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사회사상의 역사 - 마키아벨리(4)

 

 

2023.04.19 사회사상의 역사 - 마키아벨리(4)

마키아벨리의 ‘정치가관’
-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인간관은 일반적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군주라는 지위에 있는 인간, 즉 정치가의 특성에 관한 것이다. 정치가는 현실적 정치 상황에서 목적 — 여기서는 피렌체라는 도시를 지키는 것 — 을 실현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합리적 수단을 고르고 실행하는 ‘힘’을 가진 이다.

- 군주, 정치가의 힘은 무력이 주된 것이며 법은 힘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관철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법의 지배’를 이상으로 삼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공화정을 이상적 정체로 생각했다는 입론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그런 테제 자체가 ⟪군주론⟫이나 ⟪로마사 논고⟫에서 도출되지 않는다.

 

《사회사상의 역사》 오늘은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이 책의 46~49페이지에 걸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부분은 정확하게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군주론》 텍스트를 잘 가져다가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섹션 제목이 군주론의 인간관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군주론이라고 하는 텍스트의 인간관이 있고 또 로마사 논고의 인간관이 있고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아니다. 인간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고전 텍스트의 저자가 인간관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할 때는 자신이 어떤 인간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A라는 텍스트에는 A인간관, B라는 텍스트에는 이런 B인간관 이렇게 인간관을 달리 적용하지는 않는다. 가령 토마스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이 있는데 리바이어던의 인간관 그 다음에 베헤모스의 인간관 그렇게 구별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 사상가가 가지고 있는 인간관 그러니까 4번째 섹션의 제목은 군주론의 인간관이라기 보다는 마키아벨리의 인간관 이렇게 하고 그것이 주로, 주로가 아니라 거의 전부, 군주론에서 드러난다고 보는 걸로 이해할 수 있다. 제목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도 그런 의도로 썼을 것이다. 군주라고 하는 존재는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면서 동시에 마키아벨리가 군주를 비롯한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가, 「정치사상사 토론」을 할 때 헌정사(DEDICA)를 분석하면서 마키아벨리가 주목한 집단이 있는데 군주와 인민popular에 주목했었다. 그것이 마키아벨리 이전에 나온 군주귀감서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는데 마키아벨리가 특히 강조한 것은 인민이다. 인민은 어떤 존재인가. 대체로 민중이라는 말을 쓰는데 민중이라는 말보다는 인민이라는 말이 더 사태를 지칭하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정리를 하겠다. "『군주론』의 새로움은 소재가 되는 인간관의 새로움에 있다." 『군주론』의 새로움은 여러가지가 있겠는데 저자는 인간관이 새롭다고 보았다. 인간관을 어떤 존재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 정치사상을 공부할 때는 가장 기본적으로 놓고 따져봐야 하는 물음 중의 하나이다. 루소의 인간, 그 다음에 존 로크의 인간관, 토마스 홉스의 인간관, 마르크스의 인간관, 헤겔의 인간관 이런 것을 따진다. 마르크스는 인간관보다는 인간관도 있고 계급으로서의 하나의 집단으로서의 인간,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원래 어떠한 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본성상 어떠한가 보다도 사회적인 상황이나 경제적 구조 속에서 그 인간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즉 인간의 현상 형태, 사회 구조속의 현상 형태를 중요하게 다룬다. 그게 바로 마르크스의 학문 방법론의 새로움이 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얘기하면 인간관의 새로움이 있다기보다는 헌정사(DEDICA)에도 나오듯이 훌륭한 군주가 되려면 인민의 입장에도 처해봐야 하고 그 다음에 인민 노릇도 잘하려면 군주의 입장에 서보기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조금만 더 넘겨짚어서 해석을 해보면 인간이라고 하는 어떤 존재의 특성qualita, 군주의 본성 얘기도 나온데, 헌정사(DEDICA)를 보면 nature와 quality가 구별이 되어서 사용되고 있다. qualita는 구조 속에 들어갔을 때 그런 것을 말한다. 사람이 어떤 직을 맡게 되면 그 사람이 바뀐다고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보면 『군주론』의 새로움은 인간관의 새로움에 있다는 것도 옳은 표현이기는 한데 어떤 특정한 인간이 본성상 어떠한가를 따져 묻기보다는 마키아벨리는 그가 어떠한 위치에 있을 때 즉 군주에 있을 때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는 점, 즉 인간의 본성이 원래 이러하다 저러하다 따져 묻기보다는, 인간의 본성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군주가 되었을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새로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의미에서, 여기서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얘기와 비교하는데, 전통적인 의미에서 군주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이 군주라고 하는 인간, 페르소나겠다, 사회적으로 드러난 모습을 페르소나라고 하니까 그것을 인격이라고 번역하는데 내면의 품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양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군주의 person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얘기와는 다른 것을 제시하는 것에 새로움이 있다고 봐야한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하다 선하다를 논하는 인간관이 아니라 특정한 지위office에 들어갔을 때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또는 어떠한가에 대해서 논의했다는 데에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에 새로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이다. 학문적 방법론에서도 새로운 것이다. 조금 일반론인데 우리가 훌륭한 정치가다 라고 하는 것은 그가 본성상 착한 사람이고 착하게 태어났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훌륭한 정치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학이 현대의 정치학의 먼 시조가 되는 이유가 그런 이유에서다. 정치가라는 존재는 사회 속의 존재이고 국가 정체 속의 존재이기 때문에 정체 속에서 이러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구현한 사람 그런 사람이 훌륭한 정치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가 성품을 잘 닦고 하는 것, 동아시아 세계에서 유가적 덕목을, 유가도 그렇지 않은 점이 많다, 그런 덕목을 갖춘 사람을 떠올리면 안된다. 그런 덕목을 갖춘 사람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는 악인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서구 세계에서 마키아벨리의 시대인 15세기에 새로운 것인가. 기독교적인 인간과 또는 기독교적인 통치자라고 하는 선행 모델이 있었기 때문에 그 선행 모델과 비교했을 때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정치적 인간관의 차이점이 있다. 저는 새로움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차이가 있는 것이다.  

