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S. 보이어: 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 ━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 - 10점
폴 S. 보이어 지음, 김종원 옮김/위즈덤하우스

머리말
감사의 말

1장 선사 시대~1763년│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이주
2장 1763년~1789년│독립 전쟁과 헌법 제정
3장 1789년~1850년│새로운 비전, 새로운 위험
4장 1850년~1865년│노예제도와 남북 전쟁
5장 1865년~1900년│산업화와 제국주의적 팽창
6장 1900년~1920년│혁신과 반동
7장 1920년~1945년│강대국의 탄생
8장 1945년~1968년│풍요의 이면
9장 1968년~2011년│계속되는 역사

옮긴이의 말
부록│2011년 이후의 미국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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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

미국사를 저술하는 작업을 시작할 정도로 무모한 사람이 맞닥뜨리는 수많은 도전 가운데, 아마도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신화와 선입견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추상으로 자욱한 구름을 헤쳐나가야 하는 일일 것이다. 때때로 이것들은, 아무런 장식 없는 있는 그대로의 실재가 안갯속으로 사라지게 할 만큼, 너무나 완벽하게 국가의 역사를 뒤덮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인들이 대서양 건너 서쪽에 있는 땅을 발견했던 초기부터, 작기들은 그 땅에 희망, 꿈, 허황된 공상을 투영했다. 이 광대한 대륙은 이미 원주민 수백만 명의 고향이었으며 복잡한 사회들을 품고 있었지만, 유럽인들은 그곳을 매혹적이게도 비어 있으며 가능성이 넘쳐나는 땅이라고 상상했다. 그들은 그야말로 '신세계New World'를 마음에 그렸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카리브해 지역에 상륙하고 나서 24년이 지난 1516년 출간된 책에서,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토머스 모어는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했다. 그는 그곳을 '유토피아utopia'라고 불렀는데, 당시 막 발견된 지금의 브라질 근처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가상 신세계의 사람들은 화합, 협동, 평등의 가치를 중시하고, 재산을 소유하며, 물욕 같은 것을 품지 않았다(아주 멋진 세부 묘사를 보면, 유토피아에서 요강은 금으로 만든다. 그 가치 없는 금속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몇 세기 후, 어마어마한 수의 이민자가 미국으로 밀려들 때, 많은 사람이 편견에 기초한 헛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뉴욕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다. 엠마 라자루스가 1883년 지은 시가 그 기단에 새겨져 있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호흡하기를 열망하는 웅크린 사람들을
북적이는 해안가의 가련한 사람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폭풍우에 시달린, 집 없는 사람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황금의 문곁에서 내가 횃불을 들고 있을터이니!

어떤 이에게는 꿈이 현실이 되었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꿈은 무너지고 쓰라린 실망만 남았다. 대부분 성취와 실패가 뒤섞인 현실이 이내 이상화된 환상을 대체했다. 노예가 되어 강제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수송된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에게는, 그런 환상조차 그들이 이민자로서 겪는 엄혹한 현실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어떤 이는 신세계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콜럼버스는 말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항해(발견)들을 인도하시어, 천년왕국 시대에 관한 성서의 예언들을 실현하셨다'고 확신했다. 훨씬 뒤에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신의 계획이 펼쳐지는 데 미국이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영감을 얻었다. 오늘날에도 미국의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특별한 장소를 계속해서 마음 속에 그리고 있다. 또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다가 타락한 미국이 한때 누렸던 신의 은혜를 박탈당했다고 슬퍼한다.

어느 정도 세속화한 형태로,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사를 자유와 기회 그리고 끝없는 진보의 이야기—다행스럽게도 그보다 은혜를 덜입은 사회들을 훼손한 어둡고 착취적 특성이 없는―로 보는 고도로 선별적 견해를 제시한 역사가와 교과서 저자의 저작으로 스며들었다. 이러한 이기적 해석은 여러 사건을 겪으며 난타당함과 동시에 역사연구에서 초자연주의적 가정을 걸러내려는 노력으로 점차 시들해졌다. 하지만 1980년대 내내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은 유례없이 혜택받은 운명을 누리는 '산 위의 반짝이는 도시'라는 미국의 이미지를 되살려냄으로써 많은 사람을 고무했다.

