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10장(2)

 

2022.01.24 옥스퍼드 세계사 10장(2)

《옥스퍼드 세계사》 제10장 2번째 시간이다. 2번째 시간에는 2번쨰 섹션인 "군주와 용병의 제국들", 지금 이 부분은 1350년에서 1815년, 본격적인 의미에서 현대사회가 시작되기 전의 세계, 이를테면 정세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대체로 세계사를 공부를 한다고 하면 이 시기의 유럽은 어떠했는가를 대개 다루고, 1815년이니까 1789년 프랑스혁명 이전이다. 대개 절대왕정 시기만 다루고, 중국사에서는 명청제국시기를 다루고 거의 세계사에서는 무굴제국이 있었다 그 정도. 그 다음에 에스파냐라든가 네덜란드라든가 영제국의 식민지 지배가 어떠했는가를 다루었다. 그런데 지금 459페이지에서 474페이지에서 다루는 부분은 기존에 우리가 세계사 책에서 배웠던 것들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절대왕정 체제, 그리고 그에 이은 근대 제국주의 시대 이런 식으로 단선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당시의 세계 정치 지도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었는가 이런 것들을 잘 다시 재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난번 섹션에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인도양과 아시아 해양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했다." 가장 생산적으로 상업적으로 활발한 사회들이 있는 지역, 경제 중심이 유럽으로 그리고 대서양으로 옯겨갔다. 이것을 섣불리 유럽 중심주의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왜 유럽인가 이런 테제는 더이상 활용되지 않는 적절한 문제설정이 될 수 없는 것임은 아주 분명하다. 그것이 오늘 읽는 부분에서도 아주 뚜렸하다.

제10장 458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인도양과 아시아 해양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했다.

우선 459페이지를 보면 "유럽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멀어졌다." 이것은 예상하고 있었던 것들이다. 우선 유럽사람들이 대서양을 건너서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서 간 곳, 그런데 우리가 식민지를 어떻게 개척해나가고 그러했는가에 대해서는 좀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우리 한국이 일본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경험, 그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대체로 식민지배가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고 섣불리 미루어 짐작하기 쉽다. 그런데 이런 식민지배라고 하는 것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단 이 당시의 식민 지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공부할 때는 식민 지배라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일본제국의 조선 침략과 지배에 관한 일정한 정도의 생각의 방식을 좀 털어버리고 약간 머리를 비운 상태에서, 선행하는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들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럽인 침입자들은 혀를 내두를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아메리카의 자원을 전유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식민지를 착취하는 방식은 굉장히 다양했다는 말이다. 이런 방식들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공부라는 것은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들을 새로운 사실들로 대체해나가고 사유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공부라는 것이 지식을 축적한다는 아주 단순한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유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그런데 에스파냐가 장악한 지역들은 그 지역에 있는 토착민 협력자를 포섭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얘기가 있다. 볼리비아 포토시의 '은의 산', 이것은 세계 경제사를 다루다 보면 아주 빈번히 등장하는 지역이다. 에스파냐가 아메리카 식민을 어떻게 통치했는가에 대한 방식에 대한 얘기가 있다. "다수의 토착민 군장과 공동체"가 에스파냐와 협력해서 식민지배를 도왔다는 얘기가 있다. 

제10장 459 유럽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멀어졌다.

제10장 459 유럽인 침입자들은 혀를 내두를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아메리카의 자원을 전유했다.

제10장 460 특히 에스파냐 군주국에 굴복하기는 했으나 부유하고 기술 사용에 능숙한 안데스와 메소아메리카에서는 협상과 감언이설로 토착민 협력자를 포섭해 도움을 받아야만 제국을 운영할 수 있었다.

