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사회사상의 역사 - 마키아벨리(3)

 

 

2023.04.12 사회사상의 역사 - 마키아벨리(3)

마키아벨리의 당면 ‘문제’
- 마키아벨리는 1498년 제2서기관이 된다. 그가 상대해야 하는 이들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 교황 율리우스 2세, 교황군 총수 체사레 보르자 등이었다. 이들은 ‘힘’(virtù)을 가진 군주들이었으며, 이들의 힘으로부터 피렌체를 지키고 융성시키는 것이 그의 과제였다.

- 마키아벨리가 직접 대면하고 있던 상황에서 판단해보면 ⟪군주론⟫은 군주에게 제시하는 간단명료한 행동수칙의 원칙과 실제를 담은 문헌이며, ⟪로마사 논고⟫는 리비우스의 텍스트에서 가려 뽑은 적절한 사례집이다.

 

《사회사상의 역사》 마키아벨리 세 번째이다. 지난번 두 번째에서 사상의 문맥,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부분을 검토하면서 읽었다. 오늘은 마키아벨리의 문제라고 하는 부분을 읽어보겠다. 우리가 이해하기로 마키아벨리의 '문제'라고 한 것에 홑따옴표가 붙어있는데 이것은 직접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앞 부분이 사상적 배경은 깊은 원인遠因 deep cause이라고 한다면 직접적인immediate, 당면 문제이다. 직접적인 배경이 무엇인가, 도대체 왜 마키아벨리는 이런 정치사상인지 또는 처세술을 왜 내놓았는가. 요즘 이렇게 읽어보니 그냥 처세술이다. 군주귀감서, 군주들이 읽고 행동방침을 정하는 그런 것으로 썼는데, 예를 들어서 공자의 논어를 읽고 군주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사람들에게 다 잘해주라는 거야, 간신 무리배들에게도 잘해주라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많은 주석가가 필요하고 그러니까 조선시대 왕들이 아침마다 과외하고 그랬겠다. 그런데 군주들은 머리가 명석하고 생각을 많이 하고 그런 사람들은 아니다. 저처럼 머리가 명석한 것은 아닌데 생각할 시간은 남아도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군주들과 종류가 다르다. 하루에도 일정이 열개씩 있고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마키아벨리는 군주귀감서를 썼는데 어떤 이유로 썼는가. '군주 여러분 골치 아프시죠, 그런데 군주는 위대함grandezza를 얻고 싶어해.'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간단한 것을 딱 명료하게 짚어서 얘기해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군주론이다. 다시 말해서 골치 아프게 머리써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이 힘든 군주들에게 요점만 짚어서 요즘 하는 말로 일타강사처럼 해준다 그것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이론이다. 그것이 제가 요즘에 내리고 있는 결론인데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1번 무력이다. 2번은 설득력이라고 좋게 말하면 그러는데, 속칭 구라, 속이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말을 듣게 만드는 것. 협박을 하든 공갈을 하든 아니면 그럴싸한 거짓말로 속이든 그렇게 해서 군주가 목표로 하는 바를 이루면 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테제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문제에 들어있는 배경 부분을 읽어보도록 하겠다.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런데 몇 가지, 문단 단위로 핵심을 짚어서 말하고 그것이 어떤 종류의 약간의 오독이 있는가를 얘기하겠다. 첫째 문단에서 "1489년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독재나 수도자 사보나롤라의 신권정치에서 해방되어 공화제를 막 재건한 피렌체에서 정청 제2서기관이 된다.  그는 신성로마 황제 막시밀리안 1세, 교황 율리우스 2세, 교황군 총수로서 이탈리아 정복의 야망에 불타는 체사레 보르자 등을 교섭 상대로 하는 외교사절단에 참가해 현실 정치의 실태와 그 안에서 인간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며 그 모든 권력자는 성인도 군자도 아닌 살아있는 인간이며 명예욕과 자기 보신 같은 정념과 욕망에 휘둘리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1512년 메디치가의 복권과 함께 실각했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군주론』에서는 보르자를 모델로 삼았다고 이야기되는 걸출한 정치 지도자의 조건을 논했고 『로마사 논고』에서는 이상적 공화정체의 모습을 구상했다." 