반면 어떤 이는 미국의 추상적 개념과 의미를 더욱 불길하게 이해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그리고 신식민주의와 경제적 제국주의를 소리 높여 반대하는 사람이 보기에, 미국은 후기 자본주의의 완벽한 본보기로서, 그곳의 회사들은 시장, 값싼 노동, 천연자원을 찾아 온갖 곳에 촉수를 뻗치고 있다. 세계 곳곳의 고유한 풍습과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미국을 천하고 타락한 대중문화의 원천이라고 비난한다. 취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정형화된 생각은 전체 줄거리를 거의 전달하지 못한다. 알라가 정하고 쿠란이 제시한 세계의 정당한 질서라는 이념에 사로잡힌 이슬람 혁명가에게 미국은 그 꿈의 실현을 방해하는 육중한 장애물 즉 거대한 사탄으로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신화, 이상화된 비현실적 관념, 이데올로기적 구조물은 사상사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매혹적일 수 있지만, 선입견이나 비본질적 항목을 털어낸 미국의 실제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방해가 된다(물론 완벽한 객관성이라는 것도 또 하나의 환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가치 있는 목표다. 이 책은 모든 것을 그 안에 꼭 들어맞도록 강제하는 포괄적이고 획일적인 어떤 틀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어느 정도 개괄적 실재들로 이야기 대부분을 구성했다. 그것은 이민, 도시화, 노예제도, 아메리카 대륙 안에서 벌어진 영토 확장, 미국 권력의 전 세계적 투사, 종교의 중심적 역할, 농업 경제에서 산업 경제로 그리고 후기 산업 경제로의 진전 등이다. 이처럼 거대한 주제들의 윤곽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 책은 미국 사회의 다양성, 개별 행위자들의 중요성 그리고 국민의 역사라는 거대한 바탕 위에서 특정 집단들이 활동하는 데 인종, 민족, 성별, 사회계급이 수행한 결정적 역할을 설명한다.

미국사라는 방대한 주제를 다루는 이 짤막한 입문서는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접근이나 과도하게 부정적인 접근을 모두 피한다. 확실히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 민족의 역사에서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미국사의 많은 부분이 섣불리 질책하고 도덕적으로 판단하도록 유혹한다. 광신적 우월주의자, 정치인, 애국심을 부추기는 애국자의 고상한 미사여구와 역사적 실재 사이의 격차는 비웃음과 빈정거림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또 다른 왜곡을 일으킨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판적이지만 균형 있고 적절하게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이 목표였고, 그래서 판단을 내리는 일은 독지에게 맡겼다. 미국사는 어떤 점에서는 독특하지만, 공통의 인간 조건을 공유하는 여러 사회 가운데 한 사회의 이야기일 뿐이다. 즉 세계사라고 하는 엄청난 분량의 책에 포함된, 짧고 완결되지 않은 한 장章이다. 이 조그마한 책이 최종적이거나 확정적이라고 허세 부리지는 않겠다. 이 책은 최선을 다해 미국을 관찰한 결과물이지만, 그 관찰자도 미국이라는 사회의 산물이며 국가의 시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짧은 미국사를 쓰는 일에 착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생략해야 할 것이 많고, 핵심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는 유감스럽게도 피해야만 하며, 개괄적 일반화를 위한 보강 논의는 더 두꺼운 연구서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짧음을 추구하는 것도 나름의 이점이 있다. 간결한 구성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냉정히 판단하게 하고, 이야기의 주요한 맥락에 집중하게 하며, 핵심적인 여러 전환점과 지속적인 주제를 정확히 집어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저자와 함께 흔쾌히 몇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독지에게 공명정대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구성은 명료하고 읽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이 어느 정도라도 이러한 다양한 도전을 잘 완수했기를 바란다.

