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 3-2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4
- 2023. 7. 6.
강유원과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강유원의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를 듣고 정리한다. 2023.05.31~2023.07.26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 진행되는 강의이다.
2023.06.28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 3-2
커리큘럼
5.31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6.14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6.28 플라톤, 국가·정체
7.12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 맥베스 / 오셀로
7.26 허먼 멜빌, 모비 딕
서지정보
호메로스 / 오뒷세이아 (알라딘 바로가기)
투퀴디데스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알라딘 바로가기)
플라톤 / 국가, 정체 (알라딘 바로가기)
셰익스피어 / 리처드 2세, 맥베스, 오셀로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 4, 15)
허먼 멜벨 / 모비 딕 (페이퍼백) (일러스트레이트 양장본)
제3강. 플라톤, 국가·정체
일시: 2023. 6. 28.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172
서론 또는 문제 제기가 있고 그 다음에 결론이 있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챕터1이 공동체의 구성과 올바름이고, 챕터2가 공동체의 궁극적 근거와 철학적 정치가, 챕터3이 나쁜 상태의 네 가지 정치와 시민들에 해당한다. 서론 또는 문제 제기에서 올바름에 대해서 얘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 강의 자료 두 번째 장을 보면 참된 올바름과 궁극적 보답 이렇게 되어 있다. 일단 결론부터 보고 중간을 읽어야 한다. 소설을 읽을 때처럼 앞에서부터 읽으면 안 되고 철학 책은 항상 서론을 읽고, 그 다음에 결론을 읽고, 그 다음에 본론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 있는 것처럼 1번, 5번, 2, 3, 4번으로 읽는 것이다. 물론 근대 이후에 1500년 이후의 철학책들은 그렇게 안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일단 고대의 철학책들은 15234의 순서로 읽는다. 아리스토텔레스 말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강의록이니까. 대화편으로 되어 있는 고대의 철학자들의 책들은, 대표적으로 플라톤은 15234로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연습 삼아서 읽어보기 좋은 텍스트로 불량도 적당하고 내용도 재미있는 게 《향연》이 있다. 처음에 나는 그 날 소크라테스와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했던 얘기를 잘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네 라고 시작을 한다. 그게 이제 문제 제기 부분이 한 페이지 밖에 안된다. 플라톤의 《향연》을 보면 처음에 그 얘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에로스에 대한 얘기이다. '난 다 알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공부를 안한다. '자기가 뭔가 모른다'라고 생각을 해야 공부를 한다. 그런데 모른다는 것을 알기가 쉽지 않다. 다 아는 줄 안다는 말이다. 《향연》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움에 관한 얘기, 사랑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지와 앎의 관계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다. 앞부분은 쉬운데 뒷부분에 결론이 나와 있다. 무슨 결론이 나왔는가. 다른 사람은 술 먹고 다 뻗었는데 소크라테스만 멀쩡하더라 라는 결론이 나와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뭔가 말짱한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지 않는데 소크라테스는 말짱한 정신을 가지고 산다. sober라는 영어 단어가 있는데 말짱한 정신을 가진이라는 뜻이다. 사랑에 관한 얘기로 시작이 되었는데 결론은 다들 술 먹고 뻗었는데 소크라테스는 말짱한 정신으로 떠난다. 그것은 말짱한 정신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을 읽지 말고 문제 제기를 읽고 결론을 읽고 2,3,4로 가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 플라톤의 국가도 결론부터 말하면 올바르면 이득이 되는가, 오래 산 사람은 행복한가 라는 주제로 돌아온다. 그런데 중간에 보면 참주 노릇을 하고 산 사람은 비참하다고 생각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이 물음에 대해 우리는 상식적인 답변들을 가지고 있다고 되어있다. 바로 상식적인 답변들이 플라톤이 말한 답변이기도 하다. 철학자들은 뭔가 어마어마한 얘기를 했을 거라고 우리는 짐작을 하는데 플라톤은 사실 죽어서 복받는다, 죽어서 벌 받는다, 착하게 살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건 너무 뻔한 얘기인데 이 뻔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맨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뻔한 대답을 내놓기 위해서 기나긴 논변을 펼쳤던 것이다. 그런데 뻔한 얘기를 하는 것과 그 중간에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를 길게 설명하는 것은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야기를 여러 번 해보는 것이 습득의 방법이다. 