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사회사상의 역사 - 종교개혁의 사회사상

 

 

2023.05.08 사회사상의 역사 - 종교개혁의 사회사상

-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제시한 테제는 이미 논박된 것이므로 그것에 근거하여 종교개혁의 사회사상을 논의하는 것은 논증 자체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 된다.  
- 토니,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이 베버 테제에 대한 논박을 담고 있다. 
- Kurt Samuelsson, Religion and Economic Action: The Protestant Ethic, the Rise of Capitalism and the Abuses of Scholarship 

 

오늘 《사회사상의 역사》는 제2장 종교개혁의 사회사상을 읽는다. 그런데 이 부분을 59~79페이지의 내용인데 회페의 「정치사상사 토론」을 할 때 종교개혁 부분이 나오지 않았다. 루터와 칼빈 이런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그때 토론을 하면서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그리고 종교개혁이 가지고 있는 사회사상의 측면들을 토론문에 쓸까 하다가 해야 할 얘기가 굉장히 많아서 미루어 두었던 부분이 많은데 이 책 《사회사상의 역사》을 읽는 분들은 일단 20페이지에 해당하는 내용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1970년대에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때 쓰여졌던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당연히 50년 전에 쓰여진 교과서의 내용이기 때문에 이 내용은 폐기되어야 할 내용이다.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어떻게 학문이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완전히 폐기되어야 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는가. 전혀 업데이트가 안되어 있다. 종교개혁의 내용은 사실상 그냥 지나가도 무방하다. 처음부터 《사회사상의 역사》를 거론하면서 말했듯이 이 책은 훌륭한 교과서처럼 보이는데 어떤 부분은 이런 얘기를 아직도 하고 있나 이미 끝나 버린 지가 언제인데 하는 부분도 꽤 많고 또 어떤 부분은 굉장히 읽을 만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제7장 ‘철학적 급진주의’의 사회사상 그 부분도 엘리 알레비의 책도 일정 부분은 비판적인 봐야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는 거의 《철학적 급진주의의 형성》을 읽고 제7장 ‘철학적 급진주의’의 사회사상을 보면 이거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일단 제2장 종교개혁의 사회사상에서 20페이지에 해당하는 부분 전체를 왜 이 부분을 전면적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지 이야기한다. 우선 종교개혁의 사회사상이라는 것은 사회사상이라고 하는 것을 종교와 연결시킨다고 하면 아주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막스 베버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오늘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텍스트에 나와있는 주장은, 베버 가설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한때 근대의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한 시대에 받아들여졌던 지나간 날의 가설이기 때문에 그런 사회학의 역사에서 또는 종교사회학의 역사에서 또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역사에서 과거의 중요한 텍스트이기 때문에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읽는 이유가 현대의 물리학을 잘 해보려고 읽는 것이 아니다. 물리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텍스트였기 때문에 한번 읽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훌륭한 책인데 그것을 가지고 종교개혁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적절한 전거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으로 종교개혁과 사회사상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고 하면 일단 논거 자체가 완전히 정리가 끝난 논거이기 때문에 그 위에 쌓아올린 모든 주장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이다. 일단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책으로 논박이 되는 것은 R.H 토니의 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한길에서 번역해서 낼 때는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칼빈이나, 루터는 자본주의와 아무 관계가 없다, 흔히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테제는 칼빈파의 그런 신학이 자본주의적 부르주아의 형성에 밑바탕이 되었고 그들에게 근검절약하는 정신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칼빈파의 신학이 먼저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게 얘기가 된다. 그런데 토니가 논박한 바에 따르면 남유럽 출신의 가톨릭 은행가들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칼빈은 오히려 그들에게 있어서 먼저 나온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이 논증이 되어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연구가 있는데, 아직 한국어로는 번역이 안되어 있다, 스웨던 학자인 Kurt Samuelsson가 쓴 책인데 1961년에 영역본이 나왔다. 《Religion and Economic Action: The Protestant Ethic, the Rise of Capitalism and the Abuses of Scholarship》이다. 그러니까 개신교 윤리, 자본주의의 발흥, 스콜라쉽의 남용인데 이것은 사회학계에서 베버의 학설은 이로써 이제 완전히 논박이 되었다고 얘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휴 트레버 로퍼가 쓴 책이 있다. 보완되었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아주 강력한 논박을 받았던 바 있다. 그래서 지금 오늘날에는 막스 베버 테제를 가지고 종교개혁을 설명하는 것은 더 이상 없다. 그렇게 얘기를 하면 안되게 되어있다. 휴 트레버 로퍼의 책이 1969년에 나온 것인데 《The Crisis of the Seventeenth Century》, 17세기 일반위기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religion, the Reformation, and social change. 거기서 대규모 산업자본주의가 종교개혁 이전에는 이념적으로 불가능했다는 발상이 막스 베버에게 있는 것인데, 대규모 산업자본주의가 종교개혁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이 이미 다 나와버렸기 때문에 막스 베버의 발상 자체가 말이 안된다. 일단 막스 베버의 테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일단 문제가 된다.  

