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 5-2

 

2023.07.26 🎤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 5-2

커리큘럼

5.31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6.14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6.28   플라톤, 국가·정체
7.12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 맥베스 / 오셀로
7.26   허먼 멜빌, 모비 딕

 

서지정보

호메로스 / 오뒷세이아 (알라딘 바로가기)

투퀴디데스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알라딘 바로가기)

플라톤 / 국가, 정체 (알라딘 바로가기)

셰익스피어 / 리처드 2세, 맥베스, 오셀로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 4, 15)

허먼 멜벨 / 모비 딕 (페이퍼백)  (일러스트레이트 양장본)

 


5강. 허먼 멜빌, 모비 딕

일시: 2023. 7. 26.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172 

 

Matt Kish, Moby-Dick in Pictures: One Drawing for Every Page

 

앞서서 서사적 자아에 관한 문제를 얘기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신적인 측면이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은 지금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어떤 상황에 굉장히 몰두하면서, 그것에 완전히 몰두해버리는 한에 있어서는 자기 객관화가 안된다. 그런데도 인간은 끊임없이 본성상 의식의 분열이 일어나기 때문에 의식의 분열을 통해서 자기 객관화를 수시로 수행을 하게 된다. 자기 객관화를 충실히 수행하지 말고 자기 객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고 그건 딴청 부리는 것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그냥 인간은 항상 순간순간에 매몰되어 있을 뿐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기 객관화를 해서 구경꾼처럼 지난 일들을 얘기하는 건 사실 그거는 픽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얼마나 자기가 열심히 하느냐 덜 열심히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순간순간에 매몰되어 있다 라고 한다면 그게 실존주의이다. 자기 객관화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는 게 실존주의이다. 그러니까 단테, 멜빌, 파우스트의 이런 작품들은 실존문학 쪽에서는 비추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하는 사람들은 카뮈와 도스토옙스키만 읽으면 된다. 다른 것은 그냥 카뮈의 아류이거나 도스토옙스키의 아류이다. 사악한 실존주의는 도스토옙스키, 그다음에 좀 괘안은(괜찮은) 실존주의는 카뮈. 그다음에 그 중간 어딘가에서 계속 실존인 척하는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이다.  

카뮈는 자기 서사라고 하는 것이 비겁하다고,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얘기한다. 한스 블루멘베르크라는 사람이 쓴 《난파선과 구경꾼》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런 책들이 다 그런 것이다. 난파선과 구경꾼이라는 비유는 굉장히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것인데 배가 난파되었다고 하면 최선을 다해서 살아날 궁리를 해야지 난파되었구나 그러면서 난파된 배를 이렇게 구경해서 그걸 나중에 혼자서 살아남아서 쓰면 나쁜 선원인가 좋은 선원인가. 나쁜 선원이다. 물론 우연히 레이첼 호에 의해 구원이 되었다. 레이첼(라헬)은 성서에서 가장 위대한 어머니가 레이첼이다.   

레이첼 호에 우연히 구조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우연히 구조가 되어야 그게 사건이 말이 되는 것이다. 가령 거기서 배는 난파되었는데 이슈메일이 헤엄을 쳐서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쁜 놈인 것이다. 배가 난파되었는데 선원으로서 해야 되는 일이 무엇인가. 구호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슈메일은 우연히 구조되었으니까 다행이지 스스로 살아남았으면 그것은 그 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라는 혐의는 벗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 문학 작품은 실존적 자기가 있는 건 아니다. 

카뮈의 작품 중 이방인이라고 번역이 된 작품이 있는데 이방인이 아니라 낯선 인간이다. 카뮈가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다루는 작품이 세 개가 있다. 인간3부작인데 [낯선인간, 최초의 인간, 반항하는 인간이다.] 이방인을 보면 처음에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깽판을 치고 있다. 이게 제정신인가. 그래서 우리는 그를 실존적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반성이라는 게 없는 것이다. 그 순간 at that moment에 그 시간과 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같으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라고 하는 반성이 일어날 텐데 그 반성이 일어나는 게 실존문학자들에게는 비겁한 것이다.  

