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라티오의 책들'을 듣고 정리한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해설녹음이다.
팟캐스트 주소: https://ratiopress.podbean.com/
2023.04.15 문학 고전 강의 — 11 제5강(2) 길가메쉬 서사시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5강(2)
“쓸쓸하다는 것은 사실 그 쓸쓸함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인간이 처해 있는 어찌해볼 수 없는 근원적인 조건에서 나오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의 원인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있습니다.”
《문학 고전 강의》 제5강 친구의 죽음 이후 구도자의 여행을 떠났던 길가메쉬. 지난 번에는 길가메쉬의 여러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길가메쉬 서사시를 다시 읽어보면서 지난 시간에 제기했듯이 길가메쉬를 정치적 인간으로 만들어 준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이 부분이 계속 답을 내지 못하겠다. 그것과는 별개로 길가메쉬 서사시는 좋다. 자질구레하게 화사한 설명이란 것이 없는 담백한 서술들, 이런 것들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원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읽을 때 굉장히 담백한 맛이 난다. 그것과는 별개로 길가메쉬를 정치적 인간으로 만들어 준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정치적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돌출되어 나오는 것 같다. 돌출되어 나온다고 하면 조금 느닷없어 보이니까 질적으로 다른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이 아브람이다. 창세기 17장에서 이름을 바꾸라고 한다.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으로 개명을 하라고 야훼가 명령을 한다. 그러다가 아브람은 한 가정의 아버지라는 뜻인데 아브라함이 되면서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민족이라는 것은 종족의 의미가 아니라 nation이다. 열국, 모든 나라로 번역하는 것이 괜찮기도 하다.
공동번역에서는 covenant를 계약으로 번역했는데 신약이다. a multitude of nations는 열국의 아버지가 되리라. 이 지점, "No longer shall your name be Abram, but your name shall be Abraham" 이름을 바꾸라는 것이 뭐냐하면, 그 동안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가 이제는 the ancestor of a multitude of nations가 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치적 인간이 되라는 뜻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치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간단하지 않다.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길가메쉬 서사시를 다시 읽어보아도 그런 계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명령으로서 하나의 신적인 명령으로서 등장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는 정치적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대해서는 이런 아주 오래된 문헌들에서도 신의 명령으로 해결하고 그렇기 때문에 답을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오래도록 숙제로 남겨두려고 한다. 아마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
공동번역 창세기 17장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되던 해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없이 살아라. 2 나는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을 세워 네 후손을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4 "내가 너와 계약을 맺는다. 너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5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리니, 네 이름은 이제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 불리리라. 6 나는 너에게서 많은 자손이 태어나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왕손도 너에게서 나오게 하리라. 7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느님이 되어주기로, 너와 대대로 네 뒤를 이을 후손들과 나 사이에 나의 계약을 세워 이를 영원한 계약으로 삼으리라. 8 네가 몸붙여 살고 있는 가나안 온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준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주리라."
NRSV Genesis 17
1 When Abram was ninety-nine years old, the LORD appeared to Abram, and said to him, "I am God Almighty; walk before me, and be blameless. 2 And I will make my covenant between me and you, and will make you exceedingly numerous." 3 Then Abram fell on his face; and God said to him, 4 "As for me, this is my covenant with you: You shall be the ancestor of a multitude of nations. 5 No longer shall your name be Abram, but your name shall be Abraham; for I have made you the ancestor of a multitude of nations. 6 I will make you exceedingly fruitful; and I will make nations of you, and kings shall come from you. 7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between me and you, and your offspring after you throughout their generations, for an everlasting covenant, to be God to you and to your offspring after you.
어쨌든 친구 엔키두를 만난 다음에 명성을 얻으려는 길가메쉬까지는 얘기했고 그 다음에 이제 엔키두의 죽음 이후 구도자의 여행을 떠났던 길가메쉬가 지금 여기에 나온다. 거기서 겪게되는 이야기들은 쓸쓸한 일인데 이 부분을 보겠다. 길가메쉬는 지금 심정이 괴로운 나머지 죽음이 두렵다고 말한다. 죽음이 두려우니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당연히 영생이다. 그것은 헛된 욕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한 번 해보려고 하는 것이 영생, 불로초.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바르투투의 아들 우트나피쉬팀의 구역에 곧바로 가는 것이다. 번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딜문, 수메르 신들의 파라다이스, 빛나는 낙원, 이상향, "병도, 폭력도, 늙음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 유일하게 살고 있는 인간이 바로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쉬팀이었다." 신들만이 누리는 것이다. 병도, 폭력도, 늙음도 없는, 그런데 별로 부럽지 않다. 폭력은 싫은데 병들어서 늙어서 죽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오래 살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공부밖에는 없는데 영원히 하고 싶지는 않다. 이 공부도 언젠가는 그만할 날이 있겠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다면 모를까 지금 생에서는 언젠가는 그만하겠지 싶으니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트나피쉬팀이 있는 곳으로 가려는 길가메쉬는 공부를 안하니까 그냥 겁없이 갔을지도 모른다.