제1장 46 『군주론』의 새로움은 소재가 되는 인간관의 새로움에 있다.

 

첫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타난 인간관의 새로움은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있어서 정치적 인간의 이상적 모형이 전혀 다르다고 정리할 수 있다. 정치적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 달리 말하면 정치가라는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점에서 선행하는 기독교적인 정치가, 기독교 세계의 정치가 모형과 다르다는 점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타나는 인간관이라는 표현에 가장 표현이면서 대답이 되겠다. 

그 다음에 "플라톤의 유명한 논의(『국가』)이며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세 부분에 따라 이상 국가의 구성원을 '이지'를 체현한 '철학가', '기개'를 체현한 '전사', '욕망'을 체현한 '생산자'로 분류한 것이었다." 이것은 《플라톤, 현실국가를 캐묻다》를 보면 이것은 상투적으로 알려진 얘기인데 반드시 그렇지 않다. 이런 부분들은 저자가, 이것은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다. 기개라는 말도 일본식 표현인데 thymos이다. thymos가 단순히 기개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단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나면 기개, 곧 용기courage 이것 하나로 단순하게 번역할 수 없다. 그리고 전사계급만이 갖고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텍스트를 읽어보면 나오는데, 고등학교 교과서에 사지선다형 문제를 내기 좋게 잘 요약한 것이다. 한국의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는 그것을 배우고 거기에 나오는 철학사상을 배운 다음에 업데이트를 안하면 안된다. 새로운 학설은 차치하고라도 새로운 정설도 반영하지 않는다. 여기에 나온 이 부분은 더 이상 우리가 받아들여서 사유의 재료로 삼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책이 아주 좋은 책이라고 권하자고 읽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점검해보는데 아주 좋은 자료가 되기 때문에 같이 읽는 것이다. 그리고 실수로부터 뭔가 모자라는 부분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철학사 책들에서도 그런 것들이 더러 있다. 아예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지금 읽을 필요가 없다. 러셀의 철학에세이라고 하면 적당한 것이다. 분석도 깊이 있지도 않다. "그 전형은 플라톤의 유명한 논의(『국가』)이며" 이 부분은 네모쳐서 제외하는 것이 좋다.   