462페이지를 보면 탈식민시대에 들어서서 식민지를 제국들이 통치하는 방식에 관한 새로운 연구가 등장하면서 식민지 경제의 착취 방식이 굉장히 다양했다는 것이 점차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영제국이 어떻게 해서 남아시아 지역, 인도아대륙에서 어떻게 통치했는가가 여기에 나와있다. 토착민과의 법적 계약을 통해서 통치를 했다는 얘기들이 있다. "에스파냐,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제국은 모두 비슷하게 토착민과 체결한 법적 계약을 통해 생겨났다." 그리고 식민지의 고유한 정치제도들도 마련했는데 464페이지에 나온다. 임시변통으로 정치적 제도들을 마련했는데 "항구 도시들의 귀족 권력과 의사 봉건적인 궁정백들의 관할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전통에 크게 의존했다." 우리가 흔히 토착 호족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군사적인 세력도 일정한 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드로가 제휴 관계를 통해서 통치 제도들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서 총독부를 세우고 한 처럼 완전한 의미에서의 식민지배를 성취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에스파냐 제국은 자기네들이 식민지를 세운 곳에서 완전히 관료제를 구축하고 법을 제정해서 관료제 법령 국가로 통치했다. 이런 유형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465페이지를 보면 프랑스, 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 이 지역들이 왜 식민지를 잃게 되었는가에 하는 얘기가 중간에 나와있다. 그것은 유럽 대륙에서의 전쟁 때문이다. "1763년 프랑스는 신규 정착민이 부족해 북아메리카에서 지상 제국을 만들려던 시도를 포기했다. 그리고 1802년 아메리카에서는 프랑스의 주요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아이티에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프랑스 정착민을 몰아냈다. 그 무렵 에스파냐 제국과 네덜란드 제국은 유럽 내 전쟁으로 약해지기 시작했고, 전쟁이 계속되면서 결국 허물어졌다. 한편 프랑스와 에스파냐를 동시에 상대하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던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들을 대부분 상실했다." 이게 우리가 잘 아는 미합중국의 등장, 독립전쟁이다. 이렇게 보면 프랑스나 에스파냐나 네덜란드나 영국이나 모두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배를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다. 앞서서 토크빌이 프랑스혁명이 아니었으면 프랑스가 산업혁명에서 앞서갔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것은 토크빌의 망상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꼭 일국 내의 어떤 산업기술의 발전만 가지고는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경제 또는 약탈 자본주의가 선행하고 원자재가 들어올 수 있는 통로들이 마련되어야만 산업혁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프랑스가 식민지에서 결국 실패했다는 것은 프랑스가 영국만큼이나 그런 약탈자본주의를 전지구적 차원에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산업혁명이 과연 이르렀을까 하는 의문을 강력하게 가질수 밖에 없다.

제10장 463 에스파냐,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제국은 모두 비슷하게 토착민과 체결한 법적 계약을 통해 생겨났다.

제10장 464 초기에 제국 건설자들은 중세 지중해 해양 제국들의 전통, 즉 총독과 중앙에서 지정하는 재판소를 통해 항구 도시들의 귀족 권력과 의사 봉건적인 궁정백들의 관할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전통에 크게 의존했다.

제10장 465 1763년 프랑스는 신규 정착민이 부족해 북아메리카에서 지상 제국을 만들려던 시도를 포기했다. 그리고 1802년 아메리카에서는 프랑스의 주요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아이티에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프랑스 정착민을 몰아냈다. 그 무렵 에스파냐 제국과 네덜란드 제국은 유럽 내 전쟁으로 약해지기 시작했고, 전쟁이 계속되면서 결국 허물어졌다. 한편 프랑스와 에스파냐를 동시에 상대하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던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들을 대부분 상실했다.

