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이달의 문화시선 | 플라톤, 현실국가를 캐묻다 4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4
- 2023. 6. 14.
국악방송 라디오 문화시대에서 제공하는 '이달의 문화시선 : <플라톤, 현실국가를 캐묻다>'를 듣고 정리한다. 2023.03.07부터 2023.03.28까지 4주간 방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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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8 문화시대 이달의 문화시선 | 플라톤, 현실국가를 캐묻다 4
오늘 마지막 시간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 대단원의 총 정리를 해 주시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세상에 정말 훌륭하고도 정말 고급스러운 지혜가 많은데 책 좀 읽어서 그 책 내용을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전달해드리는 게 제가 하는 일이다.
오늘도 그러면 플라톤의 《국가》에 대해서 얘기해 볼 텐데 지난주에 말씀하셨던 것 중에 지금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동굴의 대화였다. 그러니까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들에게 야 저쪽에 진짜 빛이 있어 라고 했을 때 그래 가보자 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면 내가 동굴 안에 있는 사람인데 누군가가 와서 저기에 빛이 있다 라고 말을 했을 때 나는 어 그래 라고 가볼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여기가 훨씬 좋아 라고 말할 사람인가 그러니까 내 자신에 대한 어떤 탐구의 시간을 좀 많이 가져본 것 같다.
그런 동굴의 비유, 플라톤이 Politeia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를 가지고 후대 학자들 뿐만 아니라 작가들, 소설가들 이런 사람들도 이것을 가지고 좀 더 이제 살을 붙이고 가정을 해서 만들어낸 것들이 꽤 많이 있다.
제3장과 4장 그 중에 제3장이 담고 있는 내용부터 간단히 먼저 소개를 한다면.
이 책의 제3부가 나쁜 상태의 네 가지 정체와 시민들로 그렇게 돼 있다. 그런데 사실은 저처럼 정치사상의 측면에서 플라톤을 읽고, 또 플라톤의 《국가》라는 책은 형이상학의 측면에서 읽을 수도 있고 인식론의 측면에서 읽을 수도 있고, 동굴의 비유도 어떤 앎을 얻어가는 그런 과정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으니까, 꼭 그것이 정치적인 맥락에서 읽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플라톤의 《국가》를 정치 사상 또는 현실 정치, 현실 국가를 캐묻는 입장에서 읽는다면 사실은 나쁜 상태의 네 가지 정체와 시민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어 나온다. 좋음의 이데아라든가 이런 것도 배경에 깔려 있는 이야기이긴 한데 민주정치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행위해야 정말 올바른 민주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또는 그것이 왜 참주 정체 요즘 얘기로 하면 독재정으로 빠져들어가 버리는가 그런 것들을 따져 묻기 때문에 그 제3부 나쁜 상태의 네 가지 정체와 시민들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이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데 이 중에서 가장, 그냥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고 딱 한 부분만 이제 골라서 읽는다 그러면 나쁜 상태의 네 가지 정체와 시민들 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얘기한 것이 이 책이 대화라서 이렇게 쓰여진 것이지 논리적인 이야기로 말하면 나쁜 이야기를 먼저 해야 된다, 제3장 이야기를 먼저 해야 된다 라고 했다.
'쟤네들이 왜 저래'하고 '이렇게 해야 좋지 않아' 이렇게 가는 게 사실은 문제 제기를 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이 되는 것이겠다.
그 문제 제기를 오늘 해보겠다. 그러면 제일 나쁘게 본 게 무엇인지.
