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프리트 뮌클러: 파편화한 전쟁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2. 9. 26.
파편화한 전쟁 -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장춘익 외 옮김/곰출판 |
옮긴이의 말
서론
제1부 20세기의 대전쟁들
1. 1914년 여름 - 세계사적 분기점
2. 폭력의 격화 - 1914년 7월위기에서 ‘혁명 전염’의 정치로
3. 신화적 희생자와 현실의 사망자
4. 제1차 세계대전과 부르주아 세계의 종말
5. 제2차 세계대전 - 세계질서를 둘러싼 전쟁
제2부 탈영웅적 사회와 전사 에토스
6. 영웅, 승자, 질서 설립자
7. 영웅적 사회와 탈영웅적 사회
8. 새로운 전투체계와 전쟁 윤리
9. 새로운 전쟁에서 무엇이 새로운가?
10. 이미지 전쟁 - 비대칭적 전쟁에서 미디어의 역할
제3부 고전적 지정학, 새로운 공간 관념, 하이브리드 전쟁
11. 지정학적 사고의 효용과 단점
12. 우크라이나와 레반트
13. 21세기의 ‘공간’
14. 과거의 현재
감사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서론
17 대규모 전쟁에 대한 불안이 다시 유럽을 엄습하고 있다. 어느덧 수년을 끌고 있는 시리아내전, 그리고 레반트 지역에서 ‘이슬람국가 IS' 무장집단이 때때로 거두는 예상 외의 성공이 전부가 아니다. 이러한 불안의 더 중요한 원인은, 2014년 벽두에 우크라이나가 혁명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종속관계를 벗어난 이후 러시아가 이 국가에 가한 공격적 대응이다. 러시아가 문제로 떠오르는 순간, 동서 갈등의 기억과 위협받고 있다는 과거의 감정이 환기된다. 이것이 훨씬 더 유혈 낭자 하며 잔인한 시리아내전과 우크라이나 사태 사이의 차이다. 국제법을 위반한(201 4 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그리고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분리주의자들이 돈바스에서 벌이는 전쟁은 유럽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확신을 크게 약화시켰다 아무튼 유럽에서 평화의 배당금을 맘껏 누리던 20여 년 넘는 시기는 일단 끝났으며, 그런 호사스러운 시기가 도대체 다시 올지 여부는 아무도 말하기 어려워졌다.
안보정치의 태평기가 끝나면서, 바로 얼마 전까지도 시효가 지난 것 같았던 정치 이론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강대국 간의 경쟁 이론, 강대국들의 권력투사 능력 모델, 그에 더해 영향권 관념과 지정학 개념이 그런 것들이다 약술한 우려 및 불안들과 더불어 무엇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료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20세기가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몇몇 역사가들이 생각하듯이, 20세기가 실제로 '단기 20세기'였는지 즉 1914년 시작되어 1989~1990년에 마감된 시기로 볼 수 있는지가 불확실해졌다. 동서 대립의 종료와 더불어 유럽에 믿을 만한 평화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제 유럽은 그 주변부에서 중심을 향해 폭력이 천천히 침식해 들어가는 구도에 빠져드는 중인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전쟁〔돈바스전쟁〕에서 비롯된 염려가 이러한 우려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믿을 만한평화의 시대가 올 거라는, 무너져버린 이 기대는 상당히 유럽 중심적인 세계 이해에 근거하고 있었다. 1989~199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는 결코 전쟁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글로벌한 맥락에서 숫자상으로 전쟁은 한동안 더 증가했으며, 종종 지나간 동서 대리전쟁들에 견주어 더 격렬했다. 르완다나 동콩고〔콩고민주공화국, 옛 자이르〕의 대학살을 전쟁으로 본다면 더욱 그렇다. 르완다의 인종 학살은 가장 끔찍했던 전쟁들보다 그 폭력의 정도가 더 심했다. 450만 명이 살상된 동콩고의 갈등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대의 희생자를 낳은 대립이다. 소련군이 힌두쿠시 지역에서 철수하기까지 이어졌던 아프가니스탄전쟁도 많은 냉전의 대리전쟁 중 하나였는데, 그 역시 1989~1990년에 실제로 종료되지 못했다. 전쟁은 달라진 조건하에서 계속되었다. 한때 독일도 이 전쟁에 참가했고, 그러면서 독일의 병력은 구조적으로 심대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연방군 병사들의 피격 직후 흥분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독일 국내에서 제대로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아프가니스탄이 지리적으로 독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군대를 철수한다면 문제는 '우리로서는' 해결된 것이라는 견해가 팽배했다. 당시 국방장관페터 슈트루크가 말했듯이, 독일의 방어가 힌두쿠시에서도 수행된다는 것을 사실 아무도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전 세계의 갈등에서 서방이 단호하게 몸을 빼면 문제가 차차 저절로 해결될 거라는 암묵적인 생각이 있었다.