첫째 문단에서 마키아벨리가 만난 사람들이 누구냐, 실제로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외교관이었다. 그러니까 피렌체의 외교관이 상대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막시밀리안 1세, 율리우스 2세 그리고 교황군 총수였던 체사레 보르자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독재가 끝나고 수도자 사보나롤라의 신권정치를 벗어난 시기 1498년,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하는 것을 마키아벨리는 봤다고 한다. 그러면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독재가 끝난 다음에 피렌체의 외교관이 되었는데 다시 또 마키아벨리는 1512년에 불과 한 십 년 정도만에 메디치가가 복권되면서 실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마키아벨리가 공화정체를 이상으로 삼았다 이런 것을 말하지만 마키아벨리 시기에 과연 피렌체가 얼마나 공화정체에 가까웠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나 교황 율리우스 2세나 교황군 총수 체사레 보르자 모두 군사적 야망에 불탄 사람들이고 그 다음에 체사레 보르자는 이탈리아 정복의 야망에 불타고 있었지 이탈리아 통일의 야먕은 아니다. 이것은 아주 분명하다. 그러면 그가 현실정치 속에서 봤던 군주들은 누구인가, 간단히 말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을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핵심 국가가 밀라노 공국, 공작령이다, 그 다음에 교황청령, 그리고 세번째가 나폴리 왕국, 그리고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이 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탈리아 반도 내부 사정에 깊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밀라노 공국이라든가 교황청령이라든가 나폴리 왕국 이런 곳은 피렌체에 비하면 굉장히 강력한 국가들이다. 오늘날 의미에서의 국가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정치체제들이다. 그런 곳들이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저런 사람들이 또는 밀라노 공작 또는 프란체스코 스포츠차, 거의 용병대장이다, 체사레 보르자보다는 프란체스코 스포츠차가 마키아벨리에게 훨씬 더 가장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마키아벨리가 머릿속에 구상한 군주상, 그러니까 군주 이미지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히 말해서 국가를 또는 군주국을 획득하고, 군주국론Principatibus이라고도 한다, 그것을 유지하는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 그런 것이 마키아벨리의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군주론』에서는 보르자를 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전해지는 얘기일 뿐 오늘날에는 그렇게 설득력있는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로마사 논고』에서는 이상적 공화정체의 모습을 구상했다."고 했는데 일단 로마사 논고라는 텍스트를 마키아벨리가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메리 비어드의 말처럼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그렇게 신뢰성있는 로마사가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군주론에서 자신이 제시한 그런 군주의 모형에 적당한 사례들을 리비우스의 로마사에서 끄집어 왔을 뿐이지 그것이 마키아벨리가 공화정체를 구상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제1장 44 1489년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독재나 수도자 사보나롤라의 신권정치에서 해방되어 공화제를 막 재건한 피렌체에서 정청 제2서기관이 된다.  그는 신성로마 황제 막시밀리안 1세, 교황 율리우스 2세, 교황군 총수로서 이탈리아 정복의 야망에 불타는 체사레 보르자 등을 교섭 상대로 하는 외교사절단에 참가해 현실 정치의 실태와 그 안에서 인간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며 그 모든 권력자는 성인도 군자도 아닌 살아있는 인간이며 명예욕과 자기 보신 같은 정념과 욕망에 휘둘리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제1장 44 『군주론』에서는 보르자를 모델로 삼았다고 이야기되는 걸출한 정치 지도자의 조건을 논했고 『로마사 논고』에서는 이상적 공화정체의 모습을 구상했다. 

