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 2-2

 

2023.06.14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 2-2

커리큘럼

5.31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6.14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6.28   플라톤, 국가·정체
7.12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 맥베스 / 오셀로
7.26   허먼 멜빌, 모비 딕

 

서지정보

호메로스 / 오뒷세이아 (알라딘 바로가기)

투퀴디데스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알라딘 바로가기)

플라톤 / 국가, 정체 (알라딘 바로가기)

셰익스피어 / 리처드 2세, 맥베스, 오셀로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 4, 15)

허먼 멜벨 / 모비 딕 (페이퍼백)  (일러스트레이트 양장본)

 


제2강.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일시: 2023. 6. 14.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172 

 

그러면 아까 말한 것처럼 투퀴디데스가 쓴 목적이 그것이다. 그 다음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쟁기》라고 하는 것이 있다. Commentarii De Bello Galiico라고 되어있다. 코멘터리라고 되어 있다. Commentarii인데 라티움어는 us가 단수이고 us의 복수형이 ii이다. 코멘트들이다. 천병희 교수께서 번역하신 《갈리아 전쟁기》는 원래 Commentarii이다. 우리가 코멘트한다고 할 때 그 코멘트한다가 바로 이것이다. 이건 뭐냐하면 말 그대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설득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를 읽어보면 아주 노골적으로 이 전쟁은 나 아니었으면 못 이겼을 거야가 계속 나온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열등감도 좀 있었겠지만 어쨌든 카이사르 당시의 그 경쟁자가 폼페이우스였다. 우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만 기억하지만 사실은 진짜 잘난 인간은 폼페이우스이다. 전쟁의 공훈도 많고 돈도 많고 또 헤어스타일도 좀 괜찮고, 율리우스 카이사는 머리가 없었다. 폼페이우스한테 좀 열등감이 있었단 말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갈리아 전쟁기》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에 가서 사고를 쳐서 나중에 원로원에서 돌아오라고 하니 루비콘 강 앞에서 말했다. 이 강을 건너지 않으면 우리가 파멸하고, 즉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그래서 율리우스 카이스가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넜다. 이 강을 건너면 로마가 파멸한다, 즉 반역을 저지른 거란 말이다. 반역을 저지른 놈이 갈리아에서 자기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했어 라고 쓴 게 《갈리아 전쟁기》이다. 그러니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엄밀한 역사적 사실을 썼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아주 뚜렷하게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면 투퀴디데스는 자기가 역사가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뭔가를 쓰는 사람인데 poietes로서 쓴 것도 아니고 sophos 현명한 사람으로서 쓴 것도 아니고 philosophos로서 쓴 것이 아니라 수사학자로서 쓴 것이다. 누가 투퀴디데스한테 당신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라고 물으면 저는 rhētōr입니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수사학자이다. 수사학자라고 하는 게 웅변가, 연설가라는 뜻도 된다.  키케로는 연설가orator이다. 오라토리오이다.  오라토리오는 라티움어로 연설이다. 그게 음악 장르가 아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의 목적이 무엇인가. 헨델, 바하의 직업은 교회 오피서들이다. 시고토しごと, 일로 하는 것이다. 바하가 일요일마다 하나씩 작곡한다. 바흐의 칸타타가 얼마나 많은가.  

 

수사학자의 덕목은 enargeia, 즉 설득을 가장 잘하려면 enargeia가 있어야 된다는데 그게 바로 생생함이다. 즉 목적이 설득이다. 설득이 목적이라면, 사람들에게 설득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당시의 생각으로는 설득을 잘하려면 생생해야 한다. 생생함이라고 하는 것이 설득의 목적에 가장 잘 기여하는 희랍어로는 enargeia, 라틴어로는 ilustratio, evidentia, 일러스트레이션한다고 그럴 때 그 단어가 원래는 생생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확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증거evidence도 라티움어 나온 말인데 그것도 생생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확실한 진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그것은 묻혀버린다고 생각을 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널리 사용할 수 있는 정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록 매체가 발전해 있지도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가. 기억 속에다 넣어줘야 한다. 기억이 잘 되게 하려면 생생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목적에 의해서 이것이 쓰여지게 된다. 그래서 거기에 키케로가 한 말이 있다. 역사는 시대의 증인이요, 진리의 등불이며 기억의 생명이자 삶의 스승이고 모델의 전달자인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연설가의 목소리가 없다면 역사는 불멸할 수 없다 그 말이겠다.  연설가의 목소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은 생생함이다.  


