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9장(3)

 

2022.01.05 옥스퍼드 세계사 9장(3)

《옥스퍼드 세계사》 9장 3번째 시간이다. 지금 9장은 르네상스, 종교 개혁, 정신 혁명 이런 챕터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앞에서 수렴하는 세계에 대해서 콜롬버스의 교환 이런 것들에 대한 얘기가 있었고, 그런 다음 9장에서는 서양과 동양의 만남 이후에 만들어진 여러가지 정신적인 교류를 다루고 있었다. 지난 시간에 읽을 때 얘기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분량은 적지만 "종교 혼합주의와 각양각색 결과" 부분이다. 

지금 현재의 우리가 한국에서 기독교라고 하면 서양에서 온 종교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서양에서 온 종교가 맞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에서 믿고 있는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온전히 전적으로 서양의 것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들어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이미 사람들에게 관습으로 여겨져왔던 것들을 상당 부분 흡수해서 독자적인 면모를 가진, 즉 세계종교이면서도 동시에 특정한 지역의 독자적인 특성들이 덧붙여지고 하나의 세계종교로서의 면모에 덧붙여짐으로써 그 지역만이 가진 독자적인 특색을 갖게된다. 그러면서 세계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면서도 지역적 특색이 있는 종교가 된 것이다. 사실 기독교 하나만 봐도 온전한 우리가 의미에서 이것이 서양의 것이다 또는 온전한 의미에서 이것이 동양의 것이다 또는 온전한 의미에서 이것이 한국 고유의 것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미 제9장에서 다루고 있는 동양과 서양의 교류 이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온전한 의미에서 서양, 온전한 의미에서 동양 이런 것들이라고 하는 것이 이때부터 무의미했고 이분법적으로 획일적으로 뭔가를 이것은 기원이 서양에서 온 것이다, 동양에서 온 것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이 서양에서 기원하는가, 어떤 것이 동양에서 기원하는가, 이것을 찾기보다는 동양과 서양의 문명의 교류가 일어나면서 어떤 혼종이 혼합물이 생겨났는가를 추적해보는 것이 9장 세번째 시간에서 유념해서 읽을 부분이다. 

지금 오늘 부분이 "서양의 과학과 계몽사상", "동양의 계몽사상"이다. "서양의 과학과 계몽사상"은 온전히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서양과 동양의 이분법으로 확실하게 나눠서 생각했던 영역이 있는데 이것을 읽으면서 동양의 정신문명, 서양의 과학문명 이런 식의 이분법은 더이상 통용되지 않고 그런 것을 우리 머릿속에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그런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근대 과학은 서양, 특히 유럽의 '과학 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과학이라는 단어와 혁명이라는 단어, 그런데 이 두 단어 모두 미심쩍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자연을 분류하는 새로운 방식, 즉 관찰에 근거하고 이전까지 비주류였거나 실행하지 않은 방법으로 확증하는 방식", 이게 과학이다. 새로운 방식, 즉 관찰에 근거하고, 관찰 결과인 데이터를 가지고 자연세계를 탐구하는 방식이 근대 유럽의 과학이다. 그런데 이것이 혁명적으로 등장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하룻밤 사이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과학이 다른 무언가를 희생시키는 '혁명'이 일어났던 것도 아니다. 과학이 세속적 학문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거니와 과학자가 성직자를 대체하지도 않았다."  굉장히 중요한 얘기이다.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의 《기독교의 역사》[그리스도교, 역사와 만나다]에서도 이런 부분이 있었다. 과학자가 성직자를 대체하지도 않았고 성직자라고 해서 무조건 과학을 배척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가 있었다. 우리는 17세기 과학혁명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런 글로벌 히스토리를 쓰는 저자들은 '혁명'이라는 단어가 미심쩍다. 그리고 근대 과학이라고 일컫는 것도 과연 그렇게 얼마나 새로운 것이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낡아빠진 오리엔탈리즘 이런 것에 근거한 사람들은 자연과학하면 서양이고 17세기에 혁명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하기 쉬운데 그것은 결코 역사적인'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오늘 이 부분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기억해 둘 필요가 있따. 근대의 자연과학이 발전하기 전에 이미 우리는 14세기,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라고 알려진 시기부터 동서문명의 교류가 굉장히 활발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주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그전부터 숫자 0(영)이라는 것이 인도에서 발명되었고 그것이 아라비아 수학을 거쳐서 서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러면 수학이라고 하는 것이 유럽에서 생겨난 것이냐,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원을 따져서 묻고 해나가야하는데 그러면 과학의 기원이 동양이냐, 인도냐, 그것만도 아니다. 원리적 지식과 실용적 지식의 구분을 생각해보면 실용적 지식은 동양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서양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동서문명의 교류를 통해서 얽히고 설키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여러가지 과학이 있다는 것이다. 그릇된 생각일지는 모르겠으나 원천기술이라고 하는 것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기초과학이 발전해야 모든게 잘 된다는 얘기도 있는데 과연 그것이 맞는 얘기일까. 사실 가까운 나라 일본을 보면 노벨상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이 일본보다 반도체 기술이 앞서가 있다. 일본에서 반도체 기술이 무너지게 된 것은 기술자가 모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플라자 합의 이후로 또는 90년대 이후로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까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으면 그것의 패권이 영원히 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 것도 정치적인 또는 경제적인 또는 한때의 어떤 나라의 운세,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초과학이 발전해야 한다는 말은 대체로 인과관계가 있는 말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 나라의 국력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제9장 430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근대 과학은 서양, 특히 유럽의 '과학 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제9장 430 자연을 분류하는 새로운 방식, 즉 관찰에 근거하고 이전까지 비주류였거나 실행하지 않은 방법으로 확증하는 방식은 하룻밤 사이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제9장 430 과학이 다른 무언가를 희생시키는 '혁명'이 일어났던 것도 아니다. 과학이 세속적 학문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거니와 과학자가 성직자를 대체하지도 않았다.

