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 2-1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5
- 2023. 6. 21.
강유원과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강유원의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를 듣고 정리한다. 2023.05.31~2023.07.26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 진행되는 강의이다.
2023.06.14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 2-1
커리큘럼
5.31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6.14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6.28 플라톤, 국가·정체
7.12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 맥베스 / 오셀로
7.26 허먼 멜빌, 모비 딕
서지정보
호메로스 / 오뒷세이아 (알라딘 바로가기)
투퀴디데스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알라딘 바로가기)
플라톤 / 국가, 정체 (알라딘 바로가기)
셰익스피어 / 리처드 2세, 맥베스, 오셀로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 4, 15)
허먼 멜벨 / 모비 딕 (페이퍼백) (일러스트레이트 양장본)
제2강.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일시: 2023. 6. 14.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172
지난번에 Reading in practice라고 하는 이 지점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지난번에 구조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다.
《유리알 유희》는 Glasperlenspiel, 단어 세 개가 연결되어서 유리알 유희가 된다. 《유리알 유희》는 구조적으로 읽어야 되는 텍스트이다. 지난번에 첫 시간에 얘기한 것이 인문 고전 읽기의 실제에 있어서 첫 번째로 봐야 되는 게, 이게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 그런 측면에서 봐야 된다고 얘기했다. 구조를 가지고 보면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문학 작품인지 아니면 철학 책인지 아니면 역사 책인지 이런 장르는 중요하지 않고 어떤 구조를 가진 텍스트인가 이것을 보는 게 책 읽기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점이다. 그런데 《유리알 유희》 같은 경우는 일단 서사시 구조epic structure를 갖고 있다. 크게 보면 《유리알 유희》의 가운데 중간 부분이 세 개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개 파트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게, 서사시, 그 다음에 5막으로 된 드라마, 5막으로 된 드라마가 프롤로그하고 에필로그가 앞, 뒤로 붙어 있고 중간에 파트 3개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 형식대로 다 쓰는 것이다. 바로 그 형식대로 만들어진 것이 뭐냐하면 다섯 단락 글쓰기 5 paragraph essay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제적인 글쓰기 표준 형식이다. 5 paragraph essay로 쓰는 것이 룰이다. chatGPT에 뭔가를 물어보면 다섯 단락으로 써준다. 예일 대학에서도 그렇게 쓰고 하버드 대학에서도 그렇게 쓴다. 이게 뭐냐하면 1번과 5번이 프롤로그, 에필로그이고, 그 다음에 2, 3, 4가 본론이고 이 형식으로 되어있다. 학위 논문을 쓸 때도 서론, 결론, 1장, 2장, 3장, 이렇게 되어 있다. 이 구조가 서사시에서 시작해서 모든 글에 있어서 텍스트 있어서 기본 구조이다. 그런데 《유리알 유희》도 그 구조로 되어 잇다. 아주 기본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이 기본 구조를 가진 글은 잘 쓰기가 어렵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낭만주의자들은 이런 기본 구조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낭만적 글쓰기이요. 아무런 형식이 없는 글쓰기이다. Glas라고 하는 게 유리이고, perlen이 가공한다, 다듬는다, 그래서 알로 만든다는 것, 절삭, 가공 그래서 알로 만든다 라는 것이고 spiel이 유희이다. 그러니까 유리알 유희이다. 독서 모임을 한다고 하면 첫 시간에 이렇게 얘기를 시작을 해야 한다. 이 《유리알 유희》는 누구 읽으라고 쓴 걸까를 물어봐야 한다. 지난 시간에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얘기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구조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를 했다. 오늘 이제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에서 두 번째는 누구 읽으라고 쓰는가 라는 것이 고전 텍스트 읽을 때 굉장히 중요한 물음이다.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호메로스의 서사시도 사실은 구조보다도 더 중요한 물음이 뭐냐면 바로 누구 읽으라고 쓰는가, 즉 독자 대상이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누구 읽으라고 라는 물음이 있다. 오늘날에는 누구 읽으라고 쓰는가 라고 물으면 다 알 수 있는데,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누구 읽으라고 썼을까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래서 이 텍스트를 누구 읽으라고 썼을까를 주제로 한 수 없이 많은 해석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독자를 누구로 상정하고 썼을까 이게 중요하다. 여러분들 지금 저는 여러분들 들으라고 강의를 한다. 수원글로벌평생학습관에 수요일 저녁에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듣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 다른 곳에 가서 거론할 수 없는 사례들도 여기 나오지 않겠는가.
