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02 제1강(1) 길가메쉬 서사시

 

2023.03.14 문학 고전 강의 — 02 제1강(1) 길가메쉬 서사시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1강(1)
사천 년 전이라는 시대와 고대 수메르 지역이라는 맥락
서사시의 주제와 전개, 그리고 내용이 그 서사시가 생겨난 배경이 되는 문명의 성격과 상응하는 정도
문화적 태도나 세계관의 차이를 이해하고자 할 때 지리적 여건에 관한 이해가 반드시 요구되는 까닭

 

오늘 《문학 고전 강의》는 제1강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기 시작하겠다. 목차를 보면 《길가메쉬 서사시》는 5번 강의를 했던 것으로 되어있다. 1강부터 5강까지가 《길가메쉬 서사시》이다. 각각의 챕터에는 장제목이 있다. 그리고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제1강 불멸을 향해 나아간 인간의 귀결, 제2강 도시를 세운 정치적 영웅, 길가메쉬, 제3강 사적인 욕망을 함부로 충족시켰던 길가메쉬, 제4강 엔키두와 함께 세속적 야망을 성취하려 했던 길가메쉬, 제5강 친구의 죽음 이후 구도자의 여행을 떠났던 길가메쉬이다. 《길가메쉬 서사시》를 다섯번에 걸쳐서 논의를 하는데 첫번째 논의의 제목에는 사람이름이 안들어간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주제로 상정한 것이다. 문학작품이니까 정했다고 말하기는 어렸고 상정한 것이다. 그 다음에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제6강의 제목이 자기만의 것을 찾기 위한 겪음, 그리고 7강은 텔레마코스, 8강, 9강은 오뒷세우스, 10강은 제10강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이다. 그 다음에 구약 성서 <욥기>는 신의 전지전능과 인간 도덕의 한계이다. 이런 식으로 각각의 텍스트에 관한 강의가 많게는 여섯개, 적게는 세개가 있는데 첫번째 챕터 제목에 작품의 주제라고 상정하는 것들을 적어두었다. 일정한 정로로 구조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럼 다시 《길가메쉬 서사시》로 오면 제목은 불멸을 향해 나아간 인간의 귀결로 되어있으니까 예상을 한 번 해보자. 길가메쉬 가 불멸을 향해 나아갔다는 얘기겠다. 그렇다면 결론에서 길가메쉬 가 불멸을 얻었을까. 이 제목으로부터 불멸을 성취했을까 그건 아니겠다. 불멸을 성취한 인간 이렇게 했을 것이다. 불멸을 시도했으나 그도 결국에는 이러이러한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안 좋은 귀결에 이르렀을까 또는 그런대로 용인되는 귀결에 이르렀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문학품은 논리적으로 추론되지 않기 때문에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굉장히 곤혹스럽다. 인간이 철학책을 보면 인간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이런 생각만 들고 역사책이나 문학작품을 보면 사람은 결과를 알 수 없는 끝을 알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예전에 20대 무렵에 빨리 오십 살이 되고 싶었다. 그 무렵만 해도 오십 살이 되면 얼추 노년에 들어설 것이고 그 시기에는 그 정도 살았으니, 그때부터 10~15년 정도 살면 죽으니까 빨리 오십 살이 되고 싶었는데 그때는 파토스라는 말을 몰랐기 때문에 파토스라는 말로 표현을 못했다. 파토스와 로고스의 대립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로고스적인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로고스적 인간이 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파토스라는 말은 사실 겪는다는 것인데, 조금 좁은 뜻으로 쓰면 쓰라림이다. 격정, 나도 알 수 없는 어떤 비논리적인 격정들을 없애는 것, 소극적으로 그 정도이고 적극적으로는 로고스적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살아 생전에 이루지는 못할 것 같았다. 죽을 때에야 잠깐 죽기 전에 열흘 정도 잠깐 로고스적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서 빨리 오십 살이 되면 그때쯤 되면 그러니까 20대에서 30년 정도 더 살면 겪을 것 다 겪고 더 이상 겪을 것이 없으니 화나지도 않고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슬픔도 없고 서러움도 없고 쓰라림도 없는 그런 마음의 상태가 되지 않을까 그것을 아주 소극적인 의미에서 평정의 상태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장래의 뭐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그런 심정적인 아주 소극적인 의미의 파토스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막상 50살에서 10년이 더 지났는데도 가끔 파토스가 생겨나는 것을 보면 글러먹은 것 같다. 그냥 아무런 그런 것 없이 살아야하는데 잘 안된다. 가끔 뭔가를 바라기도 하고 가끔 서운해하기도 하고 또는 아쉬워 하기도 하고 뭔가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늘 그렇다. 《길가메쉬 서사시》가 되었건 《오뒷세이아》가 되었건 《문학 고전 강의》를 위해서 선택한 텍스트들, 키에르케고르도 읽었던 것 같은데 키에르케고르는 설명하기가 곤란해서 빠졌다. 