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사회사상의 역사 - 마키아벨리(6)

 

 

2023.05.02 사회사상의 역사 - 마키아벨리(6)

막스 베버의 ‘법의 지배’ 또는 ‘합법적 지배’에 근거한 근대 국가 개념이 마키아벨리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는 의문.

“맹목적 운명의 저편”이 무엇을 지칭하는지가 불분명하며, 그것으로써 새롭게 전개될 사회사상이 종교개혁이면 과연 어떤 측면에서 그러한가.

 

《사회사상의 역사》 오늘은 마키아벨리에서의 '자유'와 '공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전까지는 한챕터에서 한 섹션씩 다루어 왔으나 앞으로는 두세 개 정도씩 하겠다. 이 책 자체가 사회사상의 역사라고는 하지만 저자가 자유와 공공이라고 하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서 과거 사상가들에게 있다는 것을 논증하려고 하는 점에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잘 이루어져 있는가. 여기에 나와있는 내용들을 하나의 교과서처럼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 마키아벨리를 읽으면서도 그런 점들이 몇 가지 드러났는데 우리가 예전에 회페의 정치사상사를 토론하면서 기본적으로 이 정도가 정치사상사에서 논의된다, 물론 심화해서 특정한 주제를 파생적으로 연구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사상사라고 하는 영역에서는 이런 것들이 논의된다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을 보고나서 다른 책들을 읽을 때 그것을 일종의 표준으로 삼고 다른 책들을 읽을 때 어떤 식으로 비판식으로 독서를 해 나갈 것인가 하는 하나의 샘플로써 읽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어떤 정치사상사 전반 또는 사회사상사 전반을 치밀하게 다루고 있는 그런 논증을 발견하기 어렵다. 다만 저자가 자기의 주제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치밀한 논거를 가지고 전개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일종의 검증하는 독서의 연습과제로 생각하면 적절할 것이다. 다음주에는 종교개혁의 사회사상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한 챕터를 다루겠다. 

제6절인 마키아벨리에서의 '자유'와 '공공'을 보겠다. "마키아벨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사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이것을 소박하지만 근대과학적인 방향성을 갖는 경험주의적 인식 방법과 인간관을 통해 개조함으로써 근대적 공화주의 사상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냈다." 이 문장 하나에서 논증해야 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 마키아벨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사상 전통을 계승했다고 할 때 고전적 공화주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것이 앞에서 논의되고 있지는 않다. 파리 대학이나 볼료냐 대학으로 중심으로 성장한 정치사상의 큰 흐름을 고전적 공화주의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르네상스 시기의 도시국가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출현했을 때 거기서 나고 자란 정치가, 관료, 법률가,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참여해 수립하려고 하는 국가(공화국)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그 모범을 파리나 볼료냐에서 수학한, 아리스토텔레스나 키케로의 학문 · 사상에서 찾았다."고 헸다. 이게 과연 마키아벨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저자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포콕, 포칵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논증하고 있는 바인데 과연 그것이 충분히 논의되었는가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제1장 마키아벨리의 사회사상에서 뒤에 보면 참고 문헌이 많이 있는데 과연 그런 참고 문헌에서 다 논의가 되었다고 전제하고 이렇게 논의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런 것을 마키아벨리가 고전적 공화주의의 사상 전통을 계승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첫째 고전적 공화주의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 하고 두번째로 그러한 규정들을 마키아벨리의 텍스트, 간단하게는 군주론이나 로마사논고에서 그런 내용을 찾아내야 한다. 또는 그런 내용으로써 자신이 해석해낸 것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것은 그냥 대학 1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기본적인 개론서에나 나오는 얘기를 그런 것을 가져다가 얘기한다. 논증이 굉장히 빈약하다. 그래서 이런 것을 마키아벨리가 고전적 공화주의의 사상 전통을 계승했다는 테제 자체가 아직 확실하게 증거로서 뒷받침되는 테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다음에 "근대과학적인 방향성을 갖는 경험주의적 인식 방법", 마키아벨리가 최소한 프란시스 베이컨이라도 읽었나 하는 얘기가 있어야 한다. 군주론과 로마사논고 첫 머리에 방법론을 적어 둔 것은 있다. 그런데 그것이 근대과학적 경험주의는 아니다. 가령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내가 다 겪어봐서 알아 라고 한다. 그것이 경험주의적 인식방법일 수는 있는데 근대과학적 방향성을 갖는 경험주의적 인식 방법은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서 이용해서 그것으로부터 cognizione, 즉 지식을 얻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과연 근대과학적 방향성을 갖고 있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다. 이렇게 책을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항상 뭔가를 읽을 때 기본개념들에 충실해서 "근대과학적 방향성을 갖는 경험주의적 인식 방법"이라고 써 있으면 바로 마키아벨리가 그랬나보다 하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근대과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경험주의적 인식 방법이 무엇인가 이런 것은 아주 기초가 되는 개념이다. 기초 개념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근대과학적인 방향성을 갖는 경험주의적 인식 방법이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오용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 그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논의되지 않은 상태로 또는 그런 개념에 대한 엄밀한 규정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그냥 읽으면 그럴듯한 학문 용어들이 추상적인 용어들이 있을 때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얘기이다. 그런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 다음에 개조했다는 것이 어떤 점에서 개조해 나아갔는데, 제6절 마키아벨리에서의 '자유'와 '공공'이라는 것이 이를테면 이 챕터의 결론인데 결론에 나와있는 것은 항상 앞에 뭔가가 나와있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결론은 앞에 나온 얘기보다도 항상 분량이 똑같거나 또는 논증의 밀도가 똑같거나 아니면 적어야 한다. 그런데 개조된 부분이 어디있는가, 찾아보기 어렵다. 조심해야 한다.  

