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04 제1강(3) 길가메쉬 서사시

 

2023.03.21 문학 고전 강의 — 04 제1강(3) 길가메쉬 서사시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1강(3)

* 서사시의 구조
다섯 부분, 즉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둘러싸인 본문 세 부분.
각 부분의 마지막 장은 결절점結節點, 즉 앞의 내용을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이어지는 부분의 내용을 암시

 

오늘 《문학 고전 강의》 제1강 세번째 시간이다. 세번째 시간에는 이 서사시의 구조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책으로 치면 28페이지에서 33페이지까지이다. 분량이 얼마 안되는데 서사시를 읽는다고 할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려해야 될 구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이 설명은 《길가메쉬 서사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서사시에 해당하는 것이고, 거의 모든 서사시에 해당한다는 말은 다르게 보면 이 서사시라고 하는 것이 아주 아주 오랜 옛날의 일종의 단발성의 외침 그런 기록들 또는 설화 이런 것들이 아니라 하나의 여러 사람들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그런 것들을 가다듬어서 하나의 일관된 형식으로 만들어서 통용되기 시작한 최초의 것이다 라고 한다면, 이 서사시의 형식은 즉 이 서사시를 구조화하는 방법, 어떤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방법으로서의 이 서사시의 구조는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형식이기 때문에 그냥 낡아빠져서 지금은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게 우리에게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구조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가장 익숙한 형식일 수 있는 것이고, 이것에 따라서 이 구조에 따라서 이야기를 배치하고 이 구조에 따라서 이야기를 조직하고 짜맞추고 하는 것은 가장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규칙'이 아니라 '사용'이다. 즉 usage이다.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 오랜 세월동안 사용되었기 때문에 바로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이 구조를 잘 기억해 두는 것이 호메로스의 서사시, 그리고 단테의 신곡과 같은 중세의 서사시, 더 나아가서 잉글랜드 르네상스의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읽는 그럴 때도 이 방식이 우리가 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문학 고전 강의》에서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조금 더 엄밀하게 《길가메쉬 서사시》가 23개의 챕터로 이루어졌다. 점토판으로 1번부터 23번까지 매겨져 있는데 첫번째가 영웅 길가메쉬 왕이다. 이 책에서는 1번부터 5번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만남까지를 서사라고 하고, 그 다음에 6번에서 15번까지를 죽음과 불멸, 그 다음에 16번부터 21번까지를 불멸과 영생, 그 다음에 마지막 왕의 귀환과 길가메쉬의 죽음을 에필로그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4개로 나눈 것이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의 서사, 프롤로고스는 첫번째 챕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5개로 나누는 셈이다. 억지를 부리는 것 같지만 사실 억지가 아니다. 이렇게 다섯으로 나누는 것이 서사시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하다. 즉 다섯으로 나누는데 제일 앞에 서사가 있고 그 다음에 헬라스 비극에서는 엑소더스라고 부르는 퇴장가,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는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중요한 내용이 세 덩어리가 있는 셈이다.  

 

지금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쓰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항상 다섯 단락 글쓰기 형식을 정해주었었다. 우리가 뭔가를 배운다, 익힌다 할 때는 일단 오늘날까지 어떤 학문 세계에서 이루어진 규칙들이라는 것이 있다. 그 규칙이라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할 철칙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그런 방법을 사용했을 때 대체로 잘 되더라 하는 누적된 사용에 의해서 확립된 하나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학습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왜 다섯 단락 글쓰기를 지켜야 한다고 하는가. 그것은 서사시에 나온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도 그렇고 다섯개로 나누는 것이 일단 공부하기가 편하다. 그리고 그렇게 대체로 나눈다. 그렇게 한 것들이 사람들 사이에 통용된다. 그러니까 다섯개로 하는 것이 좋고 그런 패턴을 익혀서 뭔가를 해놓았을 때 스스로도 구조화가 되는 것이다. 달리 읽는 것을 막겠다는 것은 아닌데 일단 형식적으로 다섯개로 나눈다고 하는 이 구조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읽어보고 《길가메쉬 서사시》는 다섯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일곱으로 나눠야 해 라고 하는 것을 개선해서 또는 창의적인 방법을 내놓을 수 있다. 일단 다섯으로 나눠보겠다. 

