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9장(4)

 

2022.01.11 옥스퍼드 세계사 9장(4)

《옥스퍼드 세계사》 9장 4번째 시간이다. "괴물로 들어가기: 혁명의 이념과 나폴레옹의 이념"과 "낭만주의" 두 챕터이다. 프랑스혁명이 제기했던 몇 가지 이념들을 나폴레옹이 더욱더 정교화하고 극단화시켜서 관철시킨 것이 있다. 그러면서 유럽에는 나폴레옹 민법전 이후로는 본격적인 의미에서 근대국가가 된다. 근대국가라는 하나의 기계적 매커니즘을 '괴물'로 이해했다. 이 부분은 분량은 많지는 않은데 설명할 것들이 많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프랑스 혁명으로 사회가 파괴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가 영국보다 먼저 산업 시대의 선두로 나섰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얘기는 유명한 얘기인데 사실 코웃음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토크빌이 생각하기에는 그랬을지는 몰라도, 토크빌의 주장은 그가 꼭 제기하지는 않았더라도 많은 경제사가들이 검증한 바가 있다. 불균등 발전이라는 것이 일어났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지역이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왜 유럽인가라는 질문으로 제기되었다면, 유럽 안에서도 불균등 발전이 일어난다. 동양 안에서도 한반도 지역과 중국, 일본, 그리고 일본 제국으로 해방된 다음에 북한과 남한, 이런 발전의 차이 이런 것들이 계속 연구가 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으로 사회가 파괴되지 않았더라도 프랑스가 영국보다 먼저 산업 시대의 선두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순히 프랑스의 산업 생산력만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제도적인 장치들, 이런 것들이 함께 곁들여져야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다음 문장에 사실 그 이유가 나온다.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린 이 교양 있는 지방 귀족의 시각에서 보면", 바로 그거다. 토크빌은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린 이 교양 있는 지방 귀족"인데 그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프랑스 혁명은 사회로부터 유익한 인력과 필요한 제도를 앗아간 야만적인 폭거였다." 그렇지만 토크빌은 귀족이면서도 원한에 사무쳐있지 않고 아메리카 합중국으로 가서 도대체 이들이 우리에게, 아메리카 합중국이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주었다는 여러가지 확증들이 있다, 이들이 뭣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말인가 라는 연구를 한다. 그게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라는 책으로 나왔다. 견문록처럼 쓴 것인데 오늘날 가장 탁월한 민주정에 관한 연구서가 되었다. 민주정이라고 하는 것이 토크빌이 보기에는 프랑스 귀족들에 비하면 아주 그냥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얘네들이 잘나가는 가에 대해서 연구를 했던 것이다. 