어쨌든 이 작품들은 이것만이 아니라 맥베스, 팡세, 파우스트, 모비딕 이런 작품들은 쓰라린 고난을 겪는 인간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면 그냥 고요하고 잔잔해져서 실컷 두드려 맞아서 뭐가 없어져버린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래서 일종의 센티멘트, 정조情調라고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고 약간 싸구려 감상이다. 고급스러운 어떤 심정의 상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1강 불멸을 향해 나아간 인간의 귀결을 보면 "《길가메쉬 서사시》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 호메로스보다도 천오백 년 전 그러니까 지금부터 사천 년 전, 사천 년 전과 삼천년 전이 구별이 되는가 잘 안된다. 그냥 지금은 일 년도 굉장히 지겹게 가는 시기인데 아주 오랜 전의 천 년 사이는 훌쩍 뛰어넘어 갈 정도로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는 변화의 속도가 느렸고, 천년 전이나 별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짐작은 하지만 막상 당시의 사람들은 어땠을까. 그 사람들은 시간은 개념적 원리니까 머릿속에 그런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지금 오늘 어떤 파토스가 불같이 생겨나고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천오백 년 전의 일 이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겠다. 읽어보면 아는 얘기인데 23페이지를 보면 "지금부터 사천 년 전이라는 시대와 고대 수메르지역이라는 맥락",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문학작품을 읽어나갈 때에도 시간(시대)과 공간, 이 둘을 묶어서 맥락이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똑같은 얘기라고 해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또 《길가메쉬 서사시》라고 하는 것을 어떤 한 사람이 고독한 방 속에 앉아서 창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섣불리 짐작을 해보자면 집단창작이었을 수도 있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대와 공간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면 집단적으로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만한 그런 정서 상태 그런 것들이 이 시대와 공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다. 오늘날에는 일반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는 아주 독특한 심정적 경험, 정서적 경험 그런 것들을 이렇게 소설로 써서 출간을 해도 사람들이 읽는다. 그것은 뭐냐면 문학작품 시장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니까 거기서 어떻게 해서든지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당시에는 그런 것이 없다. 따라서 사람들이 누구나 다 수긍할 만한 이야기들을 서사시로 만들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학작품을 읽을 때도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 떼어내서 읽는다기보다는 그것을 먼저 분석하는 것이 작품을 잘 읽어내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문학작품을 읽을 때 나의 감상을 남들과 나누기는 어렵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도 그것이 만들어진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먼저 파악하고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인간의 행위가 진행되었고 또 그런 행위의 산물로 어떠한 문헌들이 또는 문학작품이 나왔는가를 생가해보는 것이 아주 정상적인 또는 상식적인 추론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학작품을 공부하는 데도 우리가 반드시 기초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볼 때 지리이다. 지리, 공간과 시간을 다루는 역사. 즉 지리와 역사라고 하는 것은 기초 중의 기초. 그리고 공간과 시간은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공간이라는 범주와 시간이라는 범주를 가지고 뭔가를 파악해서 그 둘의 교집합을 만들어 내거나 또는 그 둘을 결합시켜서 시대의 전체를, 사실 시대라는 말은 시간이라는 말보다는 범위가 넓다, 그 시대 그러면 예를 들어 한국에서 1990년라는 시대 그런 말들이 꼭 시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때 시대는 아주 넓은 의미에서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시기에 무언가 우리에게 특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때는 시대, 시대정신이라고 한다. 시대정신이라든가 이런 것들의 논의는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고. 그렇다면 시대와 공간, 역사와 지리 이 두가지 과목은 정말 기초 중의 기초이다. 