거의 모든 전쟁이 미국의 개입정책이 낳은 결과라는 생각은, 개입이 아니라 몸을 빼고 기다리는 것이 세계 평화의 열쇠라는 세계관의 또 다른 급진적 형태다. 이러한 생각에 깔려 있는 암묵적 전제는 어디나 사람들은 평화를 뚜렷이 선호하며, 미국이 온통 간섭하고 다니지 않으면 기존의 갈등들이 평화롭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전쟁들에 대해 정치적 입장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것과는 무관하게, 이런 견해는 탈영웅적 사회에서 팽배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탈영웅적 사회는 자신의 이 같은 성향을 일반화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태도로 간주한다. 헤겔을 빌려 표현해보자면 세계를 탈영웅적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세계도 평화롭게 미소로 응수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세계를 바라보는 기본 태도가 지독히 적대적인 사람에게는 세계가 전쟁과 갈등으로 넘쳐나기 때문에, 그것들을 종식시키고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서슴지 말고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22 유럽 주변부 전쟁들을 역사적 지식과 함께 관찰해보면 유고슬라비아 해체전쟁들, 체첸에서 그루지야〔자금의 조지아공화국〕에 이르는 캅바스 지역의 전쟁들, 그리고 최근의 우크라이나 동부의 전쟁을 이어주는 공통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전쟁들은 모두 제국 이후의 공간 즉 중유럽과 동유럽의 대제국인 합스부르크제국과 러시아 차르제국의 붕괴로 생겨난 공간, 그리고 견고한 민족국가의 형성에 이르지 못한 공간에서 벌어졌다. 이 공간에서는 오히려 다시금 다민족, 다종교의 '제국'이 등장했는데, 그 하나가 소비에트 러시아내지는 1924년 이후로 소비에트연방이고, 또 다른 하나가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의 왕국 내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이다. 이 새로운 제국들은 비교적 장기간 민족적·종교적 갈등들을 덮어두는 데는 성공했지만, 없애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 갈등들은 '제국들'의 해체와 함께 다시 불거지거나 또는 제국들의 해체를 촉진했다. 결국 우크라이나도 이 공간의 일부다.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는 민족국가의 형성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했다. 민족적 원심력, 종파적 원심력,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적 원심력은 분리주의적 내전의 단초가 되었고, 이 내전은 러시아에 그들의 지정학적 계획(크림반도)을 실현할 기회를 주었다. 발칸 중부에서 카스피 해에 이르는 이 분쟁 및 전쟁 공간의 역사적 심연을 측정하려는 사람은 불가피하게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및 후속 영향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것은 유럽 주변부의 또 다른 제국 이후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즉 시리아와 이라크 간에, 리비아와 예멘 간에 벌어지는 전쟁의 경우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해당된다.