두 가지가 있다. 즉 대상을 고려하니까 이 저작의 목적, 목적이라는 것과 서술 방식이라고 하는 이 두 가지가 여기에 아주 밀접하게 결부가 된다. 특히나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판소리 춘향가와 비슷하다. 그냥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음유 시인이 떠돌아다니면서 얘기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목적은 듣고 재미있으라는 것이다. 들으면서 감동도 하고 재미도 느끼고 그렇게 하라고,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아주 많은 구송 시인들에 의해서 불렸겠다. 그리고 목적이라는 게,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듣고서 무슨 결심을 굳게 한다든가 그런 게 어디 있겠는가. 그냥 킬링타임용이다.
투퀴디데스를 읽을 때는 원래 그 사람이 무엇을 의도했는지를 텍스트 안을 파고 들어가서 일단 캐내야 한다. 그렇게 하자고 이런 주석서들을 읽는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해봐도 이만큼 밖에 안 되는데 이것을 해설한 주석서가 다섯 권이다. 그러니까 어떤 목적으로 썼는가. 투퀴디데스를 어떤 목적으로 읽어도 관계는 없다. 그런데 쓴 사람은 분명히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럼 누구 읽으라고, 왜 읽으라고, 이것이 텍스트에서 굉장히 중요한, 텍스트를 읽는, 일단 그것을 파악해야지 그 다음에 구조에 대한 이야기도 가능하다.
지금 오늘 여기서 배우면 지금부터 끝까지 계속 이걸 물어봐야 한다. 독서모임 분에게 묻는다. 《유리알 유희》는 누구 읽으라고 쓴 것일까. 일단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읽으라고 썼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도스토옙스키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엄청난 작품인데, 니체가 실존철학에서 중요한 것 같지만 아니고 실존철학에서 진짜 중요한 작품 두 개가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와 키에르케고르의 《공포와 전율》이다. 키에르케고르가 사실상 실존철학의 정초자이고 그 다음에 거기에 어마어마한 깊이를 만들어낸 사람이 도스토옙스키이다. 《공포와 전율》이라는 건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의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두려움과 떨림을 한자로 쓰면 공포와 전율이다. 그렇게 해서 연결되는데 제가 도스토옙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를 강의를 하지 않는 이유는 러시아 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2:12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내가 함께 있을 때에도 언제나 순종하였거니와 그 때뿐만 아니라 떨어져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
도스토옙스키가 애초에 누구를 읽으라고 썼겠나.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읽으라고 썼을 것이다. 그러니까 헤르만 헤세가 Glasperlenspiel를 썼을 때는 도이치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썼을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걸 읽을 때는 도이치어로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정도는 알고 가야 누구 읽으라고 썼는가에 대한 감각이 생기겠다. 유리알 유희의 주인공 이름이 Knecht이다. 노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주인공이 Knecht라고 하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령 어떤 소설을 읽었는데 소설의 주인공이 김 노비 이렇게 나왔다고 해보면 주인공 심상치 않네 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단 언어로 접근이 가능한 영역이 조금씩은 있어야 한다. 누구 읽으라고가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이다. 셰익스피어는 그 드라마를 누구 읽으라고 썼는가. 셰익스피어는 극장 주인이기도 하고 배우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배우들이 읽으라고 썼다. 항상 먼저 생각해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는 배우 읽으라고 써다. 대본이다. 셰익스피어를 강의하면서 이 드라마는 최초의 독자를 누구로 상정했는가를 얘기하지 않고 것은 그건 굉장히 무책임한 것이다. 배우들 읽으라고 썼기 때문에 완성된 원고가 아닐 수 있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는 완성된 대본이라고 하는 것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판본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 어떤 판본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해석이 다를 수 있다. 그 다음에 셰익스피어는 그 당시에 거기 왔던 관객들 있는데, 관객들은 듣기 능력은 굉장히 뛰어난데 읽기 능력은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관객들이 읽으라고 쓰지는 않았다.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는 소리내서 읽으면 굉장히 찰지고 재미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관객이 들으라고 썼다. 