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몽유병자들(26) ━ 군인과 민간인, 언론과 여론, 마지막으로 권력의 유동성

 

2022.12.06 몽유병자들(26) ━ 군인과 민간인, 언론과 여론, 마지막으로 권력의 유동성

《몽유병자들》을 읽는다.  이번주에는 제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에서 군인과 민간인, 언론과 여론, 마지막으로 권력의 유동성을 읽는다. 군인과 민간인의 관계가 어떠했는가를 유럽의 여러 나라들 각각의 사례들을 설명하고, 언론과 여론에 대해서 유럽 여러 각국들은 어떤 식으로 반응했는가를 설명하고 마지막에 정리해서 권력의 유동성이라고 하는 부분으로 집약시키고 있다. 권력의 유동성 부분은 주목해 볼만한 부분이다.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명백하게 권한의 초점이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사태들을 우리가 본 적이 있다. 그러면 유럽들은 어떠했는가. 유럽은 과연 아닌 게 짐작이 된다. 앞에서 읽은 부분을 보면 외교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복잡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서 일어나다 보니까 또한 주권자들이 어떤 곳은, 도이칠란드는 카이저가 주권자이고, 러시아의 경우에는 차르가 힘을 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는 결국 권력의 유동성을 계속해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군인과 민간인의 관계, 우선 344페이지를 보면 "유럽에서는 고위 정치인들, 황제들, 국왕들이 군복 차림으로 공식 행사에 참여했고, 국가의 공식 의식에서 정교한 열병식이 필수였고, 엄청난 광채를 발하는 군함 전시가 수많은 군중을 모으고 삽화 잡지의 페이지를 채웠으며, 전체 국민의 남성 축소판이 될 때까지 징집군의 규모가 커졌고, 군사 전시물에 대한 숭배가 가장 작은 공동체의 공적 ·사적 생활에까지 스며들었다." 이것을 유럽에 온 미국인인 에드워드 하우스 대령이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군국주의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라고 보고 했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그렇다. 지금도 그렇다. 지금도 영국에서 어떤 공식을 하거나 그러면 왕족들이 군복을 입고 참석하고 그 다음에 결혼식 때도 그렇다. 공식적으로 그들이 말하자면, 예를 들면 영국의 찰스 왕의 여동생 앤이라는 사람은 로얄 마린의 총사령관이다. 왕정제를 없애고 나면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심각하다. 그러니까 1914년 5월 무렵에 유럽 여행을 마치고 온 에드워드 하우스 대령이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군국주의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라고 보고 한 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라도 하겠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그런데 유럽 여러 국가에서는 민간인들이 전적으로 군인들을 밀어주는 분위기가 있었는가,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혼돈스러운 지휘구조 탓에 장군들이 정부에 효과적으로 로비하기 어려웠고, 독일도 그렇고 결국 문제는 돈을 둘러싼 투쟁이다. "전전 집행부들 내부에서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서로 투쟁한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돈을 둘러싼 투쟁이었다. 방위비는 정부 지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심지어 이것은 유명한 얘기인데, "1905년 알프레드 폰 슐리펜 참모총장이 대대적인 서부전선 공세 구상을 스케치한 유명한 의견서가 엄밀히 따지면 '전쟁계획'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한 구실이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도이칠란트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서도 그렇다. 영국 해군은 예산이 급증했는데 육군은 그대로이고 이런 얘기들이 계속 적혀 있다. 프랑스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 러시아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것을 보면 "민주제와 의회제를 갖춘 영국·프랑스와 그보다 전제적인 러시아·오스트리아·독일 사이에 구분선을 그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현실은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복잡했다." 그래서 이제 정확하게 "민간 파벌과 군부 파벌 사이의 권력 균형과 각 파벌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불분명했던 까닭에," 즉 민간이들이 확실하게 통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주권자라고 불리는 황제나 차르가 개입하고 하다 보니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유럽 강국들은 모두 예상 적국의 정부 내에 강경한 군부 파벌이 존재한다고 상정했다." 상정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일단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자기네들의 전쟁계획이라든가 군비확장계획이라든가를 세우게 된다. 이것이 유럽대륙에서만 일어난 사건이기에는 어중간 한 것이 이 당시 유럽 대륙의 사건이 곧바로 동아시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일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간단하게 볼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여튼 이것이 결론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단순하게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두면 되겠다.