네 가지 정체가 있는데 명예 지상 정체, 참주정, 그 다음 민주정 그 다음에 금권정 뭐 이런 얘기가 있는데, 그런데 플라톤이 여기서 말할 때는 그런 정치 체제가 정치학에서 말하는 정치 체제를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많은 사람이 주권을 가지고 주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면 민주정, 몇몇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과두정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이제 정치학적인 정치 분류인데 플라톤을 그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그들이 욕망을 어떤 정도로 표출하고 그 욕망에 따라서 정치적인 공간에서 어떤 식으로 행위하는가에 따라서 이를테면 정치 체제를 구별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세히 읽어보면 욕망에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체제를 망가뜨릴 수도 있고 잘 해 나갈 수도 있고 그렇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욕망에 따라서 라는 것이 뭐가 다른가를 얘기해 보자면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오늘 문화시대 오프닝 멘트로 피터 싱어 얘기를 했다. 피터 싱어가 동물권을 주장했는데 피터 싱어의 핵심적인 주장이 지각이 있는 생명체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니까 동물도 존중받아야 되는 세상인데 민주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은 더욱이나 존중을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 일상적으로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그를 짐승만도 못하는가. 동물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피터 싱어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이야기할 때 저 사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주권을 가지고 투표권을 행사하고 또 뭔가 피선거권을 가지고 대표로 선출될 만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민주정 국가에서는 그런 사람들 모두를 그냥 평등하게 질적인 차이를 두지 않고 모두에게 다 그런 정치적인 권리와 그런 자격을 준다. 그런데 플라톤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플라톤이 민주정을 비판했다 또는 민주정을 반대했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 사람은 그렇게 질적인 차이를 두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어떤 공공 영역에서 행해야 될 바를 생각하지 않고 공공 영역에 나왔어도 사적인 욕망을 투사해서, 그것을 간단히 말하면 공직을 맡는 것이 자신의 수익 사업이 되는, 그런 사람들이 횡행하게 되면 그 사회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정이라 할지라도 그 사회가 올바름을 추구하는 사회는 아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민주정치가 기본적으로 괜찮은 건데 민주정치의 구성원 모두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들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이 피선거권을 얻어서 중요한 공직에 가서 공직에서 행해야 될 의무나 권리를 자기 개인의 사적 이용으로 사용한다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라는 것인지.
그렇다. 그러니까 플라톤이 지금 여기서 말하는 명예를 중시하는 정체가 있고 그 다음에 몇몇 사람들이 다스리는 과두 정체가 있고, 그 다음에 민주 정체가 있고 참주 정체가 있다. 명예를 중시하는 정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있는 정치 체제가 아니라 그 정치 체제의 구성원들은 금전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고 인간은 명예를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다 라고 생각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두 정체를 거쳐서 민주정체로 들어오면 사람들이 누구나 다 평등하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정치 체제가 되니까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하다 보면 결국에는 어떻게 되느냐, 나의 욕망을 좀 더 잘 충족시켜주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던 것인지.
조금 더 가면 그게 옳다고 여기지 않을까요. 아파트 값을 올려주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욕망이 투영된 상태의 어떤 마음을, 그 마음 자체를 옳다고 여기는 경우까지 생긴다는 말씀이신지. 그런데 그렇게 가면 자기의 욕망이라는 건 다 모두가 어떤 공동의 목적을 향해 갈 수는 없는 것이니까 내 욕망을 방해하는 상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 타협이 안 되는 거 아닌지.
옳고 그름, 그러니까 어떤 집단이 있을 때 A라는 집단이 있을 때 그 집단에 A'라고 하는 방향을 추구하는 집단이 있고 또 A''라는 방향을 추구하는 집단이 있다고 해보겠다. 예를 들어서 어떤 방송국이 있으면 A라는 노조가 있고 B라는 노조가 있으면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그 두 노조가 다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가. 자기 편 세력을 늘리려고 노력을 한다. 그렇게 해서 세력이 늘어나면 그 세력이 우리가 해먹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것이 민주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그리고 세력을 늘려서 우리가 해 먹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는 지도자가 나타나면 그 사람은 굉장한 열광 속에서 추대된다. 그러면 이제 그 사람이 이 플라톤이 말하는 것과 같은 민주정에서 등장한 참주정, 참주가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를 우리가 정치 체제에서 흔히 얘기할 때 항상 많이 나오는 문구 중에 하나가 이건 최선의 정책은 아니고 차선의 제도다 라는 말을 한다. 차선의 제도, 최선이 아닌 차선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어떤 제도적인 단점 부분을 플라톤이 지적을 하는 것인지.