그러니까 관객이 그 많은 걸 어떻게 들었을까. 그때는 듣기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읽기 능력이 뛰어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듣기 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니까 관객들이 들으라고 썼다는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그 유명한 드라마 《햄릿》의 주인공은 햄릿이다. 햄릿은 덴마크 왕자이다. 왜 덴마크 왕자인가. 영국 사람들인데 왜 덴마크 왕자 얘기를 하는 것일까. 햄릿은 찌질하고 덴마크 왕조는 무너져 가고 있고 개판이다. 그런데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이 무너져 가는 나라를 세울 생각은 안 하고 찌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면 영국 사람이 그걸 보고 있으면 개운하지 않겠는가. 셰익스피어 당시에 영국 사람들이 덴마크라는 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아야 왜 《햄릿》의 주인공이 덴마크 왕자인지가 답이 나온다. 즉 셰익스피어는 누구 보라고 썼는가에 대해서 물어봐야 그 답이 나온다는 말이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이 1500년대인데 우리로 치면 임진왜란 때이다. 이 당시 영국은 유럽에서 No.1 국가가 아니다. 그 당시 아직 쇠퇴의 기미가 좀 있기는 하지만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 특히 영국에 위협적인 나라는 덴마크이다. 덴마크가 그 당시에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다. 스웨덴, 노르웨이 이 두 나라를 1200년 1300년대부터 자기네 나라 아래다 두고 북해와 발트해를 지배하는 유럽에서의 최대 왕국을 누린 나라가 덴마크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덴마크가 약간 쇠퇴기로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 잘 나가다가 지금 찌그러져 가는 나라의 왕자가 중이병에 걸렸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카타르시스가 그러니까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스페인의 무적함대들을 물리쳤다고는 하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게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이 전 세계의 해양제국을 건설한 것은 그 이름하고 똑같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이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에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누구 보라고 썼느냐를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당시 영국 사람들 보라고. 아니 당시 영국 사람들이 극장에 와서 이걸 보는데 왜 이걸 보라고 보라고 썼지. 그러면 여기서 자연스럽게 누구 읽으라고 하는 물음을 하면 독자의 컨텍스트가 무너지게 된다. 독자는 누구인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잘 읽으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는데 《욥기와 만나다》를 봐도 그렇게 썩 도움이 안 된다. 《모비딕》을 잘 읽을 수 있는 참고서는 없다. 누구 읽으라고 쓴 것인가. 허먼 멜빌 본인이 읽으려고 쓴 것이다. 그런 책들이 제일로 어렵다. 자기가 읽으려고 쓴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쓰고 죽으려고 쓴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인문 고전 강의》, 《역사 고전 강의》, 《철학 고전 강의》를 제가 읽으려고 썼겠는가. 강의 들었던 사람들이 복습하라고 쓴 것이다. 강의 안 들은 사람들도 강의 들은 것처럼 읽으라고 그러니까 친절하다.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썼다. 《에로스를 찾아서》는 제가 읽으려고 썼다. 남이야 읽고 이해를 하든 말든 알 바 아니다. 내가 읽고 즐기려고 썼다.
허먼 멜빌이 자기가 읽으려고 쓰는 건, 이런 것들을 자전적 저작이라고 한다. 위험한 책들이다. 마지막에 《모비딕》을 할 때 더 이야기하겠다. 셰익스피어가 드라마를 쓴 건 그냥 많은 사람에게 상연을 해서, 그 사람은 극장주이니까, 돈을 벌려고 썼다. 그런데 동시에 몇 가지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동시에 이 사람이 당시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약간의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그런 것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많은 잉글랜드 사람들이 읽으라고 연극을 한 것이다. 독자 대상은 똑같아도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논문이라는 건 누구를 읽으라고 쓴 것인가. 심사위원이 읽으라고 쓴 것이다. 독자는 한 명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투퀴디데스는 그러면 누구를 읽으라고 이걸 썼겠는가. 여기서 독자의 배경이 일단 하나 나오고 그 다음에 이것과 긴밀하게 연결된 서술 방식, 목적이라고 하는 것이 여기 들어간다. 그 사람이 생각한 독자가 누구인데 그 독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라는 것을 고려해야 된다.