그 다음에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1919)에 따르면 정치적 지배가 갖는 정통성의 기초는 ① '전통적' 지배, ② '카리스마적' 지배, ③ '합법적' 지배라는 세 가지로 구별된다." 그렇다. 전통적 지배는 "영원한 과거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저절로 획득하는 정통성"이다. 영원한 과거까지는 아닌데 그대로 늘 해오던 대로 그렇다. 그 다음에 카리스마 지배는 "비일상적 · 천부적 자질이 갖는 권위에 의거하는 인격적 귀의와 신뢰에 근거한 지배",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이 신이 준 선물이라는 뜻이니까 그렇다. 셋째는 규칙과 권한에 의한 근대국가의 지배를 말한다. 여기서는 합법적 지배가 근대국가의 지배를 말한다고 하면 막스 베버에 있어서의 근대국가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가 과연 그런 막스 베버가 규정한 것과 같은 근대국가 개념을 갖고 있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막스 베버가 말하는 근대국가는 관료제이다. 그리고 폭력을 국가라고 하는 비인격적 기구가 독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근대국가이다. 이것은 베버의 《직업으로서 정치》에 아주 뚜렷하게 나와있는 것이다.  

제1장 54 마키아벨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사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이것을 소박하지만 근대과학적인 방향성을 갖는 경험주의적 인식 방법과 인간관을 통해 개조함으로써 근대적 공화주의 사상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냈다.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1919)에 따르면 정치적 지배가 갖는 정통성의 기초는 ① '전통적' 지배, ② '카리스마적' 지배, ③ '합법적' 지배라는 세 가지로 구별된다.


