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몽유병자들(24) ━ 주권을 쥔 의사결정자들, 영국, 독일, 러시아 군주국의 세 가지 판이한 유형

 

2022.11.22 몽유병자들(24) ━ 주권을 쥔 의사결정자들, 영국, 독일, 러시아 군주국의 세 가지 판이한 유형

《몽유병자들》을 읽는다. 지난 번에는 281페이지에 있는 앙리 메이어가 그린 그림을 길게 설명을 했었다. 그 그림이 1898년에 나온 것이다. 그 그림에 있는 내용이 《동아시아 근현대통사》에 있다. 2장 러일전쟁과 한국병합의 75페이지에 있다. 요즘에 우리가 《몽유병자들》을 읽고 있는 이 부분과 《동아시아 근현대통사》의 1장, 2장의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유럽 쪽에서 이 사태를 보고 있는 것과 지금 동아시아에서 보고 있는 것과 대조해서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것을 우리에게 준다. 공부의 즐거움, 묘미가 이런 데에 있지 않나 싶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책에서는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있으면 그 사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또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된 사건들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동아시아 근현대통사》를 읽으면서는 의미는 없다.  의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조금 조금씩 코멘트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읽으면서 주로 어떤 사건들이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는가, 역사적인 전환점을 이룬 사건들은 무엇인가. 일종의 목록을 만들어 보는 것, 이것이 처음 역사책을 읽을 때는, 목록을 만들어 보는 것, 사건목록,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의미를 탐색해야 할 사건목록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처음 할 때는 그렇다. 모든 사건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볼 것인가, 그리고 이러이러한 사건들이 중요하겠다 이런 것들. 예를 들면 75페이지를 보면 "독일은 11월 14일 해군기지로 전부터 노리고 있던 자오저우만을 점령했다." 이것이 《몽유병자들》의 그림에 나왔다. "영국과 러시아가 빈틈없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일이 '중국'이라는 파이에서 '자오저우'라는 조각을 잘라내려 하고, 프랑스가 맹방 러시아에 정신적 지지를 보내고, 일본이 파이를 주시하고 있다."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다. 서양에서는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76페이지를 보면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다. "일본은 러시아의 랴오둥반도 조차에 대해 처음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러시아가 남만주를 차지하게 되면 일본에게 조선을 완전히 넘겨준다는 만한교환론이 처음으로 니시 외상에 의해 제기되었다." 《동아시아 근현대통사》를 읽을 때 이런 사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는 일단 차치하고, 중요한 사건들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되겠다. 사건목록을 만드는 것이 공부할 때 첫번째 부분이다. 《동아시아 근현대통사》 1장과 2장을 읽어보면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2세가 사고를 치고 있는 장면들이 몇개 있다. 그런 것들이 오늘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몽유병자들》에 보면 나온다.

《동아시아 근현대통사》 제2장 75 독일은 11월 14일 해군기지로 전부터 노리고 있던 자오저우만을 점령했다.

《몽유병자들》 제4장 280 한 프랑스 예술가는 1890년대 말에 발표한 만화에서 의화단 운동 전야의 중국을 둘러싸고 고조되는 위기를 묘사했다. 영국과 러시아가 빈틈없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일이 '중국'이라는 파이에서 '자오저우'라는 조각을 잘라내려 하고, 프랑스가 맹방 러시아에 정신적 지지를 보내고, 일본이 파이를 주시하고 있다.

《동아시아 근현대통사》 제2장 76 일본은 러시아의 랴오둥반도 조차에 대해 처음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러시아가 남만주를 차지하게 되면 일본에게 조선을 완전히 넘겨준다는 만한교환론이 처음으로 니시 외상에 의해 제기되었다.