강의와 책은 다르다. 강의를 듣는 분들이 독자일 수 있는데 목적은 분명히 다르다. 강의는 약간은 좋은 의미에서의 장사와 같은 것이다. 강의를 2시간 들었는데 저 사람 뭐를 가르쳐주는지를 알 수가 없다 라고 하면 그 다음에 안 온다. 목적이 다른 것이다. 제가 쓴 책을 읽어보면 결론이 뭐야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을 것이다. 끝없이 뭔가를 얘기한다. 뭔 얘기가 언젠간 나오겠지만 아직 결론이 안 나온 것 같다. 근데 끝내 결론이 안 나온 경우도 있다. 강의할 때 그러면 되겠는가. 강의는 일단 두괄식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배워 갖고 가야 될 것은 이것이다 라는 것. 즉 독자의 배경도 고려하고 목적도 있는데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뭐냐하면 말 그대로 테크니컬한 영역이다. 어떤 목적에 따라서 이걸 하느냐에 따라 서술의 방식도 달라지고 사용하는 용어도 달라진다. 책은 가져다 놓고 찬찬히 읽다가 힘들면 나중에 읽어도 되지만 강의는 일단 2시간 안에 뭔가 결론이 나와야 한다. 그게 강의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책 읽을 때는 그런 기술이 필요 없다. 이걸 생각해야 한다. 컨텍스트 즉 시대 상황 그 다음에 당면 문제 그리고 이 문제를 위해서 이게 서술했는데 이 3개가 연결이 돼 있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가장 적절한 서술 방식이 이거였는가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서술 방식 아래에 구조가 들어가는 것이다. epic 방식을 쓰느냐 아니면 roman 방식을 쓰느냐 아니면 설명문의 방식을 쓰느냐 여러 가지 구조가 들어간다. 그러니까 지난 시간에 했던 이런 구조에 관한 부분, 이런 구조에 관한 부분은 결국 여기에 하위에 들어가는 이 주제가 되겠다. 그것을 생각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중요한 텍스트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썼느냐 이전에, 누구를 독자로 썼느냐, 왜 썼느냐에 대해서요 생각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공부하면서 그 지점에 포인트를 맞춰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항상 생각을 해야 한다. 강의 자료를 보자. "Thoukydidēs Athēnaios Xynegrapse ton polemon tōn Peloponnēsiōn kai Athēnaiōn” 이게 지금 희랍어로 되어있는데 고대 희랍어의 음가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다. 그러니까 고대 펠로폰네스 전쟁사를 쓰던 당시에 투퀴디데스가 어떤 식으로 이것을 발음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우리가 발음기호 읽듯이 읽으면 된다. 유창하게 읽고 이게 영국식 영어 아니야 그런 거 할 필요 없다. 중요한 거는 어떤 단어를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영국 사람들은 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를 가지고 신분을 구별하지 발음울 가지고 구별하지 않습니다. 고급진 단어를 쓰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아테나이 사람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인들과 아테나이인들의 전쟁에 관하여 썼다." 이 것이 첫 문장이다. 1권 1장 1절의 첫 문장이다. 무시무시한 문장이다. 왜 이 사람이 아테나이 사람이라고 썼는가. 자기는 아테나이 사람이라고 하는 얘기인데 원래 투퀴디데스는 아테나이 사람이다. 그런데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했던 장군이기도 하다. 장군이기도 한데 중간에 한 번 무슨 전투에서 졌다. 그래서 추방을 당했다. 추방을 당한 다음에 이렇게 빙빙 떠돌아다니면서 전쟁을 이렇게 관찰해서 이걸 썼다. 그러면 말하자면 아테나이 사람인데 추방당한 사람이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아테나이 바깥에 사는 아테나이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테나이 사람 투퀴디데스는"이라고 해서 이렇게 썼다. 그러면 아테나에서 추방당한 사람이 뭐를 쓰면서 아테나이 사람 투퀴디데스는 하고 자기를 3자처럼 지칭했다. 그러면 이걸 읽는 아테나이 사람들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이 사람이 우리를 멕이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지금 쫓아낸 사람들도 이걸 읽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은 굉장히 논쟁적인 책이다. 당면 문제가 있다. 그 당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하는 것을 둘러싸고 몇 가지 사람들 사이에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문제가 있었다. 그 갈리는 문제에 대해서 내가 보기에는 이게 정답이야 라고 이 사람이 얘기하기 위해서 썼다. 자기의 주장을 굉장히 강력하게 proclaim하거나 assert 단정 지어 말하거나, 또는 persist 지속적으로 주장하거나, assert가 제일 강하다,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단정지어 말한다니까 maintain은 아니다. 영어 단어들의 말의 강도가 있다. argue 논증하다는 그냥 argue이다. 그런데 proclaim은 자기의 주장을 좀 세게 주장하는 것이고, assert는 내 말 안 들으면 좀 후한이 두려울 걸 이런 정도를 살짝 협박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거기다가 권총을 곁들이면 attack 공격이 된다. 그러니까 강도가 있다. 지금 현재 이 투퀴디데스는 약간의 proclaim이 있다. 그런데 그걸 지금 자기는 썼다 라고 써놨다. 뭔가 이들 사이에 문제가 있다. polemon은 나라와 나라끼리 전쟁하는 것이고, stasis는 내분이다. "펠로폰네소스인들과 아테나이인들의 전쟁에 관하여 썼다" 여기서 핵심은 내가, 투퀴디데스가 아테나이 사람이라는 걸 밝혔다는 게 일단 첫 번째. 투퀴디데스는 이렇게 쓴 게 아니라 "아테나이 사람"이라는 걸 밝혔다는 것. 원전 번역본 주석서를 보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1.1
Thoukydidēs Athēnaios Xynegrapse ton polemon tōn Peloponnēsiōn kai Athēnaiōn.
