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몽유병자들(7) ━ 독특한 정치체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2022.07.18 몽유병자들(7) ━ 독특한 정치체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지난 번까지 제1장을 읽었다. 오늘은 2장 특성 없는 제국을 읽으려고 한다. 2장 특성 없는 제국의 제목은 로베르트 무질이라고 하는, 시인이기도 하고, 전간기에 나온 작품인데 《특성 없는 남자 Der Mann Ohne Eigenschaften》라는 제목을 가져다 쓴 것이다.  특성 없는 제국이라고는 하지만, 문학적 표현을 가져다가 썼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특성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 특성이 있다. 사실 철학전공자들은 역사적으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깊이있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존 로크의 《통치론》을 읽을 때도 철학전공자들은 존 로크가 이것을 왜 썼지, 그 당시 역사적 상황은 어떠했지, 그 역사적 상황 속에서 로크가 내놓은 해결책이겠지 이런 식으로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나온 해결책이라고 하는 것은 그 역사적 상황이 해소되면 그 해결책은 후대 사람들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면 철학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역사적 상황 속에 나온 것들을 탐구하지는 않는다. 보편적으로 적용할 만한 것들을 탐구하는데 저는 그런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나온 해결들, 그런 해결책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냈는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편적인 모형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 그래서 일정한 정도는 이른바 맥락주의contextualism적인 텍스트 읽기를 하는데, 이를 통해서 보편적인 사유모형을, 이른바 철학적 사유모형을 해체하는데 목표가 아니라 그런 맥락주의적인 텍스트 읽기를 통해서 그들이 만들어 낸 모형을 지금 적용하는데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런 모형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내는가, 역사적 상황을 어떤 식으로 읽어내는가를 찾아내서 역사적 상황을 읽어내는 방식을 터득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뭔가를 모형을 만들어 내는데 관심이 있다. 그렇게 보면 굳이 이름을 붙여본다면 역사적 보편적, 말이 안되는 것, 역사적인 것은 항상 우발적이고 임시적인 것인데, 그런 서로 모순되는 것을 생각한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행위자들이 어떤 식으로 대체해 나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목표다.

2장 특성 없는 제국에서 갈등과 평형 부분은 따로 독서카드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갈등과 평형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라고 하는 독특한 정치체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일단 앞에서 우리가 여러차례 강조했듯이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라는 심성지도였다. 이 당시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 즉 20세기가 들어오는 이 전환기에 유럽대륙에서 가장 강력하게 대두되었던 하나의 심성구조가 무엇인가, 바로 민족주의이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거의 닫혀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땅덩어리에서, 한반도라는 땅덩어리, 닫혀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영토 안에서 대체로 이웃이 별로 달라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민족주의라는 것은 그냥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다. 민족 간의 갈등을 모르고 살았다.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로 천년 정도를, 676년이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그러면 1592년이 임진왜란이니 천 년 넘게 민족주의라는 말을 굳이 붙일 필요가 없는 땅덩어리에서 살았기 때문에 왜 유럽에서는 민족주의가 문제야 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이라는 지역에서 베스트팔렌조약 이후로 30년전쟁이 끝나고 나서 1600년대이다. 그게 계속해서 단일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럽이라는 나라는 단일한 민족이 단일한 국가를 만드는, 이른바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라는 것이 성취되지 못한 상태로 1800년대 말까지 오게 된다. 그것을 성취한 나라는 프랑스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는 국민국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잉글랜드 내전과 관련이 있고 그런데 어쨌든 프랑스가 국민국가의 모범이기는 한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들어오면서부터 급속도로 물살을 타게 된다. 그게 바로 유럽에서 민족국가라고 하는 것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에르네스트 르낭이 쓴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1882년에 쓰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라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발칸 반도라고 하는 곳에서 터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그것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심각해 보이지만 사실 유럽은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라고 하는 거대한 추세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그게 가능한 나라들은 그것을 성취했고, 그것을 성취하고는 싶은데 주변 강대국이 옥죄고 있는 나라에서는 굉장히 강력하게 그것을 성취하려는 열망이 있었겠다. 


