면, 세계의 주체가 된다. 그래서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이 세계는 인간의 의지대로 구축할 수 있다라고 하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그것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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