그렇다. 그리고 아테나이에서 이것이 전개되었을 때 사람들이 누구나 다 전통적으로 억눌려 왔던 어떤 그런 것들이 있다. 자제를 해야 된다든가 또는 공동체에서 살면서 우리가 남의 눈치를 보면서 차마 못하는 짓들 있는데 그런 차마 못하는 짓들이 이제 민주 정체로 진전이 되면서 페리클레스 시대가 되면서 그것이 억눌렸던 것이 이제 뿜어져 나온다. 더군다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는 아테나이가 제국주의 국가였다. 그러니까 약소국들을 못 살게 굴면서 거기서 뭔가를 착취해와서 흔히 하는 말로 자기네 나라는 민주정이고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제국주의를 펼쳐 보이는 그런 상태니까 뭔가 거품이 끼고 욕망이 부풀어오른 상태가 된다. 그리고 마음껏 내가 뭔가를 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해외에 나가서 전쟁을 통해서 이겨내면서 상대방을 굴복을 시키고 그것으로부터 어떤 자원을 가지고 오고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이 육체의 욕망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그런 수단마저 손에 쥐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아니 내가 뭘,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해버릴 수 있다는데 그게 왜 그게 문제가 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욕망을 안 좋게 보는 것인지.
아니다. 욕망을 안 좋게 볼 수는 없다. 욕망을 안 좋게 볼 수는 없다. 가령 공부하려는 욕망 얼마나 좋은가. 일단 더 잘 살아보려는 욕망이 없었으면 인류 사회가 발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인간이 가진 모든 즐거움이 똑같이 존중되어야 하는데 이제 욕망을 가져다가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가, 이제 플라톤에게 심각한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제일 핵심은 나의 욕망이 공공의 가치와 충돌할 때 무엇을 들어줘야 되는가 인 것 같다. 그것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플라톤이 얘기하는 보편적인 철학자로서의 판단은 무엇인지.
플라톤은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앞에서 얘기했던 것 같은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 이 그걸 판단할 것이다 라고 한다.
그럼 어떻게 보면 약간 중세 시대 귀족정을 지지하는 거 아닌지. 우리나라 조선시대 초기에 신분 제도를 더 지지하는 그런 거 아닌지. 잘 배운 양반들이 있고 어떤 선을 추구하고 올바른 성리학을 공부한 양반들이 정치를 하는 게 맞다 이런 사상인 것은 아닌지.
그렇다. 2500년 전이니까 이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겠다. 그리고 이제 저 무지한 대중들, hoi polloi라고 하는 쟤네들 정말 엉망이구나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 이제 지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또는 스스로를 도야 해서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는 열어둔 상태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기가 지적이다 여기는 사람들은 아테나이가 썩 마음에 들죠. 그러니까 플라톤의 《국가》를 처음 읽어본 게 발췌본으로라도 읽어본 게 대학교 1학년 때인데 그때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는 이제 철이 없었고 또 젊었고 아직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것을 쭉 읽어보면 어느 때는 마음에 들고 어느 때는 마음에 안 들고 그런 게 있다.
그러니까 이게 사실 그런 종류의 정치 체제가 올바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그리고 그 사람들의 논리는 다 맞는데 여기서 제일 허점은 '그래서 그걸 누가 결정할 건데'인 것 같다.누가 다스릴 만한 사람이고 누구는 다스릴 만한 사람이 못 되는지는 누가 결정할 거냐. 정말 훌륭한 사람이 있고 정말 안 훌륭한 사람이 있겠지만, 누가 봐도 확실하게 너는 가야 되는 사람 너는 가면 안 되는 사람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한 7-80%는 그 사이에 있을 거 아닌가.