그런 열망이 바로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으로 전투적으로 급진적으로 불타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서 130페이지에 나와있는 것처럼 "1859년 솔페리노에서 프랑스-피에몬테 동맹군은 10만 병력의 오스트리아군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신생 이탈리아 민족국가 창건의 길을 열었다." 이런 문장이 있다. 바로 1859년에 이탈리아 민족국가 창건의 길을 열렸던 것이다. 그러니가 오늘날 현대의 이탈리아가 그냥 말하기 쉽게 단일 국가가 되기 시작한 것은 1859년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떠했는가. 기준 연대인 1800년에 정조가 죽었다. 그러면 1800년에 우리나라는 어떠했는가. 민족국가 창건의 길을 열었는가. 아니다. 우리는 676년에 신라 통일 이후로는 계속 민족국가였다. 그러니까 천 년도 더 된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민족국가라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유럽 사람들은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이 아직도 유럽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 다음에 " 1866년 쾨니히그레츠에서 프로이센군은 24만의 오스트리아군을 대파하여 신생 독일 민족국가에서 합스부르크제국을 몰아냈다." 원래 신성로마제국이던 곳이다. 합스부르크제국이 신성로마제국을 계속 챙겼다. 그러니까 그곳은 게르만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1866년에 24만의 오스트리아군을 대파하여 신생 독일 민족국가 창건의 길을 연 것이다. 그러면 1866년부터 프로이센이라고 하는 나라가 민족국가로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이 아주 유독 새삼스럽게 유럽에서 새롭게 등장한 사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탈리아도 그렇게 프로이센도 그렇고 이때 유럽은 합스부르크 제국은 해체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이 정말 분출하고 있었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발칸 지역은 왜 민족주의가 더욱 강하게 분출되었는가. 발칸은 일단 주변에 오스트리아 제국이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발칸은 슬라브족이다. 그러니까 러시아 제국과도 관계가 있다. 러시아 제국이 자기네 나라의 패권을 그쪽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오스트리아는 적대국은 아니었지만 앞서 본 것처럼 밀란 국왕은 오스트리아와 사이좋게 지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는 적대국은 아니지만 적대감을 부추긴 나라가 있다. 그 나라가 바로 러시아 제국이다. 러시아 제국이 약소 슬라브 민족의 말하자면 보호자로 나섰던 것이다. 그런 것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가 범슬라브주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해서 발칸 반도에 슬라브계 민족들과 자연스럽게 후견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이때 슬슬 세력이 몰락했기 때문에 이 지배에서 벗어나서 러시아 제국의 범슬라브 민족주의의 후원을 받아서 민족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들에서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발칸 반도의 여러나라들의 민족주의라는 것이 새삼스럽고 그 발칸 반도에 있는 나라들만의 독특한 특성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다시말해서 이때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러시아의 범슬라브 민족주의라는 것이 있고, 그 다음에 이탈리아의 민족국가, 신생 독일 민족국가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그러니 이때 유일하게 민족국가를 내세우지 않은 나라는 바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은 그 당시 유럽에서는 아주 독특한 정치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심각하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안에, 오스트리아는 조금 괜찮은데 헝가리가 심난한게, 131페이지를 보면 아주 강경한 마자르 민족주의자들이 있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안에는 제국인 것 같은데 그 안에 아주 강력한 민족주의자가 있고, 그 다음에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했다고 말했었는데, 거기에는 또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이 있다. 그러니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은 아주 골치아픈 상황에 처해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그러면 굳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 대해서 카드를 한 장 쓴다고 하면 131페이지 독특한 정치체라는 표현이 있다. 


독특한 정치체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1. 주변에 이탈리아 민족국가, 신생 독일 민족국가의 등장
2. 내중적으로는 강경한 마자르 민족주의자가 있었다.
3. 헝가리 정부는 공격적인 '마자르화' 캠페인을 추진했고, 민족주의 정치가 빚어내는 마찰이 두드러졌다.
4. 제국의 11개 공식민족, 1887~1913년에 '산업혁명' 또는 자립의 성장을 경험했다
5.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는 굉장히 효율적이었다는 것, 이런 정치체의 가장 큰 위협은 유럽 여러 지역에서 분출하기 시작한 초민족주의



제2장 130 1859년 솔페리노에서 프랑스-피에몬테 동맹군은 10만 병력의 오스트리아군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신생 이탈리아 민족국가 창건의 길을 열었다.

