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몽유병자들(27) ━ 탕헤르 위기(1차 모로코 위기)와 아가디르 위기(2차 모로코 위기)

 

2022.12.13 몽유병자들(27) ━ 탕헤르 위기(1차 모로코 위기)와 아가디르 위기(2차 모로코 위기)

오늘 《몽유병자들》은 제2부의 제5장 얽히고설킨 발칸을 하려고 했는데, 모로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난 주까지 읽었던 제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를 보면 모로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은 263페이지 제3장을 보면 모로코 위기가 사실 두 번에 걸쳐서 있다. 1905년에 있고, 아가디르 위기는 1911년이다. 263페이지를 보면 "1905년 1월 초 프랑스 대표단이 모로코 내륙 도시 페스를 방문해 모로코 군대와 경찰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했다." 우리나라 을사조약과 같다. "술탄은 거부했다." 왜 거부했는가.  "1905년 3월 31일 카이저 빌헬름 2세가 모로코 도시 탕헤르를 깜짝 방문했다." 빌헬름 2세가 오니까 모로코 입장에서는 도이칠란트가 자기네들 뒤를 봐준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빌헬름 2세와 프랑스와 대립이 시작된다. 그래서 1차 모로코 위기, 그 지역 이름을 따서 탕헤르 위기라고 부른다. 모로코라는 나라가 북아프리카에 있는데, 바로 앞에 지브롤터 해협이 있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이어주는 곳이다. 그런데 1880년에 마드리드 조약이 있는데, 거기서 유럽 열강들에게 독립을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그렇게 하겠는가. 그때 프랑스와 스페인이 내정을 간섭한다. 군대와 경찰의 지휘권, 내정간섭이 보통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독일이 보고 카이저 빌헬름 2세가 모로코 도시 탕헤르에 방문해서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한 것이다. 모로코는 기분이 좋기는 했겠지만 사실은 카이저도 나쁜 놈이다. 도이칠란트는 식민지가 없는 나라이다. 그러니까 예전 베를린 회담 시 독일이 땅을 요구하고, 프랑스 및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챙겨주기 시작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에 대해서 유럽 열강들이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베를린에서 모여서 아프리카 지도에 자를 대고 그어서 나눠먹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도 독일도 이렇게 저렇게 챙겨보려고 하는데 사실은 사하라 이남은 관심이 없고 자기네들이 보기에 알짜배기가 모로코 지역이었던 것이다. 프랑스가 에스파냐와 함께여기에 간섭을 하니까 도이칠란트도 파고 든 것이다. 

제3장 263 1905년 1월 초 프랑스 대표단이 모로코 내륙 도시 페스를 방문해 모로코 군대와 경찰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했다. 술탄은 거부했다. 1905년 3월 31일 카이저 빌헬름 2세가 모로코 도시 탕헤르를 깜짝 방문했다.


그러다가 제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에 나오는 아가디르 위기가 1911년에 일어났다. 앞에 탕헤르 위기가 있은 후에도 프랑스는 계속해서 모로코를 지배한다. 그러다가 1911년에 반프랑스 폭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프랑스 군대를 동원해서 진압을 한다. 그런데 프랑스 군대가 이렇게 진압을 한 것이 사실 알헤시라스 협정 위배이다. 이때 프랑스의 뒤를 봐준 나라가 영국이다. 그런데 독일한테는 그 대신에 콩고 북부 지역을 할양해주고, 독일은 그 대가로 모로코에 대한 프랑스 보호권을 인정해준다. 그런데 또 그러니까 에스파냐가 기득권을 주장하고, 또 영국이 끼어들어서 프랑스와 에스파냐와 협상을 한다. 그러면서 프랑스와 에스파냐이 여기에 개입을 한다.  329페이지를 보면 "1909년 프랑스-독일 합의는 프랑스 외무부가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결국 1911년 4월 모로코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함에 따라 파기되었다." 1909년에 맺었던 것이 협정이 파기되고, 이럴 때, 제국주의 시대에 협정이 어디있는가. 《동아시아 근현대통사》를 읽어봐도 그런 것이 나온다. 그런데 "1911년 6월 5일, 모로코에서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권력을 차지할 전망에 불안해진 에스파냐 정부는 병력을 파견해 모로코 북구 라라슈와 북서부 크사르엘케비르를 점령했다. 이때문에 독일의 개입이 불가피해졌고, 폐기 기한을 2년 넘긴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포함 판터호가 예상대로 1911년 7월 1일 모로코 아가디르 항구에 나타나 닻을 내렸다."  아가디르 위기라고 하기도 하고 판터호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러다가 보면 나중에는 "1911년 11월 4일, 마침내 프랑스-독일 조약의 합의 조항들이 확정되었다. 모로코는 프랑스의 배타적인 보호국이 되었고, 독일은 사업적 이해관계를 존중한다는 확약을 받고 프랑스령 콩고의 일부를 얻었다." 모로코를 놓고 영국도 들어가고 에스파냐도 들어가고 그러니 지금 이것이 1911년의 일이다. 

제4장 329 1909년 프랑스-독일 합의는 프랑스 외무부가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결국 1911년 4월 모로코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함에 따라 파기되었다. 1911년 6월 5일, 모로코에서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권력을 차지할 전망에 불안해진 에스파냐 정부는 병력을 파견해 모로코 북구 라라슈와 북서부 크사르엘케비르를 점령했다. 이때문에 독일의 개입이 불가피해졌고, 폐기 기한을 2년 넘긴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포함 판터호가 예상대로 1911년 7월 1일 모로코 아가디르 항구에 나타나 닻을 내렸다.

제4장 334 1911년 11월 4일, 마침내 프랑스-독일 조약의 합의 조항들이 확정되었다. 모로코는 프랑스의 배타적인 보호국이 되었고, 독일은 사업적 이해관계를 존중한다는 확약을 받고 프랑스령 콩고의 일부를 얻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