제4장 344 유럽에서는 고위 정치인들, 황제들, 국왕들이 군복 차림으로 공식 행사에 참여했고, 국가의 공식 의식에서 정교한 열병식이 필수였고, 엄청난 광채를 발하는 군함 전시가 수많은 군중을 모으고 삽화 잡지의 페이지를 채웠으며, 전체 국민의 남성 축소판이 될 때까지 징집군의 규모가 커졌고, 군사 전시물에 대한 숭배가 가장 작은 공동체의 공적 ·사적 생활에까지 스며들었다.

제4장 344 전전 집행부들 내부에서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서로 투쟁한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돈을 둘러싼 투쟁이었다. 방위비는 정부 지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제4장 346 1905년 알프레드 폰 슐리펜 참모총장이 대대적인 서부전선 공세 구상을 스케치한 유명한 의견서가 엄밀히 따지면 '전쟁계획'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한 구실이었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제4장 355 얼핏 생각하기에는 민주제와 의회제를 갖춘 영국·프랑스와 그보다 전제적인 러시아·오스트리아·독일 사이에 구분선을 그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제4장 355 그러나 현실은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복잡했다.

제4장 359 민간 파벌과 군부 파벌 사이의 권력 균형과 각 파벌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불분명했던 까닭에, 강대국 집행부들의 관계는 계속 오리무중이었다. 유럽 강국들은 모두 예상 적국의 정부 내에 강경한 군부 파벌이 존재한다고 상정했고, 그들이 얼마만큼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알아내는 데 공을 들였다.