제9장 444 알렉시 드 토크빌은 프랑스 혁명으로 사회가 파괴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가 영국보다 먼저 산업 시대의 선두로 나섰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린 이 교양 있는 지방 귀족의 시각에서 보면, 프랑스 혁명은 사회로부터 유익한 인력과 필요한 제도를 앗아간 야만적인 폭거였다.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관계는 복잡하다." "계몽주의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성급한 가정이다." 그리고 "한편에는 세속성이 뚜렷한 이신론적·자연주의적 계몽주의가 있었다." 이것은 합리주의적 갈래로 논의되는 바이고, 그 다음 "그러나 지중해 연안에는 계몽주의의 다른 갈래", 이는 체사레 베카리아의 저서 《범죄와 형벌》은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다, 9장의 필자인 마누엘 루세나 히랄도는 계몽주의를 두 갈래로 나누어서 본다. 하나가 이신론적·자연주의적 계몽주의, 일반적으로 우리가 계몽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해 보이는 것, 그런데 체사레 베카리아라든가 잠바티스타 비코라든가 이런 사람들도 필자는 계몽주의라고 본다. 본인은 이렇게 나누지 않다. 이들은 교양적 전통 또는 수사학적 전통으로 나누는데 이 사람들의 먼 연원을 따져가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이소크라테스라든가 또는 퀸틸라누스, 폴리비아누스와 같은 수사학자들, 철학으로서 수사학이라고 하는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로 본다. 그래서 계몽주의가 하나 있고 그 계몽주의는 일정 정도 데카르트 이런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온 계보이다. 다시 말해서 합리주의의 극단적인 견해, 그리고 그 합리주의가 철학이라든가 이런 학문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국가와 사회의 제도 속에까지 관철되어야 한다고 보는 계몽주의, 계몽주의는 학문적인 운동만이 아니라 명백하게 사회운동이다, 그런 계몽주의가 하나 있고, 그리고 그것이 공리주의, 철학적 급진주의, 극단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념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그것이 현실의 제도 속으로 관철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급진주의이다. 그런 점에서 본인의 성향은 제도주의자이다. 항상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장치까지 고안해서 해봐야 한다는 쪽에 가까우니까 제도주의자이다. 체사레 베카리아, 잠바티스타 비코 이런 사람들은 계몽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데 필자는 이들도 합리주의적 계몽주의와 또다른 비전을 가진 계몽주의로 본다. 동의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여튼 그 다음에 루소는 합리주의도 아니고 교양주의도 아니고 오히려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를 보면 루소, 칸트 이런 사람들을 낭만주의의 아버지들이라고 얘기한다. 이것도 일견 옳은 부분이 있다. 왜 그러느냐. 루소는 철저하게 합리주의적 계몽주의와는 선을 긋고 있다. 그가 쓴 에밀에 그런 것이 잘 나타나 있는데 오히려 체사레 베카리아, 잠바티스타 비코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는 교양주의에 가깝다. 445페이지를 보면 루소가 있는데 핵심적인 것은 "루소의 추종자들에 형제애를 공유하고 '공동선'이라는 추상적 원리의 인도를 받고 '일반 의지'에 복종하는 시민으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개인들의 총체였다." 이것이 바로 자유인들의 연대라고 하는 것이다. 일반의지에 복종한다는 것, 일반의지는 의지의 총합이 아니라, 루소는 의지의 총합은 전체의지라고 한다, 공동선이라고 하는 이념에 합의하는 것을 일반의지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루소의 사상이 이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 즉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점이 된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 "공동선을 추구하는 '국민'의 도움을 받아 선천적인 선량함을 발현할 수 있는, 동일시한 루소의 사상이 이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 이는 아주 명백하게 보인다. 그러니까 계몽주의가 프랑스 혁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호한 지점이 있는데 루소가 영향을 준 지점은 아주 분명하게 있다. 그리고 루소의 사상 중에서도 《사회계약론》을 읽고 또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을 읽고 그런 사람들은 없었다. 《에밀》이 훨씬 더 읽혔다고,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을 보면 루소의 책 중 무엇이 많이 팔렸나라는 것들이 통계 자료를 인용해가면서 논변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엘리트층 내부의 반발, 온건 단계, 급진 단계, 전체주의적 절정이라는 네 단계를 거쳤다." 인간사회의 방식에 혁명이라고 하는 것이 등장한 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다. "국가 테러리즘"도 446페이지 하단에 나왔다. 이것에 관해서는 휴 고프의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이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공화국이라고 하는 것이, 프랑스 혁명이 계몽주의적 합리주의를 계승했다라고 하는 것의 가장 전형적인 사건은 1794년에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설립해 민간과 군사 공학자의 양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에콜 폴리테크니크, 파리2공과대학이라고 번역이 된다. 이때부터 공학이라고 하는 것이 원래는 공병, 군사적이었는데 민간 토목공사, 토목공학과 이런 구별들이 이때부터 생겼다. 그리고 "코르시카 출신 포병 장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여기서 이 말에서 코르시카는 사실 이탈리아에 가깝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촌놈 중의 촌놈이었던 것이고, 나폴레옹이 포병 장교였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게 된 것이 포병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의 문제였기 때문에 그렇다. 447페이지에 "나폴레옹은 혁명적 이상의 이름으로 대군을 동원했고, 장악한 지역들에서 균일한 행정과 군사적 규율을 강요했다." 균일한 행정이 '괴물'이 아닐까 추측해봤다. "기하학적이고 합리적인 선을 따라 지역 간 경계를 수정하고, 융통성 없는 법률을 적용하고, 교회를 복종시키고, 행정 기구를 수립해 상대에게 굴욕을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선전을 퍼뜨리는 한편 피정복민의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약탈했다." 이집트에 가서 약탈해 온 것이 유명한다. 그리고 나폴레옹 때 바로 정교화약도 이루었다. 어쨌든 이런 것들이 "기하학적이고 합리적인 선을 따라" 평평하게 만들어 가는 그런 행정을 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계몽주의적 합리주의에서 가져온 나폴레옹의 이념과 그 적용, 이것도 나폴레옹의 급진주의이다. 