 

그 다음에 제6절 종교개혁 사상에서의 '자유'와 '공공'이 결론 부분인데 거기에 보면 "루터와 칼뱅은 마키아벨리와 다른 방향에서 근대적 자유의 기초를 다지려 했다. 마키아벨리에게 자유는 무엇보다도 고전적 공화주의의 정치적 자유이며, " 우리가 앞서 마키아벨리를 읽으면서 마키아벨리는 자유라고 하는 것에 대한 중심적인 테제를 내세운 바 없다는 것을 얘기했다. 고전적 공화주의의 정치적 자유라는 것은 마키아벨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 것은 문제 설정을 하자면 하는데 논증을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마키아벨리의 텍스트에서 '자유'라고 하는 단어를, 일단 기계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것은 공부할 때 필요하니까, 마키아벨리가 고전적 공화주의의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가 이런 발상이 떠오를 수 있다. 마키아벨리도 자유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가. 일단 마키아벨리의 텍스트를 구해야 한다. 주요 저작이 군주론과 로마사논고이다. 그러면 이것은 아주 기계적으로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과 로마사논고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몇번 썼는지 일단 검색해보면 된다. 예전에는 책을 보면서 하나하나 세었다. 주어캄프 출판사Suhrkamp Verlag에서 나온 헤겔 전집을 보면 맨 마지막이 색인이다. 책 한 권이 색인으로 되어있다. 거기에 보면 주요한 용어들에 대한 색인이 있다. 자유Freiheit라는 단어를 헤겔이 몇번이나 썼는가, 정말 엄청나게 많다. 그러면 헤겔이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했구나, 그러면 그것이 정치적 자유인지 정신의 자유인지 상세하게 색인이 나온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에서 과연 자유라고 하는 개념을 우리가 색인을 찾아보면 그런 것이 있을까, 없다. 나온기는 한다. 그런데 그것이 주요한 문맥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로마사논고의 pdf를 구해서 검색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자유라고 하는 것은 마키아벨리에서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그러면 그렇게 얘기를 해보면 또 이렇게 얘기를 해볼 수도 있다. 사실은 마키아벨리가 자유를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 당시에는 주장하기에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 같아서 다른 단어를 자유라는 함축하는 것으로 썼다. 그것은 '쓰여지지 않은 철학' 독법이다. 쓰여지지 않은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음모론적인 해석이다. 플라톤을 읽은 레오 스트라우스가 '말하지 않은 것이 사실은 진리'이다, 말하지 않은 것은 그냥 그들의 진리이다, 우리는 알 바 아니다. 그런데 지금 마키아벨리가 고전적 공화주의의 정치적 자유를 주장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주장인데, 그 엄청난 주장을 아주 간단하게 한 문단도 아니고 한 줄로 처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사상 과제였다고 말하는데 "루터와 칼뱅에게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자유였다." 얼핏 보면 맞는 것 같다. 가톨릭 교회는 교황의 권위로서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고 그들에게 신앙을 성서에 있는 그대로 믿게 할 자유를 요구했다. 그리고 계속 읽어보면 "루터와 칼뱅은 그리스도교의 원점 회귀에 의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로마교회로부터의 자립과 해방을 추구했다. 두 사상운동은 결과적으로 로마교회를 정신적 지주로 하는 중세 사회의 질서를 해체했으며 정치와 종교라는 별개의 방법으로 근대적 공공 세계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이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일단 루터와 칼뱅이 로마교회로부터의 자립과 해방을 추구한 것은 맞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루터는 결국 도이치 지방의 많은 영주들에게 도이치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그렇게 해서 자기의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 루터파 국교회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자유를 외치다가 국교회 안으로 들어가게 된 셈이다. 그러면 그것은 가톨릭 교회보다 더 자유로웠는가 그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종교적 자유를 요구했다기 보다는 처음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종교적 자유를 실현하지 못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잘알고 있듯이 칼빈의 제네바를 읽어봐도 아주 뚜렷하게 알 수 있듯이 칼빈이 세운 제네바는 굉장히 엄격한 종교적 자유가 없는 곳이다. 즉 칼빈파의 자유만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것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라고 하는 것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것이다. 물론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물론 종교개혁의 사회사상에는 세속적 공공성의 의식적인 정당화론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그 다음에 "루터의 '이웃 사랑'에 의한 세속적 직업의 도덕적 긍정이나 칼뱅의 '자본주의 정신'의 성립은 모두 종교개혁 사상의 '의도치 않은 귀결'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사회적 · 경제적 세계에 대한 명백한 사상적 공헌이었다."고 얘기한다. 이런 부분들은 우리가 사상사를 공부할 때 있어서 지나치게 단순화한 그런 경향이 있다. 그리고 "루터의 '직업'은 가톨릭의 '선행'에 대항하는 종교적으로 유의미한 행위로서 승인된 것이며 칼뱅의 '이윤'에 대한 의미부여 역시 영혼의 구원을 '확증'하는 표시 수단에 불과했다"고 했는데 이런 부분들은 옛날 교과서에 나오던 얘기이다. 이 책에서 이 부분을 유심히 읽고 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것을 꼭 말하고자 한다.  