유럽대륙에서는 이렇게 북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식민지를 상실함에 따라 점차로 유럽 내부에서의 전쟁들이 빈번해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국가체계가 등장한다. 그게 바로 절대왕정 체제 그리고 그에 이은 근대 국민국가가 등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착각을 하기 쉽다. 이때쯤 되면 18세기말쯤 되면 근대 국민국가체제가 전세계적으로 전지국적으로 등장했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것은 유럽에 국한된 얘기이다. 466페이지에 나온 것처럼 "신성 로마 제국은 차츰 와해되었다." 유럽에서는 그렇다. 대륙에서는 제국체제가 점차로 와해되었다. 그런데 현재 지구 인구가 100억인데 38억 정도가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에 많이 산다. 다시말해서 전지구의 인구의 절반 가량이 아시아에 산다. 아시아의 가능성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인구가 많은 것이 좋을 것이 뭐가 있냐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신성 로마 제국은 차츰 와해되었다." 이것은 유럽의 얘기이다. 유럽은 근대 국민국가로 18세기말을 거쳐가면서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이러면서 제국체제가 붕괴된다. 나폴레옹 제국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프랑스 국민국가의 확장판에 불과한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신성 로마 제국이 와해되면서 이제 제국이라고 하는 것을 유럽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유럽은 그러한데 전지구적으로 보면  "정치체의 표준에 가까운 것은 여전히 제국이었다." 이게 중요한 문장이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지구사를 공부하는 글로벌 히스토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18세기말 19세기초, 즉 1815년까지니까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제4부의 시기의 전지구적 정치체의 주류는 바로 제국이었다는 것을 꼭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첫째로 거론되는 제국이 오스만 제국이다. 오스만 제국은 어떤 식으로 성립했는가. 몽골계와 튀르크계의 선조들이 있었고 그 다음에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켜서 로마 제국이라고 하는 그런 정치체제를 흡수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현지에 맞는 독특한 체제를 고안했고 유연하게 그것을 적용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제국을 통일성을 유지하는 궁극적인 원천은 상비군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제위를, 술탄의 자리를 계승하는 방식을 일관성있게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고, 그 다음에 땅은 넓었는데 오스만 제국의 영토 안에 있던 땅들이 바다의 사방이 해협으로 막혀 있어서 지중해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후변화의 압력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빙하기의 기후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제10장 466 신성 로마 제국은 차츰 와해되었다.

제10장 466 정치체의 표준에 가까운 것은 여전히 제국이었다.

제10장 467 오스만은 사실상 제국의 모든 지역 혹은 지방마다 현지에 맞는 독특한 체제를 고안한 덕에 체제를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제10장 467 바다의 사방이 해협으로 가로막힌 탓에 유럽의 해상 제국들이 얻은 부를 공유하지 못했다.

두번째로는 이란에서 등장한 사파비 왕조가 있다.사파비 왕조도 제국을 이루었다. 세번째로는 남인도의 무굴제국이 있다. 무굴제국은 꽤나 오랫동안 강력하게 인도에서 제국으로 군림을 했고 그 유명한 타지마할이 이때 만들어졌다. 그런데 무굴제국도 오스만 제국과 마찬가지로 반란과 내전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막아줄 제위 계승의 규칙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땅을 넓히면 넓힐수록 토착군주들이 제국의 영토 안으로 들어오면 군정 귀족들을 위협하게 되었고 그런 것들이 결국 제국의 통치기반을 약화시키게 된다. 이런 것들이 제국의 역설인 것 같다. 땅을 넓히면 좋은데 그러헥 되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방에서 생겨나니까 기게 또 제국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원인들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무굴제국이 쇠망하던 시점에는 더욱이나 "세계의 직물 공급처였던 인도는 탈산업화하기 시작했고, 영국령 인도가 무굴 제국의 역할을 빼앗은 19세기 중엽까지 해외 시장을 모두 잃어버렸다." 이게 이제 저자는 "어느 정도는 영국 제조업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착취 방법의 결과였다." 즉 이 지점에서 영국 제조업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착취 방법, 즉 영국과 부딪히면서 무굴제국이 무너지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 다음에 아시아에 유목 영역들도 있었고, 인도양에는 오만이 등장했고, 모스크바 공국에 뒤를 이은 러시아 제국도 등장했다. 러시아 제국이 등장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였던 무굴 제국이 영국 제국에 무너지면서 영국이 본격적으로 아시아에서 패권을 주려고 한다. 인도만이 아니라 중국 청나라 말기에 침략하고, 아편 전쟁을 일으키고 두 번에 걸친 중영전쟁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영국이 아시아에서 세력을 넗혀가는 한편으로 유럽의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아시아에서 더이상 패권 세력이 되지 못햇다. 그런데 여기에 영국에 강력하게 대항을 할 수 있었던 곳은 모스크바 공국을 뒤이은 러시아제국이다. "러시아 제국은 아시아에서 출현한 일련의 광대한 육상 제국들 중 하나였으며", 러시아가 이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패권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게 바로 영국제국과 러시아제국의 커다란 싸움, 아주 오래도론 이어지는 커다란 싸움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중앙아시아 이런데서의 Great Game으로 말하는 것이고 1900년대의 러일전쟁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바로 여기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 한반도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러일전쟁이다. 그런 것들에 이어지는 씨앗이 여기에 심어지게 된다.

