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03 제1강(2) 길가메쉬 서사시

 

2023.03.18 문학 고전 강의 — 03 제1강(2) 길가메쉬 서사시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1강(2)
* 서사시가 산출된 환경과 기본정서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을 것, 안정된 정치체제가 오래도록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
비관적 정서와 그에 이은 인간 자신의 유한성에 관한 뼈저린 자각. 오만했던 길가메쉬가 불행을 겪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고 신들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은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일종의 이상적 사례를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부분과 전체의 해석학적 순환의 문제
전체를 대강이라도 알지 못하면 부분을 잘 이해할 수 없으나 그 전체는 부분을 이해한 다음에야 형성될 수 있다. 이는 우리를,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하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 않다.

 

오늘 《문학 고전 강의》 제1강 두번째 시간이다. 지난 번에 문화적 태도나 세계관의 차이를 이해하고자 할 대는 지리적 여건에 관한 이해가 반드시 요구된다고 얘기했다. 지리적 여건이라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되겠다. 그리고 지리적 여건도 중요하지만 지리 속에 살아온 사람도 각기 다르다. 인간이라는 종은 생물학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문화적인 것에 의해서 굉장히 많이 변화하는 그런 종이다. 가소성이 있다. 변화할 수 있는 가소성이 있다. 어떤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서 생물 종도 신체적으로도 변하는데 인간은 문화적으로 굉장히 변한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우리가 한반도에 살고 있는데 우리는 그래도 신라의 삼한 통일 이후로 대체로 676년 이후로 우리는 천 년 넘게 거의 단일한 한반도에서 단일하게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사투리는 있을지라도 한국어라고 하는 것이 표준적인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다. 지역의 언어가 굉장히 다르다고 해도 결국 의사소통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 지역어만 이용한다 하면 잘 안될 수도 있게지만. 그런데 같은 반도 국가이지만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우리와 비슷하다. 6천만이니까 우리보다 인구는 조금 많지만. 그런데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서로마제국이 4백년대 멸망한 이후로 이탈리아는 1860년대와서 이탈리아 왕국이 통일되고 1946년에 왕이 없어졌다. 그러면 지금 현재 이탈리아라고 부르는 지역은 170년 정도 되었다. 그러면 그 전에는 이탈리아라는 지역은 굉장히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어라고 하는 것이 그 나라의 공용어지만 사실상 이탈리아는 사투리는 아마 백 개도 넘을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라고 하는 나라의 언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아마 최소한 두 자리 숫자는 될 것이다. 이탈리아 통일이 왜 그렇게까지 어려웠는가 하는 것이, 더군다나 지금도 나폴리 경기를 했던 아탈란타는 지금도 적대적이다. 최근에 타폴리에서 축구 경기가 있었는데 프랑크푸르트 관중들을 난리가 날까봐 입장을 못하게 했더니 프랑크푸르트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와서 나폴리 시내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폭동을 일으키는데 크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아탈란타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 정도의 일이 있을 수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만큼 지역감정이 서로 어떻다고 해도 그렇게 못한다. 어쨌든 천 년 넘게 하나의 국가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문화적인 굉장히 차이가 크다. 그러면 나폴리 같은 경우는 《나폴레옹 세계사》를 읽어봐도 나폴리, 시칠리아 왕국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별개의 사람들이다. 아마 이탈리아 리그에서 나폴리 축구 팀이 우승을 한 것이 1980년 대 말일 것이다. 그때 이후로 한번도 안했으니 축구를 가지고 뭔가를 해보겠다는 것이 참 골치 아프다. 

 