하지만 이 책이 어떤 기준 명제를 토대로 지난 100년의 전쟁사 전체를 서술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평화의 구역을,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를 감싸는 애매모호한 전쟁의 띠를 만들어낸 모순적 과정들을 관찰하려는 것이다. 남아메리카(특히 콜롬비아)에서 시작해 아프리카(말리와 나이지리아에서 소말리아까지)를 넘어, 그 다음 아랍세계 상당 부분(예멘과 시리아, 이라크와 리비아)을 거치며 북쪽으로 뻗어가서, 현재는 평화가 찾아온 발칸 중부에서 시작해 흑해 지역을 거쳐 캅카스로 확장하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포괄하고 동남아시아 도서 지역에서 잦아드는 전쟁의 띠 말이다. 이 전쟁들은 근세 초기 유럽에서 스페인 국제법학파와 네덜란드인 휴고 그로티우스가 발전시킨 이항적 질서체계를 벗어나는 데서,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말한다. 이 이항적 개념의 체계는 ━ 제3의 구도를 원칙적으로 배제하면서 ━ 두 구도를 대조하는 식으로 질서를 생성했다. 전쟁 아니면 평화, 국가 간 전쟁 아니면 내전, 전투원 아니면 비전투원 ━ 제3항은 없다. 실제로 일목요연한 구조를 가진 국제법적 개념들의 질서는 정치질서에 영향을 끼쳤으며, 그 개념들이 제시하는 것에 정치질서를 맞추도록 만들었다.
그에 반해 하이브리드 전쟁은 이항적 질서체계가 적용될 수 없다는 것, 거기서는 그와 같은 체계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대부분 한 사회 내부의 전쟁이긴 하나, 국경을 넘어가는 강한 경향이 뚜렷하게 있다. 하이브리드 전쟁이 국가 간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런 전쟁이 횡행하는 국가들이 대부분 이미 파탄국가이거나 그러한 국가로 가는 중이어서 국가 간 전쟁을 이끌 만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쟁들은 식민지 시대에 종종 종족의 영역을 가로질러 그어진 경계를 넘어 확산하는 특징 때문에 트랜스내셔널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트랜스내셔널 전쟁은 국가 간 전쟁과 내전의 중간 형태, 아마 좀 더 정확히는 두 전쟁의 혼합형태다. 따라서 질서를 만들어주는 이항적 구조의 배중률은 이 전쟁 들에서는 사라졌다.
26 개념, 법적 상태 , 정치적 구도의 이항성은 유럽에서 정치적 질서를 생성했을 뿐 아니라 폭력의 진화 방향도 결정했다. 이항성으로 인해 전쟁 수행 능력을 획득하는 것은 점점 비싸졌다. 그 한 결과로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춘 행위자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전쟁 수행 능력은 중세 말기와 근세 초기에 도시와 귀족단체에서 영토국가로 넘어 갔다. 그 다음 영토국가에서 열강의 동맹체제로 넘어갔다. 최종적으로 동서 대립 시기에는 두초강대국만이 〔그들〕 각각의 동맹국들과 연합하여 대규모 전쟁을 치를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전쟁은, 만일 실제로 벌어졌다면 분명 인간문명의 종말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구도에서 두 방향의 진화가 가능해졌다. 북반구에서는 전 지구적 평화의 항구적 확보라는 생각 즉 더 이상 국가 간 전쟁은 없으며 군사력은 지구상 어디라도 방종한 폭력을 종식시킬 목적으로만 투입된다는 정치질서 개념이 생겨났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방향으로 폭력이 진화한 점은 유엔을 강화하고 군대를 세계경찰로 만드는 임무를 유엔에 부여하려는 계획과 연결되어 있다. 〔미국〕 군사 사회학자 모리스 자노위츠에 따라 나는 이것을 경찰화 관점이라고 부르겠다. 대규모 (핵)전쟁을 수행할 경우 인류가 멸망할 위험이 대두한 이래, 폭력이 진화하는 또 하나의 방향은 작은 전쟁 소위 저강도 전쟁의 형태로 전쟁 수행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저강도 전쟁에서는 하위국가적 행위자가 행동의 칼자루를 쥐게 되며, 국가는 전쟁수행 능력의 독점권을 잃게 된다. 〔독일〕 전쟁 및 군사 역사가 마르틴 판 크레펠트는 이러한 방향으로의 전쟁 진화가 21세기에 지배적일 것으로 말하고 있다.
