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06 제2강 길가메쉬 서사시

 

2023.03.28 문학 고전 강의 — 06 제2강 길가메쉬 서사시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2강

서사의 내용. 서사와 에필로그의 수미일관성
길가메시의 삶의 기록이면서 불멸의 도시에 대한 찬양

 

지난 토요일에는 서사시라는 것에 대해서 말했었다. 서사시가 문학에 가장 오래된 원천이라고 하는 것은 전해진 이론은 아니지만 대체로 보아서 지금 《문학 고전 강의》에서 해설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체로 산문들이기 때문에 산문들의 출발점은 서사시라고 할 수 있으므로 지난 번에는 서사시에 관한 생각을 말해 보았다. 《길가메쉬 서사시》, 길가메쉬의 이야기이다. 길가메쉬 개인의 역사이고, 개인의 이야기이고 지금 서사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사시는 서사시의 제1장 그러니까 서사가 서사시 전체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냥 이렇게 꾀를 부린다면 서사시를 읽었다 라고 한다면 서사만 열심히 읽어도 서사시 내용 전체를 집약해서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없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서사시를 읽을 때는. 그리고 저는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가 어떤 감동을 얻고자 읽는다기보다는 텍스트를 읽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대개 철학책은, 요즘은 그렇지도 않지만,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첫머리를 읽으면 이게 논리적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가서 어떤 귀결에 이를 것인가가 짐작이 되는데 문학 작품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래도 그 안에 문학 작품 나름대로의 고유한 논리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파악해내고 이해하는데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노력을 귀울이다 보면 텍스트를 읽는 훈련이 되고, 그렇게 텍스트를 읽는 훈련함으로써 우리가 글을 좀 더 잘 읽을 수 있는 그런 지혜를 터득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문학 작품을 읽는다. 그런데 본다면 문학 작품 하나 하나를 곰곰이 따져가면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그리고 앞뒤로 연결되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 이런 것을 따져가면서 읽는 것이 문학 작품을 분석적으로 읽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광할한 땅 위에 있는 모든 지혜의 정수를 본 자가 있었다." 보았다는 단어, 모든 지혜의 정수를 본 사람, 길가메쉬는 그런 사람이다. 첫 문장에 길가메쉬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오뒷세이아》의 첫문장은 한국어 번역본은 "들려주소서, 무사의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인데 헬라스 원문으로는 "그 사람에 대해 들려주소서”, 《오뒷세이아》 제1권의 1행부터 10행 사이에 오뒷세우스에 대해서 다 얘기를 했다.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도 1행부터 "모든 지혜의 정수를 본 자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고난을 돌기둥에 새긴 그는"이라고 했다. "머나먼 여행길을 다녀와 매우 지쳐 있었으나 평온이 찾아들었다." 여기까지가 사실은 길가메쉬에 대해서 전부 다 이야기하고 평온이 찾아들기 전에 "자신이 겪은 고난을 돌기둥에 새긴 그는", 여기서부터 그가 겪은 고난에 관한 이야기이다. 결국 본 자가 있었다. 모든 것을 경험했으므로, 모든 것에 능통햇던 자가 있었다. 이 정도까지만 해도 길가메쉬에 대해서 충분히 서술했다고 보는 것이다. 《길가메쉬 서사시》를 한 사람이 썼다고 가정하면. 그런데 "모든 지혜의 정수를 본 자"를 펭귄 클래식 영문을 보면 "He who saw the Deep"이라고 해서 Deep이 대문자로 되어있다. 모든 지혜의 정수를 영역본에서는 the Deep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심오한 것, 깊은 것을 본 자. 모든 것을 본 사람. 모든 것을 보았다는 것은 우리가 그냥 흘깃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문장들에서 "본"이라는 단어를 풀어서 다시 알고 있었고, 경험했고, 능통했다 고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은 무엇인가, 신들 만의 숨겨진 비밀, 신비로운 베일, 홍수 이전에 있었던 사연 그런 것이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을 어떤 과정을 통해서 알고 있었나, 머나 먼 여행길을 통해서이다. 로드무비 같은 것이다. 길가메쉬는 머나 먼 여행길을 다녀왓다. 그 머나 먼 여행길에서 숨겨진 비밀, 신비로운 베일, 홍수 이전에 있었던 사연을 알았다. 알았다는 것이다. 본 것, 알고 있는 것, 경험했던 것 이것들이 바로 고난의 내용이다. 글을 쓸 때 이렇게 써야할 것 같다. 첫 문단에 그 책이 가지고 있는 모든 내용을 집약해서 한번 써볼까 하는데 결국 위대한 서사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는 없을거라 지레 좌절해 버린다. 그렇게 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시도는 해봤는데 쉽지 않다. 