제1장 46 그 전형은 플라톤의 유명한 논의(『국가』)이며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세 부분에 따라 이상 국가의 구성원을 '이지'를 체현한 '철학가', '기개'를 체현한 '전사', '욕망'을 체현한 '생산자'로 분류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위에 있는 얘기는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적 정치론에서는 군주, 귀족, 민중에게는 타고난 고유의 속성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 양식이 있다고 여겨진다." 타고난 고유의 속성, 타고났다고 하는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게 바로 nature, 본성상 안 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에서는 다르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에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정치가라고 하는 인간, 인간이 나면서부터 정치가는 아니다. 그러니까 정치가라는 인간이 되었을 때 사회적 인격체social person가 되었을 때 그 자은 어떤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를 따지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본성론이 아니다. 본성론이 아니라 자질론이다. 

제1장 46   전통적 정치론에서는 군주, 귀족, 민중에게는 타고난 고유의 속성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 양식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 다음에 47페이지를 보면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전혀 다른 것"은 15장에 있는 말이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관한 '사실문제(~이다)'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권리문제(~이어야 한다)'를 구별하여", 귄리문제가 아니라 당위문제인데 번역의 오역이 있다, 당위, 올바름의 문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흔히 Is–ought problem이라고 한다. "사실문제에 입각해 현실을 이해하는 근대과학의 방법이 소박하지만 선구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사실문제에 입각해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근대과학의 방법인가, 아니다. 근대과학의 방법은 막연하다. 그러니까 이 서술 자체가 굉장히 소박하다. 사실문제에 입각해 현실을 이해하려는 태도.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소박하지만 선구적인 형태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방법론이 온전히 근대적인 것은 아니다 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앞에서 "그의 과제는 이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을 근대사회의 현실에 들어맞도록 조정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 앞 페이지에서는 "근대사회의 현실"이라고 했으니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사회가 근대 사회라고 하는 것이고 근대 사회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 사회에 맞도록 전적 공화주의 사상을 조정하는 것이었다는 이 45페이지의 문장만 읽어보면 마키아벨리는 아주 충만한 근대사회에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근대과학의 방법이 소박하지만 선구적인 형태"로 드러날 때는 아니다. 근대과학의 방법이 무르익은 때가 바로 근대사회이다. 지금 두 페이지에 걸쳐서 앞뒤가 충돌나고 있다. 모순이다. 47페이지가 맞는 말이다. 이것에 근거해보면 마키아벨리가 살고 있던 시대는 근대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근대과학의 방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굉장히 막연하기 때문에 이런 책에서는 그렇게 막연하게 추상적인 단어를 쓰면 곤란하다. 이런 문장은 안쓰는 것이 좋다. "이러한 과학적 인식 방법을 정치의 세계에 적용한 것이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이다." 과학적 인식 방법이라고 말했는데 그러면 근대 과학이전에는 과학적 인식 방법이 없었는가, 사실을 따져 묻는 방법은 없는가. 그러지 말고 인간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라고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당위는 일단 도외시하는 태도, 이것을 정치의 세계에 적용한 것이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런 것은 학적이지 않다.  

제1장 47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전혀 다른 것(제15장)이라는 말에는 사람들의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관한 '사실문제(~이다)'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권리문제(~이어야 한다)'를 구별하여, 사실문제에 입각해 현실을 이해하는 근대과학의 방법이 소박하지만 선구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제1장 45 그의 과제는 이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을 근대사회의 현실에 들어맞도록 조정하는 것이었다.