여하튼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얘기할 때 지리적 여건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요구된다고 하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지역에서 자연환경이 어떠한가. 관개 농업이 오래 진행되었다 이런 것은 입문지리책에 기본적으로 나와있다. 그리고 자연적 환경이 풍요롭지 않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자연적 환경이 풍요롭지 않다는 것은 이 지역의 사람 정서는 비관적으로 기우는 경향이 생겨났다는 것을 일반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어보고 지난 시간에 말한 것처럼 《길가메쉬 서사시》가 그 지역 사람의 공통적인 정서를 담은 것이다 라고 전제하고 읽는다. 그런데 읽어보면 또 아닐 수도 있겠다 하는 것은 읽어본 다음의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서 전체와 부분의 해석학적 순화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일단 뭔가를 읽을 때 그것이 전체적으로 대략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애초에 읽고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것이 전체적으로 대략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이해하려면 사실은 부분 부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대략 전체적으로 어떠하다 라고 하는 전체의 대강을 알아내는 것이 어려운데 부분을 읽고 이해하려면 전체의 대강 정도는 알고 들어가야 부분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를 먼저 알수도 없고 부분을 먼저 알 수도 없고 하는 이런 난문에 빠지게 된다. 전체의 대강을 알 자니 부분을 알아야 한다 하고 또 부분을 제대로 알려면 전체를 대강이라도 알고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이것이야 말로 딜레마이다. 이것을 하자니 저것이 곤란하고 저것을 하자니 이것이 곤란한 그런 상황이다. 이것을 이제 해석학에서는 부분과 전체의 해석학적 순환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것은 읽어 본 사람들에게, 《길가메쉬 서사시》는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하는 자기 해석을 내놓은 사람들의 글을 읽고 어떤 하나의 입장을 취해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때 하나의 입장을 취할 때 그러면 여러 개의 입장이 있다. 해석이 1번, 2번, 3번이 있다고 할 때 어떤 해석을 먼저 취할 것인가. 그냥 일단 1번부터 해보는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그런 해석들 중에서 신빙성이 있는 것을 분별해내는 그런 방법이 하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대체로 사용하는 것이 시대적인 배경, 그러니까 문학작품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지리적인 배경, 시대적인 배경 이런 것들을 따져서 일종의 공통적 정서를 탐구해보려는 시도 그런 것을 한 것을 먼저 알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서 세계문학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보겠다. 《전쟁과 평화》를 읽는다고 하면 그냥 톨스토이, 러시아, 그렇게 읽고 이 구절이 감동적이네, 이것은 왜 이렇게 전개했을까 이런 것은 부분을 직접적으로 파고들어서 읽는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 작품이 이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끝나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굳이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시대가 어떤지 분석을 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라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문학 고전 강의》을 읽어나가면서 그런 식으로는 읽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톨스토이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는가, 작가에 대한 이해, 즉 작가론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 톨스토이가 살았던 시대의 러시아 제국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거기에 등장하는 장교들은 어떤 종류 사람들인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사고 방식은 무엇인가, 즉 지금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 당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인데 그런 것이 무엇인가. 즉 애써서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으로 톨스토이가 전제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살펴봐야 하는데 그런 것을 살펴보려면 막무가내로 작품을 열심히 읽는다고 나오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가 살았던 장소를 살펴봐야 한다. 시간과 공간을 묶어서 우리는 시대라고 하기로 했다. 따라서 《길가메쉬 서사시》를 잘 읽을 수 있으려면 일단 《길가메쉬 서사시》가 산출된 그 지역의 지리적인 여건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 그 지리적인 여건과 함께 그 여건 속에서 인간의 심성은 대체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가에 관한 일반론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25페이지의 "수메르 지역의 자연적 환경이 이러하다고 할 때 이 지역에 사는 이들의 기본적인 정서는 어떠할 지 생각해봅시다." 이것은 막연히 추론해서 한 것이 아니라 강의를 하면서 수메르의 역사라든가 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알아 낸 바를 강의하면서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자연적 환경은 무엇인가. 자연 환경이 주는 영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야만 했던 시대에 자연적 환경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서는 비관적인 것이고 그리고 비관에 이어 인간 자신에 대해 들여다볼 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의 기본적인 정서는 두 가지이다. 비관과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이 두 가지를 생각 할 수 있다.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쉽지 않다. 그리고 안정된 정치체제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인간의 삶 자체가 굉장히 도전적이고 고난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그런 까닭에 동시에 안정된 정치체제가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그런 곳에서의 기본적인 정서는 비관과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 등장할 것이다. 

제1강 25 기술이 발전하지 못하여 자연환경이 주는 영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야만 했던 시대에는 이러한 상황이 인간의 삶에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제1강 25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수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1강 25 수메르 지역의 자연적 환경이 이러하다고 할 때 이 지역에 사는 이들의 기본적인 정서는 어떠할 지 생각해봅시다.