 

그 다음에 "마키아벨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키케로나 리비우스 등이 남긴 고대 로마의 문헌들이었다." 그리고 "고대 로마의 논의는 군주, 교황, 메디치가 등의 정치적 야망에 좌우되던 피렌체에 좀더 유효한 모델을 제공했다. 특히 완성을 눈앞에 둔 로마의 공화제가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유입된 사치로 인해 부패하고, 제제로의 이행과 용병제 도입으로 붕괴되었다는 당시의 통설은 대아시아 중계무역으로 번영한 피렌체의 사상가들에게는 절실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이것도 한번쯤은 되풀이 해서 봐야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검토해 봐야할 그러니까 당시의 통설이 피렌체의 사상가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의미를 주었는가. 글쎄 과문한 탓에 당시 피렌체 사상가들이 아시아 사람들의 부패가 로마에 유입되어서 부패했다 라는 통설을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더 생각해봐야할 여지가 있다. 그 다음 "마키아벨리는 키케로의 사고방식을 계승해 자유로운 시민이 공통의 룰(법)에 기초해서 서로 결합해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공화제에 의한 '법의 지배'라고 생각했다." 이 얘기는 마키아벨리가 공화주의를 철저하게 구상하고 있었다라는 것을 전제할 때, 일종의 공화주의는 당연히 법의 지배가 아닌가 라고 하는 일종의 연역법으로 만들어진 얘기이다. 공화주의Republicanism라고 하는 것이 성립하려면, 공화정이 성립하려면 그것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이 1,2,3번이 있다. 그렇게 해놓고, 모형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였다 라고 하는 것을 명제를 가져온다. 그 명제를 가져온 다음에 그러니까 마키아벨리도 1,2,3번을 생각했을 것이다 라는 방식으로 논변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말이 될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화정체에서야 진정한 '법의 지배'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 견해였다고 하는 것은 글쎄 이제껏 읽어본 어떤 텍스트들이나 또는 마키아벨리 자체 텍스트에 얘기가 없다. 일차문헌의 근거가 없고 그리고 "이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을 근대사회의 현실에 들어맞도록 조정하는 것"이 그의 과제였다. 과연 마키아벨리가 이런 정도로까지, 시장경제와 근대국가의 출현이라고 하는 정치경제학적인 과제다, 이런 과제까지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그러니까 과연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문제'였는가. 시장경제와 근대국가의 출현이라고 하는 근대사회의 현실에 맞도록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을 조정하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과제였는가. 이것이 성립하려면 마키아벨리의 사회가, 마키아벨리가 살고 있던 피렌체라고 하는 도시에 사회구성체가 시장경제에 해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도의 용어가 사용되려면 아담 스미스의 시대 정도는 와야하지 않나 생각해볼 수 있다. 이렇게 읽어가면서 체크를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이어서 군주론과 로마사논고 이 저작의 "스타일이 상이하지만 공화국의 자유 원리로서의 '법의 지배' 실현이라는 큰 테마는 공통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군주론은 군주의 덕을 그린, 비르투를 그린 인간론이며, 로마사 논고는 법의 지배를 객관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기구론·제도론이다. 이런 논의가 "3. 마키아벨리의 '문제'"에서 전개되는데 이것은 마키아벨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자다 그리고 그것을 근대사회의 현실 즉 시장경제와 근대국가의 출현에 들어맞도록 조정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그것을 하는데 가장 적절한 자들을 군주들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의 기구와 제도는 로마사논고에서 다루었다, 이런 식으로 연역적으로, 제1전제가 무너지면 이 연역은 무너진다. 과연 마키아벨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자였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고 그 다음에 마키아벨리가 처해있던 사회가 과연 정말로 시장경제와 근대국가의 출현이라고 하는 근대사회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도 한번쯤은 거론했던 것이다.  

제1장 44 마키아벨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키케로나 리비우스 등이 남긴 고대 로마의 문헌들이었다.

제1장 45 고대 로마의 논의는 군주, 교황, 메디치가 등의 정치적 야망에 좌우되던 피렌체에 좀더 유효한 모델을 제공했다. 특히 완성을 눈앞에 둔 로마의 공화제가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유입된 사치로 인해 부패하고, 제제로의 이행과 용병제 도입으로 붕괴되었다는 당시의 통설은 대아시아 중계무역으로 번영한 피렌체의 사상가들에게는 절실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제1장 45 마키아벨리는 키케로의 사고방식을 계승해 자유로운 시민이 공통의 룰(법)에 기초해서 서로 결합해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공화제에 의한 '법의 지배'라고 생각했다. 

제1장 45 그의 과제는 이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을 근대사회의 현실(시장경제와 근대국가의 출현)에 들어맞도록 조정하는 것이었다. 

제1장 45 이 두 저작은 스타일이 상이하지만 공화국의 자유 원리로서의 '법의 지배' 실현이라는 큰 테마는 공통된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마키아벨리가 당면했던 직접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피렌체라고 하는 도시의 생존문제이다. 그것이 어떻게 하면 유지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중의를 모아서 지난한 논의 과정을 거쳐서 뭔가를 한다라기 보다는 강력한 군주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군주는 반드시 무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러한 무력을 일단 손에 쥔 상태에서 사람들을 설득해 나아가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군주의 비르투virtù이다. 그리고 이제 마키아벨리는 운명fortuna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그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군주론 뒷부분에 가서 또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마키아벨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즉 마키아벨리의 당면 문제는 무엇인가. 피렌체라고 하는 정체의 유지였다고 생각해 볼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의 수단으로서의 군주의 비르투virtù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킬 경우가 군주가 얻을 수 있는 위대함grandezza이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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