어쨌든 이 작품에서 겪는 이이면서 동시에 서술하는 이로서의 이슈메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실존적 자아가 더 좋으냐 서사적 자아가 더 좋으냐 하는 것으로 이건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실존적 자아를 좋아하는 이들이 어떤 때 보면 참 속편하게 세상을 산다는 느낌이 있다. 서사적 자아라고 하는 것이, 문학은 실존 문학이 아닌 한 거의 대다수가 서사적 자아를 중심으로 한다. 아예 자기가 겪는 이이면서 동시에 서술하는 이로서의 서사적 자아를 드러내 보여주지 않으면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한다. 겪는 이로서 개입되지 않고 남 얘기하듯이 해버리는 것,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하고 그다음에 철저하게 있는 사태를 그냥 describe만 하고 끝낸다. 그렇게 해버리면 굉장히 무미 건조하지만 상세한 소설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그게 로만이고, 자아가 사라진 것이다. 그것이 에밀졸라와 같은 실험 소설이다. 모비딕은 소설이 아니다. 에픽이라고 하는 것은 뚜렷하게 서사적 자아가 전면에 나와 있기 때문에 소설, 로만이 아닌 것이다. 그다음에 멜빌이 살았던 시대와 멜빌 이전의 미국 문학 이 부분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간단하게 지나가면 된다. 왜냐하면 멜빌은 미국 문학의 전통에서 이들과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다. 위대한 사람의 특징이 그렇다.  

그다음에 멜빌의 작품 시기 구분을 보면 탈색된 진실unvarnished truth이라고 했다. 탈색된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위선이 덧칠해지지 않은 그런 진실을 말한다. 인식 틀에 의한 체험의 왜곡 비판, 여기서 이제 멜빌이 시작이 되는데, 멜빌은 떴다 가라앉았다 떴다 가라 앉았다의 주기를 갖고 있는 작가이다. 진짜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썼다가 돈이 안되면 젖과 꿀이 흐르는 소설 썼다가 또 돈을 벌면 쓰고 싶은 것을 쓰던 사람이다. 그리고 제법 있는 집에 장가 들어서, 장인이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장인한테 미움을 받았나 한다. 인생 살이는 참 복잡하단한 사람이다. 해부학의 시대를 보면 그 시대에 나와 있는 작품이 모비딕의 선행하는 계기가 된 작품인 《마르디》라고 하는 작품이다. 해부학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그런 것을 가리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래서 이제 그다음에 나오는 게 그 유명한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이다. 현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소소한 부서짐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상당히 노년기에 쓴 작품이다. 젊었을 때 막 쓴 것과 나이 들어서 이렇게 아예 모든 걸 내려놓고 쓴 것과는 다르다. 힘을 완전히 빼고 쓴 작품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에 여기 보면 맬빌의 시대에서 미합중국 남북전쟁 이후 재건시대 라고 했는데 미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재건시대이다. 남북전쟁과 그 이후의 재건 시대가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 한 권의 책을 권한다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를 권한다. 《사회지리학개론》을 읽다가 머리가 좀 뻑뻑하다 하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이런 건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으로 할 필요가 없고 그냥 두고 읽으면 된다. 원래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에 나와 있는 책인데, 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라고 제목을 달아놓은 것이 좀 생각이 짧은 것 같긴 하지만 이건 길게 말할 것 없이 좋은 책이다. 여기에 보면 아예 그 부분은 하나의 챕터로 되어 있다. 4장 1850년~1865년 노예제도와 남북 전쟁이다. 그리고 재건기가 65년부터 77년인데 5장이 1865년~1900년이다. 그러니까 19세기 말.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재건기가 실패했다고 본다. 어쨌든 이 책의 4장, 5장 이 부분이 세계적으로도 전환기이기도 하고 미국 사회에서도 전환기이기도 하니까 이 책을 가지고, 오늘날의 미국을 이해하는 데에는 미국의 과거가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이란 나라가 제일 이해하기가 어려운 나라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사실 17세기, 18세기, 19세기의 조선을 보면 오늘날의 한국 사람들의 각이 나온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 워낙 한꺼번에 외국에서 이민들이 밀려들어오고 그것에 의해서 추세가 확 바뀌기 때문이다. 미국의 과거를 이해한다고 해서 미국의 오늘을 이해할 수 있는 건 그건 아니다. 미국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다. 굉장히 엄숙한 것 같지만 지금은 아니다. LA에서 엄숙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 엄숙함이 남아 있는 데는 미시간, 미네소타 이런 곳이다. 그런데 그게 청교도들 때문이 아니다. 미네소타나 이런 곳은 북유럽과 북독일 지역 사람들이 이민 와서 살던 곳이 미네소타이다. 뉴 잉글랜드의 청교도들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과거를 안다고 해서 지금은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어쨌든 그래서 제가 미국사는 그렇게 권하지 않는데 이건 한 번쯤은 읽는 것이 좋다. 