제1강 25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는 비관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한 비관에 이어 인간 자신에 대해 들여다볼 때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 다음에 그런 것을 보면 일단 이것을 염두에 두고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길가메쉬는 처음에는 오만한 사람들로 등장한다. 굉장히 자신만만하다. 그런데 서사시의 목차를 살펴보고 다 읽어보면 불행을 겪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고 점점 신들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 결론에서는 신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길가메쉬 서사시》는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우리는 작품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신 앞에서 겸손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그것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것은 일단 앞서 말한 것처럼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을 때의 점차 대강으로 삼고 들어가보는 것이다. 이렇게 전체의 대강을 삼고 들어가면서 읽어보니 아닌 것 같다고 하면 해석을 수정해 나가는 것이다. 부분을 읽어서 전체를 수정해 나아가야 할 텐데 전체를 수정할 때는 반드시 이러이러한 부분이 한 두개 정도만 있어서는 안되고 전체가 정합적으로 서로 상응하는 방식으로 비평을 해나가야 한다. 이 세가지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즉 전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전체를 알고 부분을 읽어야 부분에 대한 이해가 명료해진다. 그런데 부분을 읽으면서 애초에 부분을 읽을 때 전제하였던 전체가 그렇게 썩 합당하지 않고 정합적이지 않다면 부분에서 취하였던 충분한 논거를 갖추고서 전체의 해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첫번째이다.  두번째로는 그 전체를 구성하는 것 중에는 그가 살았던 자연환경이 있는데 《길가메쉬 서사시》의 경우에는 인간에게 삶의 고난을 불어일으키는 환경이고 그에 따라 안정적인 정치체제가 오래도록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의 물리적인 환경circumstance이라면 mentality는 어떠한가, 이 지역에서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비관적 심상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비관적 심성으로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을 뼈저리게 자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을 뼈저리게 자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길가메쉬 서사시》의 어떤 것을 보면 알 수 있는가. 이 서사의 전개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만한 인간이었는데 그가 점차로 불행을 겪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고 신들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에서 살짝 곁들여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아 지금 이것이 나의 전성기구나, 내가 성취를 이루고 있구나'하는 것이 인생에서 중년이 되기 전에 일어났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가끔 있다. 그러다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점차로 쇠약해지고 하는 일마다 잘 안되고 그러면 용기도 사라지고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삶에서 잔잔한 관조를 하면서 유한구나, 인간이라는 것이 분명히 안되는 영역이 있구나 하는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가 조용히 죽는 것, 이것이 과연 인간의 삶에서 적절한 인간의 행로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 《문학 고전 강의》를 해설하기 위해서 《길가메쉬 서사시》를 다시 읽어보고 예전에 강의하면서 읽었던 것을 살펴보니까 이게 인간의 삶이 이런 정도로 삶의 경로를, 인생을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행로가 아닐까, 사람은 오만하게 굴다가는 반드시 큰 코 다친다라는 교훈을 주려는 것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인생을 그냥 철없이 날뛰다가 어느정도 자기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삶의 성취도 이루었다가 그러다가 점차로 잔잔해지는 유한성을 자각하고 잔잔해지고 신 앞에서 겸손해지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또는 그런대로 괜찮은 그런 삶의 과정이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당신이 자서전을 쓰고 싶으면 이런 식으로 써야해, 당신의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야 그런대로 훌륭하고도 합당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 그런 일종의 자서전의 샘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번에 한번 해보았다.

오늘 그런 얘기를 하고 두번째로는 "본문 텍스트를 읽기 전에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의 일러두기"를 보면 번역자가 이 서사시가 어떻게 되어있었던 것인가 그런 것들을 잘 알려주고 있다. 판본이 어떠한다든가 그런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당시 강의할 때 교재로 썼던 판본을 보면 수메르어 판본과 악카드 어 판본, 그리고 고바빌로니아 판본과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 이런 것들이 있다. 악카드어니 바빌로니아니 이런 것들을 전혀 읽을 줄 모르니까 이것을 강의할 때만 해도 전혀 상상을 못했는데 이제는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겨질 만한 것이 뭐냐면 번역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만들어진 번역기가 있다. 거기다 수메르 어 판본이나 악카드 어 판본을 입력한 것을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들도 원문만 구하면 우리가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조만간 생기지 않겠는가. 정말 좋은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해보거나 영어로 번역해보거나 해서 그것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 같다. 강의를 할 때는 영어로 번역된 판본 두세 개 정도를 참조를 했었다. 그런데 영어로 번역된 것에서의 뉘앙스를 알아낸 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그러니 아무리 번역이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수메르 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뉘앙스를 그대로 영어나 한국어로 옮겨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아무리 번역이 잘된 것이라고 해도 또는 수메르 어를 익혀서 수메르 어 판본을 읽는다 해도 그 당시 사람들의 멘탈리티나 또는 파토스를 완전히 우리가 그 속으로 파고들어가기는 불가능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해본다. 서사시의 내용은 크게 보면 서사가 있고 그 다음에 죽음과 불멸에 관한 얘기가 있고, 인간의 유한함을 다루는 불멸과 영생에 관한 그러니까 주제는 서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면 엔키두와의 우정이 있는데, 우정도 중요하기는 한데 사실 우정이라는 것은 젊은 때의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면 우정을 나눌 친구도 죽는다. 그러니 우정도 소멸한다. 이것은 지극히 사적인 편견인데 우정이라는 것이 의미있는 시기가 젊었을 때 아닌가 한다. 어쨌든 우정, 죽음과 불멸, 불멸과 영생, 에필로그. 그런데 에필로그를 보면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이 있고 영원한 도시의 찬양이 있고 그렇다. 그러니까 이 서사시의 내용을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을 보면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주제이다. 2004년에 출간한 《책과 세계》에서 《길가메쉬 서사시》에 대한 얘끼부터 시작했었다. 그것에서 얼마되지 않은 이전에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었는데 굉장히 충격적인 구절들이 많았다. 인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그런 구절이 많이 있었다. 서사시의 내용은 이렇게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게 바로 어떻게 보면 앞에서 전체의 대상에서 말한 기본적인 정서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해보겠다. 

제1강 27 길가메쉬 서사시는 가장 오래된 수메르 어 판본과 그 후대의 악카드 어 판본으로 구별되며, 악카드 어 판본은 다시 고바빌로니아 판본과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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