플라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플라톤과 우리들의 결정적인 차이점인데 저는 우리가 플라톤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플라톤은 이것을 오랜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서 겪어보지 않고 당대의 아테나이만 보고 있는 것이다. 당대 아테나이만 보면 자신이 내놓은 해결책을 가지면 틀림없이 해결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훌륭한 놈이라고 늘 나와서 뭐 했는데 걔들이라고 별 수 없더라’ 그런 사례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금 당분간은 좀 고통스럽고 못난 놈들이 좀 해 먹더라도 그냥 좀 견디고 있다 보면 이게 다시 이루어질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사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제 플라톤보다도 더 훌륭한 증거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민주정이라고 하는 것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다. 그런데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무엇이 차선이고 무엇이 최선인지를 역사적인 사례와 경험 속에서 겪어볼 수 있는 게 민주정이다. 아예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우리가 무엇이 차선이고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세계사를 이렇게 보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그런 온전한 형태의 민주정의라고 하는 게 전 세계적으로 100년이 되지 않았다. 여러 나라가 있었지만 사실 그동안 있었던 모든 민주정치는 결말이 다 안 좋았다. 그리고 우리가 영국이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영국은 아주 오랫동안 귀족정이 횡행하던 나라였다.
그나마 권리장전 등을 통해서 일반 백성들의 권리가 올라갔다는 것이지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헌법적인 어떤 명문이 주어지고 그런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뚜렷하게 박히고 한 건 100년이 안 된다. 이를테면 도이칠란트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부터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이었다가 히틀러로 바로 갔다. 그러니까 그게 바로 플라톤이 말하는 사례와 같은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아주 철저하게 자유주의 원리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인데 그러니까 모든 구성원들이 우리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 그 이익을 극대화해 주는 데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사람으로 히틀러가,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여기서 지금 플라톤이 네 가지 정책을 얘기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핵심적인 부분은 민주정에서 참주정으로 넘어가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게 방금 말씀하신 대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최후의 선택, 그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 제3제국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들이 오버랩 된다. 우리도 항상 그걸 조심해야 한다. 우리도 뭔가 잘 안 풀리고 계속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하고 한없이 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에 질려서 한 방에 해결해 줄 사람을 가끔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바로 참주정으로 가는 그 단초가 될 수도 있겠고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방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뭔가를 기대하는 그런 것, 그게 사실은 민주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 민주정이라고 하는 체제에서 민주정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힘든 것 같다.
지금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굉장히 그 표정과 어투와 어조와 이런 것에서 힘들다는 것이 느껴진다. 힘들 때 우리가 아주 사실은 저급한 욕망에 정신과 몸을 맡기게 된다.
오늘 정리를 좀 해보면 처음에는 몇몇 유력 정치가들이 통치를 하는 과두정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정치를 할 사람을 선발하는 민주정이 있었고, 그 다음에 이제 참주정은 대중영합적 선동가가 등장한다.
그 선동가가 등장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그리고 그들의 직물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겠다고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게 이제 참주정체로 변형되어 간다.
정치 체제를 이렇게 놓고 이것을 개인의 욕망을 어떻게 반영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그 관점으로 바라봤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내가 바라는 바를 성취하고 죽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조금만 성찰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살아오면 바라는 바가 계속 변한다. 그러니까 무엇이 올바른 바람인지 또는 무엇이 그릇된 바람인지를 알지 못하겠고 바라는 바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그 변함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바라는 것이 정말 당신이 바라고 있는 것이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인가, 올바름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이고 무섭기도 하고, 우리의 이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욕망인가.
근데 왜 지속 가능해야 되는지. 그게 바뀌면 안 되는지.
개인 차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공 영역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무엇이 좋은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은 뭔가 좀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되지 않은가 한다.플라톤이 여기서 제기하는 문제는, 우리가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얹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왕 마음이다. 공공이라는 게 없다. 사적인 것이 공공에 그대로 연결돼 버린다. 그런데 민주정은 어쨌든 공공 영역을 결정하는 것이 사적인 개인들이다. 사적인 개인들의 욕망이 모여서 공공 영역에 나아갈 바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 사이에 필터가 없으면 그냥 속된 말로 개판이 돼 버리는 거죠. 그게 이제 민주정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초반에 몇몇 지도자가 지배하는 체제를 과두정 그 다음에 모든 사람이 투표하는 체제를 민주정 그럼 이게 잘못되면 참주정이 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참주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한다면.
