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마자: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 - 오늘날 역사학에 던지는 질문들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 - 10점
사라 마자 지음, 박원용 옮김/책과함께

여는 말
1장 누구의 역사인가?
2장 어디의 역사인가?
3장 무엇의 역사인가?
4장 역사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5장 원인이 중요한가 의미가 중요한가?
6장 역사는 사실인가 허구인가?

닫는 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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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는 말 

332 미국에서 역사의 가치와 관련하여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면서 피상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끝없이 문제를 야기하는 문장 하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는 스페인계 미국 작가 조지 산타야나의 글이다. 책의 서두에서 보았듯이 과거를 기억하고 그 교훈을 현재에 적용하는 것은 종종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프랑스가 바로 그것을 경험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의 끔찍한 경험 때문에 프랑스는 1940년 동부전선에 마지노선으로 알려진 광범위한 방어체제를 구축하여 교착상태의 2라운드 참호전의 준비에 나섰다. 그러나 마지노선을 피해 북쪽으로 우회하여 밀어붙이는 독일의 신속한 탱크와 군대에 의해 이 선은 빠르게 무너졌다. 즉 과거 전쟁의 '교훈'이 신속하고 치욕적인 패배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확실히 많은 경우에 과거를 적극적으로 잊어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프랑스로부터 러시아, 중국에 이르는 근대혁명의 모든 사례에서처럼 수천 혹은 수백만의 생명을 희생하여 낡은 생활방식을 부정하는 과거를 반복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무차별 폭력과 테러를 창조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존경 역시 마찬가지로 위험할 수 있다. 하나의 진정한 교회를 그리워한 종교 광신자들, 당당한 전통의 남부를 잊지 못하는 인종주의자, 독일제국의 영광을 회복하는 데 열중한 나치주의자에 의해 학살된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이상적이고 한 측면만의 과거를 기억하려고 선택한 사람들은 그것을 제거하려는 혁명가들만큼이나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 

이 책의 전체 장을 통해 나는 역사 공부가 현재와 미래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세련되게 정돈된 격언 형태의 '교훈'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대다수 역사가의 입장에 동조해왔다. 어떤 역사적 상황도 이전의 상황을 그대로 복제하지도 않지만 많은 경우 어떤 교훈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베트남전쟁 시기에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1930년대 유럽의 사례를 근거로 북베트남 독재정권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항할 것을 주장했지만 자유주의자들은 1950년대 공산당의 봉기에 의해 프랑스 제국주의지들이 패배해 베트남에서 축출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철수를 주장했다. 역사의 교훈 개념과 관련하여 합리적 의심을 할 수도 있지만 역사가들의 다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추구하며 더 시기적으로 가깝고 상처가 큰 사건인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나치의 대량학살보다 이러한 지적이 더 합당하게 적용되는 사건은 없다. 즉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수십만 개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결과에 우리가 놀랄 필요는 없다. 그러한 규모의 인위적 공포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져 자포자기하지 않기 위해 유용하거나 보상적인 '연구'를 찾아낼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대다수의 역사기들은 다른 분야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과거가 미래를 위한 손색없는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즉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라는 다짐은 주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 효과적인 동원수단일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 똑같은 일은 결코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홀로코스트와 그외 대규모의 역사적 범죄에 대한 각성은 분명 우리의 윤리적 감수성을 날카롭게 하고 유사한 사태에 대한 경계심을 갖도록 하지만 어떤 미래의 상황도 독일의 1930년대와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기념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를 대표하는 역사가의 결론대로 역사를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다시 기술함으로써 과거를 생생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즉 이 말은 "논쟁과 이견뿐만 아니라 이전의 문제에 대한 연구, 새로운 질문, 그리고 새로운 시각을 의미한다." 