제2장 77 루터와 칼뱅은 마키아벨리와 다른 방향에서 근대적 자유의 기초를 다지려 했다. 마키아벨리에게 자유는 무엇보다도 고전적 공화주의의 정치적 자유이며, 그것을 지탱할 정치 지도자의 '덕(비르투)'의 확립이 그의 사상 과제였다면, 루터와 칼뱅에게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자유였다. 

제2장 77 루터와 칼뱅은 그리스도교의 원점 회귀에 의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로마교회로부터의 자립과 해방을 추구했다. 두 사상운동은 결과적으로 로마교회를 정신적 지주로 하는 중세 사회의 질서를 해체했으며 정치와 종교라는 별개의 방법으로 근대적 공공 세계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제2장 78 물론 종교개혁의 사회사상에는 세속적 공공성의 의식적인 정당화론이 부족하다. 루터의 '이웃 사랑'에 의한 세속적 직업의 도덕적 긍정이나 칼뱅의 '자본주의 정신'의 성립은 모두 종교개혁 사상의 '의도치 않은 귀결'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것은 당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새로운 사회적 · 경제적 세계에 대한 명백한 사상적 공헌이었다. 

제2장 78 루터의 '직업'은 가톨릭의 '선행'에 대항하는 종교적으로 유의미한 행위로서 승인된 것이며 칼뱅의 '이윤'에 대한 의미부여 역시 영혼의 구원을 '확증'하는 표시 수단에 불과했다. 

