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다쓰야: 사회사상의 역사 ━ 마키아벨리에서 롤스까지

 

사회사상의 역사 - 10점
사카모토 다쓰야 지음, 최연희 옮김/교유서가

서장: 사회사상이란 무엇인가

제1장 마키아벨리의 사회사상
제2장 종교개혁의 사회사상
제3장 고전적 ‘사회계약’ 사상의 전개
제4장 계몽사상과 문명사회론의 전개
제5장 루소의 문명비판과 인민주권론
제6장 스미스에게서의 경제학의 성립
제7장 ‘철학적 급진주의’의 사회사상: 보수에서 개혁으로
제8장 근대 자유주의의 비판과 계승: 후진국에서의 ‘자유’
제9장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
제10장 J. S. 밀에게서의 문명사회론의 재건
제11장 서구 문명의 위기와 베버
제12장 ‘전체주의’ 비판의 사회사상: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케인스, 하이에크
제13장 현대 ‘리버럴리즘’의 여러 흐름
종장: 사회사상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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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사회사상이란 무엇인가

1. 사회사상의 역사란 무엇인가
큰 서점의 철학 · 사상 코너에 가보면 갖가지 사상사 관계 서적이 늘어서 있다. 정치시상사, 법사상사, 경제사상사, 철학시상사, 윤리사상사 같은 것들로, 사회사상사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정치, 경제, 철학 같은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움 없이 다가온다. 엄밀한 의미와는 별개로 일반 독자에게도 어떤 이미지를 전해준다. 정치는 경제가 아니며 철학은 정치도 경제도 아니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정치사상이나 경제사상, 철학사상 같은 말도 그렇다. 그러나 '사회사상'이라는 말은 반드시 그런 명확한 이미지를 전해주지는 않는다. 주된 이유는 '사회'라는 말자체의 모호함에 있을 것이다. 일상대화나 대중매체에서 '사회'만큼 흔하게 쓰이는 말도 드물테지만 이 말의 엄밀한 의미는 결코 자명하지 않다. 정치와 경제의 경계선은 쉽사리 그어질 것 같지만 정치 · 경제와 사회 사이에 명료한 경계선을 긋기는 쉽지 않다. 정치나 경제는 대개 사회의 일부로 여겨지며 정치와 경제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서의 사회라는 것이 보통의 용법일 것이다.

이를테면 『고지엔』의 '사회' 항목에는 "인간관계의 총체가 하나의 윤곽을 가지고 나타난 경우의 그 집단"이라는 설명이 있으며 그 "주요한 형태"로서 "가족, 촌락, 길드, 교회, 회사, 정당, 계급, 국가" 등을 들고 있다. 이처럼 가족에서 국가까지 포함하는 인간의 공동생활 일반의 여러 형태로서 '사회'를 파악하면 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로 일관되게 모종의 '사회'생활을 영위해왔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사상이나 경제사상도 실은 사회사상의 일부라고 해버리면 사회사상의 특질은 명확해지지 않는다. 50년도 더 전에 출간된 대표적 개설서인 『사회사상사 개론』의 저자들이 한탄했듯이, 바로 "여기에 사회사상사를 다루는 사람들의 고뇌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사정은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와 달리 이 책에서 사용하는 '사회 (society)'의 의미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세계 각지에서 면면히 구축되어온 인간의 사회 일반을 뜻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는 실질적으로는 근대사회, 특히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는 유럽 사회와 그 연장선상에서 성립된 북미 대륙 사회를 가리킨다. 즉, 거기에는 같은 유럽이라 해도 고대 · 중세 사회는 포함되지 않으며 같은 근대라 해도 유럽과 북미가 아닌 방대한 영역들(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중국의 공자나 노자의 예를 들 것도 없이 유럽이든 아시아든 근대 이전의 인류 사회에는 수천 년에 걸친 풍성한 사상의 역사가 있었다. 따라서 인류 사회가 세계화되고 지구상의 여러 민족 · 국민 간의 교류가 인류 사회의 양상을 나날이 바꿔가는 오늘날 '사회'라는 말을 한정된 의미로 쓸 때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고유한 의미의 '사회'는 첫째로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가지는 사회를 말하며, 둘째로는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사회'는 인류 역사상 근대 이후의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책에서 펼쳐질 사회 사상의 역사는 근대국가와 시장경제의 관계를 원리적으로 고찰한 사상의 역사이며, 각 시대에 각 지역에서 살았던 사상가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출현한 국가 및 시장에 관한 문제들과 씨름한 역사이다.