모비딕을 읽는 구조적인 얘기를 하겠다. 모비딕은 다 해서 135개의 챕터가 있고 맨 뒤에 에필로그가 있다. 구조를 보면 프롤로그와 1장이 두 개이고 그다음에 135장과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정확하게 구조적으로 두 개와 두 개가 맨 처음과 맨 뒤에 붙어 있다. 이것은 멜빌이 구조화시켜 두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일단 이런 서사시들은 구조를 알고 있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 멜빌의 모비딕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을 하면 안된다. 이해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미에서 안 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이 안 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목차를 보고 골라서 어디부터 읽을 것인가를 알아두는 게 읽기의 포인트이다.  

일단 땅이 있고 바다가 있다. 이슈메일은 땅에 있고 에이해브 이야기는 바다이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슈메일은 결국 땅으로 돌아올 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에이해브는 바다에 뼈를 묻는다라는 뜻이다. 이슈메일의 무대는 땅인데 3장이 전체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고, 이슈메일은 누구인가 그리고 소우주로서의 피쿼드 호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프롤로그와 1장 그다음에 135장과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그다음에 이슈메일이 서사적 자아라고 하는 것 이것을 제외하고 중간중간에 있는 것들은 서로 연결이 안된다. 다시 말해서 ring composition은 아니다. ring composition은 앞부분에 있는 것과 맨 뒤에 있는 것이 연결되고, 그다음에 여기 있는 것과 여기 있는 것이 이렇게 연결이 되고 이런 것들이 ring composition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꼭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ring composition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다음에 에이해브 이야기가 있고 이슈메일 이야기가 있는데 소우주로서의 피쿼드호라고 하는 표상이다. 멜빌의 이 작품이 좋은 점은 거의 모든 서사시에 나오는 모든 서사시적 장치들이 다 나온다. 간단히 말해서 멜빌이 이것을 참 짜임새 있게 집어넣지는 못했지만 자기가 아는 모든 장치들을 다 망라해서 사용을 하고 있다. 일종의 샘플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소우주라고 하는 개념은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대우주 소우주 개념은 꼭 알아두어야 한다. 예전에는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도 그런 걸 사용하고 있다고 했는데 저는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이슈메일은 누구인가 라는 부분은 앞선 시간에 여러 번 말했다. 이슈메일이 누구인가를 곰곰이 생각 하다 보면 결국 나는 누구인가 라고 하는 질문으로 가게 된다. 장자의 텍스트를 보면 나비의 꿈이라고 하는 거 있다. 아주 동양적인 사고 방식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고 전 세계적인 사고 방식이다. 꿈을 꿨는데 꿈에 내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더라. 그러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나는 나비가 사람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사람이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가 라고 해서 호접몽이라고 한다.  이슈메일이 사실 구경꾼과 겪는 이라고 하는 얘기이다.  

지금 여기서 자아 분리가 일어난다고 말하는데 호접몽이라고 하는 게 장자의 독특한 표현이 아니라 자아 분리가 일어나는 또는 자기 분열이 일어나는 또는 자기 객관화가 일어나는 그런 일인데 그게 바로 이슈메일은 누구인가이다. 자기 객관화 또는 자기 분열, 자기 이중화 이런 것이 일어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서사적 자기를 강조하는 사람들이고 그게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그것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거야, 인간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은 항상 일원화된 그 순간 내에서 딱딱딱딱 부딪쳐서 갈 뿐이야 라고 말하면 실존적인 것이다. 그래서 서사적 인간이라고 하면 역사적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어제 일어난 일을 오늘 또 곱씹어 생각하고 역사적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얘기는 무엇인가. 이슈메일이 살아남아서 자기가 겪었던 일을 얘기하는 것이다. 나중 얘기, 후일담이다.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니까 성찰이다.  

 그다음에 에이해브는 누구인가 라고 해서 28장은 꼭 읽어야 한다. 그러니까 9장, 28장 지금 여기에 모든 챕터를 적어놓은 게 아니라 꼭 읽어야 되는 챕터를 적어놓은 것이다. 그러면 이것만 읽으면 스토리가 연결이 안 될거라 걱정이 되는 분이 있을 수 있는데 어차피 다 읽어도 연결이 안 된다. 그러니까 그러지 말고 여기 짚어 놓은 것만 읽어도 좋고 그것도 좀 힘들겠다 싶으면 지금 설명하는 것만 읽으면 된다. 에이해브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슈메일은 누구인가 이부분만 읽어도 된다. 그것만 촘촘하게 읽어도 어디에서 모비딕 얘기 나왔다 하면 그 모비딕 이야기의 말하자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읽으면서 꼼꼼하게 읽어서 스토리를 파악하려고 하지 말고 이 모비딕을 읽을 때는 계속해서 자기를 그 안에다가 이입시켜서 읽어야 한다. 그러니까 진도가 중요하지 않다.  

