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10장(1)

 

2022.01.18 옥스퍼드 세계사 10장(1)

《옥스퍼드 세계사》 제10장을 읽겠다. 제10장이면 《옥스퍼드 세계사》를 다 읽어가는 셈이다. 제10장은 제4부의 마지막 부분이고 제4부가 끝나고 나면 「제5부 대가속」, 1815년경부터 2008년경까지니까 제5부가 현대사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사실 《옥스퍼드 세계사》에서 제1주~제5부의 제목은 내용과 그렇게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다. 다시 한번 차례를 보면 「제1부 빙하의 자식들」인데 1장과, 2장이다. 《옥스퍼드 세계사》는 맞춰서 각 파트의 첫번째 장은 지리, 또는 생태, 환경에 대해서 다루고 "제2장 빙하 속 마음: 농업 이전의 예술과 사고"는 지성사와 사회·정치 조직을 묶어서 다룬다. 그때는 사회·정치조직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따로 하나의 챕터로서 논의할 정도의 분량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제2부 점토와 금속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제2부도 "제3장 온난해지는 세계로"는 생태와 지리, 기후에 대해서 다루고 "제4장 농민의 제국들: 농경 국가와 농경 도시의 절정 및 위기"는 지성적인 측면 그리고 사회·정치적인 조직, 넓은 의미의 regime을 다룬다. 그 다음에 제3부, 4부, 5부는 챕터가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와 생태에 대해서 다루고, 그 다음에 지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그 다음에 사회정치 조직에 대해서 다룬다. 그러면서도 각 파트의 장들의 공통적으로, 모든 장들에서 공통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은 동서 문명교류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나의 사건이나 이런 것들을, 사건은 고립되서 일어나지만 넓은 범위의 사태들, 가령 문자의 전파라든자 지적인 흐름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한 군데서 고립적으로 일어난 것도 다루지만 주로 전지구적으로 그런 현상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가 어떤 변형태로 여기저기서 드러났는가 이런 것들을 다룬다. 다시말해서 동서 비교역사, 비교사를 중심으로 한다. 따라서 《옥스퍼드 세계사》를 읽고 나면 시야가 굉장히 넓어지는 건 아주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무래도 일생을 거의 아무리 해외여행을 다닌다고 해도 직업적으로 다니지 않는 한 일생을 한군데서 보내기 마련이고 또 제한된 범위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제한된 생각만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과연 내가 전지구적 공동체의 일원인가 하는 것에 대한 뚜렷한 자각을 가지고 못하고 산다. 그런데 《옥스퍼드 세계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좋은 것 같다. 제국들의 진동을 다루는 「제3부 제국들의 진동」, "제5장 물질생활: 청동기 시대 위기부터 흑사병까지" 이것 역시 지리와 생태, 환경에 관한 것이고, "제6장 지적 전통들: 철학, 과학, 종교, 예술"은 간단히 말하면 플라톤부터 단테까지가 되겠다. 사실은 바로 그것에 이어지는 시기가 르네상스이다. 그 다음에 "제7장 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이다. 그 다음에 제4부에서 "제8장 수렴하는 세계: 경제적·생태적 조우". 9장은 지성사고, 오늘부터 읽기 시작할 10장은 역시 근대세계의 사회적 정치적 조직들, 그리고 전지구적 교류를 다룬다. 재미있는 것은 8,9,10장을 읽으면서 아주 본격적으로 문화적인 혼용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동서의 교류가 빈번해지고 그 다음에 인도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져있던 교역망과 지중해를 중심으로 성장했던 교역망이 이제 대서양까지 확대됨으로써, 태평양은 아직 무대의 중심에 올라오지 못했지만, 전지구적인 교류가 확실하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8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제8장 수렴하는 세계: 경제적·생태적 조우"는 음식 문화라든가 전염병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활발하게 교류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시기에 경제적 생태적 조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 한국 고유의 것이라고 자랑하는 것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고유의 것이라고 해도 제4부 8,9,10장에서 나오는 수렴하는 세계: 경제적·생태적 조우가 없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고추장을 한국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조우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 음식이 된 것이다. 벌써 우리는 우리 고유의 것이라고 지칭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지금보다도 500년도 전부터 전지구적 교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던 것이다라는 것을 머릿속에 담고 있을 필요가 있다. 제10장은 대체로 마지막 챕터이기 때문에 사회적·정치적 조직, 그리고 그러한 것들의 교류를 다루게 된다. "근대 초 세계의 군주, 상인, 용병, 이주민", 인간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가를 보고 있다. 1350년∼1815년 사이쯤에 일어난 사건들. 구체적으로 "서론"이 있고, "군주의 용병의 제국들", 그리고 "궁정, 의료제, 입법부", 구체적인 근대적인 제도들에 대해서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화 접촉과 사회 변화", 흥미로운 내용이 굉장히 많이 있다. 오늘은 "서론"에서 중요한 부분을 짚어보겠다. 