28 전쟁 패러다임을 범죄 패러다임으로 대체할 경우, 문제는 권리와 힘이 동일하게 귀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악당이고 어떻게 그 악당에 맞설지를 결정하도록 유엔에, 구체적으로 안전보장이사회에 위임하지만, 거부권을 가진 5개 열강 중 하나가 반대하면서 안전보장이사회 스스로 자기 발목을 잡는 식으로 상황이 흐른다. 또는 한 국가나 정치집단이 악당이라는 평가에는 모두 합의했지만, 누구도 경찰의 임무를 맡겠다고 나서지 않기도 한다. 왜냐면 그 행동으로 자신에게만 귀속되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정치적 강자의 수사학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신에게 방해가 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상대를 자체 판단에 따라 악당으로 규정하고, 이 '정당성'을 등에 업고 그렇게 규정된 상대를 향해 전쟁을 수행하고, 이 전쟁을 범죄 소탕으로 내세우는 방식이다. 최근 20, 30년간 미합중국의 정치에서는 이 같은 경향에 대한 지표들이 확인되고 있다. 아무튼 전쟁과 평화를 나누는 기존의 구분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부유한 북반구 지역으로부터 경찰 형태의 군사작전이 주변부에 수행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9 고전적인 국가 간 전쟁의 시대가 저무는 중임을 아니 이미 저물었음을 알려주는 일련의 지표가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20세기 전반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이들 유형의 마지막 대규모 전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미 이 두 경우에도 사회 내부 전쟁의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국가 간 전쟁이 많은 국가의 질서를 그 핵심까지 뒤흔들었고, 그에 이어서 일련의 사회 내부 전쟁이 벌어졌다. 그 중에서 1918~1922년의 러시아내전은 가장 격렬하고 잔인했을 뿐아니라, 정치적 파장이 가장 큰 내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사회 내부 전쟁이 국가 간 전쟁과 동시에 벌어졌다. 그리고 이 동시성으로 인해 ━ 여기에 독일인들이 동쪽에서 사실상 세계관 전쟁을 치렀다는 상황이 더해져서 ━ 폭력은 전례 없이 격화되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도 그 형식상 국가 간 전쟁이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방식을 보면 다시 한 번 분명해진다. 〔2차 세계대전은〕 항복문서 서명으로 끝이 났다. 더 나아가 파괴의 강도가 고조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대립된 정치적 견해들이 서로 겨루는 한 방식인 전쟁이 예기치 못한 식으로 자기파괴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실 이는 이미 제1 차 세계대전에서 드러났었다. 1920 년대에 평화 의지가 발전한 것은 그런 사실의 정치적 표현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들이 진리를 관철하고, 영토를 정복하고, 사회를 변형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전쟁을 수단으로 끌어들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말은 이와 같은 전체주의 전쟁관이 실패라는 것도 말해준다. 이 점은 약화된 정도로 소련에도 해당된다. 소련은 영토는 정복했으나, 자국의 '진리'를 관철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데는 별 진전이 없었다.
그렇다고 전쟁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전쟁은 변화하고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 책은 전쟁의 이러한 형태 변화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하지만 그전에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이 전쟁이 전쟁사 내에 또 사회발달 과정 내에 서 있는 '위치'에 대해서,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세계질서 전쟁'이었는지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이 마지막 사항은 이 책 뒷부분 즉 새로운 전쟁들이나, 전투 드론을 이용한 '전쟁 수행'이나, 우크라이나 동부와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에서 발생한 최근의 전쟁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전쟁 목적의 확인 뿐 아니라 전쟁의 예방과 저지에도 지정학적 문제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마지막에는 정치의 변화된 공간 이해를 다룰 것이다. 새로운 공간 이해에서는 영토와 경계의 의미가 축소되고, 흐름의 통제가 핵심 과제가 되었다. 공간 및 공간의 (지배가 아니라) 통제에 대한 이런 새로운 생각이 앞으로 수십 년간 전쟁 방식에 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 마지막 부분의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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