제5강 59 길가메쉬는 지금 심정이 괴로운 나머지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마음 둘 곳이 없는 것입니다. "죽음이 두렵다"고도 말합니다. 죽음이 두려우니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당연히 영생입니다.
제5강 59 "우트나피쉬팀의 구역은 딜문이요, 수메르 신들의 파라다이스이다. 말하자면 신들의 정원인 것이다. [···] 그곳은 거룩한 도시였고, 깨끗한 땅이었으며, 빛나는 낙원이다. 그토록 거룩하고 깨끗하고 빛나던 수메르의 이상향은 딜문이었다. 병도, 폭력도, 늙음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 유일하게 살고 있는 인간이 바로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쉬팀이었다."
그래서 이제 "당신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먼 여행을 했소? 왜 내게 왔느냔 말이오? 당신은 천국의 바다를 건넜소. 그건 믿을 수 없는 일이오! 나는 당신이 온 이류를 알고싶소" 이렇게 묻는 전갈 부부에게 "나는 나의 조상 우트나피쉬팀 때문에 왔소이다. 그는 신들의 회합에 참석했고, 영생을 얻었소. 삶과 죽음에 대해 그에게 꼭 물어봐야겠소"해서 온 것이다. 목적이 뚜렷하다. 영생을 얻는 것. 이 과정을 통해서 이제 "공포와 어둠을 극복하고 나서 태양의 길을 따라가다가 일출의 순간을 맞이했고 신들의 정원 앞에 이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길가메쉬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18권으로 들어가면 "씨두리의 충고"로 간다. 여행이 끝날 무렵에 필멸의 인간인 길가메쉬가 신들의 정원 안으로 들어섰는데 태양의 신 샤마쉬가 말한다. 기분이 몹시 상했을 것이다. 인간이 신들의 영역에 왔으니 기분이 상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런데 길가메쉬는 샤마쉬에게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씨두리라는 여인이 여인숙을 지키는 사람인데 그곳에 도착한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는다. 씨두리가 길가메쉬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물었다. 그렇게 물었는데, 너는 누냐, 너는 무엇이냐what are you를 물었는데 길가메쉬는 what I did, 내가 무엇을 했는가, 산길에 있던 사자를 죽이고 하늘에서 내려온 황소와도 맞붙어 처치해버렸다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가가 그게 바로 자기의 본질what is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씨두리가 다시 묻는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또는 누구세요라고 묻는다면 사회적으로 불리는 호칭을 가져다가 대답을 한다든가 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거론한다든가 그렇게 대답하며 되겠지만 당신은 뭐예요라고 물으면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 자신이 뭔가를 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자신이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그것을 대답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씨두리가 다시 묻는 것이다. 당신이 길가메쉬라면, 산지기를 죽인 자라면, 삼목산 숲속에 살던 훔바바를 없앤 자라면", 이게 다 길가메쉬가 했던 행동들이다, "산길에 있던 사자를 죽여버린 자라면, 하늘에서 내려온 황소와도 맞붙어 그를 처치해버린 자라면, 참으로 그렇다면 당신 뺨이 수척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며, 당신 표정이 쓸쓸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죠?" 그렇게 잘난 짓을 했는데 왜 뺨이 수척하고 표정이 쓸쓸한가. "당신 마음 깊은 곳에 그런 비애가 서린 이유는 무엇 때문이죠?", ""대초원을 방황하는 진의를 말해보세요!" 이렇게 물어본다. 내면은 어떠한가, 심정이 어떠한가, 그런 행위가 과연 당신의 내면에 있는 어떤 본질을 드러낸 것인가, 굉장히 우쭐할 만한 일인데 행위는 과연 휘황찬란한데 내면은 쓸쓸한가, 그러면 내면에 있는 것과 행위가 합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드러내서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그러면 내면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의 진리이지 않겠는가. 조금 고상한 표현을 써보면 당신 존재의 진리는 무엇인가. 행위의 본질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길가메쉬는 반발하면서 대답한다. "내 뺨이 수척해지지 말란 법이 있소!" 철이 덜 든 것이다. 영생을 얻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철이 덜 들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래도 여전히 다시 물어보는 씨두리. 씨두리의 충고가 참, 마음씨가 넓은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을 방황으로 몰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요? 당신이 찾고 있는 영생은 발견할 수 없어요." 이런 것은 참 매정하다. 매정한데 어떻하겠는가, 그것이 진실이다.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져갔지요. 길가메쉬, 배를 채우세요. 매일 밤낮으로 즐기고, 매일 축제를 벌이고, 춤추고 노세요." 이렇게 말한다.
