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몽유병자들(28) ━ 제2부 5장 얽히고설킨 발칸, 3차 발칸전쟁에서 세계대전으로

 

2022.12.19 몽유병자들(28) ━ 제2부 5장 얽히고설킨 발칸, 3차 발칸전쟁에서 세계대전으로

오늘은 《몽유병자들》은 제2부의 제5장 얽히고설킨 발칸을 읽는다.  384페이지에 나온 것처럼 “1차 세계대전은 3차 발칸전쟁에서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1차 세계대전이라고 하는 것에 직접적으로 선행하는 전쟁이 3차 발칸전쟁이다. 384~385페이지 한 문단이 제5장에 나와있는 내용 전체를 집약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말하자면 introduction을 써놓고 여기에 있는 내용을 상세하고 논의하고 있는 것이 제5장이다. 제5장은 리비아 공습, 발칸난투극, 갈팡질팡, 1912~1913년 겨울 발칸 위기, 이때가 발칸 전쟁시기이고, 그 다음에 불가리아냐 세르비아냐, 오스트리아의 곤경, 프랑스-러시아 동맹의 발칸화, 발칸화라는 말이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데 발칸화라는 말은 얽히고설킨 국지적인 분쟁들이 도대체 겉잡을 수 없는 상태로 되는 것, 발칸이라는 공유명사를 보통명사처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발칸화되었다'라는 말을 쓴다. 이 말자체가 그만큼 발칸이라고 하는 것이 유럽의 국제정치학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이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잘 알 수가 있다. 

제5장 384 1차 세계대전은 3차 발칸전쟁에서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제5장 얽히고설킨 발칸에 있는 발문을 상세하게 읽어보겠다. "오스만제국과 기독교 유럽이 인접한 남동유럽 주변부에서 분쟁과 위기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 오스만제국이 발칸반도를 자기네 땅으로 하고 있으면서부터 계속해서 생겨났던 문제이다. 그러니까 여기는 전통적으로 싸움이 나는 곳이다. 원래 싸움이 없던 곳도 아니고 정말 유럽에서 분쟁이라고 하면 발칸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여러가지 지정학적으로 겹쳐있는 곳이다. 기독교유럽과 오스만제국은 이슬람, 그런데 이슬람제국이라고 해도 오스만제국에서 기독교도들이 완전히 탄압받고 살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지역은 그렇다. 전혀 분쟁 지역이 아니었는데 분쟁 지역으로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여기는 계속해서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예를 들어서 19세기 말에는 전혀 분쟁 지역이 아니었는데 20세기 들어서 러일전쟁 이후부터 심란하게 분쟁 지역이 된 곳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동북지역이다. 중국에서는 동북지역이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만주와 몽골을 합해서 만몽문제라고 한다. 만주가 분쟁의 핵심지역이 된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는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예를 들면 말레이시아, 인도네이사, 싱가폴 지역의 말라카 해협도 갑자기 지정학적으로 문제가 생기면서 분쟁 지역이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발칸은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분쟁 지역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유럽 전체가 그런 분쟁과 위기를 조정하다가 대륙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한 분쟁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14년을 앞 둔 수년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1914년을 앞 둔 수년간이 언제부터인가, 그리 길지도 않다. 모로코 위기부터라고 보면 될 것이다. 1911년에 아가디르 위기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탕헤르 위기가 있었다. 특히나 1905년 탕헤르 위기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1911년 아가디르 위기부터 문제가 벌어진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나 1911, 1912년 사이에 이탈리아가, 여기도 곧바로 리비아 공습이 나오는데, 이탈리아와 오스만제국의 전쟁이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1911,1912년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이다. 그러면 "1914년을 앞 둔 수년간"이라고 하면 대체로 1911년부터 봐야할 것 같다. 그리고 발칸 전쟁이 1912년에서 1913년, 계속 전쟁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1911년 가을 이탈리아가 오스만제국의 아프리카 속령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개시하자 뒤이어 발칸반도와 오스만 영토를 노리는 기회주의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부터 봐야하는데 앞에 하나가 더 있는 것이 제2차 모로코 위기, 즉 아가디르 위기이다. 동아시아에서도 러일전쟁 이후에 잠잠하다가 일본이 중국에 대한 요구를 하면서부터 문제가 확 번져나간다. 그것이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겠다.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취약해진 것이 굉장히 크다. 발칸전쟁에서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은 발칸지역에 대한 오스만의 지배력이 약화된 것이 크다. 그렇게 분쟁의 여지를 늘 남겨두고 있는,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제국이 들어서서 제국이 그 지역을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으면 별 문제가 안생기는데, 멀 원자를 써서 원인이 뭔가를 본다면 오스만 제국의 발칸에 대한 억지력이 취약해졌으니까 바로 이탈리아가 오스만의 속령을 노리고 침략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이어지는 기회주의적인 공격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겠다. 그렇게 되면서 "발칸 지역의 분쟁을 억제할 수 있었던 지정학적 균형 체제가 무너졌다." 가장 심각한 원인이 되는 것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억지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제5장 384 오스만제국과 기독교 유럽이 인접한 남동유럽 주변부에서 분쟁과 위기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유럽 전체가 그런 분쟁과 위기를 조정하다가 대륙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1914년을 앞 둔 수년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1911년 가을 이탈리아가 오스만제국의 아프리카 속령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개시하자 뒤이어 발칸반도와 오스만 영토를 노리는 기회주의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발칸 지역의 분쟁을 억제할 수 있었던 지정학적 균형 체제가 무너졌다.