제4장에서 주권을 쥔 의사결정자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누가 통치했는가?, 파리에서는 누가 통치했는가?, 베를린에서는 누가 통치했는가?그 다음에는 에드워드 그레이 경의 불안한 우위, 이것은 영국에서 누가 통치했는가가 나오겠다. 그 다음이 1911년 아가디르 위기이다. 주권을 쥔 의사결정자들, 1차적으로는 군주들이겠다.  " 20세기 초 유럽은 군주국들의 대륙이었다. 가장 중요한 여섯 강국 중 다섯이 이런저런 군주국이었고, 한 나라(프랑스)만 공화국이었다. 발칸반도의 신생 민족국가들(그리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은 모두 군주국이었다."  놀랍다. 20세기 초에 여전히 군주국이었다. 그러면 군주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봐야한다.  이것을 《몽유병자들》에서 보고나면 19세기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이 너도나도 끼어들고 일본까지 합세해서 동아시아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다. 이들이 과연 어떤 일을 벌였는지 우리는 막연하게라도 알고 있다. 그런데 본국에서는 어떤 존재들이었는가를 우리는 그동안 공부하면서 한국의 역사책을 읽으면서도, 우리는 러시아라고 하면 하나의 뭉뚱그려서 하나의 국가가 하나의 행위자로 읽었는데 정작 러시아 안에서는 어떠했는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누가 의사결정자였는가 이것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몽유병자들》이라는 책이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보겠다. 특히 제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 이 부분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동아시아 근현대통사》를 균형있게 읽는데 아주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고속순양함, 무선전신, 전기 시가리이터의 이면에는 크고 복잡한 국가들을 예측 불가능한 생명활동에 얽어매는 이 고색창연한 제도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표현이 좋다.  인간의 측 불가능한 생명활동에 국가가 얽어매여 있었다. 그게 바로 군주국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또는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인공물이다. 국가라는 인공물에 제도와 체계를 만들면서 인간이라고 하는 생명체를 먹고 자란다. 그래서 국가의 영속성이 보장된다. 국가는 비인간 행위자인데 인간 행위자를 재료로 삼아서 자신의 생명의 영속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법인체로서의 국가개념이다. 그러니까 군주제도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권위적인 명망가, 누군가가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없앤다고 하는 것이 근대국가적인 이상이겠다. 그런 점에서 보면 토마스 홉스는 굉장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제4장 282 20세기 초 유럽은 군주국들의 대륙이었다. 가장 중요한 여섯 강국 중 다섯이 이런저런 군주국이었고, 한 나라(프랑스)만 공화국이었다. 발칸반도의 신생 민족국가들(그리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은 모두 군주국이었다. 고속순양함, 무선전신, 전기 시가리이터의 이면에는 크고 복잡한 국가들을 예측 불가능한 생명활동에 얽어매는 이 고색창연한 제도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다음에 "유럽 각국 집행부들의 중추는 여전히 이런저런 남녀가 차지하고 앉아 있는 왕위였다." 그러니까 군주들이 어느 정도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또는 그들의 권한은 어느 정도였는가 이런 얘기가 있다. 따라서 19세기의 세계를, 20세기 초 세계 정치를 이해하는 데에는 군주들의 성향이라는 것을, 군주라는 인간행위자를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군주들은 정치적 행위자일 뿐 아니라 상징적 행위자였으며, 이 역할로 집단의 감정과 연상작용을 사로잡고 집중시킬 수 있었다." 굉장히 중요한 행위자라는 것이다.  영국의 에드워드 7세, 니콜라이 2세, 그리고 "독일 외교정책의 가장 심란한 측면들을 체현한 인물로 카이저 빌헬름보다 더 나은 후보가 있었을까? " 다시말해서 독일 외교정책이 여러가지 심란한 측면들을 보여주었는데 그런 측면들은 사실 빌헬름 2세로 인하여 생겨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갈팡질팡, 초점결여, 좌절된 야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카이저가 실제로 독일의 정책을 결정했든 안 했든, 독일의 적대자들에게 그는 확실히 그 정책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빌헬름 2세와 니콜라이 2세는 둘다 파벨 1세 차르의 현손자였다. 빌헴름 2세의 종조할머니 프로이센의 샤를로테는 니콜라이 2세의 할머니였다. " 아주 간단하게 얘기해보면 유럽의 왕실들은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 손녀들이었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말을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 관점에서 보면 1914년 전쟁 발발은 가정불화의 정점처럼 보인다." 이런 것들이 사실 유럽의 정치를 파악하는데 한편으로는 쉽지만 한편으로는 군주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고, 그들은 일정하게 정해진 규칙과 체계에 따라서 움직여가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제4장 283 유럽 각국 집행부들의 중추는 여전히 이런저런 남녀가 차지하고 앉아 있는 왕위였다.

제4장 283 군주들은 정치적 행위자일 뿐 아니라 상징적 행위자였으며, 이 역할로 집단의 감정과 연상작용을 사로잡고 집중시킬 수 있었다.

