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 그리스도교 사상사 ━ 파울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 - 10점
폴 틸리히 지음, 송기득 옮김/대한기독교서회

독일어판 엮은이의 머리말
영어판 엮은이의 머리말
옮긴이의 말

머리말: 도그마의 개면

제1장 그리스도교 신학의 예비
제2장 학문으로서의 신학의 시작
제3장 서방의 그리스도교적 사고의 발전
제4장 중세교회
제5장 트리엔트회의로부터 현재까지의 로마 가톨리시즘의 발전
제6장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
제7장 종교개혁 이후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발전

문헌해제

 


41 우리는 이제껏 '카이로스'의 시대에서 그리스 철학의 부정적 측면을 다루어 왔는데, 거기에는 적극적인 요소도 실재한다. 우리는 먼저 플라톤적 전통을 들 수 있다. 초월의 관념 곧 경험적 현실을 초월한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상은 플라톤적 전통에 의해서 그리스도교 신학의 준비를 위해 마련되어진 것이다. 플라톤은 본질 실재, '이데아'(Idea, ousia) 곧 사물의 참된 본질에 관해서 말했다. 동시에 우리는 플라톤에게서 현실 세계를 무가치하게 보는 경향을 발견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후기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물질적인 세계는 본질적인 세계에 비해서 전혀 궁극적 가치를 갖지 않는다. 플라톤은, 『펠레부스』(Philebus)에서━이것은 그의 후기 저작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의 삶의 내적 목표는 될 수 있는 대로 신을 닮으려고 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신'이란 정신적 영역을 지키는 존재다. 이 정신적 · 신적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내적인 '텔로스' (telos, 목적)다. 이 플라톤의 사상온 교부들, 특히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세 교부에 의해 받아들여져서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표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초월 사상이나 삶의 테로스 사상과 함께 세 번째 것은 영혼의 타락에 관한 사상이다. 이것은 영혼이란 본래 그것이 참여하고 있었던 본질적이고 정신적인 영원한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육체라는 감옥에 갇히어 땅 위에 존재하게 되었으나 마침내 영혼은 이 감옥에서 해방되어 물질적 세계를 단계적으로 초월해 간다는 사상이다. 이 사상 역시 교회에 의해 수용되었다. 그런데 이 사상은 단순히 모든 그리스도교적 신비주의자들에게 그치지 않고 많은 교회 교부들에게로 넓혀져 갔다.

플라톤적 전통이 그리스도교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네번째 점은 섭리 사상이다. 섭리 사상은 순전히 그리스도교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은 이미 플라톤의 후기 저작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섭리 사상은 고대 세계에서 운명과 죽음의 불안을 극복하려는 하나의 놀라운 시도였다. 고대 말기에 살았던 인간에게는 우연과 필연━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운명' 이라고 부르지만, 당시엔 튀케(Tyche)와 하이마르메네(Haimamene)라고 하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에게서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에 대한 불안이 매우 위험적인 것이었다. 바울로는 로마서 8 장 ― 여기에는 신약성서 중 가장 위대한 승리의 찬양이 엿보인다―에서 운명의 악마적 세력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역할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것은 플라톤이 그의 섭리 사상에서 미리 언급했던 것이다. 이 사상은 그의 위대한 공헌 중의 하나다. 가장 높은 신에게서 오는 이 섭리 사상은 운명의 충격〔도전〕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길을 예비한 그리스 철학의 다섯 번째 요소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온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신적인 것은 질료(matter) 없는 형상(form) 이며, 그 자체로서 완전한 형상이다. 이 최고의 형상―신이라고 불려진다―이 세계를 움직인다. 그렇지만 그것은 세계를 움직이는 원인으로서가 아니라, 다시 말해서 신은 밖으로부터 힘을 가해서 세계를 인과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모든 것으로 하여금 신에게로 나아가는 사랑에 의해서 스스로 신을 향해 갈 수 있게 함으로써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가장 심오한 사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재에 대해서 명백한 학문적 태도를 가지고 접근했지만 가장 위대한 사랑의 한 체계를 펴낸 사람이었다. 그는 신 — 그는 이것을 최고 형상 또는 순수 현실태(actus purue)라고 불렀다 — 이 세계를 신에게의 사랑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은 그 자체가 최고의 형상과 결합하려는 욕망을 가지며, 좀더 낮은 형상 — 여기에서는 아직도 질료의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을 떨쳐버리려는 욕망을 가진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신 관념은 그 뒤 그리스도교 신학에 뚫고 들어와 그리스도교 신학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61 이제 우리는 이 시대에 생겨난 몇 가지 특별한 교설들을 다루어 보기로 한다. 초기의 그리스도교들이 살고 있었던 이교적 세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유일신론적인 신 관념이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헤르마스의 목자』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없음(無)에서 있음(有)을 이끌어 냄으로써 만유를 창조했던 하나이신 신을 믿으라."(1장 1절) 우리는 여기에는 '없음으로부터의 창조'라는 교설을 발견한다. 비록 우리는 이 교설이 구약성서 안에는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잠정적인 형태로 함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교설은 〔그리스도교에 앞서서〕 성서 중간 시대의 유대 신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초대교회를 이교로부터 분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이 교설이었다. 