투퀴디데스는 어떠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는가. 수사학자로서 썼다. "썼다"라고 하는 말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수사학자의 덕목은 생생함enargeia이다.  그러한 생생함이 있어야만 역사나 진리나 기억이나 이런 전달이 될 것이다. 그러면 생생함이라고 하는 것 두 가지를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고 하는 텍스트는 투퀴디데스가 설득을 목적으로 생생함이라고 하는 기술을 동원해서 당대 아테나이 사람들에게 수사학자의 입장에서 쓴 텍스트다.  이렇게 말하면 이제 이 텍스트에 대한 규정이 된다. 그러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거는 역사책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역사책이 아니다. 이것은 argument 책, 논쟁서이다.  그래서 우리가 텍스트를 읽을 때, 《역사 고전 강의》에서 다룬 책이기도 하지만 투퀴디데스의 이 책을 역사 책이라고 말하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고전 텍스트 읽을 때 꼭 그런 학문 분야에 맞춰서 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 다음 그걸 가장 잘 알려주고 있는 부분이, 투퀴디데스의 정체성이 이제 자기가 아테나인이다.  1권 1장 1절에 있는 말 "아테나이 사람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인들과 아테나이인들의 전쟁에 관하여 썼다." 이것이고 두 번째가 지금 읽을 부분 "내가 기술한 역사에는 설화가 없어서 듣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 거리로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22.4
내가 기술한 역사에는 설화가 없어서 듣기에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은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 거리로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다"라고 하는 거 있다. 거기에 대비되는 말은 "설화가 없어서"라고 되어 있다. 설화라고 하는 말이 mythos이다. 이제 지금까지 얘기한 것에서 이제 자기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쓴 이것은 mythos가 아니다. mythos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꾸며낸 것이다.  사실 투퀴디데스의 이것도 꾸며낸 얘기이기도 한데 자기는 연구 장소용이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말은 굉장히 논쟁적이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 뭐냐 이런 것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데 그건 다 mythos다.  꾸며낸 얘기다. 내가 지금부터 써주는 얘기들이 영원히 보존되어야 될 얘기다.  즉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가 진짜야 라고 1권 22장 4절에서 이렇게 써놓는다. 그러면 투퀴디데스는 수사학자로서 사람들에게 전쟁에 관한 어떤 뭔가를 갖다 설득하기 위해서 썼다고 했다. 그럼 무엇에 대해서 설득을 하려고 하는가.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설득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왈가왈부 이렇게 말을 하는데 이것은 사실은 그 사람들이 말하는 건 mythos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이 mythos가 아닌 영원히 사람들에게 되새겨질 만한 이야기다 라고 하는 게 투퀴디데스의 얘기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투퀴디데스는 도대체 무엇을 원인이라고 얘기하는가. 두 번째 페이지에 맨 아래 보면 "사건이 경험되는 방식과 벌어진 사건들을 서사화하는 방식, 사절단들의 연설, 민회에서의 연설" 이렇게 되는데, 투퀴디데스는 일단 설득의 방식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채록했다고 한다. 천병희 교수 번역본을 보면 748페이지 연설 찾아보기라는 게 있다. 연설 찾아보기가 정말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테나이인들이 민회에서 뭐라고 했는데 가만히 보면 이것을 투퀴디데스가 죄다 들으러 다닌 건 아닐 것이다. 들었다고 하는 얘기를 쓴 것 겠이겠다. 그러면 투퀴디데스가 거짓말을 썼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들이다. 이 《펠로폰네스 전쟁기》를 읽을 때는 가장 신경 써서 읽어야 되는 부분이 연설이다. 그러니까 이 연설 중에서도 750페이지를 보면 플라타이아인들의 재판에서 라케다이몬 재판관들의 질문(간접화법)이라고 되어 있다. 전해들은 이야기를 옮겨 채록한 것이기도 한다.  또 어떤 건 자기가 직접 들은 게 아닌데도 직접 들은 것처럼 겹따옴표를 써놓은 부분들도 있다. 이런 걸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왜 이런 걸 썼겠는가. 생생함. 연설을 써놓으니까 생생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여기서 이 연설 찾아보기 이 부분은 따로 보면 재미있다. 연설을 기록해 두었다고 하는 것 그리고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서양에서 그래도 자기가 정치로 뭔가를 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면 이 연설을 다 읽는다. 연설을 간단히 말해서 여러분들이 잘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형식적으로 본뜬 것이다. 여기에 있는 페리클레스의 추도식 연설은 서양에서는 연설의 기본이다. 기회가 되면 게티스버그 연설도 한번 제가 가르쳐 드릴 텐데 꼭 들어가야 되는 요소들이 있다. 적어도 대통령 연설문 쓰는 사람들은, 미국에서는 대통령 연설문 쓰는 사람들을 아무나 데려다가 쓰지 않는다. 투퀴디데스를 읽은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트럼프라 할지라도, 연설문은 트럼프가 쓰지 않으니, 트럼프라 할지라도 연설문들은 일단 기본적으로 레토릭을 갖춘다. 이런 것은 인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이니까 아주 중요하다. 이런 게 정치적으로 기록이 남는다. 공식 문서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전쟁을 겪고 어쩌고 하면서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는데 조선시대에는 상복을 3년 입느냐 어쩌냐 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그랬다. 고려 시대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는데 적어도 세종에서 중종 때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한 150년 정도에 걸쳐서 조선시대가 추구했던 게 바로 그런 것이다. 세종이 왜 한글을 만들었겠는가. 사람들을 유식하게 만들려고 그런 것이다. 한자를 못 읽으면 적어도 이거라도 읽어라. 그러니까 문민화 프로젝트였다. 그건 왜 그러는가. 고려 시대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리는 좀 유식한 세상, 유식한 사람들로 살아보자 라고 생각을 했다. 아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마르티나 도이힐러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쓴 책들에 보면 나온다. 그러니까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는 고려시대 사람들은 안 한 것을 두 가지 한다. 조선왕조 실록과 승정원 일기. 세계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기록문화유산이다. 그걸 왜 썼겠는가. 문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최고위층에서부터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어쨌든 이 연설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기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을 때 여러분들이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쭉 읽으시면 안된다. 연설 목록보다 페리클래스 추도식 연설 그것만 읽으면 된다.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어쨌든 당대의 논의가 있다.  이것을 잘 알아놓아야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인이라고 말할 때 무엇을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에 관한 대표적인 두 가지 설명 방식을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다. aitia와 prophasis 라는 말을 천병희 교수는 다 원인이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prophasis는 징후나 전조, 내면적 의모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원인이라는 말이고, aitia는 prophasis라는 것에다가 도구를 덧붙이는 것이다. 행위와 도구가 결합해서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 투퀴디데스는 도대체 어떤 의도가 아테나이 사람들에게 또는 펠로폰네소스 지역 사람들에게 있었는지까지 설명을 해야 그것이 완전히 설명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이렇게 물어본다.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래. 이것은 prophasis를 물어보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래 이러면 심성 구조, 왜 그 일을 그렇게 해라고 물어보는 것, 멘탈리티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투퀴디데스가 궁금해하는 것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강의자료를 보면 "전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일련의 사건으로는 아테나이가 코린토스의 식민지 코르키라와 동맹을 맺게 된 것이며 그 외에도 플라타이아, 포티다이아 등을 둘러싼 패권 전탈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메가라의 상업 활동을 봉쇄하면서 스파르타와의 갈등은 고조되었다." 이렇게 돼 있는데 이런 것들이 전쟁의 aitia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이전에 뭐가 있었을까. 펠로폰네소스, 특히 스파르타 사람들이 아테네가 힘이 세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더라 하면 prophasis이다.