근대 이전의 여러 사회에도—유럽이든 아시아든—다양한 국가가 존재했으며 시장경제 역시 존재했다. 예컨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활약한 고대의 아테나이는 고도로 발달한 도시국가(폴리스)로, 지중해 세계나 소아시아와의 교역을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경우의 국가는 근대적 의미의 법치국가가 아니었으며 시장경제를 일반적 기초로 하지도 않았다. 아테나이의 도시국가는 근대국가가 적어도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노예제도를 대전제로 한 국가였으며, 시장경제 역시 노예제도에 의해 지탱되는 자급자족의 경제 구조였다.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가 지적한 대로 근대 이전의 여러 사회에서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공동체 아래에 '묻혀(embedded)'(『경제의 문명사』) 있었으며 그 자체로 순수한 경제활동이라기보다는 공동체의 정치적 · 종교적 제도의 일환이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사상이 후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든 간에 그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사상'은 아니었다. 플라톤의 정치사상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사상을 논할 수는 있어도 고유한 의미에서 그들의 '사회사상'을 논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다. 문예비평가 레이먼드 월리엄스는 현대적 의미의 '사회(society)' 라는 말의 용법이 16세기 이후에 나타난 사실을 언급한다(『키워드 사전』). 물론 이 책의 대상을 근대사회로 한정하더라도 거기에는 500년 가까운 역사가 있다. '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유럽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 내용을 바꿔왔으며, '사회사상'의 역사는 이런 역사적 변화를 내재적으로 추적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3. '시대'와 '사상'의 문맥
이 책에서는 사상가들의 사상이 주로 두 가지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본다. 첫째는 사상가들이 살았던 '시대의 문맥'이며 둘째는 각 사상가가 과거로부터 계승한 '사상의 문맥이다. 사상가는 특정한 시대와 사회를 살며 그 사회 고유의 문제들과 사상적 · 학문적으로 씨름하는 가운데 선행하는 여러 세대로부터 받아들인 특정한 이념, 개념, 체계를 이용해 스스로의 사상을 탄생시켜왔다. 그것은 기계적 계승 관계가 아닌 다른 '시대의 문맥' 속에서 선행 세대의 사상 전통에 의해 구성되는 '사상의 문맥을 계승하는 과정이며, 각 사상가는 그것을 의식하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유럽 2천 년의 사상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것으로서 자신의 사상을 확립해왔다. 같은 과정 속에서 각 사상가에게 독자적 관점과 사고방식이 더해져 선행 세대로부터 계승된 사상 전통은 새로운 시대의 문제와 격투하면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어떤 질적 변용을 이뤄가는 것이다.

그 결과 각 시대의 사회사상의 단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같은 시대의 문맥 내부에서 사고하면서도 다른 사상 전통에 뿌리내린 결과 또다른 사회사상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그와 반대로 100년 단위의 다른 시대에 살며 전혀 다른 문제와 씨름한 듯 보이지만 같은 사상 전통에 뿌리내린 결과 동질적 사회사상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전자의 예로서는 18세기 유럽에 살며 문명사회의 위기라 일컬어진 동질의 문제와 씨름한 스미스와 루 

소, 19세기 유럽에 살며 자본주의의 위기와 사회주의의 발흥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 밀과 마르크스가 전형적이다. 후자의 예로서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혹은 이성주의라는 같은 사상 전통 속에 있으면서도 18세기 유럽과 20세기 영국 및 미국이라는 다른 시대와 사회의 문맥 속에서 사고했던 흄과 하이에크, 칸트와 롤스의 조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떤 특정한 시대와 사회의 배경에서 어떤 특정한 사상을 평가하는 방법도, 반대로 어떤 서상 전통의 계속성과 일관성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방법도 반드시 온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르네상스에서 현대까지의 근대 사회사상사를 고찰할 때에는 '시대의 문맥'과 '사상의 문맥'을 두 개의 독립변수로서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 지을 필요가 있으며, 어느 한쪽의 문맥에 다른 한쪽의 문맥을 환원시키지 않는 형태로 개별 사상가들의 '개성(individuality)'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 이 경우에 각 사상가의 개성 자체가, 어느 사상가와 그것을 비판 · 계승하는 사상가의 특정한 관계에서는, '사상의 문맥'의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500년에 이르는 근대 사회사상의 발전을 여러 사상의 계승과 비판, 연속과 단절이라는 양면에서 포착하면서 사상가들의 개성을 사회사상사에서의 전통의 계승과 혁신이라는 지(知)의 다이너미즘을 통해 이해하는 것, 바로 여기에 이 책이 취한 방법상의 특징이 있다.

이 방법의 구체적 의미를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관계를 통해 생각해보자. 우선 두 사람 사이의 '시대의 문맥'에는 18세기라는 산업혁명 이전 시대의 스틀랜드인과, 영국의 산업혁명이 거의 완료되고 구미국가들의 자본주의가 확립되어가던 19세기의 독일인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시대'와 '사상'이라는 두 문맥의 구별과 관련된 근본적 차이이며 두 사람의 사상의 차이는 궁극적으로는 모두 이 점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차이를 아무리 강조한들 사회사상 사에서의 두 사람의 역할이나 공헌, 특히 둘 사이의 비판 · 계승 관계의 내실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하긴 이러한 의미의 '시대의 문맥'에서 보면 두 사람 사이에는 언뜻 보아 거대한 역사적 단절이 있지만, 다른 관점을 취하면 거기에 일정한 연속성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없기 때문이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연속성은 두 사람 모두 서구 근대의 문명사회에 살며 그것이 낳은 근본적 문제와 씨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두 사람 모두 '자본주의'를 살았던 사상가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산 시대는 산업혁명의 전과 후라는 전혀 다른 역사 단계에 속하며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비판과 극복이라는 문제를 자각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의미에서 스미스가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그의 시대와 사회를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두 사람 모두 서구근대 '문명사회'의 근본적 문제와 맞선 사상가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들은 각자의 저작 여기저기에서 이 개념을 구사하여 동시대의 서구 사회를 인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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