제1장 47 이러한 과학적 인식 방법을 정치의 세계에 적용한 것이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이다.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하게 합리적인 수단을 고르'는 정신을 나타낸다." 그렇다. 이런 것을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한다. 이런 것들이 사실은 과학적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지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인지적 편견을 옳다고 여기는 경향까지도 있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도록 그 편견을 깨뜨리지 못하면 이상한 것을 믿고 살다가 죽는 수도 생기게 된다. 그런 것을 깨뜨리는데 가장 큰 노력을 했던 사람이 많이 있다. 제레미 벤담도 그렇고 공리의 원칙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에 해당한다. 마키아벨리는 어쨌든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하게 합리적인 수단을 고르는 정신, 여기서는 계산적 이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어떤 목적은 무엇인가, 앞에서 당면 문제를 얘기할 때 피렌체라고 하는 city를 유지하는 것이다.  굉장히 중요한 목적이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합리적 수단을 고른다, 계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잘 고르는 사람이 힘을 가진 권력자이다. 그 다음에 "인간의 노골적인 이기심이나 권력욕, 타인에 대한 냉혹한 태도를 긍정하는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은 이른바 '성악설'의 전형으로서 이해되기 십상이지만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에게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 필요하다면 거짓말과 살인도 불사하는 인간이야말로 현실의 인간이며, 아무리 보통의 양식과 도덕률에 어긋난다고 해도 그것이야말로 도덕적 선악을 넘어선 절대적 인간의 조건이다." 이 부분을 다시 검토해 보면 골적인 이기심이나 권력욕, 타인에 대한 냉혹한 태도를 긍정하는 마키아벨리의 인간관, 그러면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이라고 하는 말은 앞서 말한 것처럼 마키아벨리의 정치가관이겠다. 본래 그 인간이 탐욕적인지 노골적인 이기심만 있는지 타인에 대해서 냉혹한 지는 중요하지 않다. 굉장히 착한 사람이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정치가가 되더니 아주 달라졌어,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키아벨리의 정치가관은 " 성악설의 전형으로서 이해되기 십상이지만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 정확하지 않다. 이른바 성악설이라고 했으니 별 문제를 삼지 않겠는데, 성악설이라는 표현을 오늘날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성품을 얘기하는데 쓰면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지식이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사람이다. 순자의 성악설이라고 하는데 그런 말은 없다. 순자도 본래 선하다고 말한다. 다만 선함을 가리고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가지 정욕들이 있다. 그래서 정욕이 악한 것이다 라고 하는 '정악설情惡說'이라고 하는 정확하고, 情이 악하다는 것이 순자의 얘기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는 이른바 성악설이나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가에 대한 논의이다. 이 지점에서는 그것을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정치적 인간이다. 현실의 인간은 이러면 법으로 다스려야 할 사람이고, 정치적 현실에 처한 인간이다.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정치적 현실에 처해 있지도 않은데 필요하다면 거짓말과 살인도 불사하는 인간이 되면 되겠는가. "그것이야말로 도덕적 선악을 넘어선 절대적 인간의 조건이다." 이런 것들도 정치적 현실에 처한 인간의 조건이다. 모든 인간이 도덕적 선악을 넘어선다, 마키아벨리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모른다. 마키아벨리가 써 놓은 것은 다 정치가에 관한 얘기이다. "인간들이 군주나 정치가로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추구할 때 그 지상명령에서 역산되는 최적의 수단의 추구가 생겨난다. " 바로 다음에 인간들이 군주나 정치가로서 추구할 때 라고 했다. 그러니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제목 그대로 군주에 관한 얘기이다. 결코 인간 일반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착각하면 안된다.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De Principatibus 군주군론에 관하여가 원래의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군주에 관한 얘기도 군주국에 관한 얘기이지 안간 일반론이 아니다. 그래서 군주론의 인간론이라고 하면 한 마디로 정치가론이다. 군주는 어떤 인간이어야 하는가. 그러니까 그것만 설명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인간 일반이 어떻다는 것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군주론을 보면 인간은 어떠한 자인가, 보통의 인간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보통의 인간에 대한 얘기도 있기는 하지만 군주론을 읽어보면 보통의 인간에 관한 논의들이 과연 이러한가, 아니다. 군주나 권력자, 정치가들만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군주라고 해서 언제나 무원칙적 · 자의적으로 법과 도덕을 어겨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현명한 군주는 흔히 보통의 법과 도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이 부분에서 군주론을 읽어보면 법과 도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은 없다. 법에 따라 다스린다는 말은 있는데 도덕에 따라 다스린다는 것은 없다. 이런 것들은 체크를 해봐야 한다. 마키아벨리 스스로가 군주는 도덕을 무시해도 된다고 나왔는데 도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고 얘기했을리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법에 따라"만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항쟁에서 승리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데 하나는 '법률'이며 다른 하나는 '힘'이다. 법률도 있고 힘도 있는데 그러면 법률 하나 힘 하나가 아니라 힘에 의해서 유지가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딱 하나로 이야기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전자만으로는 불충분하며 후자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전자가 법률이다. 법률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러니 법률은 아니다. 후자에 호소할 필요가 생긴다고 했으니 후자만 있으면 일단 법이라고 하는 것도, 법만으로는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러니까 " '법의 지배' 원리는 군주제 이상으로 공화제의 혼" 이 얘기를 살려 둔 이유가 그런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공화제를 이상적인 정체로 생각했다는 것을 자꾸 증명을 하려고 하면 군주론에서 법의 지배도 중시했다는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말한 것처럼 마키아벨리가 공화제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테제를 버리면 깔끔하게 해석이 되는데 자꾸 공화주의자라는 얘기를 하려다 보면 깔끔하게 해석이 잘 안된다. 