그 다음에 "1912년과 1913년 두 차례 발칸전쟁의 여파로", 지정학적 균형 체제가 무너졌다는 것은 발칸 지역에 잠복해있던 여러 자잘한 나라들 사이에 오스만튀르크의 억지력이 떨어지니까 그런 나라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해서 그틈을 타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라든가 이런 데서 파고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발칸 지역의 내부에서의 전쟁도 전쟁이지만 그 틈을 노리고 들어가는 외세가 겹쳐들어간다. 그런 것들이 심각하게 일종의 톱날전쟁 같은 것을 만들어낸다.  한국전쟁이 그런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이다. 한국전쟁은 시작하기로는 내전으로 시작되었다. 남한과 북한 사이의 내전으로 시작했으나 그 당시에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한반도라고 하는 전지구적으로는 좁은 땅덩어리에 아주 많은 많은 엄청난 화력을 가진 전쟁이 전개되는 벌어졌다. 그리고 그런 전쟁을 치뤘기 때문에 유엔군의 명목으로 들어왔지만 참전하지 않은 나라가 드물 정도로 들어왔고 그러다보니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군 묘지가 있는 나라이다. 지정학적으로 얽혀 들어가는 것이다. 내전이 국제적으로 번져가는 전형적인 현대전의 모습을 띠고 있다. "1912년과 1913년 두 차례 발칸전쟁의 여파로", 이 부분이 " 1912~1913년 겨울 발칸 위기" 섹션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자국 남동쪽 주변부에서 새롭고 위협적인 상황에 직면했으며", 이것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 정말 중요한 사건, "오스만 세력이 후퇴함에 따라", 이것이 앞서 말한 것처럼 오스만 세력의 억지력이 없어졌다고 하면 이것을 항상 권력의 공백기가 생긴다. 발칸 지역을 압도할 수 있는 위력을 누가 가지는가. 다른 나라가 가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권력의 공백기가 생기면 그 공백기가 생긴 지역으로 외부의 힘이 빨려들어가게 되면서 정말 대 혼란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러시아 외교관들과 정책수립자들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전력적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왜 러시아인가. 발칸 지역은 슬라브족들이 있으니 러시아 가 여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오스만 제국이 여기를 쥐고 있을 때에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으나 이제 이 지역에 세력을 뻗을 수 있는 남하할 수 있는 것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다. 당연히 러시아 외교관들과 정책수립자들이 여기에 끼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흑해를 지배하는 것이고, 지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흑해, 크리미아 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다. 항상 똑같은 그런 지정학적 균형체제가 무너지면 위기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하겠다. 문장 하나 하나가 굉장히 많은 사건을 포함하고 있다. 그 다음에 "대륙의 두 동맹 블록은 전례 없는 일촉즉발 국면으로 접어드는 발칸의 적대관계에 점점 깊이 끌려 들어갔다." 이제 프랑스와 러시아가 동맹을 맺고 있는데, 프랑스는 또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러시아는 발칸 문제가 자신들의 당면 문제인데 프랑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삼국동맹인 도이칠란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그리고 삼국협상인 영국, 러시아, 프랑스, 그런데 지도를 보면 도이칠란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는 유럽의 중심부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그곳의 주변을 둘러싼 나라들이다. 그런데 이중에서 이탈리아가 이때다 싶어서 오스만튀르크의 아프리카 속령을 정복하기 위해서 전쟁을 개시한다. 사실 그 나라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가 이탈리아이다. 