참주정이라고 하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 플라톤이 여기서 말하는 참주정은 대중들의 욕망을 한 군데로 끌어모아서 그들을 오로지 그 욕망 충족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는 것이다. 그게 올바른 길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그렇다. 그게 질적인 것을 문제 삼지 않고 그들의 욕망을 이끌어내서 그들이 마음껏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 또는 좀 심하게 말하면 그들에게 이것을 너희들이 욕망을 해야 진짜로 좋은 거야라고 불러 일으켜주는 것 그런 것을 참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참주정의 죄는 누가 지은 건인지. 참주인지 참주를 뽑아서 지지한 사람인지.
처음에는 참주를 뽑아서 지지한 사람이 짓는 것이겠다. 이제 그게 계속되면 저 사람이 우리의 욕망을 한 번 충족시켜줬다. 그러면 이제 저 사람에게 우리가 전폭적인 지지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자리가 사람을 바꾼다고 하는 것처럼 그 사람이 이 사람들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가겠다.
진짜 참주의 대표 주자가 그럼 히틀러인 것 같다.
아주 훌륭한 참주다.
선거로 의해서 당선이 됐지만 당선된 이후에는 완벽하게 참주의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날 그냥 히틀러를 제정신이 아닌 사람 이렇게 생각해서 제쳐두면 안 되고 항상 경계해야 될 어떤 그런 지점들이 있다.
어떤 나라인 경우에는 포퓰리즘으로 많이 가기도 하는데, 선거 자체가 어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지극히 자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그런 지도자를 뽑는 게 많지 않은가.
그게 이제 민주정이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어쩔 수 없는 문제이고 이제 경기해야 되는 어떻게 보면 단 하나의 문제인 건데 그걸 우리가 불과 100년도 안 된 시기에 히틀러를 겪었는데도 또 그런 나라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 도이칠란트는 극우파들이 지금 준동을 하고 있다. 예전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대중독재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 경우에는 파시즘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대중독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그것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피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심각한 문제는 뭐냐하면 민주정은 사적인 욕망을 모아서 그것을 공공 영역에서 합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실현해내는 장치이다. 그 사이에 올바름의 필터가 없다는 것이다. 누가 걸러주지 않는다. 당신들이 원하는 걸 말해주시오. 그게 이제 민의를 청취하는 것인데 그것을 듣고 그것을 정책으로 만들어서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성취해주는 것 그게 민주정이다.
참주정으로 자꾸 가려고 하면 우리가 누구에게 경종을 울려야 하는 건인지.
스스로 겪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많이 겪었다. 한국 사람들은 군부 독재도 겪어보고 이런 여러 가지를 짧은 시간 안에 50년도 되지 않는 기간 안에 서양 사람들은 한 200년 동안 겪을 걸 다 겪었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이 사실은 민주정에 대해서는 굉장히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령 현재 독일의 젊은이들에게 또는 독일의 그 40대들에게 독재에 대해서 설명하면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우리는 알다.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럼 이렇게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 게 제3장이라면 이제 제4장에서는 참된 올바름과 궁극적 보답을 말씀하실 텐데 어떤 얘기가 있는지.