제2강 34 광활한 땅 위에 있는 모든 지혜의 정수를 본 자가 있었다.

제2강 34 서사시의 첫째 부분인 여기에 서사시 내용 전체가 들어 있습니다. 먼저 길가메쉬에 묘사합니다. 그는 "모든 지혜의 정수를 본" 사람입니다. 이어서 그가 모든 지혜를 어떻게 얻었는지 말합니다. "머나 먼 여행길"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가 한 행위를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난을 돌기둥에 새"겼습니다. 그렇게 돌기둥에 새긴 것이 바로 이 서사시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 이후부터 서사시 끝까지는 그가 돌기둥에 새긴 내용일 것입니다.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만이 아니라 “그 남자에 대해서 들려달라”고 《오뒷세이아》는 시작하고, 《일리아스》는 "분노를 노래하소서, 시의 여신이여"라고 했으니 아킬레우스의 분노이다. 그게 주제이다. 그래서 이렇게 전해줄 때, 들려줄 때 그 주제를 제일 먼저 얘기한다. 그러면 듣는 사람이 지금부터 길가메쉬가 가지고 있던 지혜의 정수를 우리에게 들려주겠구나, 그런데 그 정수는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것이고, 그 정수의 내용은 신들만이 가지고 있던 비밀, 심지어 홍수 이전에 있었던 일들까지도 알고 있구나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길가메쉬가 자신이 겪은 일을 돌기둥에 새겼다는 것이다. 돌기둥에 새겼다는 얘기는 오뒷세이아나 일리아스에는 없는 얘기이다. 돌기둥에 새겼다는 것이 굉장한 문학의 기원이 된다. 어딘가에 새겨서 우리에게 남겨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면 《길가메쉬 서사시》의 서사만 분석해봐도 여기서 우리는 문학은 여기서 기원한다라는 하나의 입론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뭐냐, 길가메쉬가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성벽을 세운 것이다. 우르크에 한껏 뻗은 성벽을 세웠다는 것이다. 성벽을 세웠다는 것은 도시를 상징하는 것이다. 도시라고 하는 것에 대한 애정 그런 것들은 서양문학에서 많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문학에는 도시를 찬양하는 문학은 없다. 오히려 자연의 푸르름을 또는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안빈낙도 그런 것을 찬양하고는 있지만 한양 도성에 대한 찬가 이런 것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얘기는 못들어 본 것 같다. 그런 것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런데 도시에 대한 찬가는 유독 우리는 없다. 그런데 《길가메쉬 서사시》가 가장 오래된 서사시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 서사시 자체도 일종의 도시에 대한 찬가이다. 그게 이제 수메르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서구 세계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문학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 도시를 찬양하는가. 인간이 유한한 생명이기 때문에 그 유한한 생명을 뼈저리게 깨달은 다음에는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도시를 찬양함으로써 자신이 그 도시에 뭔가를 투사하고 그 도시로부터, 자신이 도시를 세운 업적을 남김으로써 그 도시가 영원할 것을 기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도 그 도시에 기대어서 영원할 것을 바라는 마음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도시에 대한 찬양이 이 서사에 분명히 있다. 이 우르크의 규모가 어떠하다, 굉장히 멋진 곳이다, 그런데 이 서사시 전체를 읽어보면 맨 마지막에도 왕의 귀환을 보면 우르크의 규모에 대해 찬양하는 얘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길가메쉬 서사시》 역시 시작과 끝이 다 도시에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보면 원환구조ring composition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이 서사시가 《길가메쉬 서사시》에 대한 찬양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가 세운 도시에 대한 찬양이라는 것을 아주 뚜렷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길가메쉬 서사시》는 길가메쉬 개인의 역사 Geschichte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큰 구조에서 보면 유한한 인간인 길가메쉬가 아니라 불멸하는 도시에 대한 찬양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이 《길가메쉬 서사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특징의 아주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하겠다. 제2강에서는 그런 점들을 유념해서 가볍게 읽을 수도 있겠다. 

제2강 349 서사에 나온 도시에 대한 찬양이 에필로그에 다시 나옵니다. 서사시가 수미일관 구조로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이 서사시가 길가메쉬에 대한 찬양이기도 하지만, 그의 삶 자체에 대한 찬양이라기보다는 그가 세운 도시에 대한 찬양임을 알게 해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