 

그 다음 1절 '시대'의 문맥: 근대국가의 출현과 시장경제의 발전을 보면 우선 "종교개혁은 유대교 · 그리스도교적 고대 세계로의 회귀를 통해 봉건사회의 지배 구조를 타파하려는 운동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굉장히 게으른 설명이다. 일단 유대교 · 그리스도교적 고대 세계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뭉뚱그려 놓은 것이다. 유대교 고대 세계가 따로 있고 그리스도교적 고대 세계가 따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 · 그리스도교적 고대 세계라는 말 자체는 성립하지 않는다. 유대교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발상과 정신이 서구 봉건사회를 타파하는데 전혀 기여한 바가 없다. 오히려 칼빈은 조금 덜했는데 루터 같은 경우는 유대교에 대한 증오가 엄청났다. 루터의 증오가 히틀러에 바로 선행하는 정도이다. 그러고 보면 유대교를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발상이다. 그들이 왜 유대교를 본받았겠는가, 루터 같은 사람이 유대교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을리가 없다. 왜냐하면 루터는 도이칠란트의 반유대주의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은 루터가 세팅을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이다. 그게 바로 루터의 과도한 도이치 민족주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 아주 결정적인 논저가 있는데 1523년에 루터가 에세이를 하나 발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이런 식의 얘기를 하면서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 이런 제목을 가진 에세이에서 루터는 이렇게 얘기한다. 버림받고 정죄받은 민족인 유대인을 우리 기독교인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아주 유명한, 저자는 안 읽어본 것 같은데, 일곱가지 행동강령이 나온다. 첫째가 유대인의 회당과 학교를 불사른다. 둘째가 유대인 주거지를 약탈하고 파괴해야 한다. 셋째가 유대인의 모든 기도집을 빼앗아야 하고, 유대인에게 우상숭배와 거짓말과 신성모독을 가르치는 탈무드 관련 저술을 압수해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거의 히틀러 급의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세번째까지는 뭐 그것도 나쁜 짓이지만 봐줄 수 있다. 그런데 랍비의 가르침을 금하고, 이를 어길 시 목숨과 사지를 잃는 고통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 네번째이고 다섯 번째가 유대인은 안전하게 통행해서는 안된다. 어디든 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다음에 고리대금업 종사를 막고 돈을 빼앗아야 한다. 그리고 젊고 건장한 유대인 남녀 손에 채찍과 도끼, 호미, 낫, 물레와 베틀을 쥐어주고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노동한 다음에야 빵을 먹게 할 것을 권한다. 이것이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유대인 수용소에 붙어있는 표어이다. 이게 루터에서 온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 "유대교 · 그리스도교적 고대 세계로의 회귀를 통해 봉건사회의 지배 구조를 타파하려는 운동"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그것으로 귀결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과 르네상스가 봉건사회의 붕괴를 이끌었다는 명제 자체도 이미 역사적으로 틀렸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사실은 에른스트 트뢸치라고 하는 우익역사학자의 결론이다. 에른스트 트뢸치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책이 있다. 역사철학자인데 일정 부분 읽을 만한 부분도 있고 역사주의와 그 문제라는 책이 있다. 그것은 읽어 볼만 하다. 전에 읽고 공부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트뢸치 테제이다. 그런 것이 지금 종교개혁의 시대적 문맥이라는 부분에서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시대적 문맥에서 대해서 지나치게 간단하다. 그 다음에 2. '사상'의 문맥에서 보면 르네상스에서 종교개혁으로 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굉장히 단선적이다. 그러니까 에라스뮈스나 토마스 모어나 이런 대표적인 알프스 이북 지역의 르네상스가 과연 종교개혁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겠는가. 에라스뮈스가 우신예찬을 통해서 그런 것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과는 전현 다른 부분이다. 그 다음에 3. 종교개혁 사상의 '문제'에서 이 부분은 신학적인 논제가 있는데 글쎄 루터와 칼빈의 이 신학적인 논제가 하나의 사회사상으로까지 전개되었다고 라고 말하려면 중간에 매개고리를 많이 넣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루터의 사상을 받아들여서 루터를 국교를 삼은 나라들이 그 사상과 신학적인 신념에 대한 굉장히 강력한 믿음에 근거해서 그러했는가 그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차고도 넘치다. 