시칠리아 섬을 찍고 아프리카로 넘어가면 된다. '우리의 바다'이던 시절부터 그렇다. 그러니까 나중에 결국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삼국동맹이었다가 나중에 삼국동맹에서 빠져나와서 영국과 손을 잡고 삼국협상쪽에 가담한다. 그러면서 삼국동맹이 사실상 붕괴가 되고 도이칠란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만 남게된다. 벌써 이탈리아가 나중에 삼국협상쪽으로 가담할 조짐이 여기서 보인다.  "대륙의 두 동맹 블록은 전례 없는 일촉즉발 국면으로 접어드는 발칸의 적대관계에 점점 깊이 끌려 들어갔다." 러시아는 당연히 끌려들어왔고, 오스트리아는 자기네와 남동쪽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들어오게 된다. 우리가 제3부에서 봤던 사태들이 사실상 여기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그 과정에서 발칸 무대의 분쟁과 유럽 체제의 지정학이 긴밀하게 뒤얽히게 되면서" 발칸에서는 직접적으로 분쟁이 벌어졌고, 그것을 둘러싼 발칸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든가 지정학적 균형체제가 무너진 틈을 타고 발칸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가 긴밀하게 얽히면서 확전 메커니즘이 생겨나게 된다. 이 모든 사태들을 이 나라들을 중재할 수 있는 국제기구도 없었던 상황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제연맹이 발촉되었으나 그것 역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유엔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근본적인 세력은 미합중국이 억지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게 작동하는 것이지 만약 그것이 없다면 유엔도 그냥 유야무야 지나갈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하겠다. 그 다음에 " 그 매커니즘이 작동한 결과, 1914년 여름 발칸에서 시작된 분쟁이 5주만에 유럽 대륙을 집어삼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 한방이 갑자기 유럽 대륙을 집어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직접적으로는 3차 발칸전쟁, 그리고 그 앞서 있었던 제2차 모로코 위기, 그리고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이런 것들이 점점 불씨를 키워오다가 그 불씨를 확 퍼뜨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제5장 얽히고설킨 발칸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전세계적인 지정학적인 균형들이 얼마나 아슬아슬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이 부분이 정말 20세기가 내내 전쟁이었는데, 왜 20세기가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종의 샘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과정에서 100년이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아주 강력한 위력을 가진 제국이 또 등장해야만 이런 것들이 안정기에 들어서지 않겠는가. 현실주의 정치학의 관점에서 서서 보면 착한 일을 하는 강력한 제국이 있는 것이 사람이 덜 죽는 길이 아닌가 씁쓸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제5장 384 1912년과 1913년 두 차례 발칸전쟁의 여파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자국 남동쪽 주변부에서 새롭고 위협적인 상황에 직면했으며, 오스만 세력이 후퇴함에 따라 러시아 외교관들과 정책수립자들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전력적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대륙의 두 동맹 블록은 전례 없는 일촉즉발 국면으로 접어드는 발칸의 적대관계에 점점 깊이 끌려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발칸 무대의 분쟁과 유럽 체제의 지정학이 긴밀하게 뒤얽히게 되면서 일군의 확전 메커니즘이 생겨났다. 그 매커니즘이 작동한 결과, 1914년 여름 발칸에서 시작된 분쟁이 5주만에 유럽 대륙을 집어삼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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