그냥 상식적인 답변들을 자세하게 얘기할 줄 아는 사람과 결론만 딱 외워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는 앎의 깊이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플라톤은 그렇게 자세하게 정교한 논변을 동원해서 온갖 경우를 다 들어가면서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폴리스의 차원에까지 관련된 것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동원하는 아주 최종적인 근거가 영혼은 영원히 불멸한다는 것이다. 영혼불멸을 안 믿으면 플라톤 얘기가 다 소용없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뭔가를 남에게 설득을 할 때 완전히 확실하게 거론할 수 있는 증거를 빼고 그냥 이 부분부터는 믿어야 한다 라고 하는 영역이 반드시 있다. 믿음의 영역이 반드시 있다. 그 믿음의 영역이 플라톤에게는 영혼불멸이다. 그래서 영혼불멸을 생각하지 않으면 플라톤의 말은 다 설득되지 않는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건 깔고 들어가줘야 되는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대접받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틀림없는 말인가. 무슨 근거로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게 능력주의meritocracy인데 능력을 재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러니까 철학 공부를 해서 책을 잘 읽는 것이 능력인가. 물론 여기 강의실 안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다. 그런데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아야 한다 라는 말이 있을 때 그 능력이 무슨 능력을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대접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아야 한다라는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그냥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것을 그 누구도 흔쾌히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기준에다가 능력을 얘기한다. 플라톤이 영혼불멸을 얘기하는데 근본적인 차원에서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는 근본 원리fundamental principle에 대한 동의를 이뤄낸다는 건 굉장히 어렵다. 그러니 좋음이라고 하는 것,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 말한 것처럼 the most universal한 주제이다. 동의할 수 없는 근본 원리들을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terminology와 관련된 것인데, 비유라고 하는 것 또는 유비라고 하는 것 또는 알레고리라고 흔히 말하는 것이 있다. 알레고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는 없고 그냥 비유, 상징이라고도 한다. 주로 사용하고 있는 상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되는데 철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상징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심각하게 복잡하고 그런 건 없다. 그래서 그것만 따로 모아서 공부하면 된다. 서양에서 나온 텍스트를 읽을 때는 철학 책에 나오는 상징하고 그 다음에 성서에 나오는 상징 정도만 알면 된다. 그러면 여기 나온 것처럼 태양이 나왔다고 하면 무조건 좋은 것이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유기체는 태양이 있어야만 생명을 유지하니까 그렇다. 그 다음이 선분의 비유가 있는데, 이렇게 선분이 있어서 여기는 불확실한 진리의 영역이고 여기는 확실한 진리 영역이고 얘기하는데 선분의 비율은 잘 쓰이지 않는다.
그 다음에 동굴의 비유는 굉장히 중요하다. 플라톤에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데도 많이 나온다. 《오뒷세이아》에도 동굴의 비유가 있다. 동굴의 비유는 거의 모든 경우의 스토리가 빤하다. 어디에나 다 나온다. 이것은 잘 알아놔야 한다. 동굴의 비유에 담겨 있는 기본적인 terminology는 내려감katabasis와 올라감anabasis이다. 그러니까 상승과 하강, 변증법도 katabasis와 anabasis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장 오래된 상징, 알레고리이다. 예수가 하느님의 외아들인데, 하늘에 있다가 땅으로 katabasis, 십자가에 매달려서 하늘로 다시 anabasis이다. 즉 어디에나 사용되는 것이다. 희랍에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신약 성서에도 나온다. 신약 성서를 쓴 사람들은 그리스어로 쓴 사람들이다. 마르코 복음을 쓴 마르코가 유대인이었느냐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할 수 있는 교양의 자원이 이것이다. 그러니까 구약 성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양의 어떤 배경과 신약 성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양의 배경이 종류가 다르다. 신약 성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양은 기본적으로 katabasis와 anabasis이다. 플라톤의 국가 제일 첫 번째 문장이 "어저께 나는 아리스톤의 아들 글라우콘과 함께 피레우스로 내려갔었네"라고 시작한다. "내려갔었네"라고 시작한다. 국가 자체가 katabasis와 anabasis의 알레고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내려간다와 올라간다가 되게 중요한다. 올라감이라는 건 진리를 향한 올라감, 상승이고, 그 다음에 내려간 것은, 일단 올라갔다가 내려가면 진리를 가지고 내려가는 것이다.
