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홉커크: 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3. 7. 24.
그레이트 게임 -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사계절 |
서문
감사의 말
프롤로그
게임의 시작
불붙는 그레이트 게임
클라이맥스
옮기고 나서
참고문헌
서론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
9 16년 전 이 책을 처음 쓴 뒤로 그레이트 게임과 관련된 땅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나의 이야기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오랫동안 거의 잊혀졌던 중앙아시아와 캅카스가 차르 체제 러시아와 빅토리아 여왕 치하 영국 사이에 벌어졌던 옛 그레이트 게임이 절정기에 이른 19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신문의 표제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1991년 공산주의가 갑자기 극적으로 무너지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거의 하릇밤 새에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다섯 개나 등장했다. 아니, 캅카스 지역까지 포함한다면 여덟 개라고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중앙아시아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조차도 이런 새로운 지정학적 조각그림 맞추기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로마자로 표기된 키르기스스탄 같은 이름도 입에 잘 붙지 않았다.
이 지역 전체를 그냥 소비에트 중앙아시아라고 부를 때가 훨씬 더 간단했다. 얻을 수만 있다면 비자를 하나만 얻어도 바쿠에서 부하라까지, 트빌리시에서 타슈켄트까지, 거기에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까지도 다 갈 수 있었다. 게다가, 물론 이것은 나 자신에게 한정된 이야 기이기는 하지만, 냉전 시대의 절정기에 그곳을 여행하는 것은 늘 적진 뒤로 몰래 들어가는 것 같은 모험이었다. 특히 은밀한 조사를 할 때는 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모스크바의 갑작스러운 퇴장에 뒤이어 서방의 대사관들이 새로 생긴 수도에 문을 열었고, 소련식 이름은 지도에서 추방되었으며, 역사책은 서둘러 다시 기록되었다 외국 회사들은 열심히 뛰어들어 상업적 경제적 공백을 채웠다. 중앙아시아에 20세기의 마지막 큰 보물 몇 가지가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석유와 가스 자원과 더불어 풍부한 금, 은, 구리, 아연, 납, 철 등의 자원도 포함된다. 물론 중요한 송유관도 빼놓을 수 없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서방의 정치 분석가와 신문편집자들은 곧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외국의 열강과 다국적 기업들이 이곳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싸우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부는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목표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공산주의로부터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자본주의로 갑자기 방향을 트는 데는 큰 대가도 따랐다. 체첸이나 오세티야 북부 등 러시아 남부의 이웃한 지역은 물론이고,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경쟁하는 분파들이 권력투쟁을 벌이면서 이 폭발하기 쉬운 지역에서는 작지만 격렬한 갈등이 벌어졌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 지역 상황이 일시적으로 잠잠하다. 그러나 예전에 그레이트 게임 전장에 속했던 다른 곳은 그렇지 않다. 100 년에 걸친 영러 대립의 진원지 노릇을 해온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유혈 사태가 거의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1979년 러시아는 자신의 꼭두각시 정부를 지원하려고 10만 병력을 들여보냈다. 그러나 십 년 간의 극심한 갈등 뒤에 그들은 수모를 겪으며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철수하면서 이전의 꼭두각시 대통령 나지불라 장군을 남겨두고 왔지만, 사 년 뒤 카불이 탈레반에게 항복하면서 나지불라도 몰락했다. 나지불라는 피난처로 삼았던 UN 구역에서 끌려나와 야만적으로 구타와 거세를 당하고, 공개 교수형에 처해졌다. 나지불라가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끔찍한 사진은 전 세계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다. 나지불라가 이 『그레이트 게임』을 파슈토어로 번역하고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과거의 끔찍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모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러시아에 뒤이어 2001년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NATO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갔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비밀 알카에다 기지에서 서방을 목표로 한 9 · 11 유형의 공격이 다시 계획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촉발된 일이었다. NATO가 이끄는 군대는 이런 기지들을 파괴하는 것 외에도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고, 선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고, 거대 마약 거래상을 없애고, 재건을 원조하는 임무를 맡았다. 영국은 지금까지 22명의 전사자, 즉 평균 여드레에 한 명 꼴로 전사자를 냈다. 그럼에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악몽과 다를 것이 없는 임무를 지원하기 위해 추가로 부대를 파병할 계획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재 벌어지는 잔혹한 싸움의 결과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의 가장 강력한 두 선수, 즉 미합중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가스와 석유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이 지역을 평화롭고 협조적인 상태로 유지하기를 바란다. 사실 세계 무대에서 러시아의 새로운 힘은 송유관을 자신들이 통제한다는 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신생 국가 중 어느 하나가 이란의 예를 따라 석유, 근본주의, 핵무기를 무모하게 뒤섞어 휘두를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놀라 머리카락이 쭈뼛 설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지만.