제1장 47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하게 합리적인 수단을 고르'는 정신을 나타낸다.

제1장 47 인간의 노골적인 이기심이나 권력욕, 타인에 대한 냉혹한 태도를 긍정하는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은 이른바 '성악설'의 전형으로서 이해되기 십상이지만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에게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 필요하다면 거짓말과 살인도 불사하는 인간이야말로 현실의 인간이며, 아무리 보통의 양식과 도덕률에 어긋난다고 해도 그것이야말로 도덕적 선악을 넘어선 절대적 인간의 조건이다. 

제1장 48 인간들이 군주나 정치가로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추구할 때 그 지상명령에서 역산되는 최적의 수단의 추구가 생겨난다.   

제1장 49 군주라고 해서 언제나 무원칙적 · 자의적으로 법과 도덕을 어겨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현명한 군주는 흔히 보통의 법과 도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일단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출현하여 그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보통의 법과 도덕을 넘어선 결단과 행동으로 나아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제1장 49 "항쟁에서 승리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법률'이며 다른 하나는 '힘'이다.

제1장 49 ‘법의 지배' 원리는 군주제 이상으로 공화제의 혼이기 때문이다. 


오늘 군주론의 인간관에서는 두 가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는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인간관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가의 인간관이다. 그리고 그 정치가라고 하는 것은 바로 누구인가.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하게 합리적인 수단을 고르는 정신을 가진 자, 그리고 그것을 무력에 의해서, 여기서 다른 하나는 힘이라고 했는데 힘이 아니라 무력이다. 말 그대로 military power이다. 힘은 virtù, 그런 무력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것이 힘이다. 무력보다 상위에 있는 개념이다. 권력투쟁의 세계, 마키아벨리는 철저하게 그 세계에 대해서만 논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되겠다. 어설프게 인간 일반에 대해서 논한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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