그 다음에 언론과 여론에서 아주 뚜렷한 것은 저자도 얘기하듯이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개전 이전 수십 년 동안 정치적 공론장이 대폭 확대되고 국제관계와 관련 있는 쟁점에 대한 공적 논의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이제 어느 나라에서든 여기에서는 이탈리아의 경우를 얘기하고 있는데,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다 마찬가지의 현상이다. "더 적극적이고 더 많은 요구를 하는 정치적 대중이 출현했다." 이제 여론이나 그 여론을 만들어 내는 언론, 이런 것들을 도외시한 채 정치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은 못되는 것이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체제들일수록 민주적 정당성을 대신할 대중의 지지가 필요했다. 그러면 여론 조작에 대한 유혹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생겨나기 마련이다. 오늘날에도 그렇다. 이 당시에는 모든 나라가 언론과 관련된 기구들을 운영했다고 하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어봐야 하는 것은 377페이지에 있다.  정치인들이 "생각한 여론의 주된 의미는 정부의 인사와 정책에 대한 대중의 찬성 또는 거부였다." 우선 이것이 중요하다. 사실 여론조사를 오늘날에도 하는데 여론의 힘을 등에 업지 못하면 간단히 말해서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으면 행정부에 속해 있는 공무원들이 일을 안하는 것은 둘째 치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대통령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여론의 지지를 늘 받을 수 있도록 대통령 개인이나 정책이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늘 얘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획득되고 민주적 정당성이 획득되어야만 우리가 '늘 공무원'인 사람들이 움직여 나간다. 즉 행정부에서는 선출직에 대한 여론조사의 결과가 공무원들을 움직여가는데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그보다 더 중요한 얘기를 한다. "여론보다 더 깊은 무언가, 심성구조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여기서 심성구조라고 하는 것은 "정치인, 입법자, 정치평론가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태도와 행위를 형성하는, 제임스 졸이 말한 '암묵적 전제들'의 구조"이다. 여론이라고 하는 것은 그때 그때 형성되어서 하나의 정책과 인사에 대한 찬성, 거부를 드러내 보이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일정한 경향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다 보면 unspoken assumption, 즉 명시되지 않은 발화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심성, 저변에 놓이게 되는 일종의 그것이 지속되다 보면 구조적인 측면을 가지게 되는 경향성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unspoken assumption 암묵적 전제들, 즉 발화되지 않은 전제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이 심성구조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유럽 도처에서, 특히 교육받은 엘리트층 사이에서 전쟁을 각오하는 마음가짐이 강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즉 "전쟁 가능성을 꼭 환영하지는 않더라도 수용하는 '방어적 애국심'의 형태를 띠었고, 이런 관점의 바탕에는 분쟁이 국제정치의 '본성적' 특징이라는 확신이었다." 다시 유럽 여러 나라들의 공론장의 기본입장은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여론이라든가 그런 것보다는 계속해서 그런 것들이 나오다 보니까 "전쟁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는 숙명론을 지탱한 것은 여러 주장과 태도의 느슨한 결합이었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면 곤란하게 된다.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전쟁은 안된다'라는 생각보다는 '전쟁은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이렇게 된다. 전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여론 들이 지속적으로 계속되면서 unspoken assumption, 암묵적 전제들이 깔렸는데 전쟁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는 숙명론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나타난 이런 추세는 전쟁 이전에 입법부가 군비 지출 증가에 따른 재정 부담을 선뜻 수용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입법부가 재정부담을 수용했다. 입법부가 바로 여론을 가장 민감한게 받아들이는 곳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국민들의 심성구조 속에, 저변에, 전쟁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는 숙명론을 감지하고 군비 지출 증가에 따른 재정 부담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군비를 증강하자는 주장과 사회정치적 유인이 혼합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책수립자들은 여러 방식으로 여론을 고려했다. 그들이 여론을 통제했던 것도, 여론이 그들을 통제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저자는 말한다.  "여론과 공적 생활의 상호성에 대해,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정책 수립자들이 일방적으로 여론을 한 쪽으로 끌고 간 것도 아니고 또 여론이 정책 수립자들을 자기네 방향으로 끌고 간 것도 아니고 항상 불확실한 구조들이 놓여있는데 "더욱 근본적인, 그리고 더욱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는 심성구조의 변화였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심성구조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다. '해보면 될 것 같아'라는 마음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가 아니면 '어차피 일어날 전쟁' 이런 것이 있는가. 그런데 이 당시에는 "이제 전쟁은 국제관계의 본성상 확실히 일어날 사태로 인식되었다."  이게 심성구조의 변화가 되는 것이고, 이것이 사람들이 전쟁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계속 전쟁의 불가피성이라고 하는 숙명론으로 밀고가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최악의 사태라고 한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 어떻게 보면 전쟁의 저 밑바닥에 있는 원인이다. 전쟁의 숙명론, 이것이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제4장 361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개전 이전 수십 년 동안 정치적 공론장이 대폭 확대되고 국제관계와 관련 있는 쟁점에 대한 공적 논의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제4장 361 우리는 이탈리아에서도 더 적극적이고 더 많은 요구를 하는 정치적 대중이 출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4장 377 그들이 생각한 여론의 주된 의미는 정부의 인사와 정책에 대한 대중의 찬성 또는 거부였다. 그러나 여론보다 더 깊은 무언가, 심성구조(정치인, 입법자, 정치평론가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태도와 행위를 형성하는, 제임스 졸이 말한 '암묵적 전제들'의 구조)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이 심성구조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유럽 도처에서, 특히 교육받은 엘리트층 사이에서 전쟁을 각오하는 마음가짐이 강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제4장 377 전쟁 가능성을 꼭 환영하지는 않더라도 수용하는 '방어적 애국심'의 형태를 띠었고, 이런 관점의 바탕에는 분쟁이 국제정치의 '본성적' 특징이라는 확신이었다.