2012년 1월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1장 선사 시대~1763년│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이주


18 오늘날 미국인은 21세기의 바쁜 생활 리듬에 젖어 있는 탓에, 잠시 숨을 돌리고 자신이 지난 몇천 년간 수많은 사람이 거주하던 땅에 산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볼 여유가 거의 없다. 우리가 (피렌체의 지도 제작자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라고 부르는 대륙에 인간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1만 5,000년 전이다. 처음에는 지금의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로, 배를 타거나 육교를 걸어서 건너왔다. 이주가 계속되고 그 수가 증가하면서, 이 첫 아메리카인들은 남쪽과 동쪽으로 퍼져 나갔고, 아주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맞닥뜨렸다. 그리하여 언어, 사회, 종교, 생계 수단이 다른 독특한 집단들이 서서히 나타나게 되었다.

지금의 뉴멕시코에서는 아나사지조이 푸에블로라고 하는 정착지들을 건설하고, 정교한 기술로 아름다운 보석과 도자기를 만들며, 메마른 토양에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보다 동쪽인 미시시피강과 미주리강이 만나는 카오키아에서는 주요한 문명이 발생했다. 대서야 연안을 따라서는 사냥, 농업, 어업에 종사하는 다른 집단들이 있었다. 그들은 외교 관계를 맺고 가끔 전쟁을 벌이기도 하며 광범위한 무역망을 유지했다. 지금의 뉴욕 주 북부에서는 다섯 개의 거대 부족이 1450년 이후 어느 시점에 연합해 이로쿼이 연맹을 결성했다. 오대호 주변의 서쪽 평원과 중서부의 북부 지역에서는 또 다른 집단들이 자기 지역의 생태 환경에 의존해 농업, 어업, 버팔로 사냥으로 먹고 살았다.

1500년경에 이르면 북아메리카 인구는 700만 명에서 1,000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는 수백만 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일련의 문명(마야 제국, 아스테카 왕국, 계속해서 팽창하던 잉카 제국)이 1,000년 이상 번영을 누렸다.

그때까지 이 문명들은 유럽에 알려지지 않았다. 라이프 에릭손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반도 출신의 모험적인 항해지들이 일찍이 1000년 즈음 아메리카 대륙 북동부 끝자락에 도달해 뉴펀들랜드에 잠시지만 정착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단발적인 접촉을 제외하고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과 유럽인은 서로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곧 변화해 양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었다.

15 세기 말 유럽은 지적 요소와 기술 혁신 그리고 경제적 변화로 들끓었다. 아시아로 가는 더 빠른 무역로를 찾기 위해 포르투갈 항해자들은 아프리카 대륙 끝부분을 돌아 동쪽으로 가는 모험을 단행했다. 어떤 항해자는 훨씬 더 대담한 경로, 즉 대서양을 건너 서쪽으로 가는 길을 생각했다. 이탈리아인 콜럼버스는 스페인 군주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를 설득해 항해를 위한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는 지구의 크기를 잘못 계산한 데다가 광대한 대륙들이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1492년 8월 3일 범선 세 척으로 구성된 소함대를 이끌고 스페인 팔로스에서 아시아를 향해 출발했다. 두달 정도 지난 10월 12일 그는 아시아에 도착하는 대신 지금의 쿠바 앞바다에 있는 어느 섬에 상륙해 산살바도르라고 이름 붙였다. 그곳이 인도 제국이라고 확신한 그는 원주민을 인디안이라고 불렀다. 이 명칭은 그대로 굳어졌다.

경제적 · 정치적 · 종교적 동기가 얽히고설켜 유럽에서 탐험 열기를 부추겼다. 첫 항해 이후 세 번의 항해를 더 한 콜럼버스 자신은 부와 명예에 대한 야심과 인디언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려는 열의에 사로잡혔다. 그는 또한 자신의 항해를 성서의 예언을 실행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는 미국이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 대상이라고 여기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풍조의 초기 사례다. 미지의 세계로 나서는 탐사들에 자금을 지원한 군주들은 영토를 확장하고, 경쟁자를 능가하며, 당대인이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폭풍우The Tempest》에서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라고 묘사한 곳에 매우 많이 있다고 믿은 전설 속의 재물을 얻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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