"근대 과학의 출현은 전 세계적 문화 교류의 원인이자 결과였다." 일단 근대 과학의 출현이 전 세계적 문화 교류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14세기, 15세기부터 동서간의 문명교류가 있었다. 그런 전세계적인 문화 교류가 있었고 그런 문화 교류에 따라서 유럽, 근대 과학은 유럽 팽창의 산물이었는데, 유럽이 팽창하면서 과학이 그 결과적으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즉 16세기 초부터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데이터에 역동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학이 출현했다. 과학적인 사유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16세기 초부터 유럽이 전세계적으로 문화교류를 하면서 그러면서 그것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제 과학이 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하고 또는 실용적인 기술,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의 《대포, 범선, 제국》 제목처럼 대포와 범선을 가지고 전세계를 이렇게 노략질을 하고 다니다 보니 과학이 전세계적인 문화적 교류를 촉진시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면 그런 과학의 성과들을 동양에서도 일정정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섹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동양은 조금 덜 받아들인 게 있다. 그것은 조엘 모키르가 쓴 《성장의 문화》 이런 책들을 통해 나중에 보완해서 읽을 수 있겠다.

제9장 431 근대 과학의 출현은 전 세계적 문화 교류의 원인이자 결과였다.

"17세기 후반은 '고대파'와 '근대파'의 논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던 때였다." 이거는 유럽 지성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얘기다. 고대파는 고대가 좋았다는 것이고, 근대파는 근대가 정말로 우리 인간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시대라고 말하는 것. 고대파와 근대파의 싸움이 있었던 것은 17세기 후반의 논쟁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 다음에 "계몽주의라고 알려진 운동 [...] 18세기에 이성, 과학, 실용성은 교육받은 유럽인 대다수의 가치관을 지배했다." 이게 계몽주의다. 18세기에 이성, 과학, 실용성을 자기 삶의 기본적인 신념체계로 삼은 사람들이 바로 계몽주의자다. 지난 번에 역사고전강의를 해설하면서도 얘기했다. 겹치는 지점들이 있다. 그 다음 433페이지 아래 문단은 근대 과학의 결과를 서술하고 있다. 지리학과 지도제작술의 발전. 그러니까 과학이 발전하면서 항해를 더 자주하게 되고, 그러니까 데이터가 생기고 이게 근거해서 더 정밀한 지도를 만들 수 있게되고, 이런 식의 상호 선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얘기이다. 그 얘기가 437페이지까지 쭉 과학의 발전이 전세계적 문화 교류를 아주 획기적으로 불러일으킨 사례들을 거론하고 있다. 그 다음에 441페이지의 『백과전서: 과학·기술·공예에 관한 이성적 사전』, 백과전서의 원제가 그것이다. 백과전서의 편집장이 디드로이다. 디드로, 중요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디드로는 계몽주의의 '평신도 대사제', 이 운동의 공리주의적 가치관과 세속주의, 당국 비판의 대변인", 여기서 우리가 신경써서 봐야하는 것이 "공리주의적 가치관"이다. 계몽주의와 공리주의 가치관이 연결이 된다. 그리고 공리주의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이익이 된다면 좋다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인 가치판단이 여기에 개입되어 있다.

제9장 432 17세기 후반은 '고대파'와 '근대파'의 논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던 때였다.

제9장 433 계몽주의라고 알려진 운동 [...] 18세기에 이성, 과학, 실용성은 교육받은 유럽인 대다수의 가치관을 지배했다.

제9장 441 디드로는 계몽주의의 '평신도 대사제', 이 운동의 공리주의적 가치관과 세속주의, 당국 비판의 대변인으로 칭송받은 인물이다.

그 다음 442페이지부터 "동양의 계몽사상"인데 분량은 적은데 이 부분은 촘촘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17,18세기 서양 사람들이 동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말해서 계몽주의 시대 사람들이라고 해서 동양을 무조건 무시하고 멸시하고 그런 수준으로까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볼 필요가 있다. "볼테르는 [...] 자신이 혐오하는 기성 종교들의 대안으로 유교를 권했다." 프랑수아 케네는 유교가 전제정을 억제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 사람들은 동양의 관료제에 매료되어 있었다. 특히나 중국의 이국적인 풍물인 자기, 차 이런 것들. 영국의 도자기를 최고상품으로 치는데 사실 중국에서 넘어간 것이고, 홍차를 마시는 것도 그렇다. 이런 정도로 혼합된 문화들이 형성되는 데에는 벌써 17,18세기도 이렇게 혼종 문화들이 생겨났으니까 이런 것들을 보면서 각성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제9장 442 볼테르는 [...] 자신이 혐오하는 기성 종교들의 대안으로 유교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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