제4장 378 전쟁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는 숙명론을 지탱한 것은 여러 주장과 태도의 느슨한 결합이었다.

제4장 379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나타난 이런 추세는 전쟁 이전에 입법부가 군비 지출 증가에 따른 재정 부담을 선뜻 수용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제4장 380 정책수립자들은 여러 방식으로 여론을 고려했다. 그들이 여론을 통제했던 것도, 여론이 그들을 통제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여론과 공적 생활의 상호성에 대해,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에 대해 말해야 한다.

제4장 380 더욱 근본적인, 그리고 더욱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는 심성구조의 변화였다.

제4장 380 이제 전쟁은 국제관계의 본성상 확실히 일어날 사태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페이지 정도 정리되어 있는 것이 권력의 유동성이다. 이 부분이 분량은 적지만 제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를 가장 집약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7월 위기 이전에,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인가. 국제관계 모델이 시사하는 것보다 더 복잡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크리스토퍼 클라크가 찾아낸 것이다. "각료들은 약한 결속력이 특징인 체제에서 군주의 종잡을 수 없는 개입, 모호한 민군 관계, 핵심 정치인들의 적대적인 경쟁으로 인해, 그리고 여기에 더해 안보 문제로 때때로 위기가 발생하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비판적인 대중언론의 선동으로 인해, 이 기간 동안 국제 관계의 불확실성이 전례 없이 높아졌다." 그래서 "역사가들뿐 아니라 전쟁 직전의 정치인들도 국제 정세를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아주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심각한 것은 명백한 책임 권한을 가진 책임자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예를 들어서 말한 것이 쿠바 위기라는가 베트남 전쟁 이런 것이 있다. "미국 집행부는 사실 외교정책에 대한 집행 결정의 궁극적 책임이 명백히 대통령에게 있는, 권한의 초점이 아주 분명한 조직이다." 반면에 유럽의 정부들은 어느 나라든 다층적 구조였기 때문에 불분명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맹국 간 조차도 적대감과 피해망상의 수준이 높고 신뢰는 낮다 보니 "매파가 신호 보내기 과정을 장악할 경우, 위기가 빠르고도 예측 불가능하게 고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거의 381~383페이지에 앞에서 상세하고도 길게 분석해 놓은 그런 것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맞이했는가를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읽어보면 전쟁이라는 건 이런 식으로 일어나겠구나 싶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명백하게 권한의 초점이 아주 분명하게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람이 죽는다. 전쟁만이 아니다. 전쟁보다 아주 단순한 사고가 벌어져도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제1차세계대전에 관한 분석이지만 이 분석으로부터 우리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국가행정에서 생겨나는 불투명한 의사구조와 불분명한 권한 이런 것들이 어떤 참사를 불어오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보겠다.


제4장 381 1903~1914년 유럽의 현실은 '국제관계' 모델이 시사하는 것보다도 더 복잡했다. 각료들은 약한 결속력이 특징인 체제에서 군주의 종잡을 수 없는 개입, 모호한 민군 관계, 핵심 정치인들의 적대적인 경쟁으로 인해, 그리고 여기에 더해 안보 문제로 때때로 위기가 발생하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비판적인 대중언론의 선동으로 인해, 이 기간 동안 국제 관계의 불확실성이 전례 없이 높아졌다. 

제4장 381 역사가들뿐 아니라 전쟁 직전의 정치인들도 국제 정세를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제4장 382 미국 집행부는 사실 외교정책에 대한 집행 결정의 궁극적 책임이 명백히 대통령에게 있는, 권한의 초점이 아주 분명한 조직이다.

제4장 383 매파가 신호 보내기 과정을 장악할 경우, 위기가 빠르고도 예측 불가능하게 고조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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