 

서사 또는 프롤로그는 "1. 영웅 길가메쉬 왕" 부분이다. 헬라스 비극에서는 이 서사를 프롤로고스라고 한다. 말 그대로 맨 앞에 나오는 얘기이다. 그리고 헬라스 비극 읽을 때도 이야기하겠지만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프롤로고스 안에 전체의 얘기가 함축적으로 다 들어있다. 다섯 단락 글쓰기를 하라고 할 때 첫째 문단을 문장 세 개로 구성하라고 한다. 그러면 문장 세개가 이어지는 문단 세 개의 내용을 그 문장 세 개로 집약해서 갖고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첫째 문단이 프롤로그이고 그 프롤로그 안에 본문의 내용이 집약해서 들어가 있다. 그러면 급할 때는 그것 하나만 읽으면 된다. 《The One Page Proposal》라는 책이 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그책을 읽고 제안서 쓰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했고 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권하기도 했었는데 《The One Page Proposal》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되어있다. 경영학자들이 궁리한 것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오래된 방법이다. 그런 다음에 서사 부분을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데 지금 《문학 고전 강의》에서는 2. 엔키두의 창조, 3. 엔키두의 개화, 4. 길가메쉬의 꿈, 5.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만남 이렇게 이어지는 네 개의 챕터도 서사에 해당한다. 그런데 "1부터 5까지가 넓게 보아 서사인데 1은 아주 분명하게 서사이고 다른 네 장도 서사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부터 5까지는 같은 서사이기는 하지만 서사시의 시작을 알리면서 동시에 엔키두와 길가메쉬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정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만났을 때 생겨나는 것이니까 가까운 범위에 있는 것이다. 가령 6~15장은 죽음과 불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죽음과 불멸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불멸과 영생, 인간의 유한함 이런 것들은 죽기 직전까지도 우리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더 살고 싶은데 하면서 아둥바둥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정이라고 하는 것은 가깝다. 그러니까 2~5장까지가 우정이고, 6~15장까지가 죽음과 불멸이고, 16~21장이 불멸과 영생인데, 우정, 죽음과 불멸, 불멸과 영생 이런 것들은 뒤로 갈수록 서사시가 전개되어 갈수록 좀 더 추상적인 범위로 또는 추상적인 범주로 주제가 확장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 직접적으로 인간을 만났을 때 가질 수 있는 우정에서 죽음과 불멸, 불멸과 영생 이렇게 추상화되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직접적인 얘기에서 추상적인 얘기로, 현실적인 것에서 추상으로 그리고 추상을 나중에 다시 현실적인 것으로, 즉 추상과 구체를 오고 가는 것들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각각의 부분이 첫번째 부분은 책에서 설명 나온 것과 같이 서사로 잡고, 2~5장을 우정으로 잡는데 5장의 부분이 우정이 끝나는 부분이고, 6~15장, 15장이 엔키두의 죽음이다. 그 다음 21장이 우트나피쉬팀의 홍수 이야기이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만남이라고 하는 5장, 즉 각각의 부분이 끝나는 지점을 우리는 결절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은 맺는다는 것이고, 절은 나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면서 그 마무리가 동시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열어놓는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5장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만남은 길가메쉬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친구를 만났으니 세상에 두려움이 없고 나댄다. 휘브리스, 오만함을 발휘하고 그런다. 그렇게 하다가 15장에 가면 엔키두가 죽는다. 그러면 갈가메쉬가 멈칫하는 것이다. 멈칫하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게 무엇인가, 도대체 나와 친구의 우정과 힘만 있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엔키두가 죽었다. 지금까지 이야기, 즉 6~14장까지의 이야기가 엔키두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면서 뭔가 불멸에 대해서 생각해봐야겠네라고 하는 새로운 전개를 펼쳐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5개 부분으로 나눌 때 각각의 부분의 마지막 챕터는 항상 다음 이어지는 주제를 연다. 지금까지의 주제를 마루리하고 정리하면서 동시에 이어지는 주제를 열어준다 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에 21장도 우트나피쉬팀의 홍수 이야기를 듣고 와서 불멸에 대한 갈망을 가라앉히고 인간의 유한성을 뼈져리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전에는 불멸을 찾아 떠났는데 그것의 귀결은 불멸은 없다, 인간은 유한하다. 그래서 에필로그가 두 부분으로 이어져 있다. 하나로 묶어도 되는데 둘로 나눈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왕의 귀환,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이 바로 22장, 그 다음에 길가메쉬의 죽음과 더불어 영원한 도시에 대한 찬양이 이어진다. 인간은 죽는다. 인간은 유한하다. 그러나 인간이 영원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세운 객관적인 실체, 즉 영원한 도시가 있으면 된다는 얘기로 마무리된다. 이런 것은 셰익스피어 드라마가 5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런 것을 봐도 다섯개로 짜여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앞 뒤로 가지고 있고 중간에 세 덩어리가 있는, 그런 것으로 이루어진 서사시의 구조라고 하는 것이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도 쓰는데 우리가 안 쓸 이유가 없다.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그 중간 세 덩어리가 중요한데 각각은 맨 마지막 챕터에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집약하고 뒤에 이어지는 부분을 연다. 일단 그것을 눈으로 봐야한다. 구조, 뼈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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