과거가 최상의 목적에 기여하게 하려면 우리는 과거를 특정 위치에 고정시켜서는 안 되고 그것에 대해 논쟁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의 장들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의심할바 없이 나의 회의적인 기질을 반영한 선택이자 역사가 어떠한 이견도 없는 권위로 굳어질 때 '역사'는 쓸모없거나 잘해야 지루한 것이 되며 최악의 경우 위험해진다는 나의 신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 이유로 호메로스와 헤로도토스에서부터 오늘날의 최신 경향까지를 다룬 이 책의 내용을 시각의 진보로 제시하고 싶지도 않다. 즉 역사 서술은 점점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필요와 호기심에 부응하여 이동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혁신과 새로운 시각은 과거의 연구를 신선하고 흥미롭게 유지시키지만 그것이 특정한 영역 혹은 시각을 철 지나거나 상관없는 것으로 버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린 헌트가 지적했듯이 역사의 어떤 분야도 그것이 더 이상 '설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무시되었던 과거의 측면들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 중요성을 회복하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 무렵에 고대 로마의 역사는 정치적 이해를 위한 핵심적 지침으로 간주되었다. 더 이상 그렇지는 않지만 그것이 다시 언제 유용하게 될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30년 혹은 40년 전에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가 서구 국가의 관심에서 오늘날과 같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편 러시아의 과거는 그것이 다시 중요해지고는 있지만 40년 전보다 미국인들에게 덜 긴급한 관심 영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사, 초국가사, 환경사를 오늘날의 최신 경향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역사학계의 최신 경향을 지적하기란 대단히 용이하지만 이러한 경향들이 얼마나 역사학을 규정할지, 혹은 어떤 경향들이 그것을 계승할지는 단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학의 미래를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역사학의 영구적 중요성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가장 간단한 대답은, 역사는 다른 학문이 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미국의 흑인들이 공식적 차별의 마지막 흔적들이 반세기 이전에 사라졌는데도 소득, 교육, 건강, 수명, 범죄율 등 모든 영역에서 그렇게 놀랄 정도의 차별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종주의적 신념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식은 강제이주와 노예제로부터 남북전쟁 이후의 재건기, 인종분리법,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도시정책, 선거권, 사법체계에서의 불평등의 축적으로 이어지는 장기간의 고통스러운 서사를 통한 역사적 방식이다. 현대의 민주적이고 산업화된 사회에 지속되는 또 다른 불평등의 예, 즉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집단과 국가 간의 불평등도 역사를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사회과학자들은 오늘날의 문제를 진단하고 정책의 처방을 제시할 수 있지만 단지 역사가들만이 그러한 문제들이 어떻게 유래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심층적으로 그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해답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통시적으로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어떻게 올바른 질문을 하는지를 가르쳐줄 수 있다.

역사는 다른 학문보다 공공의 삶에 더 많이 관여하기 때문에 현세적 시각이 중요하다. 이 책의 또 다른 목적은 역사가 혼종의 영역임을 여러 방식으로 강조하는 것이었다. 즉 역사는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비전문적이고, 사실적이면서도 상상을 필요로 하며, 학문적이면서도 대중적이다. 과거의 재창조와 해석은 학술서와 학술 잡지에서도 일어나지만 대중적인 베스트셀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역사박물관에서 일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두 세계를 연결시켜준다. 이 책은 역사가 학계를 넘어 그러한 광범위한 매력을 누리는 이유를 제시하려고 시도했다. 즉 과거가 개인 공동체 국가에 매우 중요하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역사학이 이론적 추상화를 넘어 특정한 시간 및 장소와 관련한 생생한 현실에 특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의 강점은 그렇지만 역사학만을 위한 지식에 전념하면서 역사 서술이 때때로 너무나 서술적이고 경험적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또한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한 학문적이고 대중적인 논쟁은 문서보관소의 사소한 기록을 너무나 사랑하는 역사가들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를 상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요약하자면 역사학이 학문으로서 실아 있게 하는 2개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학계와 공공의 세계 사이를 잇는 다리로서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학과, 학교, 박물관, 심지어 정부 기구 내에서 그것이 만들어내는 논쟁이다. 비관론적 예언지들은 언제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것을 지적해왔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암시는 거의 없다. 따라서 책의 말미에 역사의 교훈, 법칙, 위기, 미래에 대한 위대한 선언은 없을 것이다. 앞의 장에서 다루었던 질문과 논쟁이 다양한 모든 형태의 과거에 대해 배우고 주장하기 위한 독자의 흥미와 기술을 날카롭게 했다면 이 책은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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