즉 사회학적 연구가 많이 있기 때문에 개신교를 받아들이고 개신교적 믿음에 대한 그런 것이 국가를 형성하는데 굉장히 중요했다고 말하기에는 낯간지러운 얘기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가톨릭 교회라는 것이 있을 때 그 가톨릭 교회에 신학적으로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은 틀림없다. 그것에 대해서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루터가 반기를 들고 일어났을 때 그 당시 중세의 여러가지 정치적 세력의 판도를 볼 때 루터가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루터는 독일의 영주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러면 루터를 받아들이면서 독일의 영주들은 신앙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루터파를 수용함으로써 가톨릭 교회가 전유럽에 걸쳐 장악하고 있던 여러가지 세속적 재산들, 즉 이익에 눈을 돌리게 되고 그 이익을 자기의 것으로 할 수 있는 대안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단순하게 말하면 '거래'를 한 것이다. 루터는 자기의 교회를 세우고 소극적으로는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면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후원하고 뒷받침하고 무력적으로 보호해주면서 각각의 국가들은 영주들은 재산을 얻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종교개혁의 정치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몇몇은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영주들은 있었겠지만 그것이 꼭 그렇게 신앙의 문제로서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의 정치사상은 칼빈에서는 볼 수 있다. 그런데 루터는 정치사상이라기 보다는 루터가 주장한 것은 신앙의 문제이다. 신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니까 4. 루터의 신앙의인론과 만인사제주의인데 이 신앙의인론과 만인사제론에서 어떤 사회사상이 나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베버 테제인데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저자는 이런 얘기를 한다. "루터의 이런 정치적 입장은 현세의 사회질서를 신의 의지로서 존중하고 신분 · 직업상의 의무가 지닌 종교적 ·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는, 루터 사상의 본질에서 유래한 것이다. 루터는 신앙에 의해 자유로워진 영혼은 곧장 육체를 부린 사회적 실천으로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들은 그냥 개인의 도덕적 차원이지 사회사상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프로테스탄트가 자본주의 형성에 기여한 바가 있다 라고 하는 테제가 무너지면 프로테스탄트의 사회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베버 테제가 무너지면서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5. 칼뱅의 예정설과 자본주의 정신은 주로 막스 베버의 테제가 이 근거를 가지고 있는 부분에 해당하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 우선 당장에 번역되어 나와있는 R.H 토니의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한 권 읽어도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이 책은 학문 방법론을 터득하기 위해서 읽기는 하겠지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꼭 읽어야 할 목록에 넣지 않는다. 읽더라도 사회사상의 역사 속에서 한번쯤은 거론할 만한 책으로 읽는 것이지 그 이상으로 읽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제2장 59 종교개혁은 유대교 · 그리스도교적 고대 세계로의 회귀를 통해 봉건사회의 지배 구조를 타파하려는 운동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제2장 71 루터의 이런 정치적 입장은 현세의 사회질서를 신의 의지로서 존중하고 신분 · 직업상의 의무가 지닌 종교적 ·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는, 루터 사상의 본질에서 유래한 것이다. 루터는 신앙에 의해 자유로워진 영혼은 곧장 육체를 부린 사회적 실천으로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단적으로 결론을 말하자면 제2장 종교개혁의 사회사상은 제1명제부터 시작해서 전면적으로 논증 자체가 논박되어 버린 것이기 때문에 안 읽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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