이제부터는 진부한 얘기이다. 진부한 얘기인데 그냥 살아서 똑바로 살면 죽어서 보상을 받을 것이다. 플라톤은 사후 정산 체제를 얘기한다. 일이 벌어진 다음이 아니라 사후((死後))이다. 이게 플라톤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살아서 혼을 순수한 상태로 만들고 올바름을 지켰던 사람은 그 사람이 죽어서 훌륭하고도 순수한 혼으로서 죽지 않겠나. 그런데 이제 또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또 사람으로 태어날 때 올바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태어난 순간에서 죽을 때까지 별로 혼의 진전 상태가 없다면 그 사람이 다시 죽었을 때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때 애초에 태어난 것과 비슷한 상태로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사는 동안에 뭔가 진전 상태가 있으면 좀 더 진전된 상태의 다음 생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을 이제 통한다 할 때 통通, 통 세계론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인데, 이게 부처님 말씀도 있고, 이게 플라톤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고 그 당시에 전 지구적으로 다들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조금 공부 좀 하신 분들은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사후정산체제라도 시스템이라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사람들이 살아서 열심히 안 살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종교가 해온 역할이었다. 사후정산체제가 무너지면서 그것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니까 아주 현실 세계에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그런 아주 그 요상한 그런 이단 종파들이 등장을 했다. 그런데 원래 종교는 사후정산 체제이다. 살아서 복받는다든가 이런 건 없다. 그러니까 현실 세계에서 승부를 내고자 하는 그런 태도들이 등장을 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저도 불교에서의 그런 것들 이런 걸 저런 걸 생각을 해봐도 죽은 다음에 정산을 받는 방법 외에는 참된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 어떤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공부라고 하는 것은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플라톤처럼 일단 뭔가를 믿는 구석이 있어야 된다. 꼭 그것이 실제로 자신이 믿는다고 하지는 않는다 해도 사후정산 체제라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해야 된다. 그리고 영혼을 맑게 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다고 흔히 말하는데 그건 사실 영혼을 맑게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해서든지 공공영역 속에서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 하고 또 당장 내년이면 총선에서 투표를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무시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그런 정치적인 판단들 그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더 나은 선택을 나의 사적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으면서도 이것이 어떤 특정한 영역에서는 그걸 통제하면서 공공영역에서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이런 걸 생각하면서 계속 더 나은 최적의 점을,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 그것이 이제 플라톤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마지막 교훈인데 공부를 해야 된다고 하는 지점에서 사람들이 상당히 좀 언짢은 것은 사실이다.
이제 서론에서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또 올바름이 있다고 해서 이게 이득이 되는가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했는데 4장에서 어떻게 결론이 나오는지.
결론이 나온다. 어떻게 해서든지 참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세계로 가야 된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사후 정산 체계가 있으니까 예를 하나 들어보면 《필레보스》라고 하는 대화편이 있다. 《필레보스》라는 대화편은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인다. 둘러싸여 가지고 그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요구를 한다. 여기서 폴레마르코스를 데려다가 이렇게 하는 것처럼 요구한다. 쾌락이라고 하는 것이 올바름보다 뒤떨어지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밝혀 보여라.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모여가지고 당신을 감금 상태에 놓여 있는 걸 풀어주겠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소크라테스가 거기서 실패한다.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을 이길 수 있는 어떤 것은 없다. 이게 플라톤의 대화편 전체를 이렇게 보면 실패한 지점이 훨씬 많다. 등장 인물로서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결국 설득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도 제가 보기에는 마지막에 죽어서 어떻게 해야 된다 이건 사실 굉장히 비겁한 논법이다. 죽어보면 알 거야 그러는데 뭐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니까요 사후정산 체계라고 하는 건 정말 어이없는 얘기이다. 죽었다 깨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좀 읽어봤는데, 그게 임사체험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도 읽어봤는데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이게 플라톤이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실패했다 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도 그것을 설득력 있게 우리에게 얘기를 못해준다는 얘기이겠다. 그러면 결국 끊임없이 이제 고통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계속 뭔가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한다.
계속 생각이 드는 게 빛 바랜 빨간색 셔츠에 계속 빨간색을 끼얹어 줘야 빨간색이 유지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계속 공부를 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걸 비유적으로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리고 그렇게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 우리는 참주를 뽑을 가능성이 큰 것이고, 그러면 참주라면 시민들이 생각 안 하는 상태에 남아 있는 걸 원할 것 같다.
현대의 참주들이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일 중에 하나가 언론을 장악하고 그 다음에 여러 가지 그런 교육 관련된 그런 것들에 대해서 통제를 가하고 그런 것이겠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나에게 사적인 이익을 취득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나에게 내가 신세진 사람들에게 뭔가 좀 갚으려고 하는 욕망 그런 것들이 이제 덕지덕지 따개비처럼 들러붙게 되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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