Thucydides, an Athenian, wrote the war between the Peloponnesians and the Athenians.
아테나이 사람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인들과 아테나이인들의 전쟁에 관하여 썼다.
투퀴디데스는 올로로스의 아들 투퀴디데스이다. 그러니까 서사시 방식으로 말하면 아킬레우스는 누구의 아들 아킬레우스 이렇게 얘기한다. 투퀴디데스는 자기가 아테나이 사람 투퀴디데스. 그런데 토마스 홉스가 이걸 번역을 할 때는 올로로스Oloros의 아들 투퀴디데스라고 했다. 그러면 토마스 홉스는 투퀴디데스를 아테나이 사람 투퀴디데스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건 이 사람을 영웅 서사시 방식처럼 지칭을 한 것이다. 이 지칭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이 당시의 사람들은 항상 어떤 식으로 자기를 지칭하는가 또 그를 어떻게 지칭하는가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정보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 이제 아테나이 사람이라고 했는데 지금 토마스 홉스는 son fo Oloros로 되어 있다. 이런 것들을 쓸 때 분명히 어떤 의도가 있었다는 걸 생각을 하며, 그 다음에 썼다 라고 했는데 그 썼다 라고 하는 단어가 "건축, 의학, 수사학에 관한 기술적인 편담의 적절한 쓰기 그리고 과거의 사태를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뭔가를 쓰는 것, 그 다음에 기록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그 행위가 분석과 재구성을 통한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쓰기"이다. 그러면 투퀴디데스는 자기가 역사가라는 의식도 없고 그냥 기록을 제공한다는 것을, 그런데 그냥 기록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거기 보면 건축, 의학, 수사학에 관한 기술적인 변화.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 전쟁에 관한 테크니칼한 정보를 제공해야겠다 라는 목적으로 이걸 썼다는 것이다. 테크니칼한 것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라는 건 원인과 결과를,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원인과 결과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해야겠다 라는 목표로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전쟁사라기보다는 전쟁기, 비망록에 해당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이것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보여주는데 우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문서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이걸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면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논쟁되고 있는 지점이 있다. 그것에 대해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가장 정확한 기술 문서를 줄 테니까 이걸 보고 판단을 하면 내 말이 맞다는 걸 알 거예요 라고 하는 설득에 있다. 일차적인 목적은 테크니칼한 기술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이 기술적인 정보를 제공해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는 데 있다. 그런데 자기는 아테나이 사람이라고 썼다. 그러면 아테나이 사람들을 독자로 하는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을 때 스파르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테나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왜 아테나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가. 투퀴디데스는 분명히 아테나이에서 추방된 사람이다. 아테나이에서 추방된 사람인데 이 전쟁에 참전한 사람이기도 하다. 추방된 사람이고 전쟁 참전자이다. 핵심은 추방된 사람이다. 추방된 사람은 구경꾼이다. 참전과 구경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걸 읽을 줄 아는 사람 중에 특히 투퀴디데스가 참전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테나이 사람이니까 참전했고 추방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즉 한 발은 전쟁에다가 한 발은 전쟁 밖에다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걸 보면서 우리는 투퀴디데스가 경계인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경계인의 입장에 서 있으니까 여러분들에게, 지금 이 전쟁에 대해서 이렇게 논쟁되고 있는 지점이 있는 게 있으니, 그것에 대해서 내가 아주 확실한 기술적 정보를 제공해서 제 말을 넘어올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이게 이 텍스트를 쓴 목적이다. 그러면 누구 읽으라고 썼는가로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진행을 하면 우리가 이 텍스트를 읽을 때 여기에 나와 있는 말이 100% 팩트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 약간의 불화도 있고 약간 드라마틱하게 만든 부분이 있고, 자기가 주장하고자 하는 부분이 좀 걸린다 싶은 부분은 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는 쓰는 자 마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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