이종인씨는 모비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고 말하는데 제가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건 모비딕은 어떤 것인가, 무엇을 상징하는 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 놓은 게 있다. 저도 그런 것을 읽어봤는데 그렇게까지 와닿는 것은 아니고 그냥 위대한 존재 그다음에 인간이 쉽게 닿지 못하는 존재, 너무나도 갈망하지만 내가 손으로 얻을 수 없는 존재 그런 것이다.  

모비딕은 무엇인가 41장, 42장은 꼭 읽어야 하고 선원들의 심리학은 안 읽어도 된다. 그다음 46장에서 72장까지 바다에서의 삶과 고래학의 연결 부분은 고래가 궁금하신 분은 읽어도 좋다. 저는 별로 안 궁금한데 또 이 모비딕 읽은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이 그렇게 꿀재미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어쨌든 99장 진리를 발견하는 방식 그다음에 96장 세상의 구조, 동굴의 비유 이렇게 되어 있다. 이건 플라톤 얘기라는 느낌이 올 것이다. 그래서 사실 철학 책을 좀 읽어본 사람은 96장과 99장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진리의 본질과 현상 그런 것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보느니 그냥 《향연》을 보는 게 낫다. 딱 잘라서 말하면 멜빌이 이걸 설명하는 게 조금 어설프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다. 그다음에 114장과 119장은 꼭 읽어야 한다. 에이해브에 빙의된 자로서 말하는게 아니라 이 소설이 절정이다.  그리고 135장.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어야 되는지 알았을 것이다. 9장 그리고 28장, 이슈메일은 누구인가 에이해브는 누구인가. 그다음에 41장, 42장 모비딕은 무엇인가. 그다음에 96장과 99장은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고, 그다음에 114장, 119장, 135장이다. 오늘 모비딕을 읽는 것에 대해서 설명을 했으니까 부담 없이 읽고 그 대신에 자기를 거기다가 깊숙이 이입시켜서 읽으면 된다. 이런 독서는 그 안에 이렇게 들어가는 것, 함몰시키면서 읽는 것이다.  

그래서 넘겨보면 마지막에 "그는 위엄있는, 신을 믿지 않는, 신을 닮은 사람 에이해브 선장He's a grand, ungodly, god-like man, Captain Ahab"라고 되어 있다. "신을 믿지 않는"과 "신을 닮은"은 무엇인가. 신을 믿지 않는 것은 크리스찬이 아니다 라는 뜻이고, 신을 닮은 은 호메로스 서사시에서 나오는 '신을 닮은 아킬레우스' 이런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pagan의 영웅인 것이다. ungodly는 기독교의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고 god-like는 희랍 서사시의 '신을 닮은'을 가져다 쓴 것이니까 이교도의 신을 닮은 사람이다. 그래서 저는 이 구절을 가지고 에이해브는 적어도 pagan을 본다.   

그다음에 이 백발에 신을 믿지 않는 노인, 증오에 가득 차 세계를 떠돌며 고래를 추적하는 자가 에이해브인데 그 사람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이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썰물에 죽고 어떤 이들은 얕은 데, 어떤 이들은 홍수에. 그런데 나는 지금 가장 높은 물마루에 도달한 파도와 같다. 그러니까 에이해브는 지금 자기가 자기 삶의 절정에서 죽는다고 얘기를 하고 있다. 그 구절이 135장에 있다. 그 순간에 왜 자기가 자기 삶의 절정이라고 생각했는지를 해석해 보는 것은 독자가 해야 한다. 저는 이게 삶의 완성을 그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모비딕을 죽였다. 뭔가를 살해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목표를 성취했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이 사람은 가장 높은 물마루에 도달한 파도와 같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으로써 자기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감정 이입을 하면서 읽으면 우리는 어떤 순간을 가장 높은 물마루에 도달한 파도와 같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멜빌의 이 작품은 pagan epic이긴 한데 상당한 부분, 서사적 자아가 있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주인공, 특히 이슈메일이 주인공이 아니라 에이해브가 주인공인데 서술하는 이는 이슈메일이다. 그러니까 이슈메일에게 우리가 이입될 필요 없이 이슈메일이 알려주는 에이해브에게 이입이 되면 이게 실존문학처럼 된다. 그러니까 자기를 갖다가 주인공 안에다 이렇게 집어넣어서 에이해브에게 열광해서, 에이해브 안에 자기를 집어넣어서 읽어보는 것이 모비딕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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