제10장 470 세계의 직물 공급처였던 인도는 탈산업화하기 시작했고, 영국령 인도가 무굴 제국의 역할을 빼앗은 19세기 중엽까지 해외 시장을 모두 잃어버렸다. ━ 어느 정도는 영국 제조업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착취 방법의 결과였다.

제10장 471 러시아 제국은 아시아에서 출현한 일련의 광대한 육상 제국들 중 하나였으며, 비교적 작고 고립되 농경 정착지들 외부에서는 본질적으로 공물을 징수하는 사업체, 즉 토착민 덫 사냥꾼들에게 모피를 요구하고 강탈하는 사업체였다.

즉 유럽 대륙에서는 해외 식민지를 추구하던 국가들이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서 식민지를 하나씩 상실하고 전쟁에 몰두하던 반면에 영국은 유럽 대륙에 직접 들어가있지 않고 섬이었던 이점이 있었겠다.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여전히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를 상실했다고 하지만 인도 대륙을 장악하고 그에 이어서 두번에 걸친 중영전쟁을 통해서 청나라에서도 패권을 잡으려 하고 일본과도 동맹을 맺어서 러시아와 영국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강력한 패권으로서 다툼을 하게 된다.

우리가 이 시기를 유럽 대륙에만 국한해서 보고 있다가 이렇게 아시아 대륙에서 제국이 어떤 형태로 전개되었다는 볼 수 있었다. 그리고 474페이지에 이 섹션을 마무리하는 얘기가 있는데 "유럽부터 명나라와 청나라까지, 하나의 공통된 가닥이 근대 초 제국들을 연결했다. 이 제국들은 모두 역사가들이 말하는 군사 혁명, 가볍고 다루기 쉬운 화기의 도입을 계기로 일어난 혁명을 겪었다." 군사혁명을 겪었다. 여기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군사혁명을 겪었기 때문에 군대를 유지하는 제도가 발전하게 되고 이제 이것이 상비군으로 이어진다. "상비군은 군주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안겨주었다. 군대는 외부의 적을 격퇴하고 내부의 반란을 진압했다. 군대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돈을 공급하고, 새로운 조직 체계를 마련하고, 행정 기구를 관료제화해야 했다." 그러니까 군사혁명, 상비군, 관료제 이 세가지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서 사용의 도움을 받아 팽창한 관료제 역시 근대 초 제국들의 공통점이었다." 그러니까 관료제라고 하는 것, 근대 국민국가의 특징으로 보기가 쉬운데 그것이 아니고 19세기 초에 이르면 근대 초의 제국들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료제는 군사혁명과 그에 이은 상비군의 파생물로서 등장한다. 굉장히 중요하다. 

제10장 474 유럽부터 명나라와 청나라까지, 하나의 공통된 가닥이 근대 초 제국들을 연결했다. 이 제국들은 모두 역사가들이 말하는 군사 혁명, 가볍고 다루기 쉬운 화기의 도입을 계기로 일어난 혁명을 겪었다.

제10장 474 상비군은 군주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안겨주었다. 군대는 외부의 적을 격퇴하고 내부의 반란을 진압했다. 군대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돈을 공급하고, 새로운 조직 체계를 마련하고, 행정 기구를 관료제화해야 했다. 문서 사용의 도움을 받아 팽창한 관료제 역시 근대 초 제국들의 공통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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