제2장 130 1866년 쾨니히그레츠에서 프로이센군은 24만의 오스트리아군을 대파하여 신생 독일 민족국가에서 합스부르크제국을 몰아냈다.

제2장 132 헝가리 정부는 공격적인 '마자르화' 캠페인을 추진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안쪽에는 그렇지 않았다. 133페이지를 보면 "치스라이타니엔에서는 잇단 행정부들이 소수민족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 체제를 끊임없이 손보았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쪽은 말그대로 제국의 면모를 계속해서 갖추려고 했었다. 게다가 132쪽을 보면 "제국의 11개 공식민족"이 있다. 아주 독특한 정치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136페이지를 보면 "합스부르크 제국은 전전 마지막 10년 동안 현저한 경제성장과 그에 상응하는 전반적인 번영을 경험했다." 그리고 "1887~1913년에 '산업혁명' 또는 자립의 성장을 경험했다"는 얘기도 있다. 독특한 정치체이면서 동시에 꽤나 성장도 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인데 139페이지를 보면 "대다수 소수집단 활동가들은 합스부르크 국가의 집단 안보 체제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 이 안에 자잘한 소수민족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들이 민족국가의 기치를 내걸고 독립을 했다고 생각해보면, 그 안에 11개의 공식민족이 있다. 그들이 합스부르크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했다고 해보자. 독일인, 헝가리인,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루마니아인, 루테니아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이렇게 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인이나 루마니아인이나 세르비아인들이 거기서 독립을 했다고 하자. 그러면 새로운 민족독립국을 수립하는 것은 문제를 해소하기 보다는 문제를 일으키는 길이었겠다. 왜 그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가. 가령 여기에 나온 것처럼 오스트리아 제국 안에 있는 어떤 특정한 민족이, 루마니아 민족이 독립을 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오스트리아 제국 안에서 독립을 했으면 그 오스트리아 제국 바깥에 있는 루마니아라고 하는 나라와 어떻게 관계를 맺으려고 할 것인가. 합병을 하려고 하겠다. 그러면 오스트리아 제국 안에서 또 독립을 한 다른 나라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리고 외부에 루마니아가 개입을 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서 그 안에 민족들이 외부에 같은 민족의 나라가 공식적으로 있다고 하면 여기서 아주 심각하게 초민족주의가 발생해서 말그대로 난리가 나는 것이다. 154페이지르 보면 "대외 문제와 대내 문제의 상호 침투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제국의 국경 밖에 독립적인 '모국'이 존재하는 소수집단들 사이에는 명백한 이유로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가 뒤얽힐 가능성이 다분했다." 독특한 정치체로서 오스트리아를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라는 아주 독특한 인물이다. 사실 이 사람이 1916년에 죽으면서 군주국이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특징들, 군주의 개인의 역량이 군주국의 정치적인 것을 유지하는 힘, 그런 것도 있을텐데, 그것이 현저한 영향력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한번 생각해 볼만한 지점이라고 하겠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첫번째 섹션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가 굉장히 효율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정치체의 가장 큰 위협은 유럽 여러 지역에서 분출하기 시작한 초민족주의, 그리고 그 초민족주의가 유독 발칸 지역에서는 호전적인 성격을 띠고 분출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되겠다.

제2장 132 제국의 11개 공식민족(독일인, 헝가리인,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루마니아인, 루테니아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이 민족의 권리를 놓고 벌인 투쟁은 개전을 앞둔 수십 년 동안 이중군주국을 점점 더 좌우했다.

제2장 133 그에 반해 치스라이타니엔에서는 잇단 행정부들이 소수민족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 체제를 끊임없이 손보았다.

제2장 136 합스부르크 제국은 전전 마지막 10년 동안 현저한 경제성장과 그에 상응하는 전반적인 번영을 경험했다.

제2장 136 경제사가들은 이중군주국 전체가 1887~1913년에 '산업혁명' 또는 자립의 성장을 경험했다는 데 동의한다.

제2장 139 대다수 소수집단 활동가들은 합스부르크 국가의 집단 안보 체제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

제2장 154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발칸 정책에서 한 가지 난점은 대외 문제와 대내 문제의 상호 침투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제국의 국경 밖에 독립적인 '모국'이 존재하는 소수집단들 사이에는 명백한 이유로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가 뒤얽힐 가능성이 다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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