동아시아 세계는 올라간다 내려간다 개념이 없다. 일단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도를 어디서 깨우치는가. 나무 밑에서 도를 깨우친다. 이것이 중요하다. 반면 그리스에는 일단 도를 깨우치기에 적당한 나무가 없다. 이 동네는 무성한 나무가 없다. 그리고 이 동네는 숲속이 악의 소굴이다. 우리 동네와는 다르다. 우리 동네는 숲 속에 가서 쉬는데, 저 동네는 절대로 가면 안되는 곳이다. 고대는 숲속 자체가 별로 없었고, 중세에는 숲 속에 악마들이 살았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야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고, 내려오면 깨우친 진리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내려오는 것이다. 이게 katabasis와 anabasis이다
동굴에서 있는 사람들이 평생 여기 이 그림자가 비치는 동굴벽만 보고 살도록 이렇게 고정되어 있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누군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동굴 바깥으로 기어나간다. 나가니까 태양이 있고, 태양을 보고 아 진짜가 여기 있구나를 알게 된다. 진짜가 있다. 그런데 평생을 동굴 안에서 깜깜한 것을 보고 있던 사람은 환한 것에 대해서 못 믿는다. 철학책을 읽을 때 분명히 우리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진리를 향해 간다. 철학자 당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당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거지 누구나 다 옳다고 하는 건 아니잖아 라고 하는 지점이 있다. 즉 일반인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있다. 그 주장들이 못 마땅해서 놔버리면 영원히 철학책을 못 읽는 것이다. 아까 플라톤의 영혼불멸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런데 플라톤에서 진짜로 제가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은 평생 다른 애들은 여기만 보는데 왜 이 사람은 한눈을 팔았는가이다. 한 눈을 판 누군가이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동의가 안 되면 못 읽는 것이다. 즉 결정적인 지점에서 영혼불멸, 그 다음에 고개를 돌리고 올라가는 사람,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려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처럼 '2반'인들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데 그 지점들은 설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야 되는 지점들이 철학책에 있다. 그러니까 동굴의 비유가 아주 대표적인 그런 비유 중에 하나이니까 꼭 유념하여야 한다.
철학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동굴의 비유를 가지고 굉장히 많이 각색을 해서 크게 해먹은 그런 텍스트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다. 그게 혁명 전위대가 있다. 그들은 어떻게 아는가.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이 서로 대립을 하다가 결국 프롤레타리아가 이긴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들은 동굴의 비유처럼 밖에 나갔다가 왔다고 그러는 것이다. 그게 레닌의 전위대론Vanguardism이다. 우리 말을 믿고 따르라. 그러니까 그게 레닌의 당이론이다. 당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소련이 망한 거 아니겠는가. 플라톤에서는 이 사람이 고개를 돌리는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여기다가 이 사람을 모세라고 해보자. 하느님을 여기다 덧붙이면 동굴의 비유가 금방 이해가 된다. 동굴의 비유에서 고개를 돌리는 자를 모세로 해버리면 Exodus 비유가 되는 것이다. 고난으로부터의 탈출 비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구약성서 얘기이다. 구약성서에 나와 있는 얘기와 플라톤의 국가에 나와 있는 동굴의 비유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사람을 부르는 누군가가 있는가 없는가 차이이다. 그런데 사람을 부르는 누가 있다는 것이 미신이 아니다. 꼭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해도. 그래서 여기 누군가가 이 사람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돌리면 이것을 이제 필로소포스philosophos라고 말한다. 이게 이제 철학자 서사가 되는 거이고, 이 사람이 혼자 고개를 돌린 게 아니라 누군가가 여기다가 얘기를 하면 Exodus 서사가 되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일단 스토리가 전개해가는 것을 보면 Exodus 서사인데 고개를 돌리는 자는 프롤레타리아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다 보니까 이게 철학자 서사를 가지고 만들면 사람들을 끌어당기가 어려워서 안 돌아간다. 그러니까 거기다가 레닌이 당이라고 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전에 러시아 혁명 당시에 레닌이 말한 당은 뭐냐하면 신을 흉내 낸 기관이 된 것이다. 레닌의 당이론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구약 성서의 Exodus 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엄청난 이론인 것 같은데 사실은 그냥 창세기, 출애굽기에 있는 얘기이다.