그런데 이 얘기가 왜 나왔는가. 우선 "마키아벨리의 군주관은 공화국의 자유와 독립을 지상명령으로 삼아 행동하는 걸출한 인격을 그려냈다는 의미에서 '카리스마적 지배'의 전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제가 공부를 덜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카리스마적 지배'의 전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라고 하는 것은 카리스마적 지배는 아니다. 그리고 그가 "공화국의 자유와 독립을 지상명령으로 삼아 행동", 글쎄 군주론에서 그것을 지상명령으로 삼으라는 얘기는 없다.  이것이 이제 미루어 짐작해서 그렇다 라고 생각하는 것 이런 것들이 상당히 전혀 다른 해석을 제시할 수 있는데 그런 전혀 다른 해석도 1차 문헌에서 원천적으로 근거를 두어야 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논증의 해석의 범위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 다음에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문제는 '법의 지배'를 실제로 담당하는 걸출한 개인의 정신 구조 분석", 법의 지배를 실제로 담당하는 개인은 걸출한 개인이 아니라 관료이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법의 지배를 담당하는 걸출하는 개인은 없다. "그것은 합리적 규칙과 객관적 권한에 의한 지배 매커니즘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글쎄 여기서 마키아벨리가 법의 지배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합리적 규칙과 객관적 권한에 의한 지배 매커니즘의 출현을 예고할 정도로 그런 합법적 지배를 논의했는가 그렇지 않다. 마키아벨리에서는 무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다음에 "군주와 민중은 모두 본성상 동질적인 이기적 개인으로서 인식되었지만", 여기서 이기적 개인이라고 하는 것이 시장 경제의 개인으로 전제가 되고 있는데 글쎄 처음에 얘기했듯이 마키아벨리에서 등장하는 개인을 시장 경제에서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따질 줄 아는 그런 개인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까 모두 본성상 동질적인 사람으로 인식된 것은 맞다. 헌정사DEDICA에 나오니까. "그러한 근대적 인간상을 전제로 한 ", 그런데 그 인간이 근대적인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고, "그의 사회상은 '법의 지배'를 혼합정체에 의해 실현하는 고전적인 공화국 모델이다." 고전적인 공화국 모델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동원되어 있는 것들에서 논거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고전적인 공화국 모델"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 다음에 "그 불가결한 조건은 첫째로 정치가와 국민의 '덕'이라는 도덕적 조건이며", 마키아벨리에서 있어서 '덕'은 virtù인데 그것이 도덕적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파워, '힘'이다. "시민군에 의한 조국의 수호와 농지법에 의한 평등의 확보라는 제도적 조건", 농지법에 의한 평등의 확보 그것이 있나 조금 그렇다.  

제1장 55 마키아벨리의 군주관은 공화국의 자유와 독립을 지상명령으로 삼아 행동하는 걸출한 인격을 그려냈다는 의미에서 '카리스마적 지배'의 전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제1장 55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문제는 '법의 지배'를 실제로 담당하는 걸출한 개인의 정신 구조 분석이며 그것은 합리적 규칙과 객관적 권한에 의한 지배 매커니즘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군주와 민중은 모두 본성상 동질적인 이기적 개인으로서 인식되었지만, 그러한 근대적 인간상을 전제로 한 그의 사회상은 '법의 지배'를 혼합정체에 의해 실현하는 고전적인 공화국 모델이다. 그 불가결한 조건은 첫째로 정치가와 국민의 '덕'이라는 도덕적 조건이며 둘째로 시민군에 의한 조국의 수호와 농지법에 의한 평등의 확보라는 제도적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제 "국민과 정치가의 덕" 그리고 "출현중이던 시장경제"와의 그것이 충돌되어 있다. 이런 부분들은 마키아벨리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근대의 시장경제를 원리로 하는 사회에 대해서 마키아벨리가 논의했다 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글쎄, "그가 공화국의 조건으로 '청빈'을 옹호하는 것이 상징하듯이", 마키아벨리가 공화국의 조건으로 '청빈'을 옹호했다고 하는 것은 이 책에 빨간 색연필로 표시했는데 좀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열심히 찾아봤는데 찾지 못했다. "그가 긍정하는 자기 이익의 추구는, 그가 공화국의 조건으로 '청빈'을 옹호하는 것이 상징하듯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공공'의 선(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적 인간에 의한 권력과 명예의 추구였다." 그러니까 자기 이익이라는 것으 추구해도 되는데, 공공선을 추구하는 자가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정도까지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세 사회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있던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권력과 명예의 추구라는 목적을 위해 합리적 수단을 냉철히 계산하여 추구하는 정치 지도자(군주)를 모델로 삼아 정식화했던 것이다." 권력과 명예의 추구라는 목적을 위해 합리적 수단을 냉철히 계산하여 추구하는 정치 지도자, 그것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에나 등장한다. 아직 마키아벨리 시대에서 그런 사람을 찾아본다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제1장 56 그가 긍정하는 자기 이익의 추구는, 그가 공화국의 조건으로 '청빈'을 옹호하는 것이 상징하듯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공공'의 선(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적 인간에 의한 권력과 명예의 추구였다. 따라서 그는 중세 사회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있던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권력과 명예의 추구라는 목적을 위해 합리적 수단을 냉철히 계산하여 추구하는 정치 지도자(군주)를 모델로 삼아 정식화했던 것이다. 


