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완 윌리엄스와의 대화 - 로완 윌리엄스.메리 저나지 지음, 강성윤.민경찬 옮김/비아 |
감사의 말
들어가며
제1부 올바로 보기
제1장 정의에 관하여
제2장 올바로 보기
제2부 헤아리기
제3장 헤아리기
제4장 시간과 관심
제5장 증언하기
제3부 사랑
제6장 사랑과 정의를 위하여
제7장 믿음에 관하여
나가며
에필로그
나가며
263 우리의 대화는 희망에 관해 물으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이 질문 외에는 다른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나눈 이야기 전반에 일관되게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꽤 꾸준히, 그리고 분명하게) 흐르는 흐름이 하나 있다면 희망은 우리가 몸을 지니고 시간을 실아가는 생명체로서의 인간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관념적인 세계, 즉 시간이 없으며 그렇기에 변화도 없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관념과 주장을 명확하게 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관념과 주장을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시간을 초월하는 규칙은 명확하게 할 수도 없고, 이를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특정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존재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며 특정 언어로 말하고, 특정 지역의 풍경에 물든 채 특정 지역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듣고 익힙니다. 우리가 성장하는 방식이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속한 특정 지역 문화에 친밀감을 느끼고 충성심을 갖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지 않는 인간을 상성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를 인간으로 여기는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인간성의 특징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숙고해야 합니다.
타인과 대화를 이어 나가는 법,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우리도 모르게 육체와 정신에 새겨진 단서들을 파악하고 이해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의료계에서는 인공 지능을 활용해 우리의 의학적 상태를 '빨리' 진단할 수 있게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한편으로는 그 가능성을 진단하면서도 한계를 지적합니다. '긴 시간'에 걸친 인간의 진단을 제거하면 그만큼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의사는 일정 시간에 걸쳐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환자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을 위해 그는 자신의 정제된 지식과 능력을 활용하지요. 의사가 환자와의 긴 시간 만남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그러나 비공식적이고, 입증되지 않은 앎은 공식적인 의료 지식과 더불어 환자의 상태에 대한 좀 더 포괄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합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트랜스 휴머니즘, 포스트 휴머니즘이 인기를 끌고 있고 어떤 이들은 이런 운동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갖기도 합니다. 전기 자동차에 일정 정보를 주입하면 그 기능을 개선할 수 있듯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몸을 통해 쉽게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수준의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을 말이지요. 육체가 없는 인간, 시간을 제거한 인간을 상상할 수 없다면, 몸과 무관한 의식을 상상할 수 없다면, 어떤 분들에게는 기이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가 서는 이 세계가 궁극적인 세계가 아님을, 그리고 이 세계를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 않음을 압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그러한 환상으로부터 우리를 돌이키고 있음을 압니다. 그 무언가는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아는 것, 우리가 감지하는 것이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 한 측면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리어 왕이 "냉혹한 폭풍우"를 통해 비가 오면 젖게 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게 되듯 우리의 헛된 야망은 저 상기를 통해 무너집니다. 자급자족에 대한 신화, 물질과 우리의 본질적인 분리라는 기괴한 선화는 구멍이 뚫립니다. 이러한 신화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몇 백 년 동안 우리가 저 환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희망은 우리의 몸에 새겨진 인간성과 다시 연결되는 데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균형을 추구해야 합니다. 몸에 각인된 앎, 특정 지역에 바탕을 둔 앎이 다른 지역에 서는 이들, 다른 언어와 풍경을 이해할 가능성을 남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몸을 지닌 존재라는 이야기는 서로의 유사성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며(때로는 논쟁하며) '모두'의 길을 찾는 대신 왜곡될 위험, 다른 것들로부터 고립된, 폐쇄적인 지역 생태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모두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시간을 실아 갑니다. 이러한 직접적인 친연성, 그리고 학습 과정의 가능성을 부정한다면 보편 이성이나 보편 권리에 대한 감각은 결코 발달할 수 없습니다. 저들에 대한 감각을 무르익게 하는 건 결코 추상적인 것을 발견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과정은 서로의 유사성을 인지하며 둘 사이에 놓인 틈과 차이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는, 시간이 걸리는 활동입니다. 나와 다른 이 사람, 내가 속한 문화와 다른 저 문화도 나, 그리고 내 문화처럼 환경의 도전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수록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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