제9장 444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관계는 복잡하다. 두 용어는 서로 거북하게 양립하던 특징과 사건의 집합들을 포함한다. 계몽주의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성급한 가정이다. 계몽주의의 경우, 한편에는 세속성이 뚜렷한 이신론적·자연주의적 계몽주의가 있었다.

제9장 445 루소의 추종자들에게 사회란 형제애를 공유하고 '공동선'이라는 추상적 원리의 인도를 받고 '일반 의지'에 복종하는 시민으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개인들의 총체였다.

제9장 445 보통사람과 일종의 고결한 야만인 ━ 공동선을 추구하는 '국민'의 도움을 받아 선천적인 선량함을 발현할 수 있는 ━을 동일시한 루소의 사상이 이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

제9장 446 그 과정은 엘리트층 내부의 반발, 온건 단계, 급진 단계, 전체주의적 절정이라는 네 단계를 거쳤다.

제9장 446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설립해 민간과 군사 공학자의 양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제9장 447 나폴레옹은 혁명적 이상의 이름으로 대군을 동원했고, 장악한 지역들에서 균일한 행정과 군사적 규율을 강요했다. 또한 기하학적이고 합리적인 선을 따라 지역 간 경계를 수정하고, 융통성 없는 법률을 적용하고, 교회를 복종시키고, 행정 기구를 수립해 상대에게 굴욕을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선전을 퍼뜨리는 한편 피정복민의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약탈했다.