미국과 러시아 외에도 이 지역의 다른 강국, 특히 중국, 인도, 파키스탄은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곳을 유심히 살피며 우려를 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로 중앙아시아는 다시 역사의 도가니 속으로 들어 간 셈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곳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오직 용감하거나 어리석은 사람만이 미래를 예측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중앙아시아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뉴스의 한복판으로 돌아왔으며, 오랫동안 그 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게임종료
659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런던의 제국주의적인 경쟁이 끝난 지도 80년이 넘었다. 두 나라가 싸우던 방대한 땅에서는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오늘날의 신문 표제들이 보여주듯이 정치적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것은 여기서 길게 다루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그러나 그레이트 게임에 참여한 선수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은 한 때 외국인에게 금단의 땅이었던 이 지역이 개방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치트랄에 가는 것이 비교적 쉽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돌로 지은 회색의 요새가 굽이치는 강을 굽어본다. 매너스 스미스가 스직의 암벽을 기어올라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탔던 훈자에 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코널리와 스토다트가 성채 앞의 광장 밑에 묻혀 있는 부하라도 인투어리스트(러시아의 외국인 관광국) 덕분에 방문이 가능하다. 히바, 사마르칸트, 타슈켄트━지진 뒤에 재건되었지만━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중국은 관광객이 카슈가르, 야르칸드, 라싸를 방문하는 것을 허용했다.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전에는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된 곳도 있다. 해골이 흩어져 있는 카라코람 고개가 그 한 예다. 이 고개는 인도북부에서 산맥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가는 주요한 통로였지만, 오늘날에는 카라코람 도로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이 오래된 고개 어딘 가에는 1888년 이곳에서 비참하게 학살당한 앤드루 달글레이시를 기리는 비가 외로이 서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비를 본 지는 꽤 오래되었다. 마지막 카라반이 그 고개를 넘은 것이 1949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젊은 스코틀랜드인의 유해는 살해 당시에 찾아와, 레에 있는 영국 판무관의 방갈로 뒤에 묻었다. 그레이트 게임의 가장 유명한 선수들 몇 명━특히 무어크로프트, 번스, 맥노튼, 카바냐리—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다른 선수들의 무덤은 지금도 찾아가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복 계획 입안자인 카우프만 장군은 타슈켄트의 오래된 러시아정교회 근처에 묻혀 있다. 조지 헤이워드는 길기트의 인적이 드문 유럽인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프랜시스 영허즈번드는 도싯 주 리쳇 민스터의 조그만 교회 묘지에 묻혀 있다.
양편의 선수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거의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들은 제국주의적 자신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애국주의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독교 문명이 다른 모든 문명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확고하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역사가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돌이켜보면서 과연 러시아가 인도에 정말로 위험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침략군이 넘어야 할 장벽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스와 두 명의 포팅어, 버나비와 롤린슨에게 러시아의 위협은 현실이었고, 늘 존재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인도의 역사는 그들의 공포가 옳았음을 증명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한 장군이 만족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지적했듯이, 북쪽과 서쪽에서 이루어진 스물한번의 인도침략 시도 가운데 열여덟 번이 성공을 했다. 강력한 러시아군이 성공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카우프만과 스코벨레프, 알리하노프와 그롬쳅스키 같은 사람들은 중앙아시아의 한국들을 러시아 영토로 만들지 못하면 영국이 결국 이 나라들을 인도 제국에 흡수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물론 인도인에게는 상의한 적도 없고 그들을 고려한 적도 없다. 그러나 인도 국경 너머 이슬람 이웃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이 제국주의적 갈등에서 주로 피를 흘린 사람은 바로 인도인이었다. 그들이 늘 원하던 것은 그냥 내버려두어 달라는 것이었다. 인도인은 1947년 영국이 짐을 싸서 떠나자 그 목표를 이루었다. 그러나 다른 정복자에게 시달렸던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은 인도인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방대한 러시아 제국이 100년 이상 유지되며 차르 시대 그레이트 게임 영웅들의 기념비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이 제국은 1991년에야 전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무너져 내렸다.
그레이트 게임의 영국 쪽 영웅들에게는 그런 기념비가 없었다. 지도에는 그들의 노력이나 희생을 보여주는 자취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 그들은 아무도 읽지 않는 회고록, 이따금씩 눈에 띄는 지명, 오래전에 잊혀진 모험을 기록한 빛바랜 정보 보고서에만 살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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