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신의 바라봄

 

신의 바라봄 - 10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지음, 김형수 옮김/가톨릭출판사

머리말
약어표
일러두기

제1부 쿠자누스의 사상 해제
제1장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생애
제2장 쿠자누스의 신비주의 사상
제3장 저술에 대한 배경
제4장 『신의 바라봄』에 대하여

제2부 라틴어 원문 번역과 역주
신의 바라봄(De visione Dei)
헌사
서문
제1장 ~ 제25장

제3부 라틴어 원문
De visione Dei

참고 문헌
역자 후기
지은이 소개
옮긴이 소개

 


제12장 보이지 않는 자가 보이는 곳에서 어떻게 창조되지 않은 자가 창조되는가

주님, 당신은 때때로 모든 피조물에게 보이지 않는 분으로 당신을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무한히 '숨어계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무한성은 그 어떤 파악의 방식으로도 파악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분으로 당신을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이 어떤 것을 바라보는 한에 있어서만, 그것은 존재합니다. 만일 어떤 것이 당신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이 바라보는 것은 당신의 본질이기에, 바라봄에 의해 존재가 부여됩니다. 


이렇게 나의 하느님, 당신은 볼 수 없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볼 수 있는 분이십니다. 당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당신은 볼 수 없는 분이시며, 피조물이 당신을 보는 한에서만 당신이 피조물에 대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당신은 볼 수 있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볼 수 없는 저의 하느님, 당신은 모든 이들과 모든 눈길에서 보게 됩니다. 바라보는 모든 자는 당신을 볼 수 있는 모든 것에서, 그리고 모든 바라봄의 행위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냐 당신은 보이지 않는 분이기에 이러한 모든 바라봄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무한하게 고양됩니다.


그러므로 주님, 저는 당신을 찾을 수 있는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바라봄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하지만 장벽은 모든 것인 동시에 무(無)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모든 것인 동시에 모든 것의 무이신 분으로 계신 당신은 그 어떤 인간의 정신도 고유한 능력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그토록 높은 장벽 안에 거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당신은 모든 것을 되비추는 살아 있는 거울처럼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신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당신의 바라봄은 아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모든 것을 당신 안에서 '살아 있는 거울'처럼 보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아는 것은 사물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당신은 당신 자신을 바라보는 어떤 힘처럼 모든 것을 당신 안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이것은 마치 나무 씨앗의 능력이 자신을 볼 때, 나무를 자신 안에서 자기 능력의 가능성에 따라(in virtute)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씨앗의 능력은 나무가 현실적으로 될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 자신과 당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이 마치 어떤 능력인 것처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은 저에게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 능력의 잠재력에서 어떤 나무를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나무를 보는 것과는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당신의 무한한 능력이 거울과 씨앗의 비유를 넘어서 있을 뿐만 아니라 비춤과 되비춤, 원인과 원인으로부터 나온 것의 합치도 넘어서며, 더 나아가서 이 절대적인 능력이 절대적으로 바라봄이라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러한 바라봄은 완전성 자체이며, 바라봄의 모든 방식을 넘어섭니다. 왜냐하면 저의 하느님, 바라봄의 완전성을 분명하게 하는 모든 방식들은 특정한 방식에 구애됨 없이, 당신의 본질인 당신의 바라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주님, 당신의 미소한 피조물이 아직 더 당신에게 말을 걸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바라봄이 당신의 창조이며, 당신이 당신과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당신 자신의 대상이라면, 당신은 실로 바라보는 분이며, 볼 수 있는 분이며, 바라봄(자체)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당신과 다른 것들을 창조한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당신 자신을 바라보듯이, 당신 자신을 (피조물의 형태로) 창조하셨을 것입니다.


창조하는 것과 창조되는 것이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비록 창조하는 것과 창조되는 것이 합치되는 장벽인 '불합리의 장벽'이 제 앞에 버티고 서 있더라도, 당신은 저를, 제 정신의 생명을 위로해 주십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기 전에 그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창조되기 때문에, 그것은 존재하며, (동시에) 어떤 것이 창조되기 때문에, 그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점이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창조는 당신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창조하는 것이 동시에 창조된다는 것은 당신이 당신의 존재를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닙니다. 이로써 당신은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으로 계시지만, 그럼에도 전적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로 부르는 것은 무에게 존재를 나누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부름은 창조이며, 존재를 나누어 주는 것은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함과 창조됨의 이러한 합치의 저편에 절대적이며 무한하게 계신 하느님이신 당신은 창조하지도 창조될 수도 없는 분이시며, 당신이 계시기 때문에, 있는 모든 것도 존재합니다.


당신의 풍요는 깊어서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제가 창조주를 창조하는 분으로 파악하는 한, 저는 아직 천국의 장벽 이편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창조주를 창조할 수 있는 분으로 파악하더라도 아직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단지 장벽 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창조하는 창조의 이름에도, 창조할 수 있는 창조주라는 이름에도 적합하지 않은 당신을 절대적 무한성으로 바라본다면, 저는 당신을 숨어계시지 않은 분으로 쳐다보고 '희열의 정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결코 말할 수 있거나 파악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무한히 넘어서, 절대적으로 고귀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당신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되지 않거나,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창조주가 아니라 창조주보다 더 무한한 분이 십니다. 무한한 영원성을 통해 당신에게 찬미와 경외가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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