이런 것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야 공감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 문학작품을 읽을 때 《메소포타미아의역사》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1강 23 《길가메쉬 서사시》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사시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입니다. 호메로스는 서기전 8세기나 9세기의 사람으로 추정되며, 《길가메쉬 서사시》는 그보다 천오백 년 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1강 23 지금부터 사천 년 전이라는 시대와 고대 수메르지역이라는 맥락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읽는다 해도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수메르라 불리는 지역에서 생겨났다. 이 지역은 "《오뒷세이아》의 배경이 되는 에게 해 지역과 《길가메쉬 서사시》와 구약 성서 《욥기》의 배경이 되는 오리엔트 지역", 지리적으로 아주 다르다. 그래서 《길가메쉬 서사시》나 《욥기》를 읽다가 《오뒷세이아》를 읽어보면 이건 뭐 《길가메쉬 서사시》는 모르겠으나 《욥기》는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안나온다. 그런데 《오뒷세이아》는 계속 바다얘기가 나온다. 지리적으로 아주 다르다. 따라서 "오리엔트 지역에는 사막과 거친 들판이 펼쳐진 육지가 있고 강들 사이에 농지가 있습니다." 에게 해는 바다이다. 따라서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는 계속 바다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곳에서 생겨난 "문명의 성격도 크게 다릅니다. 이러한 문명의 차이가 《오뒷세이아》와 《길가메쉬 서사시》라고 하는 두 서사시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서사시의 차이'라고 하는 무엇인가. "서사시의 주제와 전개, 그리고 내용이 그 서사시가 생겨난 배경이 되는 문명의 성격과 온전히 상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서사시를 읽을 때에는 어느 정도 이러한 배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문화적 태도나 세계관의 차이도 여기서 우리가 추측해 낼 수 있다. 가까운 이웃이 일본이라는 나라이다. 그리고 고생물학자 또는 유전학자 이런 사람들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일본인과 한국사람들이 가장 유전적으로 친화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사람과 한국사람들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주 문화적인 차이가 굉장히 크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는 거기서 거기라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있을까. 바로 일본이라고 하는 지리적 상황과 한반도라는 상황이 다르고 그 다음에 기후가 다르고 그런 것을부터 그 사람들이 형성해 놓은 정치적인 체제라든가 또는 사회적 관습이라든가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일본에는 《겐지 이야기》가 있고 우리는 그런 스타일의 얘기는 별로 없다. 아주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우리나에서는 귀신 이야기가 귀신이 사람 사는데 나타난다. 원한이 있는데 풀어달라 이런 식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귀신은 분명히 저승세계에 있지만 그들이 사는 영역을 건너와서 사람이 사는 곳에 와서 요즘의 용어로 말하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일본은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귀신 이야기가 없다.  귀신이 사람한테 오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사는 영역이 있다. 그리고 인간이 그 영역을 넘어가면 사람이 죽는다. 그런 것처럼 문화적 태도와 세계관의 차이일텐데 그런 것들이 반드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1강 24 《길가메쉬 서사시》는 방금 말했듯이 '수메르'라 불리는 지역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제1강 24 고대 세계에서 핵심이 되는 지역들은 다음에 우리가 읽을 《오뒷세이아》의 배경이 되는 에게 해 지역과 《길가메쉬 서사시》와 구약 성서 《욥기》의 배경이 되는 오리엔트 지역입니다. 이 두 지역은 지리적으로 아주 다릅니다. 에게 해는 바다이며, 오리엔트 지역에는 사막과 거친 들판이 펼쳐진 육지가 있고 강들 사이에 농지가 있습니다.

제1강 24 이렇게 지리적 여건이 다른 만큼 각 지역에서 생겨난 문명의 성격도 크게 다릅니다. 이러한 문명의 차이가 《오뒷세이아》와 《길가메쉬 서사시》라고 하는 두 서사시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제1강 24 서사시의 주제와 전개, 그리고 내용이 그 서사시가 생겨난 배경이 되는 문명의 성격과 온전히 상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서사시를 읽을 때에는 어느 정도 이러한 배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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