제4장 283 독일 외교정책의 가장 심란한 측면들(갈팡질팡, 초점결여, 좌절된 야망)을 체현한 인물로 카이저 빌헬름보다 더 나은 후보가 있었을까?

제4장 284 카이저가 실제로 독일의 정책을 결정했든 안 했든, 독일의 적대자들에게 그는 확실히 그 정책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제4장 284 빌헬름 2세와 니콜라이 2세는 둘다 파벨 1세 차르의 현손자였다. 빌헴름 2세의 종조할머니 프로이센의 샤를로테는 니콜라이 2세의 할머니였다. 이 관점에서 보면 1914년 전쟁 발발은 가정불화의 정점처럼 보인다. 


그 다음에 "영국, 독일, 러시아는 군주국의 세 가지 판이한 유형을 대표했다. 러시아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는 의회와 헌법의 억제력이 약한 전제국가였다. 에드워드 7세와 조지 5세는 권력의 수단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는 입헌제·의회제 군주였다. 빌헬름 2세는 둘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러니까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7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인데 에드워드 7세 다음에 조지 5세, 그리고 에드워드 8세, 그런데 에드워드 8세가 왕을 그만두는 바람에 동생이었던데 조지 6세가 이어받게 되고, 조지 6세의 딸이 최근에 사망한 엘리자베스 2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같은 경우에는 별로 한 일이 없는 같아도 사실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코틀랜드라든가 이런 영연방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21세기에도 그러한데 19세기, 20세기 군주들의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저자 크리스토퍼 클라크도 지적하고 있듯이 "정부의 형식적 구조가 반드시 군주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다. 다른 중요한 변수로는 군주 개인의 결단, 적성, 지적 능력과 달갑지 않은 조치를 저지하는 각료들의 능력, 군주와 정부가 서로 합의하는 정도 등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군주의 능력도 있지만 군주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저지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사실 《동아시아 근현대통사》를 읽어보면 러일전쟁 또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어떠했는가 이런 것들에서 많이 나타난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를 읽으면서도 알 수 있듯이 아직 메이지 천황이 그렇게 심각하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이토 히로부미라든가 기도 다카요시 이른 바 메이지유신의 중요한 공신들이 정책 결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조선을 침략하는 과정에서는 이토 히로부미 다음 세대들이 좀 더 거칠다. 그런데 이때는 제국주의 시대니까 그런 짓들이 먹혀 들어가기도 했다. 《동아시아 근현대통사》를 읽으면서는 니콜라이 2세가 얼마나 우유부단했는가 또는 그를 움직이기 위해서 러시아 각료들이 어떻게 움직여 갔는가를 중요한 지점으로 읽어보면 재미가 있을 것이다. 

제4장 285 영국, 독일, 러시아는 군주국의 세 가지 판이한 유형을 대표했다. 러시아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는 의회와 헌법의 억제력이 약한 전제국가였다. 에드워드 7세와 조지 5세는 권력의 수단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는 입헌제·의회제 군주였다. 빌헬름 2세는 둘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제4장 286 정부의 형식적 구조가 반드시 군주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다. 다른 중요한 변수로는 군주 개인의 결단, 적성, 지적 능력과 달갑지 않은 조치를 저지하는 각료들의 능력, 군주와 정부가 서로 합의하는 정도 등이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전제정이라는 매우 권위주의적인 환경에서조차 외교정책에 대한 차르의 영향력은 좁은 범위로 한정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강해지고 약해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차르는 특히 1900년 무렵무도 러시아 외교정책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니콜라이의 개입은 집행 결정보다는 비공식 제휴의 형태를 띠었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부분이, 마침 우리가 《동아시아 근현대통사》에서 러일전쟁을 읽고 있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290페이지부터 나온다.  "제국정책의 공식 노선과 비공식 노선을 나란히 운영"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 "니콜라이 2세가 이본과 전쟁하는 정책을 의식적으로 채택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1904년 전쟁 발발의 책임, 따라서 뒤이은 재앙의 책임까지 제일 많이 져야 하는 사람은 분명히 그였다." 그리고 이제 "러일전쟁 전야에 차르의 영향력은 오름세였고 각료들의 영향력은 내림세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차르가 추진한 정책이 파국을 맞은 탓에 의제를 설정하는 그의 권한이 급격히 약해졌기 때문이다." 각료평의회의 권력이 집중되었다. 그러면서도 니콜라이는 "모든 정치 대형을 흐트러트려서 군주의 자율권과 권력을 보호"하는데 사용하였다. 그러니까 니콜라이 2세가 요즘식으로 얘기하면 온전하게 어떤 일관성있는 정책 방향을 가지고 뭔가를 하기보다는 그 자신의 전제 권력을 유지하는데 이렇게 저렇게 속된 말로 밑 애들 가지고 장난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러일전쟁에 패배하면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그런 것을 보면 앞에 나온 것처럼 이들이 인간의 생명활동에 얽어매는 고색창연한 제도에 들어가 있기에는 참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동정심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다 하더라도 감당해야 할 몫이다. 

