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보봉: 예수의 마지막 날들 ━ 십자가 사건의 역사적 재구성

 

예수의 마지막 날들 - 10점
프랑수아 보봉 지음, 김선용 옮김/비아

서문
초판 서문
서론

1. 자료
2. 연구의 방법론적 출발점
3. 사건의 전개
4. 시간과 장소
결론

부록
루가 복음서 22:1-24:53
베드로 복음서
참고문헌
프랑수아 보봉 저서 목록

 


서문

9 이 책은 수난 사건에 대해 역사적 관점을 취하고 있으나, 해당 주제의 종교적 차원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수 세기에 걸친 그리스도교인과 유대인의 격론은 복음서에 들어 있는 수난 이야기를 먹고 자랐습니다. 신약성서의 반反유대주의라는 문제는 이러한 긴장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지요. 그러나 이 책의 연구 주제가 언제나 첨예한 논쟁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제 열정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실은 제가 좀 더 정직하고 예리하게 탐구할 수 있도록 자극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되새겨 둡시다. 예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래아(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그는 강한 반발을 낳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둘러싸고 일어난 긴장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1세기 후반까지 유대교 내부에서 일어난 운동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대 고대사를 쓴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그들은 새로운 "이단"heresy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많은 유대인이 그러했듯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인들을 싫어하는 로마인들의 보호와 지지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루가 복음서(누가복음)와 같은 많은 그리스도교 자료가 예수의 심문과 죽음에 관련된 빌라도의 책임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는 점을 설명해줍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향성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로마의 처벌인 십자가형의 기억을 지우려 하지 않았습니다(모세의 율법에 부합하는 처벌로 십자가형을 대체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본 연구에서는 산헤드린의 예수 기소가 지닌 종교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도 다루려 합니다. 당시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기에 당시 유대 지도자들을 부정직하다거나 위선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유대인들이 하느님을 죽였다는 생각이 그리스도교인들의 의식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희망합니다. 아직은 희망 사항일 뿐이지만 말이지요. 인간의 죄과가 세대를 걸쳐 전해져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신포도를 마구 먹었기 때문에 그 자녀들의 치아가 상해야 한다는 생각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누가 21세기 로마인들을 향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에 대한 책임을 묻겠습니까? 현대 프랑스인이나 영국인에게 수백 년 전 잔다르크 재판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예수의 죽음도 지나간 시간에 속한 사건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 보아야 합니다.

 

초판 서문

17 이 작은 책은 어떤 학문적 야심이 있는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의 의도는 요제프 블린츨러, 폴 윈터, 피에르 베누아가 쓴 고전적인 저술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책을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썼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눈에 맞춘다 해도 비평적인 접근을 내려놓지는 않았지요. 대중은 역사가들과 주석가들이 어떤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망설이는지를 알 자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지점에서 논쟁들이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그 가운데 제 나름의 결론을 제시하려 했습니다. 제 주요 관심사는 방법론입니다. 예수의 마지막 날들을 다룬 많은 책은 (상당히 학문적인 책조차) 방법론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부주의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일차적으로 현존하는 자료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연구의 적절한 출발점을 선택하고,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개요를 명료하게 설명하는 데 주의를 기울입니다. 본 연구는 역사학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결론이 신학적 의미를 결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최근 학계는 역사에, 그리고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에 계시의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의 가치를 재발견했습니다. 예수 수난에 대한 역사적 해명의 의의는 오직 신학적 기획에 기여하는 데 있습니다.

 

서론

21 부활이라는 빛으로 이해된 예수의 죽음은 오늘날까지도 서구 문명을 특징짓는 두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교와 반유대주의지요. 골고다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대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다면 유대인에 대한 미움이 그토록 증폭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예수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예수의 수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원이기예 신학자들은 예수의 수난 사건에 특별 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좋은 저술은 셀 수없이 많지만, 결정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주제에 관한 연구를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지요. 첫째, 현존하는 자료들이 주의 깊은 분석을 필요로 합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 당시 유대인 사회 내 처벌 절차는 물론 로마 속주의 법에 대해서도 단편적이고 불확실한 지식만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나자렛 예수)의 행동과 의도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교 학자들과 유대인 학자들이 이 주제를 연구할 때 종종 객관성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이 중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마지막 장애물입니다. 오랫동안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서는 예수의 수난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형성되었습니다. 진리를 알아보지 못한 유대인들이 죄 없는 하느님의 아들을 신성모독죄로 고발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생각 말이지요 이러한 역사의 재구성 때문에 예수를 정죄한 이들, 즉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교회 안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학자들은 '주님'의 죽음을 역사적으로 분석할 때 이러한 편견을 떨쳐버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편 유대인 학자들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간에 예수의 죽음을 다루며 그 책임을 행정 장관 빌라도에게 전가하곤 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종려주일부터 부활주일까지 예루살렘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재구성해보려 합니다. 먼저, 사건 자체와 사건을 기록한 첫 번째 자료들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현존하는 자료들을 살펴보고 평가할 것입니다. 이때 해석이라는 행위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인 과정이라는 점도 고려할 것입니다. 예수의 수난과 관련해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된 이들, 목격지들이 먼저 해석을 했고 교회 구성원들은 앞선 해석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며 이를 또다시 해석했습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순전한사실만 추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건을 기술하는 매개인 언어를 통해서만 사건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건에 대한 증언은 사건에 대한 특정 이해를 따라 재구성됩니다. 처음에 이 과정은 다양한 해석을 산출하나 시간이 흐르며 권위를 지닌 특정 해석자들이 이 다양한 해석을 단일한 해석으로 축소합니다. 그렇기에 역사가가 역사를 서술할 때는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담은 자료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사건의 전개

77 예수가 메시아 행세를 하고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몇 가지 물음이 생깁니다. 빌라도는 이러한 혐의들을 어떻게 확신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혐의 제소는 실제로 정당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고 예수 생애 마지막 주간에 실제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의 의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의 의도를 가늠할 수 있는 열쇠는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했다는 그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가르침은 웅장한 종교적 메시지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시선을 의식해 세상과 거리를 두고 광야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에세네파와 구별됩니다. 에세네파와 달리 예수는 갈릴래아 지방의 길과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사람들에게 이 땅을 통치하실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웠습니다. 예수는 가르침을 전하며 구원의 팔을 뻗으시는 주님이 그들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셨는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 메시지와 그가 행한 기적들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바리사이인(바리새인)들은 불편해했고, 사두가이인(사두개인)들은 충격을 받았지요. 여느 예언자들이 전한 메시지, 종말론적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설교에도 윤리적 요소가 있었습니다. 선생으로서 예수는 자유와 책임의 윤리를 가르쳤고, 무엇보다도 이웃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인격의 헌신을 강조하는 그의 메시지는 당시 사회 관습을 뒤흔들었습니다. 예수는개인의 자발적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하느님과 이웃에 헌신하는 마음을 요구한다고 선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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