이것과 같은 방향에서 강조되었던 것이 이른바 '데스포테스'(despotes) 곧 무제약적인 〔강력한〕 지배자라고 불리운 전능한 신이었다. 클레멘스는 신에 대해서 "오 위대한 데미우르고스 (Demiurgos)이시여"(제1클레멘스 편지 20:11) 라고 부르짖었다. 말하자면, 신을 우주의 위대한 창조자〔건축자〕이며 만유의 지배자〔주〕라고 부르고 있는 셈이다. '없음에서의 창조', '데미우르고스로서의 신' 그리고 '전능한 신'이라는 이 세 가지 개념은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지만〕, 초대교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 세 가지 개념이 그리스도교의 교설을 이교로부터 구별했고, 또 이교로부터 지켰기 때문이다. '없음으로부터의 창조'는 신이 세계를 창조했을 때 거기에는 그 창조에 선행해서 존재하는 어떤 선재적 질료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거기에는 형상에 저항하는 것, 따라서 신플라톤주의적 이교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그것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선재적 질료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물질적 세계는 신의 창조의 소산이어서, 그 때문에 그것은 좋은 것이며, 구원의 실현을 위해서 부정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데미우르고스'라는 말은 플라톤과 영지주의자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최고의 신에게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그보다 낮은 자리에 서 있는 신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최고의 신은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일에서 초월해 있는 존재다. 그는 그러한 일은 그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신〔데미우르고스〕에게 맡겨져 있다. 따라서 창조의 작업〔활동〕에는 신적인 존재가 현 존하지 않는 셈이다. 

63 창조의 주인 신은 〔만물의 지배자로서〕 하나의 구원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관념은 특히 이그나티우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새로운 인간에 관한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20:1) 〔이 말은 그리스도교 메시지에 대한 하나의 훌륭한 요약이다.〕 '오이코노미아'란 말은 집의 관리(=家政)를 의미하지만, 여기에서는 세계에 대한 신의 관계 구조를 나타내기 위해서 씌어졌다. 