기본적으로 동굴의 비유에서 katabasis와 anabasis라고 하는 원형archetype을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선박의 비유가 있다. 선박의 비율은 서양에서 많이 사용된다. 즉 고전이라고 하는 이 텍스트들이 생산된 지역이 지중해이다. 선박이라고 하는 건 선장이 있고 그 다음에 선원이 있고 그 다음에 배를 탄 승객이 있다. 그런 것들이 한 나라에 대한 얘기가 된다. 선박의 비유는 이후로도 계속 나온다. 지중해라고 하는 고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텍스트에서는 선박의 비유가 많이 사용된다.
그 다음에 다시 공동체의 구성과 올바름으로 가보자. 올바르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각각의 개인만이 훌륭해서는 안 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도 훌륭해야 된다 라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살고 있던 동네가 어떠한가, 아테나이의 정치체제는 민주정이다. 그래서 아테나이 민주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렇게 얘기를 한다. 근데 여기서 공동체의 긍극적 근거와 철학적 정치가 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정치라고 하는 것이 잘 이루어져서 그 정치를 통해서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려고 한다면 모르는 것은 실천할 수 없으니까 올바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는 사람이 바로 철학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라는 게 플라톤의 주장이다. 그게 바로 플라톤의 생각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이상 국가론이다 어쩌다 이렇게 얘기가 많은데 사실은 이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 다음에 넘겨보자. 그러니까 플라톤의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올바르게 살려면 어떻게 되는가. 그 앞에 나오는 폴레마르코스라든가 케팔로스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나 혼자 똑바로 살면 되죠 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나 혼자 똑바로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플라톤은 당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가 괜찮아야 된다, 그 동네가 괜찮으려면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다스려야 한다. 아주 간단하다. 거기까지 얘기하면 그럼 다 된 것 같은데 잘 안 풀리는 나라들, 엉망인 나라들은 어떠한 지에 대해서 좀 알아보자고 하는 것이 챕터 4에 해당한다.
문제 제기가 올바름이다. 이러이러한 나라에 살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개인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나라를 만들려면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하고 세 번째는 역삼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항상 논증이라고 하는 게 역삼각형으로 되어야 한다. 앞에 조그만 얘기하고 넓게 펼친 게 아니라 역삼각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다음에 4번은 일종의 부록 같은 것이다. 안 좋은 나라들의 사례를 4개 내놓았다. 사례 연구식이다.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친절하다. 그래서 이게 무슨 정치학적인 의미에서의 체제론이라든가 이런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안 좋은 경우의 수를 얘기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플라톤의 국가를 통해서 고전 테스트들은 대체로 이렇게 읽는다 라고 얘기했는데 가장 여러분들이 유념해 둬야 할 점은 이 텍스트를 쓴 사람에게는 이 텍스트에 제기되어 있는 문제와 그 다음에 자신의 대답이 굉장히 핫 이슈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한가한 얘기일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한가하니까 결국에는 이해가 안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그렇게 한가하게 보이는가. 그 사람에게는 굉장히 시급했던 상황이 지금 우리에게 시급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제가 철학 고전 텍스트 읽는 방법을 강의하면서 일단 외우라고 얘기를 한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텍스트the most universal text이니까 일단 외우고 그 다음에 오늘은 고유한 술어terminology, 그 다음에 알레고리, 그 다음에 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제기와 논박 이런 것들. 그리고 서론을 읽고 결론을 읽고 중간을 가야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15234 순서를 읽어야 된다. 철학 책을 소설 책이 읽듯이 읽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한 번 읽어서 이해하겠다고 마음먹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도 우리가 한 번 읽어서 이해 안 되는 그런 투성이다. 그리고 이런 플라톤의 책과 같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런 부분들은 더욱이나 조심을 해야 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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