이븐바투타로 얘기가 시작되는데 《이븐 바투타 여행기》로 번역이 되어 있다. "탕헤를 떠나 메카로 향하는 순례 길에 올랐다." 이븐바투타는 순례를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라크와 이란을 거쳐서 다시 남쪽으로 와서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해안의 킬와까지 내려갔다가, 킬와,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에서 킬와에서 도자기 조각들이 발견되었다고 나와있다, 다시 아라비아로 북상하고 육로를 거쳐서 인도까지 갔다가 그 다음에 배를 타고 인도양을, 아라비아해를 가로질러 몰디브와 스리랑카에 도착했고, 뱅골만과 남중국해를 지나 북경까지 갔다. 그리고 20년 하고도 1년 후 모로코로 귀향을 하는데 인도 남부, 페르시아만, 시리아, 이집트를 들러서 페스에 도착했다. 20여년 동안 여행을 하고 또 다시 에스파냐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그것 자체로 재미있다. 이 얘기를 왜 하느냐, 이 시기 1300년대에 벌서 아프리카와 유라시아가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어떤 도시들이 거점 도시이고 어떤 바다가 사람들을 이어주었는가를 보여준다. 이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육지로 연결된 세 대륙을 사람과 상품이 가로지른 세계가 그려진다." 그 다음에 아프리카 동해안, 지중해의 유럽과 아프리카, 항구 도시들이 있고, 그 다음에 바다, 인도양과 지중해,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게 인도양이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가끔씩은 전쟁도 있고 파괴적이기도 했겠지만 "유럽인이 신세계로 세력을 넓혀감에 따라 바나는 죽음과 파괴를 멀리까지 투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건 유례없는 일이다. 중앙아시아 대륙에서 몽골인들이 서쪽으로 침략을 해간 것을 제외하고는 유럽인들이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아라와크족과 타이노족을 괴멸시키고, 인도양으로, 원래 인도양은 여기 나온 것처럼 아시아의 바다의 분주한 교역망이 바로 인도양이다, 유럽인들은 폭력으로 치고들어왔다. 그래서 455페이지에 "유럽에서 온 교양 없는 야심가들"이라고 써놨다. 참 심각하다. 유럽인은 교양 없는 야심가였고, 지금도 유럽 이외의 지역 사람들을 대할 때 교양없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는 분명히 주목을 해 두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배운다고 해도 그들이 유럽 이외의 사람들, 특히 아시아 사람들과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할 때 경멸하는 태도들을 교양 없는 사람들이 깔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기 어렵다. 10장을 읽으면서 이 사람들이 그렇게 되었는가, 그 과정이 무엇인가를, 서론에서도 보면 "서양이 세계의 패권 세력으로 부상하는 과정은 16세기에 대서양 제국들과 교역로들이 처음 확립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19세기 들어서도 한참 후에야 완료"되었는데 한 3~400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에 서양은 새로운 기술과 상업·금융 기관에 힘입어 필적할 수 없는 생산성과 능가할 수 없는 무력을 갖추었다." 그 결과 지금 오만함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전에는, 적어도 지금까지 《옥스퍼드 세계사》를 읽어보면서 가지게 된 뚜렷한 인식은, 특정 지역 사람이 다른 지역 사람을 전반적으로 업신여기고 경멸하고 깔보는 일은 없었다. 딱 이만큼의 시대에 유럽인들에 의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면 유럽인들은 못되 먹은 것이다. 그래서 유럽 중심주의라고 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사실은 역사가들은 이미 포기했다. 457페이지를 보면 "20세기 말에 이르러 역사가들은 유럽 중심주의를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역사를 통찰해보니까 그냥 한 300년 정도 유럽이 반짝 했던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10장의 결론을 보면 "동반구와 서반구의 상이한 사회들을 저마다 독특하고 일시적인 문화로 인식해야만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말해서 동반구에 있는 나라이든 서반구에 있는 나라이든 동양의 나라든 서양의 나라든 어떤 한 나라가 표준인 것이 아니라 각자가 독자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다른 곳보다도 더 우월하고 그런 것은 아니라는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19세기에 서양이 유럽 중심중의를 한참 드높이고 있을 때 생겨난 생각들을 버릴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들은 이미 유럽 중심주의를 포기하기로 합의를 했다. "유럽 중심주의에 따르면 근대 서양의 부상은 근대 초에 이상적인 모델 또는 '기적'이었고 나머지 세계는 그 모델에 순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게 바로 목적으로서의 근대, 근대 목적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이상 유효한 설명 모델이 아니다. "이제 학자들은 서양의 부상을 아시아가 중심에 있는 이야기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난 현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16세기부턱 시작되어서 19세기에 완성된 길어봐야 400년 정도, 인류 역사에서 400년 정도를 가지고 서양이 언제나 우세했다, 중심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다시 쇠락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면 아시아가 다시 부상하면 아시아 중심으로 갈 것인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거쳐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인도양과 아시아 해양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했다. 여기 서론에서 중요한 것, "20세기 말에 이르러 역사가들은 유럽 중심주의를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이제 더 이상 유럽 대 아시아 이런 대결 구도를 가지고 설명하는 논의는 유효한 역사적 설명 모형이 아니라는 것, 꼭 기억두면 좋겠다.

제10장 453 1325년, 이븐바투타는 고향 탕헤를 떠나 메카로 향하는 순례 길에 올랐다.

제10장 454 이븐바투타의 생애는 근대 초에 아프리카━유라시아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보여주는 실례다.

제10장 454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에는 육지로 연결된 세 대륙을 사람과 상품이 가로지른 세계가 그려진다.

제10장 455 유럽인이 신세계로 세력을 넓혀감에 따라 바나는 죽음과 파괴를 멀리까지 투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제10장 457 20세기 말에 이르러 역사가들은 유럽 중심주의를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유럽 중심주의에 따르면 근대 서양의 부상은 근대 초에 이상적인 모델 또는 '기적'이었고 나머지 세계는 그 모델에 순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학자들은 서양의 부상을 아시아가 중심에 있는 이야기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난 현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제10장 458 서양이 세계의 패권 세력으로 부상하는 과정은 16세기에 대서양 제국들과 교역로들이 처음 확립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제10장 459 19세기에 서양은 새로운 기술과 상업·금융 기관에 힘입어 필적할 수 없는 생산성과 능가할 수 없는 무력을 갖추었다.

제10장 497 동반구와 서반구의 상이한 사회들을 저마다 독특하고 일시적인 문화로 인식해야만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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