 "그 결과 마키아벨리의 인간관 · 사회관에는 군주나 민중의 덕과는 별개인 사회질서의 논리가 희박하다." 이 말을 가지고 생각해보겠다. 마키아벨리의 인간관 · 사회관에는 사회질서의 논리가 희박하다. 그런데 사회질서라는 것은 무엇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가 하면 앞에 나온 법의 지배에 의해서 합법적 지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앞에 나온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합법적 지배를 추구한 근대국가, 합법적 지배에 의해서 유지되는 근대국가에 일원을 했다고 했다. 그러려면 마키아벨리의 인간관 · 사회관에는 분명히 사회질서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같은 책 안에서 그 내용이 서로 충돌되고 할 것이다. 그리고 "시장의 변덕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와 사치 등 군주가 제어할 수 없는 힘에 직면했을 때 그는 그것을 '운명(포르투나)'으로서 거부하고 운명의 '여신'을 힘으로 지배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문장이 뭔지를 모르겠다. "이 거부를 지탱하는 정신이야말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의 '덕(비르투)'이었다." 이런 부분이 그냥 막연한 논증이 없는 얘기이다. 전체를 읽어보고 나면 마키아벨리에 관해서 과연 어떤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가, 마키아벨리의 고전 텍스트를 정밀하게 읽어보자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맨 마지막에 있는 것처럼 "맹목적 운명의 저편에 뭔가 새로운 사회질서의 출현이 예고되었을 때에 사회사상의 새로운 전개가 시작된다." 맹목적 운명의 저편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지칭하는가. 맹목적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moira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포르투나로서의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순환적 운명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맹목적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moira인데 moira라고 하는 것은, 글쎄 맹목적이라는 것이 눈을 가리고 있다는 뜻이라면 포르투나 여신일 수 있다. 포르투나 여신의 상징을 보면 눈을 가리고 있다. 그래서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는 눈을 가리고 있는 운명의 여신이 포르투나이다. 그것이 순환사관을 상징하게 되는데 그것 저편이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순환 사관이라고 하는 역사라고 하는 것은 한 번 흥하고 한 번 망한다고 하는, 흥망성쇠가 쳇바퀴 돌듯이 돌아간다고 하는 것, 그것의 저편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면 계몽적 또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직선적 진보적 역사관인가. 그런데 그것이 종교개혁 사상이 그 첫걸음인가, 종교개혁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진보적 역사관에 근거한 사회사상의 새로운 전개인가. 개념 하나 하나를 따져가면서 읽어보면 굉장히 뭔가 그림을 그리려고 해도 그려지지 않는, 멋있는 말들의 모자이크가 아니었나 한다.  

제1장 56 그 결과 마키아벨리의 인간관 · 사회관에는 군주나 민중의 덕과는 별개인 사회질서의 논리가 희박하다.

제1장 56 시장의 변덕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와 사치 등 군주가 제어할 수 없는 힘에 직면했을 때 그는 그것을 '운명(포르투나)'으로서 거부하고 운명의 '여신'을 힘으로 지배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거부를 지탱하는 정신이야말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의 '덕(비르투)'이었다. 그리고 맹목적 운명의 저편에 뭔가 새로운 사회질서의 출현이 예고되었을 때에 사회사상의 새로운 전개가 시작된다. '종교개혁' 사상이 그 첫걸음이었다. 

제1장 마키아벨리는 전반적으로 독해가 난해가 그런 부분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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