331 성서주의의 원리가 관철된 곳에서는, 누가 성서를 해석할 자격을 가지는 것이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트리엔트회의는 이 문제에 대해서 거룩한 로마 교회〔어머니 - 교회〕만이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명확한 대답을 내렸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신학부의 교수단이 이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해석을 내리는 신학부의 교수단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논쟁이 일어날 경우 결단을 내려야 할 어떤 권위도 그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교수단의 권위는 결국 무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권위에 관한 교령은 종교 개혁자들이 바로 공격했던 그 교설을 다시 한번 되풀이한 것이었다. 그것은 교황의 지위를 공격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교황은 비판을 넘어서 있으며, 그 밖의 어떤 권위도, 이를테면 성서까지도 교황에 대치될 수 없다. 왜냐하면 교황만이 성서 해석에 관한 궁극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331 트리엔트회의에서 제시된 죄에 관한 교설은, 종교개혁의 인간 이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 이해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가톨릭의 이해에 따르면, 타락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아니고, 좀더 악한 상태로(in deterius commutatatum) 변화시킨다. 한편 종교 개혁자들은 인간이란 타락에 의해서 그의 자유를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말한 자유란 심리학적으로 이해된 자유가 아니고, 신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전제로 해서 이해된 자유다. 로마 가톨리시즘에 의하면, 이 자유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그저 약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원죄는 세례〔의 행위〕를 통해서 씻어지지만〔용서되지만〕, 정욕(욕망)은 남는다. 그러나 가톨리시즘의 교설에 따르면, 정욕〔욕망〕은 죄에서 유래하고 또 죄로 유혹하지만 〔그 자체를 곧〕 죄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인간이 완전히 타락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자연적 충동까지도 죄라고 보지 않는다. 그 때문에 가톨리시즘은 청교도적이 아니다. 그것이 금욕적인 형태를 취한다고 해도 청교도적인 것은 아니다. 가톨리시즘은 일상생활에서 자유나 즐거움이나 생명력을 억압하지는 않는 표현을, 프로테스탄티즘에 비하면 훨씬 많이 허용한다. 왜냐하면 종교 개혁자들은 정욕〔욕망〕 그 자체를 죄라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332 종교 개혁자들은 죄에 관한 그들의 교설을 또 하나의 전제에서 출발한다. 죄란 곧 불신앙이라는 전제가 그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로마 가톨리시즘은 죄를 불신앙으로서, 신으로부터의 분리로서 이해하지 않고 신의 율법에 위배된 행위로서 이해했다. 이것으로 하여, 죄의 종교적 의미〔이해〕가 덮혀 가리워졌으며, 가톨리시즘과 프로데스탄티즘 사이에 또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트리엔트회의 이래 가톨리시즘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특별한〕 행위라는 관점에서 이해했다. 가톨릭 교인이 사제에게 고해할 적에 그는 사죄를 받아 죄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이해는 가톨리시즘〔이 지배적인 나라〕에서 생동성 있는 삶에의 강한 긍정을 조장하고 있다. 여기에 반(反)해서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신으로부터의 분리가 죄로서 파악되었으며 이 죄에 대해서 낱낱이 죄된 행위〔죄들〕는 종속적〔이차적〕 의미를 가진데 지나지 않기 때문에, 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떤 근본적인 행위 곧 완전한 회개와 인간의 전체적 변화 그리고 신과의 재결합이 필요하다. 이것은 프로테스탄트 신자에게 가톨릭 신자가 져야 할 짐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지운다. 죄에 대한 가톨릭적 태도는 근본적으로 율법주의적이다. 그리고 가톨릭적 태도는 죄를 낱낱의 죄로 나눈다. 프로테스탄트 신자들도 때로는 이런 짓을 하지만, 이럴 경우 그들은 가톨리시즘〔의 사상 계보〕을 따르는 것이지 개혁자들〔의 사상 계보〕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334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sola flde라는 개념만큼 지주 오해받은 개념은 아마 따로 없을 것이다. 이 개념은 가톨릭 신자에 의해서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신자에 의해서도, 신앙자에 대한 용서를 신에게 강요하는 지적 행위로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sola flde라는 말은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이 용서를 받아들이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 밖의 어떠한 태도도 신의 행위들, 다시 말해서 오직 신만의 행위인 은총을 무너뜨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교설 곧 인간이 은총에 대해서 취할 태도는 다만 그 은총을 받아들일 뿐이라는 ― 이것이 sola fide의 의미다 一 교설은, 처음에는 오해를 받았고 다음에는 거절을 당했다. 이것으로 하여 교회의 분열은 회복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두 종교 사이에는 이미 어떠한 화해도 불가능했다. 다시 말해서 은총의 행위에서 오로지 신만이 그 은총을 주는 분이고 인간은 다만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종교와, 우리는 은총을 위해 협력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또한 신앙을, 있을 수도 있고 있지 않을 수도 있는 어떤 지적 승인으로 이해하고 있는 종교 사이에는 화해란 있을 수 없다. 이 점에 관한 〔트리엔트〕회의의 저주 선언은 거의 sola fide의 개념을 오해한 데 근거하고 있다.

336 성례전 없이는 구원이란 없다. 성례전은 구원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프로테스탄트의 경우처럼 단순히 믿음을 돋우는 힘 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례전에 내재한 숨은 힘은 은총에 저항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세례, 견신례, 사제의 서품은 사라지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이것 또한 종교개혁에 맞선 〔또 하나의〕 도그마〔진술〕였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전생애에 걸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다. 이러한 교설의 결과 중세에서는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이단에 관한 법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 법은 이교의 신자에게도 〔유대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다른 종교에 속했던 사람들에게도〕 제한을 두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이단으로서 박해를 당하지 않았다. 사제의 서품도 이와 같은 charater indelebilis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를테면 파문을 당하고 옥중에 있는 사제도 결혼식을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은 그 당시 드문 일은 아니었
다. 그 사제 안에 있는 성례전적인 힘은 파문당한 사람이라는 그의 개인적 결함보다는 더 세다. 이러한 사상은 만인사제라고 하는 프로테스탄트적인 사상에 반대된 것이었다. 가톨릭적 교설에 따르면, 설교를 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는 힘을 가진 사람은 모두가 아니고, 다만 서품(곧 성례전적인 힘)을 받은 사람에게만 국한된다. 이 힘은 성례전 의식의 형식에까지 미친다. 따라서 사제나 사교(司敎)도 죄를 범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변경할 수도 없고, 〔그로부터 밀려날 수도 없다.〕 성례전의 힘은 교회의 현실〔행동〕 안에 있는 그 원천으로부터 의례 형식 안으로 직접 들어간다. 따라서 어떠한 자의도 배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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