제5강 60 이 공포와 어둠을 극복하고 나서 태양의 길을 따라가다가 일출의 순간을 맞이했고 신들의 정원 앞에 이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길가메쉬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5강 62 "당신이 길가메쉬라면, 산지기를 죽인 자라면, 삼목산 숲속에 살던 훔바바를 없앤 자라면, 산길에 있던 사자를 죽여버린 자라면, 하늘에서 내려온 황소와도 맞붙어 그를 처치해버린 자라면, 참으로 그렇다면 당신 뺨이 수척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며, 당신 표정이 쓸쓸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죠? 당신 마음 깊은 곳에 그런 비애가 서린 이유는 무엇 때문이죠? 먼 길을 오랫동안 여행한 사람처럼 추취와 더위에 얼굴을 그을린 까닭을 말해보세요! ··· 대초원을 방황하는 진의를 말해보세요!" _《길가메쉬 서사시》 18. 씨두리의 충고
제5강 63 "내 뺨이 수척해지지 말란 법이 있소!" _《길가메쉬 서사시》 18. 씨두리의 충고
제5강 63 "길가메쉬, 자신을 방황으로 몰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요? 당신이 찾고 있는 영생은 발견할 수 없어요.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져갔지요. 길가메쉬, 배를 채우세요. 매일 밤낮으로 즐기고, 매일 축제를 벌이고, 춤추고 노세요.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말이에요. 옷은 눈부시고 깨끗하게 입고, 머리는 씻고 몸은 닦고, 당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을 돌보고, 당신 부인을 데리고 가서 당신에게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주세요. 이것이 인간이 즐길 운명인 거예요. 그렇지만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지요." _《길가메쉬 서사시》 18. 씨두리의 충고
이 얘기는 우트나피쉬팀이 길가메쉬에게 충고하는 얘기이기도하다. 그런데 길가메쉬는 당연하게 누구나 알고 있는 이치를 알고 있지 못한 채 씨두리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다시 뱃사공 우르샤나비의 도움을 받아서 우트나피쉬팀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우르샤나비도 씨두리가 물었던 것을 또 묻고 우트나피쉬팀을 만났을 때도 우트나피쉬팀도 다시 또 묻는다. 씨두리의 질문이 똑같은 것이다. 우트나피쉬팀은 뺨이 수척한 이유를 대뜸 묻고 그런데 똑같은 것을 물으니까 얼마나 짜증이 났겠는가. 반성적 사유를 해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을 쓸쓸함이라고, 존재의 근원에 놓여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서는 쓸쓸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66페이지를 보면 "쓸쓸하다는 것은 사실 그 쓸쓸함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인간이 처해 있는 어찌해볼 수 없는 근원적인 조건에서 나오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의 원인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있습니다." 쓸쓸함의 원인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있다. 인간 존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조건이 쓸쓸함이라고 생각한다. 이 단어가 쓸쓸함이라는 단어가 서사시에는 나오지 않지만 저의 해석, 왜 뺨이 수척해졌는가를 묻는가가 쓸쓸함의 원인을 캐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트나피쉬팀이 길가메쉬를 질책한다. "너는 인간이다! 범인이든 귀인이든, 꼭 한 번은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한다." 그러니까 이게 우트나피쉬팀이 길가메쉬에게 질책을 하는 것이고, 막연하게 생각해보면 그 쓸쓸함을 느끼고 인간의 가장 깊은 곳the Deep을 보았을 때 개인의 차원에서 그것을 삭이고 말아버리면 그냥 인간이 되는 것이고, 거기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해서 뭔가를 생각한다고 그러면 정치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이번에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으면서 하게 되었다.
제5강 66 쓸쓸하다는 것은 사실 그 쓸쓸함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인간이 처해 있는 어찌해볼 수 없는 근원적인 조건에서 나오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의 원인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있습니다. 따라서 쓸쓸함의 원인을 캐묻는 것은 눈 앞에 놓인 사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을 촉구하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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