 

"도구는 심성과 행위가 작용하는 토대인 지리적 구조와 현실의 힘을 통칭한다" 그랬는데 거기 심성이라고 하는 부분이 바로 prophasis, 징후나 전조에 해당한다. 그래서 여기 prophasis에 해당하는 것이 심성, 진후, 전조. 심성이라는 단어는 멘탈리티이다. 멘탈리티라는 말을 심성이라고 말하는데 멘탈리티라는 말은, 이게 투퀴디데스의 이 책은 국제 관계론international relation, IR이라고 한다. 국제관계론, 국제정치학이라는 말을 잘 안 쓰고 국제 관계론이라고 말한다. 투퀴디데스의 이 책은 국제 관계론에 의해서 가장 오래된 교과서, 쉽게 말해서 외교학과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책이 이것이다.  어떤 식으로 협상을 해야 되는가 그리고 멘탈리티라는 무엇인가, 멘탈리티는 인간의 심성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IR에서 멘탈리티라는 말을 쓸 때에는 그 나라가 지속적으로 다른 나라들을 대할 때 취하는 입장stance를 가리킬 때 멘탈리티이라는 말을 쓴다.  international relation 연구에 있어서 투퀴디데스가, 그러니까 우리는 "양쪽이 공공연하게 제기한 원인"이라고 하는 건 aitia이니까 이것은 지리적 구조와 현실의 힘(자본, 재해권, 함선 건조 기술 등과 같은 인간사를 구성하는 것들)이 있다. 지리적 구조는 인간사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geography이다. 그래서 《사회지리학 개론》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뉴캐슬사회질의학연구소에서 만든 책이다.  지리적 구조와 현실의 힘(자본, 재해권, 함선 건조 기술 등과 같은 인간사를 구성하는 것들)과 그 국가의 멘탈리티를 묶으면 prophasis가 된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외교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나라가 지금 어떤 멘탈리티를 기본으로 깔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한다.  

 

연설 목록에 보면 코르키라 회담 이런 연설 목록들이 있다. 거기 보면 아주 아테나이 사람들이 어디에 가서 잔인하게 하는 얘기들이 많이 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테나이는 괜찮은 나라, 플라톤도 있고 소크라테스도 있고, 괜찮은 나라인인데, 그들 사람들이 괜찮을 수는 있다. 그런데 아테나이라고 하는 나라는 괜찮은 나라도 아니고 안 괜찮은 나라도 아니다. 그 나라가 이러한 international relation에서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가, 지정학적으로 무엇을 노리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기네 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가, 이런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투퀴디데스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요즘식으로 읽으면 국제 관계론 사례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스 전쟁사 그러면 역사에 관한 한 그것부터 읽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우리가 되게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투퀴디데스가 이걸 누가 읽으라고 썼겠는가, 당시 사람들이 읽으라고 썼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이걸 읽으라고 썼는데 그 목적이 무엇인가. 당신들이 알고 있는 전쟁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prophasis와 이런 도구들이 결합된 것들을 전쟁의 원인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도구와 행위와 심성 구조 이것을 다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플라톤의 《국가》에 대해서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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