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25 / 제19강(1)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19강(1)

❧ 비코의 사상사적 의미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꾸 갈망하게 되는 유토피아 같은 것이다. 17세기 사람 비코는 ‘수학적 확실성’이라는 시대정신에 맞서 신의 섭리와 인문주의를 제창한다. 그의 ⟪새로운 학문⟫은 비감한 텍스트이다.”

 

❧ 비코 자서전
잠바티스타 비코, ⟪비코 자서전 - 지성사의 숨은 거인⟫, 교유서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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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6 역사 고전 강의 — 25

⟪역사 고전 강의⟫ 제19강은 잠바디스타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설명한다. 역사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17세기 비코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학적 역사철학이다. 그래서 역사철학 영역에서는 비코과 헤겔은 당연히 거론해야 한다. 내가 역사에 관심이 있는데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원리가 무엇인가, 신의 뜻 말고 뭐 없는가 이렇게 생각되는 사람들. 사실 망상이고 헛된 것이다. 역사는 어떠한 섭리도 없고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그저 일어난 일. 그런데 그것에다가 사람은 스토리를 꿰어서 뭔가를 이야기가 되어야, 서가가 만들어져야 그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못된 지점이다. 오류이다. 응급실에 실려와서 죽었다, 그건 우연이 아닌 신체의 최종 결과물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라고 하면서 이의를 제기한다. 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역사철학을 시작하게 하는 인지적 편향이다. 역사철학은 인지적 편향 학문이다. 철학이라는 것은 정확하고도 엄밀하고도 확실한 지식을 갖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런 철학관을 가진 사람과 역사의 원리를 찾는 사람, 공존이 아니다. 

비코라는 사람에 대해서 먼저 좀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오늘은 19강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비코 자서전⟫이 교유서가에서 출간되어 나왔다. 이 내용을 예전에 포스타입에 서평으로 써놓은 것이 있다. 오늘은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하겠다. 먼저 발문을 먼저 보면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꾸 갈망하게 되는 유토피아 같은 것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결국 아주 짧은 시간에 끝난다. 사람들의 이상향 갖은 것이었다. 르네상스 고전주의는 어떻게 보면 곧바로 매너리즘으로 들어가버린다. 열망은 있는데 그것을 엄격한 형식으로 담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자꾸 갈망하게 되는, 갈망이라고 하는 것과 고전주의라는 형식이 서로 어울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규정할 수 없는 파토스와 엄격한 로고스를 조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한다. 그것이 되면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르네상스 인문주의이다. 특히 플라톤의 경우에는 고전고대의 철학자라고 말하지만 플라톤은 갈망은 있었어도 어쩔 수 없이 현실국가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기를 지나서 "17세기 사람 비코", 비코가 1688년에 태어났으니 17세기 사람은 맞다. 그리고 ⟪새로운 학문⟫은 1725년에 나왔기 때문에 18세기의 학문이 아닌가. 그런데 사실은 이때 1600년대와 1700년 초반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17세기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17세기 사람이라고 해야 "‘수학적 확실성’이라는 시대정신"에 맞선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수학적 확실성’이라는 시대정신"은 과학혁명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 메모해 둘 수 있다. 거기에 맞서서 "신의 섭리와 인문주의를 제창한다." 시대착오적이다. 그렇지만 비코가 세워놓은 이런 좁은 의미에서의 근대 교양주의 전통,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골방에 쳐박혀서라든가 그런 의미, 약간 좁은 의미은 닫힌 집단 속에서의 유토피아적인 환상을 추구한다면, 근대 교양주의라고 하는 것은, 근대 수학주의는 데카르트라든가 뉴턴이라든가 또는 계몽주의자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수학적 확실성에 바탕을 두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비코와 같은 사람은 근대적 교양주의, 인문주의적인 심성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교양주의라고 표현하는데, 비코에서 시작된 교양주의는 도이치 낭만주의를 거쳐서 헤겔에 와서 집대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대체로 본인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교양주의에서 절대로 놓치지 않는 것이 신화라든가 상징 이런 것이다. 데카르트는 신화, 상징 이런 것을 얘기하지 않는다. 신화나 상징은 헤겔이 방법론적으로 집약하고 있고, 현대에 와서는 《상징형식의 철학》를 쓴 에른스트 카시러, 이렇게 세 명을 이야기할 수 있다. 

제19강 232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꾸 갈망하게 되는 유토피아 같은 것이다. 17세기 사람 비코는 ‘수학적 확실성’이라는 시대정신에 맞서 신의 섭리와 인문주의를 제창한다. 그의 ⟪새로운 학문⟫은 비감한 텍스트이다.

⟪비코 자서전⟫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다.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처음으로 읽으려 한다면 비코의 생애에서 어떤 것을 공부하고 어떤 식으로 사람들과 교류하였는가, 사상사적 맥락, 이런 것들을 제공해야 하는데 ⟪새로운 학문⟫의 새로운 번역문에 해제가 없으면 ⟪비코 자서전⟫을 읽어 볼 수 있겠다. 1668년 나폴리에서 태어난 비코는 어렵게 살았다. 그래도 비코는 "모든 민족들의 시민법을 역사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 말하지만 비코가 공부의 지향점으로 삼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민족들의 시민법", 굉장히 넒은 의미인데 관습도 포함되는 것이고 심성구조도 포함되고, 구체적으로 법전으로 만들어진 것도 포함하는 굉장히 유형 무형의 것들이다. 그런데 시민법이니까 공공영역에서 통용되는 것들이다. 그것을 역사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은 사상사적인 방법이다. 법전들을 늘어놓고 각각의 시민법이나 관습이나 사람들의 심성구조가 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그러면 당연히 데카르트의 학문방법론처럼 그런 역사적인 맥락은 빼버리고 순수하게 언제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제일원리만을 찾아가는 것이 데카르트의 학문방법론인데 그것과는 정반대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수학적 확실이나 그런 것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고 동의할 수 있는 객관성은 과학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과학을 놓고 그 위에 의미와 상징과 관습과 심성구조를 찾아야한다. 

그래서 비코가 여기저기 다니다가 나폴리로 다시 왔는데 그때까지 비코가 모범으로 삼은 사람이 플라톤과 타키투스이다. 플라톤은 철학자이고 타키투스는 역사가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정치가라고 할 수 있으니까, 철학자와 정치가의 결합, 플라톤처럼 숨겨진 지식, 철학적 지식, 제일원리, 수학적인 것을 포괄하면서도 그보다 위에 있는 세계를 꿰뚫고 있는 제일원리, 그리고 타키투스는 실천적 지식. 이런 것을 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사실은 비코보다 선행하는 사람이 있다. 후고 그로티우스, 자무엘 폰 푸펜도르트, 존 셀던, 이 사람들이 이른바 16세기 자연법론자들이라고 하는 명칭으로 부른다.

비코는 기존에 있던 철학, 문헌학, 법학을 하나의 체계로 혼합해서 새로운 학문을 시도했는데 이 새로운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새로운 자연법, 새로운 역사학, 새로운 철학이다. 즉 ⟪새로운 학문⟫은 이런 것들을 모두 다 포함하는, 철학과 자연법과 역사학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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