제4장 288 러시아 전제정이라는 매우 권위주의적인 환경에서조차 외교정책에 대한 차르의 영향력은 좁은 범위로 한정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강해지고 약해기를 반복했다.

제4장 288 차르는 특히 1900년 무렵무도 러시아 외교정책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제4장 290 니콜라이의 개입은 집행 결정보다는 비공식 제휴의 형태를 띠었다.

제4장 291 니콜라이 2세가 이본과 전쟁하는 정책을 의식적으로 채택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1904년 전쟁 발발의 책임, 따라서 뒤이은 재앙의 책임까지 제일 많이 져야 하는 사람은 분명히 그였다.

제4장 291 러일전쟁 전야에 차르의 영향력은 오름세였고 각료들의 영향력은 내림세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차르가 추진한 정책이 파국을 맞은 탓에 의제를 설정하는 그의 권한이 급격히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독일의 카이저 빌헴름은 변덕이 죽 끓듯 했다. "이런저런 발생을 듣고, 열광하고, 곧 지루해하거나 의욕을 잃고, 결국 내팽개치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런 것들을 왜 우리가 알아야 하는가. 우리가 왜 한 인간의 성향을 알아야 하는가. 결국 그런 인간들이 정책 결정의 중요한 위치에 서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도이칠란트에서는 카이저의 그런 성향 때문에 "빌헬름의 각료들은 그를 정책수립 과정에서 한 발짝 떨어뜨려놓았다. 빌헬름 치세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결정을 내릴 때 카이저가 관여하지도 사전에 알지도 못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사실이다." 군주의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은 꼭 좋은 방향으로만 미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때는 301페이지에 있는 것처럼 "민주화된 체제에서", "유럽 대륙에 군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 관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군주가 있다는 것, 이것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저자는 군주 개인에게 문제를 돌리고 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군주제라고 하는 것과 일부분만 민주화된 체제에서 군주가 결국에는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주권자라고 하는 것, 각국 정부의 중심점으로 추정되는 군주의 존재가 모호함의 원인이고, 바로 모호함의 원인이 "정책 수립 과정의 중심축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계속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군주 그리고 군, 전문관료집단, 각료, 정책 전문가 말하자면 정책을 만드는 집단들이, 이런 모호함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 1914년 7월에 위험한 결실을 맺을 파벌주의와 과잉 수사의 문화"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심각한 문제인데 크리스토퍼 클라크가 제시하는 바는 이렇다. 군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부분적으로 민주화된 체제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군주, 이런 것들이 파벌주의와 과잉 수사의 문화를 낳아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꼭 1914년 7월 위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존재가 지나치게 권력을 전횡하게 되면 아무리 민주정 국가라고 해도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것을 행세하기 시작하면 아주 심각하게 파벌주의와 과잉 수사의 문화가 현재 민주정 국가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제4장 295 카이저는 이런저런 발생을 듣고, 열광하고, 곧 지루해하거나 의욕을 잃고, 결국 내팽개치는 패턴을 반복했다.

제4장 297 바로 이런 에피소드들 때문에 빌헬름의 각료들은 그를 정책수립 과정에서 한 발짝 떨어뜨려놓았다. 빌헬름 치세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결정을 내릴 때 카이저가 관여하지도 사전에 알지도 못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사실이다.

제4장 301 정치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했든 안 했든, 유럽 대륙에 군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 관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일부분만 민주화된 체제에서 모든 공문서와 인사에 접근할 수 있고 모든 집행 결정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주권자, 각국 정부의 중심점으로 추정되는 군주의 존재는 모호함의 원인이었다.

제4장 301 군주들의 존재는 정책 수립 과정의 중심축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계속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제4장 303 그 결과는 1914년 7월에 위험한 결실을 맺을 파벌주의와 과잉 수사의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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