그 다음 섹션이 "낭만주의"이다. 앞서 교양주의 그러니까 베카리아나 비코나 이런 사람들의 교양주의도 그렇고 지금 낭만주의도 그렇고, 필자가 낭만주의를 규정하는 것도 조금 독특한 지점이 있다. 낭만주의를 우선 "전통과 혁신, 르네상스와 계몽주의가 섞인 새로운 감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계몽주의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낭만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혼합물로서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라는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즉 낭만주의에 대한 핵심적인 물음은 자연에 대한 것이라고 규정을 한다. 그런데 자연이라는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말에서 자연이라는 말을 조금 확장해서 해석해보면 본성에 관한 물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태의 본질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그것을 단순히 계몽주의적으로만 규정할 수 있겠는가, 그게 낭만주의의 물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연 르네상스와 계몽주의가 섞인 감성인가, "감성을 존중하고, 자연에 감응하고, 인간성을 넘어 야생성과 야만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감성" 그리고 "이 감성은 개인의 정서와 창조적 자율성을 고양시킨 예술 및 문학과 관련하여 낭만주의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단 휴머니티, 인간성은 넘어가야 하고 더 나아가서 야생성과 야만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감성까지 갖추어야 한다. 그러니까 인간성도 갖춘 상태에서 자연으로 나아간다. 그러면 르네상스와 계몽주의가 섞인 새로운 감성이라는 것이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가 섞인 새로운 감성", "인간성을 넘어 야생성과 야만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감성" 이것이 "예술 및 문학과 관련하여 낭만주의"가 된다. 즉 낭만주의 예술과 낭만주의 문학은 이런 휴머니티 + 자연에서의 아름다움까지 그러면 완전히 전일적인, 전지구적인 감성이다. 낭만주의에 대해서는 뭔가 규정을 해보려고 하는데 이 책 다르고 저 책 다르고 그렇다. 말을 쓰는 사람들이 나는 이것을 낭만주의라고 하겠다라고 정해놓고 쓰는 것 같다. 아주 명백하게 도이치적 현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니콜라이 하르트만이다.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규정하기를 아주 명백하게 도이치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자연에서 감흥하고 야만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보다는 오히려 초월적이고 우리가 보이지 않은 머나먼 것에 대한 동경이 낭만주의라고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성에 대한 온갖 낙관론과 확신에도 불구하고, 에스파냐의 위대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표현대로 "이성의 잠은 괴물들을 낳는다". 그 괴물들은 정치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신론과 무신론 같은 종교의 변형일 수도 있다. 이른바 산업 혁명과 함께 시작된 기계화 역시 분명한 탈선 현상을 야기했다." 괴물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앞서 "괴물로 들어가기"와는 섹션이 다르기는 한데 이것과 연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낭만주의에 대해서는 규정이 복잡다기하다. 다음 문단을 보면 "낭만주의 시대에 이성은 감정이라는 완충제에 부딪혔고, 자연으로 돌아가려 하고 낭만적 숭고라는 이상을 좇는 사람들에 의해 견제 받았다." 그러면 이게 르네상스와 낭만주의가 섞인 것인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단순하게 이해를 해보자면 이성은 감정과 대립되는 것으로, 감정으로 이성을 절제해보려고 했다는 것이겠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감정이 꽤나 분출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을 열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가정된 차이와 상상된 타자성에 집착하는, '민족' 정신에 대한 숭배나 본질주의적 민족주의에 대한 헌신" 이런 것들이 낭만주의에서 뿜어져 나온 것들이다. 이것이 나중에 도이치 민족주의, 민족사회주의노동자당 그것이 나치이다. "가정된 차이와 상상된 타자성", 민족주의가 고양되는 곳에서는 이런 것들이 등장한다.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정된 차이와 상상된 타자성"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논증하는 책이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이다.  한편으로는 이 시대의 진정한 의미의 교양인, "가정된 차이와 상상된 타자성"에 집착하지 않는 정말 19세기의 코스모폴리탄, 대표적인 사람이 알렌산더 폰 훔볼트이다. 베를린에 훔볼트 대학이 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아주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우리는 훔볼트를 거론할 수 있다.

제9장 450 르네상스 시대를 사로잡았던 질문 ━ 사람들의 행동과 역할을 포함하는 자연이라는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이 계몽주의 시대에도 다시 제기되었다.

제9장 450 19세기 초에 이르러 전통과 혁신, 르네상스와 계몽주의가 섞인 새로운 감성, 나아가 이성의 노예가 되는 데 저항하고, 감성을 존중하고, 자연에 감응하고, 인간성을 넘어 야생성과 야만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감성이 형태를 갖추었다. 이 감성은 개인의 정서와 창조적 자율성을 고양시킨 예술 및 문학과 관련하여 낭만주의라는 이름을 얻었다.

제9장 450 이성에 대한 온갖 낙관론과 확신에도 불구하고, 에스파냐의 위대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표현대로 "이성의 잠은 괴물들을 낳는다". 그 괴물들은 정치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신론과 무신론 같은 종교의 변형일 수도 있다. 이른바 산업 혁명과 함께 시작된 기계화 역시 분명한 탈선 현상을 야기했다.

제9장 450 낭만주의 시대에 이성은 감정이라는 완충제에 부딪혔고, 자연으로 돌아가려 하고 낭만적 숭고라는 이상을 좇는 사람들에 의해 견제 받았다.

제9장 450 가정된 차이와 상상된 타자성에 집착하는, '민족' 정신에 대한 숭배나 본질주의적 민족주의에 대한 헌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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